‘바뀐애’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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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지난 주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경남 거제에서 또 열었습니다. 올해로 두 번째, 지난해 전주미사까지 합치면 세 번째입니다. 
 시국미사가 열린 거제 고현성당 벽면에는「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라는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대통령 사퇴요구와 같은 ‘직접적이고 민감한 성격의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신임 염수정 추기경에게, 좌파 신부들이 교황의 이름으로, ‘한 방’ 먹인 꼴입니다.
이날 미사 참석자 중 상당수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와 수녀, 그리고 비신자 시위꾼으로 알려졌습니다. 고현성당 밖에서는 ‘대한민국수호 천주교모임’ 소속 신도들이「종북망언 시국미사 규탄한다」「대한민국과 천주교를 지키자」등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고, 일부 신도들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 이상원 신부가 강론에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할 때 “사탄은 물러가라”고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대통령 저주 넘치는 인터넷 공간


박근혜 대통령이 7박9일간 인도와 스위스를 국빈방문 하던 지지난 주, 한국의 인터넷과 SNS 공간은 ‘바뀐애-원정녀’ 등 대통령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글들로 넘쳐났습니다. 바뀐애는 진보좌파, 특히 친노무현 성향의 젊은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쓰는 박근혜의 별칭입니다. SNS엔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 라는 글이 떴습니다. 귀국 길에 전용기가 추락해 대통령이 죽길 바란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원정녀는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인터넷 속어입니다. 대통령이 스위스에서 세일즈 외교를 펼치고 있을 때 한 좌파 인터넷 사이트에 ‘원정녀 근황’이라는 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세일즈 외교 중이신 댓통령 각하, 나중에 세계 기행문집이나 화보집 하나 내셔도 되겠어요.”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를 성매매 여성의 ‘몸 팔기’에 빗댄 글입니다.【댓통령은 국정원 댓글로 대통령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은어】변서은이라는 어린 여자 탤런트는 지난해 철도파업 때 대통령을 ‘언니’라 부르며 “철도를 민간에 팔려면 (차라리) 언니 몸이나 팔라”고 막말 트윗을 날리다 방송에서 퇴출됐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막말조롱의 대상이 된지는 오래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홍어나 펭귄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코알라, 이명박 대통령은 쥐새끼로 희화화 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당한 것 같은 혐오스런 막말은 기본이고, 여성성에 대한 성 차별적-폭력적 막말에까지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퇴 안하려면 急死라도?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
임순혜라는 여자가 SNS에 올린 이 ‘악담 트윗’이 화제가 됐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야당추천 자문위원인 임순혜는 이 글 때문에 바뀐애가 탄 공군1호기가 무사히 서울공항에 도착하던 날, 현직에서 잘렸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기관의 하나로, 방송프로를 심의하는 자문위원은 명예로운 신분의 공직자입니다. 인터넷에 실린 임순혜의 사진은 손주까지 봤을 나이의 중늙은이였습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세상 이치를 알고도 남을 지천명(知天命) 나이의 방통위 자문위원이, 현직 대통령의 급사를 바란다는 실명의 트윗을 SNS에 올린 이 ‘담대한’ 지적(知的) 일탈(逸脫)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년, 국정원 댓글파동의 와중에서도 ‘대통령 사퇴’ 만큼은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는 일종의 금기어(禁忌語)였습니다. 일부 친노계열 야당의원이 어쩌다 이 말을 입에 담으면 당 대표 등 지도부가 나서 손사래를 치며 “당론 아님”을 애써 변명했고, 발언을 한 의원에겐 ‘주의’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야당의 ‘몸 사리기’였지요. 각종 조사에서 대통령의 사퇴에 찬성하는 여론은 10%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금기가 깨진 건 천주교의 좌파신부인 박창신의 강론에서였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은퇴신부인 박은 지난해 11월 전주교구 시국미사에서 “국가기관이 개입된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사퇴문제의 공론화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후 정구사의 시국미사는 물론 전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시위에서도 ‘봇물 터지듯’ 대통령 사퇴요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속된 말로 개도 소도 ‘박근혜 아웃’을 외치는 세상이 돼 버린 거지요.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중도 사퇴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설사 부정당선의 증거가 드러나도 현행 선거법상 현직 대통령을 탄핵 이외의 방법으로 물러나게 강제할 방도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어쩌면 앞으로 남은 임기 4년 내내, 이 문제는 박근혜의 발목을 잡으며 국정을 훼방 놓고,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부채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이를 ‘바뀐애 증후군’ 때문으로 보고 싶습니다.


‘바뀐애 신드롬’의 政治學


 “청와대 주인이 문재인이 돼야 하는데 박근혜로 바뀌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때문이다, 바뀌었으면 원래주인으로 다시 바꿔줘야 한다, 그게 정의다–.” 박근혜의 별명 ‘바뀐애’에는 이런 의미가 포괄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데마고그에 능한 좌파 특유의 절묘한 작명(作名)입니다. 산부인과병원에서 애가 바뀌어 ‘출생의 비밀’이 시작되는 막장 TV 드라마의 설정과 닮았습니다.
국정원 댓글로 당선됐으니 물러나라는 것은 사실은 옹색한 구실이고, 친노 좌파들은 그냥 박근혜가 싫어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은지도 모릅니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도, 극 보수적인 외곬의 통치 스타일도, 항상 50%가 넘는 견고한 지지층을 몰고 다니는 것도, 심지어 여성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그들은 싫습니다. 아무리 물러나라 악을 써도 제 발로 물러날 것 같지 않으니까 전용비행기라도 추락했으면 하는 방통위 ‘할머니 전문위원’의 기원은 그대로 노빠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이 됐습니다.
지난 주 서울대 사화과학연구원과 한국정당학회가 공동주최한 ‘박근혜정부 1년과 향후 과제’ 세미나에서 강원태 서울대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1년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 한 해였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정치지도자 아닌 통치자로만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다. 집권당은 소외됐고, 청와대와 내각은 자율성을 찾지 못한 채 지시를 수행하는 도구적 모습이었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요즘 박근혜에게 새로 붙여진 별명이 ‘말이 안통하네트’라지요. 백성들과 불통하고 불화하다 쫓겨 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이름을 패러디해 붙인 별명이 ‘말이 안통하네트’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 대통령, 제왕적 대통령, 정치를 안 하고 통치만 하는 대통령–. ‘바뀐애 신드롬’의 불편스러운 내면적 본질을 대통령이 심각하게 천착(穿鑿)해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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