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주목받는 두 여성 정치인 <영 김-미셸 박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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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영 김, 에드로이스 의원, 미셸 박 스틸.
올해 청말띠해에  LA한인사회의 두 여성 정치인이 주류 정치계에 도전장을 던진다.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 하원 65지구에 출마하는 영 김(Young Kim) 후보와 오렌지 카운티 제2지구 수퍼바이저에 도전하는 미셸 박 스틸(Michell Park Steel) 후보이다. 두 사람 모두 공화당이다. 모두 한인사회가 자랑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오래전부터 모두가 준비된 후보들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공화당 전국본부에서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은 30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부에나 팍 6291 홈우드 에비뉴에 있는 세븐스 홈 카페에서 공동으로 한인 유권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한인 사회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선거 캠페인에 돌입하게 되는 두 후보는 한인들의 투표 참여를 높이기 위해 현장에서 유권자 등록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후보자 등록에 필요한 유권자들의 서명도 현장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받게 된다. 이들이 미주류정치에 도전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두 여성 정치인의 포부와 선거준비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성진 취재부 기자>


 
-로이스 의원, 동아시아 관련 법안을 상정 통과 기여에 지대한 공로












지난16일 부에나파크 소재 로스 코요테스 컨트리클럽에서 영 김 주하원 65지구 후보의 후원회가 열렸다. 새해를 맞아 처음 열린 이날 행사에는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의원을 포함한 주류 정치인들, 패트릭 우 OC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유수연 ABC 통합교육구 교육위원 등 80여명이 참석, 영 김 후보를 후원했다.
지난해 12월 23일에도 풀러턴의 서밋하우스 리셉션 룸에서는 약 200명의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영 김 후보는 지난 20여년동안 봉직한 연방하원의원 에드 로이스 보좌관직을 공식적으로 은퇴하고 주하원 65지구 후보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이날은 특히 로이스 의원 지지자들의 공식모임인 연방의회클럽(Congressional Club)의 연례 행사이기도 한 리셉션에서 로이스 의원은, 주상원의원일때부터 지금까지 20여년간 자신을 보좌해 온 영 김의 노고를 치하하였으며, 지난해 연방의회에서 로이스 의원이 낭독한 영 김의 공로에 대한 연방의사록 사본을 전달하였다. 의사록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영 김은 로이스의원 지역구와 동아시아 담당 디렉터로 근무하였으며, 로이스의원 사무실을 대표하여 지역구 내의 각 도시들과 유대관계를 가져왔고, 지역구의 현안문제와 아시아 관련 이슈들에 대해 의원의 입법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시아 관련 이슈들에 대해 의원이 보다 더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아태자문위원회를 발족 시켰고, 이의 운영을 담당하였다. 뿐만아니라, 영 김은 외교분과위원화 업무를 보좌하기 위해 워싱톤DC와 아시아 각국을 방문하였다. 한미의원연맹의 코디네이터로 한미의원들 간의 교류와 협력관계 유지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한미의원연맹과 탈북자들과 그들의 인권을 위한 탈북자인권보호세계의원연맹을 발족시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 기구를 통해 북한의 인권, 위안부이슈, 그리고 무역 등 한미간의 현안문제들을 논의하였다.>



이날 영 김 후보자는 답사를 통해 “나의 정치적인 스승이고 멘토인 로이스의원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면서 “내가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로이스 의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로이스 의원 사무실을 떠나, 이제 주하원에 출마하기 위해, 당선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하였다”고 각오를 밝혔다.
영 김 후보는 미주류사회에서도 보기 드물게, 장기간동안 정치인 보좌관으로 활동한 경력은 워싱턴 정가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로이스 의원의 손과 발 역할은 물론이고, 정책 브레인으로 로이스 의원이 많은 동아시아 관련 법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한미의원연맹의 실질적인 산파역할을 맡아 10년 이상 한미의원들간의 교류에 크게 기여하였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통과에 누구보다도 더 앞장서서 추진해왔다.

북한과 탈북자들의 인권보호를 의원들에게 주지시키며, 홍보하는데 앞장서왔고, 탈북자인권을 위한 전세계의원 모임 창설과 운영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인 친한파 의원으로 불리는 로이스 의원의 뒤에는 언제나 영 김 후보가 있었으며, 한국 국회의원 이나 정치인들에게는 영 김이 연락책임자처럼 수시로 연락하며 현안문제를 다루는, 미국의회내의 한국국회통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이날 로이스 의원은 연방의사록 사본을 액자에 넣어 전달하였으며, 밥 허프 주상원의원은 영 김의 공로를 치하하는 공로상을 증정하였다. 연방의회의원이 연방회의석상에서 자신의 직원의 노고를 치하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의례적인 일이며, 영 김의 공로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 하는 것이라며, 더 큰일을 하기위해 은퇴하는 영 김을 못내 아쉬워했다.
영 김은 이제 주하원 선거만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데, 그 동안 지역구에서 다진 인맥을 통해 반드시 주하원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밝혔다.



-후세들이 주류사회에서 자리매김 위한 사명감에 도전













2011년 부터 수퍼바이저 선거를 준비해 온 미셸 박 스틸 후보는 수퍼바이저에 당선되기 위해선 6월 예비 선거와 11월 본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일단 예비선거에서 과반 득표를 얻어 선거를 마무리 짓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예비선거에서 끝낸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계획이다. 그녀에게는 지역 정치인들의 지지가 선거 운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미셸 박 스틸 후보에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한인 사회이다.
그녀는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마다 묵묵히 지원해준 한인 커뮤니티의 힘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다시 한번 한인 사회의 지지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6월 30일 까지 55만 달러의 캠페인 기금을 확보했던 박 후보는 올해 초까지 75만 달러의 기금 모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조세형평국 위원 선거에서 60.5%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한 스틸 위원은 현재 캘리포니아주 최고위 한인 선출직 공무원으로 한인들의 큰 자랑거리다.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Board of equalization)은 캘리포니아주에만 있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캘리포니아의 IRS(국세청)로 보면 된다. 판매세를 걷고 세금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판결하는 ‘세금 법정’(Tax court) 역할을 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조세형평국은 4명의 선출직 위원이 운영하고 있는데 3,400만 캘리포니아 인구를 감안할 때 조세형평국 위원 한명은 850만명의 캘리포니아 주민을 대표하고 있다. 미셀 박 스틸 후보는 임기4년의 이 조세형평국 위원을 두번을 성공적으로 지냈다는 것은 그녀의 지도력과 능력을 유권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난 1975년 부모와 함께 18세의 나이로 미국에 온 그녀는 원래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미셀 스틸 위원의 남편 숀 스틸(Shawn Steel)은 캘리포니아주 공화당협회 의장 등을 역임한 유명 정치인이다.
그녀가 미국정치에 뛰어 들게된 계기는 바로 1992년 LA  4.29폭동이었다. “LA 폭동이 일어난 후 남편 친구들인 주상하원의원들이 집에 와서는 한인들이 총을 갖고 나와 싸운다며 잘못했다고  얘기하는것에 대해 한인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며 이는 한인들 잘못이 아니라 훔쳐가는 사람이나 불지르는 사람이 나쁜거다라고 항변했다. 다음날 이 정치인들이 언론에 나와 내가 얘기한 그대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영향력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됐다. 집 안에서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좀더 도와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때마침 1993년 LA 시장 선거에  당시 리차드 리오단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남편과 함께 선거 운동을 도왔다. 결국 리오단이 시장에 당선된 후  LA소방국 커미셔너로 임명받아 정치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  나중 그녀가 조세형평국 위원에 출마하게 된 동기는 그녀가 학교다닐 때 어머니가 옷가게를 하다가 폐업하고 샌드위치 가게를 하였는데 조세형평국에서 세금을 덜 냈다며 벌금통지를 보내와 이에 부조리한 면을 보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해 도전했던 것이다.

한인들 30% 이상이 소규모 사업체들을 운영하기에 지난날  어머니가 당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들을 도와 줘야겠다는 마음에서 도전했다. 그녀는 조세형평국 위원에 출마 후 선거자금을 모아야 했고 하루에 20번 이상 선거 연설을 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너무나 힘들어 포기 하려고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그녀 마음 속에 ‘나는 이것을 해서 꼭 도와야될 사람이 있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했고 그래서 결국 이겼다.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소규모 업소 납세자들로부터 공탁을 받은 4,200만 달러를 5,500 업체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으로 칭찬받았고, 한 때는 ‘iTax’라고 음악, 영화 등 다운로드하는 무형의 것에도 세금을 붙이자는 안이 나왔을 때 이를 저지해 납세자들을 돕고 세금을 안 오르게 하는 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셀 박 후보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Korean American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바라보면서 한국 정치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 더 크게 미국정치를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2세들이 여기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2, 3세들이 미국 주류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녀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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