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의 ‘댓글작업’에 대한 서울 수서경찰서의 수사를 여러 차례 방해한 혐의(공직선거법·경찰공무원법 위반 등)로 지난해 6월 불구속 기소됐다. 김 전 청장은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의 김 씨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를 수서경찰서에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결과 발표문을 작성하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다. 또 대선을 사흘 앞둔 2012년 12월16일 “대선 후보 관련 비방·지지 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범죄 혐의가 없다는 취지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본지가 김 전 청장의 이러한 외압 의혹과 관련한 보도를 할 당시 본 그의 특이한 배경에 주목했다. 다음은 당시 본지 보도의 일부분. <대구 출신인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 출신이며,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정원에서 근무하다 경찰로 자리를 옮긴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즉 그가 국정원가 경찰 사이에서 고리 역할을 했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관가에선 그가 박근혜 정부의 초대 경찰청장을 노리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상황이다.> 물론 그는 이후 핵심 인물로 지목되며 경찰청장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박 대통령과 적지 않은 고리를 가진 인물로서 사건의 ‘키맨’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수사과장이었던 권은희 전 과장도 그를 외압을 가했던 인물로 지목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6일 “김 전 청장에게 선거 개입이나 사건 실체 은폐 의도, 수사결과 허위 발표 의사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이디, 닉네임 등 경찰 수사 당시는 의미 불명확했던 증거들에 대해 국정원 댓글 수사가 끝나 관련자들이 모두 기소된 현재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해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권은희 진술 무력화에 초점
“수서경찰서가 2012년 12월16일 발표한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운동 혐의 사건 중간수사 결과) 보도자료와 17일 언론 브리핑이 시기와 내용 면에서 최선이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이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했음을 확인한 이상 이를 기초로 수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밝히는 등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 방법으로 (경찰이)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재인·박근혜 후보 관련 댓글이 없다’는 당시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부적절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확대해 기소한 검찰에도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이 불구속 기소되게 된 결정적인 증거였던 권은희 전 과장의 진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본지가 입수한 김 전 청장 1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권 과장의 진술을 무력화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같은 법원의 의도에는 권 과장의 진술을 흔들면 검찰의 공소사실도 치명타를 입는다는 판단이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권 과장의 진술을 총체적으로 배척했다. “권은희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 “권은희의 진술은 신빙할 수 없다”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배치된다” 등의 표현이 동원됐다. 기본적으로 권 과장에 대한 재판부의 불신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다음은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의 일부분이다. <다수의 다른 증인들의 진술이 모두 거짓이고 권은희의 진술만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특단의 사정이 이 사건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진술이 서로) 평행선을 달려온 것 중에 증거물 반환 지연이 있다. 수사과장으로서 신속한 증거분석과 내용의 입수는 필연적인 것이어서 신속한 증거물 반환을 거듭 요청했다. 서울경찰청에선 2012년 12월14일 이미 아이디와 닉네임이 기재된 문서 파일을 발견하고도 전혀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채 5일이 경과한 후에야 수서경찰서에서 받아볼 수 있게 했다. 반대로 (은폐 의도가 아니라) ‘실무상의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라는 (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의) 상이한 진술도 나왔다. 그렇다면 (빠른 수사를 위해) 검색 키워드 축소를 요구할 정도로 신속성을 강조했던 입장에 비춰 모순되진 않는지 검토됐어야 한다.> 법원이 이처럼 권 과장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검찰이 핵심증거들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검찰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등 사건 재판에서 새누리당 실세 의원이 국정원 인사와 대선 직전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증거로 명시해 법정에 내지는 않았다. 검찰은 애초 이 통화 내역과 함께 새누리당 실세 의원부터 국정원 인사, 서울경찰청 간부로 이어지는 통화 흐름을 공개하고 증거로도 낼 계획이었으나 채동욱 전 총장 퇴임 뒤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9월9일 재판에서 “2012년 12월11일부터 16일 사이에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과 경찰 관계자의 통화 내역을 증거로 제출하고 추가 내역이 있으면 더 내겠다. 국정원, 경찰, 정치권 관계자다”라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은 수사 결과를 발표한 12월16일 오후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과, 12월11일과 14일 밤엔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각각 접촉한 바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 서상기, 권영세 전·현직 의원과 또다른 실세 의원까지 분주히 국정원 인사들과 통화한 사실은 경찰 허위 발표의 배후를 보여주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화고한 증거들을 내지 않았다.
검찰이 사건의 유죄를 입증할 만한 주요한 증거들을 내지 않은 데에는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수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약을 가한 법무부 등의 외압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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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전 서울청장 무죄 판결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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