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전 서울청장 무죄 판결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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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김 전 청장은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외압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검찰 수사를 받았던 인물이다. 본지는 이 사건에 대한 수서경찰서의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 1월 13일자 보도인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사건의 실체인가’를 통해 김 전 청장을 경찰 수사 축소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한 바 있다. 김 전 청장은 이후 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결국 이번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은 지난 12일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항소심에서 검찰이 유죄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법조계 인사들은 많지 않다. 일단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 이후 검찰의 수사 의지가 지나치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수사했던 수사팀을 모조리 좌천시키며 사실상 공소유지가 어려운 상황을 검찰 스스로가 자초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검찰 자체적인 의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정권 차원의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무죄선고 이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선데이저널>이 총력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의 ‘댓글작업’에 대한 서울 수서경찰서의 수사를 여러 차례 방해한 혐의(공직선거법·경찰공무원법 위반 등)로 지난해 6월 불구속 기소됐다. 김 전 청장은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의 김 씨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를 수서경찰서에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결과 발표문을 작성하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다. 또 대선을 사흘 앞둔 2012년 12월16일 “대선 후보 관련 비방·지지 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범죄 혐의가 없다는 취지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본지가 김 전 청장의 이러한 외압 의혹과 관련한 보도를 할 당시 본 그의 특이한 배경에 주목했다. 다음은 당시 본지 보도의 일부분.
<대구 출신인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 출신이며,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정원에서 근무하다 경찰로 자리를 옮긴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즉 그가 국정원가 경찰 사이에서 고리 역할을 했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관가에선 그가 박근혜 정부의 초대 경찰청장을 노리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상황이다.>



물론 그는 이후 핵심 인물로 지목되며 경찰청장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박 대통령과 적지 않은 고리를 가진 인물로서 사건의 ‘키맨’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수사과장이었던 권은희 전 과장도 그를 외압을 가했던 인물로 지목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6일 “김 전 청장에게 선거 개입이나 사건 실체 은폐 의도, 수사결과 허위 발표 의사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이디, 닉네임 등 경찰 수사 당시는 의미 불명확했던 증거들에 대해 국정원 댓글 수사가 끝나 관련자들이 모두 기소된 현재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해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권은희 진술 무력화에 초점













 ▲ 권은희 전 수사과장.
물론 재판부는 경찰이 대선 후보 간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수사결과를 발표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수서경찰서가 2012년 12월16일 발표한 (국정원 직원 불법 선거운동 혐의 사건 중간수사 결과) 보도자료와 17일 언론 브리핑이 시기와 내용 면에서 최선이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이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했음을 확인한 이상 이를 기초로 수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밝히는 등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 방법으로 (경찰이)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재인·박근혜 후보 관련 댓글이 없다’는 당시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부적절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확대해 기소한 검찰에도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이 불구속 기소되게 된 결정적인 증거였던 권은희 전 과장의 진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본지가 입수한 김 전 청장 1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권 과장의 진술을 무력화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같은 법원의 의도에는 권 과장의 진술을 흔들면 검찰의 공소사실도 치명타를 입는다는 판단이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권 과장의 진술을 총체적으로 배척했다. “권은희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 “권은희의 진술은 신빙할 수 없다”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배치된다” 등의 표현이 동원됐다. 기본적으로 권 과장에 대한 재판부의 불신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다음은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의 일부분이다.
<다수의 다른 증인들의 진술이 모두 거짓이고 권은희의 진술만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특단의 사정이 이 사건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진술이 서로) 평행선을 달려온 것 중에 증거물 반환 지연이 있다. 수사과장으로서 신속한 증거분석과 내용의 입수는 필연적인 것이어서 신속한 증거물 반환을 거듭 요청했다. 서울경찰청에선 2012년 12월14일 이미 아이디와 닉네임이 기재된 문서 파일을 발견하고도 전혀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채 5일이 경과한 후에야 수서경찰서에서 받아볼 수 있게 했다. 반대로 (은폐 의도가 아니라) ‘실무상의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라는 (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의) 상이한 진술도 나왔다. 그렇다면 (빠른 수사를 위해) 검색 키워드 축소를 요구할 정도로 신속성을 강조했던 입장에 비춰 모순되진 않는지 검토됐어야 한다.>
법원이 이처럼 권 과장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검찰이 핵심증거들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검찰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등 사건 재판에서 새누리당 실세 의원이 국정원 인사와 대선 직전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증거로 명시해 법정에 내지는 않았다. 검찰은 애초 이 통화 내역과 함께 새누리당 실세 의원부터 국정원 인사, 서울경찰청 간부로 이어지는 통화 흐름을 공개하고 증거로도 낼 계획이었으나 채동욱 전 총장 퇴임 뒤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9월9일 재판에서 “2012년 12월11일부터 16일 사이에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을 비롯한 국정원 직원과 경찰 관계자의 통화 내역을 증거로 제출하고 추가 내역이 있으면 더 내겠다. 국정원, 경찰, 정치권 관계자다”라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은 수사 결과를 발표한 12월16일 오후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과, 12월11일과 14일 밤엔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각각 접촉한 바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 서상기, 권영세 전·현직 의원과 또다른 실세 의원까지 분주히 국정원 인사들과 통화한 사실은 경찰 허위 발표의 배후를 보여주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화고한 증거들을 내지 않았다.













 
확보한 증거들 왜 안 냈나?


검찰이 사건의 유죄를 입증할 만한 주요한 증거들을 내지 않은 데에는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수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약을 가한 법무부 등의 외압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을 맡았던 검찰 특별수사팀은 이미 완전히 공중분해된 상태다. 지난 1월 평검사 인사로 초기 수사팀 검사 7명 가운데 오직 1명만 남았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로 시작된 수사팀 무력화 작전이 윤석열 수사팀장에 대한 감찰 조사 및 좌천 인사를 거쳐 수사팀 해체로 마침표를 찍었다. 오죽하면 공소 유지에 ‘빨간불’이 켜진 검찰에 재판부는 이렇게 질타했다. “검사는 (경찰청) 분석 과정에서 김하영이 대선 후보, 정당 및 그 정책과 관련된 인터넷 게시 활동을 한 자료가 다수 발견됐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 발견된 자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증을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다.”

결국 검찰이 수사팀 해체를 이유로 공소유지에 신경을 쏟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런 언론 보도에 대해서 불쾌하다는 입장만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유력한 증거물이 새롭게 부각된 이상 이제라도 관련 증거를 제대로 취합해 항소심 법정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앞다. 대선을 사흘 앞두고 무리하게 심야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강행하면서, 사실과도 다른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그 시점을 전후해 여당 실세 의원들과 국정원, 경찰 간부들이 빈번하게 통화했다는 사실은 김 전 청장의 선거법 위반 ‘의도’를 입증할 수 있는 또 다른 간접증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검찰이 실제로 공소유지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할지는 미지수다. 김 전 청장에게 유죄가 선고됐을 때 정권이 지게 될 부담이 엄청나다는 점 때문이다. 그에게 유죄가 선고됐다는 것은 국정원 직원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에 부당한 의혹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곧 대선의 공정성에 치명적인 생채기가 나게 된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 21부로 같다. 사건의 모양새도 같다.
첫째, 2012년 12월11일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댓글작업을 한 국정원 직원 김하영 씨와 연관이 깊다. 둘째, 같은 검찰 수사팀(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서 같은 날(2013년 6월14일) 기소했다. 셋째, 두 피고인은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차이점이라면 원세훈 전 원장의 대선·정치 개입 사건이 ‘몸통’이고, 이 몸통을 축소·은폐한 게 김용판 전 청장 사건이라는 것이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 원세훈 전 원장의 무죄를 점치는 이유다.
물론 원 전 원장과 관련해서는 김 전 청장 혐의보다 훨씬 많은 증거가 있다.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과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요원들이 남긴 게시글과 추천·반대 클릭 내역이다.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금년에 확실히 대응하지 않으면 국정원이 없어진다.”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 하면 강에 처박아야지. 4대강 문제라 이렇게 떠들어도 뭐. 왜 우리가 가만있어.”(2012년 2월17일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천안함 폭침 후 나온 5·24 대북 제재 조처까지 해제하겠다고 한다. 국민은 어떤 후보가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수호하고 책임질 수 있는지를 눈여겨봐야….”
그렇다고 해서 유죄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김용판 전 청장의 재판에서처럼, 국정원 직원들은 원세훈 전 원장에게 대선·정치 개입을 지시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원 전 원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직원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심리전단 직원 황아무개씨는 검찰 조사 당시 “원장님 지시가 있으면 (이종명) 차장, (민병주) 국장, 과장(파트장)의 단계적 회의를 거쳐 (지시가) 구체화돼 일선 직원에게 전달된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에선 “잘 알지 못하고 당시 내 생각을 진술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메인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법원은 권은희 수사과장(전 수서서 수사과장)을 제외한 나머지 17명의 경찰관은 모두 김 전 청장의 축소·은폐 지시가 없었다는 진술만 믿었을 뿐, 권 과장의 진술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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