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우아한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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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아내와 TV 채널 선택을 놓고 가벼운 부부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나이가 되니 아귀처럼 다툴 일은 거의 없고, 기껏 TV 리모콘을 잡고 드라마냐 예능이냐, K 팝이냐 가요무대냐, 사극이냐 트랜디냐로 가끔 ‘한가한’ 싸움질을 합니다.
부부 ‘만장일치’로 반드시 보거나, 절대로 안보는 프로도 있습니다. 거의 ‘결사적’으로 안보는 프로가 SBS의 ‘짝’과 MBC의 ‘우결’(우리 결혼했어요)이라는 리얼리티 쇼입니다. 공공재(財)적 성격이 강한 공중파에서 왜 이런 프로를 방송하는지, 이런 프로를 만드는 작가나 PD의 정신상태는 과연 온전한지를 고민케 하는 허접쓰레기 같은 프로들입니다.
‘짝’은 열 두 명 정도의 젊은 남녀가 ‘애정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1주일 동안 ‘합숙’을 하며 짝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포맷입니다. 이건 무슨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오는 야생 풍뎅이 ‘짝짓기’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인간의 관음적(觀淫的) 본능을 자극해 시청율만 높이면 된다는 천박한 제작의도가 엿보이는, 보는 내내 하품 나고 불편하고 마음 졸이는 프로입니다.
이 프로의 하일라이트는 출연 남녀가 마주앉아 짝을 선택하는 장면입니다. 남자 1호가 여자 2호를 선택하면 여자 2호는 남자 3호를 선택하는 식입니다. 남자 3호가 여자 4호를 선택했는데 여자 4호도 남자 3호를 선택하면, 짝이 맺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자 하나에 여러 남자가 달려드는, 암놈 풍뎅이 하나에 여러 수놈 풍뎅이가 달려드는 것과 같은 ‘치열한’ 짝짓기 ‘생존경쟁’이 벌어지면, ‘사태’가 좀 복잡 해 집니다.
대개 여자는 미모 순으로, 남자는 스펙이나 직장, 돈벌이 순으로 짝이 맺어집니다. 성격, 품성, 인생관 같은 배우자 선택에서 요구되는 보편적 가치들은 ‘짝’에서 만큼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에 다름 아닙니다. 돈과 얼굴 위주로 짝을 찾으니, 이들이 실제 평생의 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여기서 짝을 찾은 수백 쌍 중 실제 결혼으로 이어진 경우는 단 네 짝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짝’에서는 프로의 흥미도와 긴장도를 높이기 위해 작가나 PD가 상황을 조작-연출하는 일도 흔히 벌어집니다.


TV프로 ‘짝’과 金-安 짝짓기 쇼


중장년층 이상 한국 남자들에게는 대개 미아리 텍사스촌의 추억(?)이 있습니다. 한 세대 전 미아리에 있던 집창촌(集娼村)을 텍사스라 불렀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전면이 여러 개의 유리문으로 된 가게들이 좌우로 이어져 있고, 그 안 마루바닥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조선시대 양갓집 규수처럼 다소곳이 앉아 손님의 ‘간택’을 기다립니다. 여기서 간택의 절대-유일 기준은 외모입니다. 그런 곳에 인간성 출중하고 마음씨 고운 부잣집 맏며느리감 같은 아가씨 찾으러 가는 남자들은 ‘당근’ 없습니다.
‘짝“에서 남자 1호가 여자 2호를 찍어내는 장면을 보면 얄궂게도 그 옛날 미아리 텍사스촌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럴듯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 받고, 교사-의사-연구원-고소득 자영업 등의 번듯한 직장과 스펙에다 생김새도 준수한 선남선녀들이 출연해, 텍사스 미아리 창녀촌을 연상케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은 일종의 상황모순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약한 프로입니다.
드디어 ‘짝’이 대형사고를 쳤습니다. 제주도에서 녹화 중 출연한 여성 하나가 자살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어제 일어났습니다. 녹화 초반엔 인기가 있던 이 여성은 중반이후 남자들의 선택 대상에서 밀리면서 자살로 항변(?)을 한 것 같습니다. 왜 자살까지 해야 했는지는 앞으로 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언젠가 이런 사고가 날 개연성은 충분했습니다.
 맞선을 보고 속된 말로 ‘딱지’를 맞아도 석 달 열흘은 열 불 나고 자존심 상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단 둘만의 은밀한 맞선에서 딱지를 맞아도 괴로운데, 딱지 맞고 그 딱지맞는 과정이 고스란히 필름에 담겨 TV에서 5000만 국민에게 공개된다?–. 여린 감성의 자존심 강한 여성이라면 상한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검투사들의 싸움에서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실제로 죽음을 강요하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지는 검투사가 죽는 시늉만 하다, 리얼하지 않다는 관중들의 불만에  실제로 칼에 찔려 ‘장렬하게’ 죽어갔습니다. 보다 더 리얼하게 보이기 위해 2000 년 전 로마의 검투사들처럼 출연자들에게 별의 별 무리한 요구를 다 해 쌓는 게 요즘 TV의 리얼리티 프로들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2 제3의 ‘짝’ 사태가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철수는 끝났다


 지난 밤 안철수와 김한길의 합당 짝짓기 쇼를 칼럼으로 쓰는 도중, TV 쇼 ‘짝’ 이 사람을 잡은 충격적인 뉴스를 인터넷에서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 나 칼럼 첫 부분을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안철수와 김한길의 짝짓기는 과연 성공할까요? 결혼까지 해서 가정을 꾸리고 ‘집권’이라는, 바라고 바라던 옥동자를 생산해 낼 수 있을까요?
3월 2일 안철수의 ‘새 정치’가 민주당의 ‘헌 정치’에 M&A로 헐값에 넘어가던 날, SNS엔 수많은 댓글이 올라붙었습니다. 그 중엔 다음과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안철수는 대통령 시키면 남북정상회담 하러 평양에 갔다가, 그 길로 월북하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작자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합리적 예측이 불가능한 안철수 식 정치행태를 개탄한 말입니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결코(never) 절대로(definitely) 없다는 말을 아흔아홉번 쯤 하고, 안철수가 신당의 당명을 새정치연합(New Political Vision Party)으로 확정한 게 지난 2월 16일입니다. 그로부터 딱 14일 만에, 그는 일곱 번이나 당적을 옮기면서 당을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 일에 이골이 난 ‘정당 재건축 전문가’ 김한길 한테 ‘새 정치’를 백지신탁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것도 새 정치”라고 앙앙불락 외치고 있습니다.
 안철수와 함께 새 정치를 해 보겠다고 모여든 수많은 정치인과 정치 지망생들, 유권자의 20%를 넘나들던 열성 ‘안빠‘들은 졸지에 새(鳥)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권통합은 김한길에겐 대박, 안철수에겐 쪽박이 된 형국입니다.
단순명쾌하게 말하자면 김한길 안철수의 짝짓기가 ‘집권’이라는 옥동자 생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우선은 합당이 국민이 납득할만큼 매끄럽게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합당이 성사돼도 안철수가 통합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입니다.
김한길과 안철수가 대선 승리를 위해 당의 노선을 ‘우 클릭’하면 당내 최대 계파인 친북좌파성향의 친노세력이 반발하고 나설 겁니다. 문재인에 대한 견제가 노골화 되면 친노와 386들은 민주당 간판을 떼어 내, ‘참-순-진짜-원조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딴 집 살림을 차리게 될 겁니다.
새 통합야당이 안철수 대선후보-김한길 당 대표의 투 톱 체제로 정착돼 굴러 갈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있습니다. 새 정치 약발이 떨어진 안철수가 당내 경선이라는 관문을 뚫고  후보가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와 중도 진보적 노선이 비슷하면서 당 내에서 일정 지분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손학규나 박원순 등이, 안철수에게 대권후보 자리를 호락호락 내  줄 리도 없습니다. 노회하고 야심차며 정치적 수(手) 읽기에 능한 김한길이 킹 메이커에서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안철수는 끝까지 새 정치로 승부를 냈어야 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 단체장 한 두 자리 얻지 못해도 그만입니다. 7월에는 보궐선거가 있고, 내후년엔 총선도 있습니다. 2017년 대선에 실패해도 2022년 대선을 노려 볼 수도 있습니다.
안철수는 바람이지 그릇이 아님이 이번에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지난 2년의 안철수 정치는 사기,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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