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한국에서는> 대통령까지 능멸한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파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건의 실체가 대한민국 정보기관에 의한 증거조작 사건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 사건은 이미 그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근간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이다. 그들은 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공작을 펼친 것도 모자라 법정에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다. 이것도 모자라 마치 자신들도 몰랐던 일이었던 것처럼 발뺌까지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부 들어 폭주하고 있는 국정원의 행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
본지가 이미 몇 차례 보도했지만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부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대선 때는 댓글공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측면 지원했고, 지난해에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사건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멀쩡한 공무원을 증거까지 조작해가며 간첩까지 만드는 일을 벌이고 있다.
본지는 지난 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모녀가 정보기관을 권력의 통치수단으로 삼는 것이 똑같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드러나고 있는 국정원의 행태는 박 대통령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법치주의의 근간을 비웃는 듯 한 일들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의 전모를 <선데이저널>이 전모를 추적해 보았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 김한길·안철수, 국정원 증거조작 관련해 입장을 밝히며 현 정부의 즉각적인 사건의 실체를 밝히라고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 10일 사상 세 번 째로 국가정보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하면서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국정원 압수수색에 이어 12일에는 유우성 씨를 증거조작 의혹의 참고인으로 소환조사했다.
그동안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던 국정원은 이제 사면초가 상태다. 여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위조 문건이 존재하는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 위조 문건이 속출하다보니 “국가정보원이 제출한 문서 중 믿을 수 있는게 없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제 관건은 국정원이 얼마만큼 조직적으로, 어느 선까지 증거 조작에 개입했는지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문서 위조에 연루된 것으로 현재까지 드러난 국정원 안팎의 인물은 4∼5명 정도다. 검찰은 수사로 전환하면서 이들을 출국금지 또는 정지시키고 잇따라 소환해 구체적 위조 경위와 가담 정도를 추궁하고 있다.


증거조작 핵심 위선 의혹


첫 번 째 키맨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출신으로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이인철 교민담당 영사다. 그는 중국 각급 기관의 문서들을 공증 또는 확인서를 첨부하거나 직접 입수해 검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위조 판명을 받은 문서 3건에 모두 관여했다. 위조 의혹을 받는 문서들은 모두 허룽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 기록의 신빙성을 보충하는 내용들로 연결돼 있다. 증거조작이 국정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면 이 영사가 실무 책임자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의 또 다른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은 지난 5일 자살을 기도한 협조자 김 모 씨는 싼허 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이 발급처로 된 위조문서를 구해 이 영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는 문서 위조에 직접 가담했지만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의 조직적 증거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상당히 풍부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중국과 사법공조 등의 어려움 때문에 수사가 자칫 난관에 빠질 수 있다고 보고 김씨를 구속해 신병을 확보해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 씨를 비롯한 협조자에게 문서 입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블랙요원’(신분을 숨기고 일하는 정보요원)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김 사장’으로 불리는 인물은 지난해 12월 김씨에게 유씨 변호인 측 자료를 반박할 만한 문서를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협조자 김씨와 ‘김 사장’은 문서감정에서 사실상 위조로 판명받은 싼허변방검사참 명의 문서를 위조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이 문건을 발급했다는 내용의 사실조회서에 또다른 협조자가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소재를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주 넘게 진행한 진상조사에서 문서위조 의혹의 실체를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위조의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다음에는 ‘윗선’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게 수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남재준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수뇌부가 증거조작에 대해 최소한 보고는 받았고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남재준 원장이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미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건의 전모를 보고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건의 불똥이 청와대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긴급 촛불집회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네거리 동화빌딩앞에서 국정원시국회의 소속단체 회원들이 ‘선거조작 간첩조작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촉구하는 긴급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사건 때마다 국정원 등장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과 검찰이 기소한 첫 간첩사건인데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이 유 씨의 여동생을 폭행·협박해 진술을 받아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씨가 1심에서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는 등 ‘말 많은’ 사건이었다. 증거조작과 관련된 국정원의 움직임도 무죄 판결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인철 영사의 직제상 상관으로 일하다가 지난달 국정원으로 복귀한 전 선양 부총영사 이모씨를 비롯해 국정원 대공수사국장, 대테러·방첩·대공수사를 지휘하는 서천호(53) 2차장 등이 보고 라인에 속해 있다.



무엇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남 원장의 사전 인지 여부다. 실무 차원의 문서위조 정황에서 나아가 수직적인 지시·보고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결국 수사기록과 내부 문건 등 압수물 분석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댓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을 근거로 인터넷에 댓글을 단 심리전단 요원들 대신 원 전 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국정원 압수수색의 특성상 보고라인을 거슬러 올라가 수뇌부까지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검찰은 지난 10일 압수수색 전 국정원에 사전 협조를 구했고 현장에 나간 검사와 수사관들 역시 국정원의 ‘안내’를 받아 수색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가까이 된데다 지난 8일 밤 국정원의 사과문 발표, 이튿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이어 곧바로 압수수색이 이뤄진 점을 근거로 ‘사전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일단 국정원은 해당 증거 서류의 내용이나 형식 모두 위조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협조자들에게 책임을 미룰 가능성이 높다. 8일 발표한 공식입장에서도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검찰에 제출했다”며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다”고 선을 그었다. 간첩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 한 것이 아니라, 간첩이라고 믿고 그에 맞는 증거를 찾으려 노력했다는 식의 논리다.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도 유서에서 “유우성은 간첩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기소된다면 “나는 간첩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 김진태 검찰총장.
김진태의 선택과 고민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 이후 국정원이 개입된 간첩 조작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야 하는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을 의욕적으로 파헤치다 직무와 관련없는 사생활 유탄에 맞아 낙마했다.
김 총장이 전임의 사례를 염두에 둬 소극적 수사로 몸을 사릴지, 전모를 밝혀 국정원의 총체적 개혁을 이끌어 낼지 김 총장의 결단이 주목된다.
김 총장은 9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법과 원칙대로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증거조작 지시자, 수행자는 물론 문서 조작 전모를 파헤치라는 주문이다.
채 전 총장도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거듭 주문했다. 채 전 총장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수사팀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과 국정원 협조자들로부터 시작된 수사를 정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까지 치고 들어갔다. 원 전 원장 등 간부들을 줄줄이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도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와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수사팀은 국정원 대공수사팀 직원들과 이에 연루된 국정원 협조자들부터 수사하고 있다. 협조자로부터 국정원 ‘윗선’을 치고 들어갈 실탄을 확보한 상태다. 김 총장도 가시적으로 수사팀에 철저 수사를 당부하며 힘을 싣고 있다. 검찰이 국정원의 조직적인 증거조작 실체를 넘어 ‘윗선의 윗선’까지 파고들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더구나 이번 사건에는 국정원뿐 아니라 국정원으로부터 증거를 제출받아 법원에 제출하고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검찰도 연루돼 있어 김 총장의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수사 결과에 따라선 검찰도 후폭풍에 휩싸여 ‘검찰 개혁’이라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로 검찰은 채 전 총장이 중도 낙마한 데 이어 윤석열 수사팀장의 항명 사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사퇴 등 여러 진통을 겪었다. 김 총장이 앞선 사례를 참고해 어떤 묘수로 국정원의 증거조작 실체를 밝혀낼지 주목된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