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망가지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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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조선왕조의 고위급 정치인-관료 중 가장 인색했던 인물은 태종 때의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금품을 주거나 빌려주는 일이 없었고, 손님과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 갈 때는 마신 잔 수를 카운트 해 놓고, 상대가 못 먹게 술병을 단단히 봉한 후 다녀왔다고 전해집니다.
오래된 음식이 상해 구더기가 생기고 냄새가 진동하는 데도 그것을 쓰레기통에 쏟아 버릴지언정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의 학문을 아낀 임금 덕에 대제학이라는 높은 감투를 쓰기는 했지만, 관료사회와 선비사회에서 ‘노랭이 영감’ 변계량은 이런 옹색한 마음가짐 때문에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한국의 현 정치인 중 가장 인색한 ‘변계량 급’ 짠돌이는 누구일까요. 믿거나 말거나, 여의도에 떠도는 소문으로 뽑은 국회의원 짠돌이 비공인(?) 톱랭커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과 신당의 안철수 의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몽준은 현대중공업 주식평가액만도 조(兆) 단위이고, 안철수 역시 1000억대가 넘는 안랩의 주식을 보유한 알부자입니다. 헌데도 이들의 돈 씀씀이는 ‘소금장수’ 수준이라는 평입니다. 돈을 벌기보다 쓰지 않아야 부자가 된다는 ‘축재학 개론’의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시대의 변계량…. 그들이 바로 정몽준과 안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철수의 폭탄주, 여의도가 깜짝


안철수의 폭탄주가 화제입니다. 엊그제 그는 측근인사 20여명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폭탄주 단합대회를 가졌습니다. 왜 안철수의 폭탄주가 새삼 화제가 됐을까요. 그는 이날 손수 폭탄주를 만들어 두 순배나 돌렸습니다. 건배사로 ‘파이팅’을 외치며, “신당은 새 정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여러분을 믿고 한 결단이니 끝까지 함께 해 줄 것으로 믿는다”는 취지의 격려사도 했습니다.
 안 의원은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97년 간염에 걸린 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술을 안 마실 뿐 아니라 술자리에 참석하는 일도, 술값을 내는 일도 좀체 없습니다. “안철수가 술을 다 사다니 웬 일이지? 폭탄주까지 돌리다니 뭔 일이래? 급하긴 급한 모양이네, 안 하던 짓을 하는 걸 보니….” 여의도 정가의 참새들은 이렇게 재잘거렸습니다.
안철수의 ‘안 하던 짓’- 이른바 ‘폭탄주 정치’는, 그가 새 정치를 포기하고 민주당과 손을 잡은 데 대한 내부 동요와 반발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입니다. 앞으로는 샌님 짠돌이 이미지에서 벗어 나 대중 정치인으로서 친화력과 대중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지난달 17일이었죠. 새정치연합의 창당발기인대회가 백범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민주당과 합당을 발표하기 보름 전쯤입니다. 안철수 위원장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혼자 자리를 떴습니다. 정당조직의 보스라면 이럴 때 수고한 실무자들에게 회식이라도 하라고 금일봉을 내놓고 자리를 뜨는 게 정치판의 ‘상식’입니다. 안철수 하나만 바라보고, 전망도 불투명한 정치조직에 생업까지 팽개치고 들어 온 실무진들은, 안철수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날은 고생했다고 금일봉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수고했다고 격려하면서 회식이라도 시켜야 하는 건데…. 그 사람 기본적인 조직운영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니….”
안철수의 책사 윤여준은 그날 발기인대회에 참석한 주요인사와 실무진들을 남겨두고 휑하니 혼자 자리를 뜨는 안철수를 바라보며 이렇게 개탄했습니다. “이래서 안철수의 조직엔 끈끈함이란 게 없다. 이래선 안 되는데….” 한 일간지엔 윤여준의 이런 탄식이 실렸습니다.


짠돌이 정치, 안철수 발목 잡다


안철수 정치의 실패는 결국 사람문제였다는 게 중론입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모이질 않았고, 삼고초려 해 모셔 온 원로 급 책사들은 대개 석 달 열흘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거물급 원로 김종인 전 의원, 최장집 교수, 윤여준 전 장관, 김성식 전 의원 등이 다 그 꼴이 났습니다. 이들이 안철수와 함께 일을 해 보고 낙담 끝에 내 뱉은 말들은 비슷했습니다. “모든 걸 혼자 처리하는 철인통치 방식이다.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게 없다. 공적인 당 기구는 있으나마나다. 모든 걸 안철수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한다. 원로로 우리가 해 줄 일이 없다….”
정치에서 돈은 필요악입니다. 돈을 잘못 써도 문제지만 안 쓰면 아예 정치나 정치행위 자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특히 대권을 바라보며 정당조직을 이끌고 있는 보스 급 정치인이라면, 100원을 벌어 110원을 쓰는 것스(guts)로, 조직과 사람을 관리해야 합니다. DJ와 YS가 그랬습니다.
안철수가 실패한 또 다른 이유가 바로 돈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안철수가 보유재산의 10분의 1 만 쾌척하고 신당 창당에 올인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옛날 국민당의 정주영은 통 큰 배팅으로 50석에 육박하는 제3당을 단숨에 만들었습니다.
안철수가 새정치연합을 포기한 결정적 계기는 경기지사 후보 김상곤, 부산시장 후보 오거돈의 영입실패였습니다. 두 사람의 영입 여부에 신당의 명운이 걸렸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들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정주영이라면 그랬을 겁니다. ‘무슨 수’엔, 돈 문제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윤여준은 이 문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재를 영입하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일반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어야 했다. 안철수 위원장이 그걸 못했다.”
안철수로서는 “돈으로 정치를 하는 건 새정치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돈을 쓰지 않는다” 라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입니다. 아무리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라도 돈이 없으면 선거를 치를 수 없습니다. 기존 정당의 후보들은 당의 지원과 모금 등으로 선거비용을 충당할 수 있지만, 새정치 신당의 간판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후보들로서는 안철수의 호주머니를 우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폭탄주 단합대회’에서 안철수는 몇 잔이나 마셨을까요. 한 잔도 안 마셨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폭탄주 회식엔 꼭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있습니다. 폭탄주를 만드는 사람은 술의 양과 혼합비율, 그리고 술자리의 분위기를 통괄하는 제사장(?) 같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폭탄주를 만든 후엔 자신이 먼저 원샷으로 마셔 보이고, 좌중에 공평하게 술을 돌려야 합니다.
폭탄주 제조자가 자신은 안마시고 남들만 마시게 하는 건 ‘반칙’입니다. 더구나 그날 회식자리는 ‘보스의 배신’으로 동요하고 있는 조직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도원결의’ 와도 같은 자리였습니다. 안철수로서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갈 각오로 함께 폭탄주를 마시며, 좌중을 달래고 그들의 응어리를 풀어줘야 할 자리였습니다. 헌정치 세력과 손잡으며 안철수는 요즘 열심히 ‘망가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이왕 버린 몸” 한번 제대로 망가져 보이는 건 어떨까요?
윤여준은 안철수가 민주당의 품으로 들어 간 후 “이 자가 나를 얼마나 속였는지…” 하고 치를 떨었습니다. “앞으로 하는 짓을 지켜 보겠다”라고도 했습니다. ‘하는 짓’에 따라 ‘이 자’가 ‘이 놈’이 될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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