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베리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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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2007년 희한한 폭행사건 하나로 한국사회가 들끓었습니다. 재계순위 8~9위권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이른바 ‘보복폭행사건’입니다. 김 회장은 술집에서 자기 둘째아들을 폭행한 사람을 산으로 끌고 가, 쇠파이프로 직접 두들겨 팼습니다. 아들이 정강이를 맞았다고 하면 가해자의 정강이를, 어깨를 맞았다고 하면 어깨를, 머리통을 맞았다고 하면 머리통을 ‘아작’ 냈습니다.
유명 재벌회장의 빗나간 부정(父情)과 엽기스런 조폭두목 코스프레는, 당시 한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엄벌을 지시할 정도였지요. 국민적 관심에 따라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됐습니다.
헌데 그해 12월 끝난 항소심 재판결과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이 고작이었습니다. 김승연은 감방 대신 충북 음성 꽃동네 요양원으로 내려가, 노인들한테 밥 퍼주고 청소 봉사를 하면서 200시간을 어영부영 때우고, 며칠 후 한화 회장실에 ‘짜잔!’하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파출소(지구대) 말단 순경이 폭행사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화해시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가해자한테 피해자와 합의를 하라고 종용하고, 합의서를 받아오면, 그 자리에서 가해자를 석방시켜 줍니다. 미국 사법제도 하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합의금과 치료비를 주고 합의서를 받아오면 석방은커녕 가해자한테 폭행죄 외에 ‘피해자 매수죄’까지 추가되고, 그것을 종용한 경찰도 매수교사(敎唆)의 처벌을 따로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폭행사건은 그 자체로 법적 심판을 받습니다. 합의서나 탄원서를 받아 온다고 해서 가해자의 범죄 자체가 소멸되거나 형량이 감면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김승연이 미국에서 꼭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면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는 실형을 살았을 겁니다.
모르긴 해도 김승연은 당시 피해자한테 엄청난 보상을 해 주고 합의서를 받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와 함께 재판부에 제출했을 겁니다. 판사는 “피고인의 반성과,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탄원과 양자 합의를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어쩌구 하며, 김승연의 실형을 면해줬겠지요. ‘돈만 있으면 살인죄도 면한다’는, 대한민국의 저 유서 깊은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요지경’입니다.


영 리의 추락, 천민자본주의의 비극


지난 주 LA 한인교포사회를 놀라게 한 재판 하나가 있었습니다. 2년 전 노숙자를 쇠 지렛대(tire iron)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한인 영 리(49)에 대한 카운티 항소심의 선고 공판이 이었습니다. 배심원들의 유죄평결에 따라 담당 헨리 홀 판사는 영 리 피고인에게 ‘가석방 없는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폭행죄로는 극형이나 다름없는 법정 최고형입니다. 홀 판사는 이날 “피고인은 방어 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타이어 갈아끼기 용 쇠막대기로 무자비하게 공격했다”며, “당시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중형 선고이유를 밝혔습니다.
교포사회가 충격을 받은 건 의외의 중형 선고도 그렇지만, 피고 영 리가 이른바 ‘핑크베리의 신화’를 만든 프로즌 요거트 체인 <핑크베리>의 공동창업자로, 한인들은 물론 미국 주류사회와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요거트 샵 핑크베리의 대성공으로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영 리는 이제 그 많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7년이라는 긴 세월을 꼼짝없이 감옥에서 썩게 됐습니다. 그는 노숙자 폭행 외에 다른 두 세 건의 민-형사 소송에도 휘말려 있습니다. 핑크베리 대박으로 벌어놓은 엄청난 재산을 소송으로 다 날리고, 7년 후 교도소를 나와서는 그 자신이 노숙자가 될지도 모를 운명입니다.
영 리는 핑크베리 공동 창업자인 셜리 황(한국명 황혜경)과의 불화로 2010년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 뒤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에 취한 탓인지 휘청대기 시작합니다. 마약과 불법무기 혐의로 입건되는가 하면 전처 폭행혐의로 혼쭐이 나고, 마침내는 돈을 구걸하는 노숙자를 살상흉기로 때린 중범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경쟁업소 대표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혐의로 접근금지 피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돈이 한 인간의 영혼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대박의 저주’입니다.


‘대박 신화’ 끝은 ‘쪽박 신화’


2005년 LA의 웨스트 헐리웃 거리에 문을 연 핑크베리 1호점은 “1000개의 주차위반 딱지를 떼게 한 그 맛”으로 입 소문이 나면서 대박이 났습니다. 대부분이 백인 중상류층인 고객들은 요거트 하나 먹기 위해 2~30분을 거리에 줄을 서 기다리는 게 보통이었지요. 이듬해 2호점이 오픈했고, 다음해 2007년 마침내 잭팟이 터졌습니다. 스타벅스 경영자인 하워드 슐츠가 세운 벤처 펀드 MAVERON이 2,750만 달러를 투자했고, 이 투자금으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프랜차이스 점을 늘려 나가게 됐습니다.
지난주 LA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핑크베리는 현재 10개국이 넘는 곳에서 170개 이상의 스토어가 성업 중에 있습니다. 영 리는 “포쉐 자동차를 몰고 시가를 피우며, 말리브 해안가에 3000 스퀘어 피트 넓이의 대저택에 살면서 에르메스 옷을 입고 다닌다”고 타임즈는 보도했습니다.
영 리는 뉴욕의 명문 디자인학교인 파슨스 스쿨을 졸업했습니다. 전공분야에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지, 한 때는 킥 복싱과 격투기 선수로 일했습니다. 그 무렵 노숙자 생활을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14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그의 친구 카메론 키스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10여 년 전 노숙자 생활을 하던 영 리는 마약과 알콜 중독이었는데 이를 극복한 뒤부터는 가족과 친구들을 굉장히 생각해 주는 사람이었다.”
친구를 선처해 달라는 호소였지만 판사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오히려 괘씸죄까지 적용해 가석방 없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습니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노숙자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에 괘씸죄를 적용하는 일이 많습니다. 자기도 한 때 노숙자 생활을 했으면서도 “과부 사정 과부가 몰라 준” 피고가, 판사로서는 더욱 괘씸했겠지요. 이날 재판정에는 영 리의 현재 부인인 김지은씨가 나와 판사에게 눈물로 남편의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영주권도 없습니다. 한국으로 추방되면 살길이 막막합니다. 이제 마악 말을 하기 시작한 아들이 아빠를 찾을 때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선처해 주십시요.”
통역을 통해 이런 취지의 호소를 했지만 역시 판사는 싸늘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에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요? ‘대박 신화’ 끝에, 이제 ‘쪽박 신화’를 다시 쓰게 된 영 리의 비극은, 오직 물질적 성공만을 위해 앞을 향해 내달아 온 모든 우리 이민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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