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추적> 미주독립운동 ‘다락방 유물’ 국내 이전 획책 기도

이 뉴스를 공유하기


















일제강점기 시절 미주에서 독립운동의 총본산이었던 대한인국민회가 남긴 역사적 유물에 대한 보존관리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24일자 미주 한국일보와 미주중앙일보에는 ‘국민회관 유물 독립 기념관으로 이전합의’라는 보도가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한인국민회 역사유물 2만여점’이 이르면 올해 안에 보존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22일 국민회관기념재단(이사장 잔 서)측이 한국 국회 정무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새누리), 국가보훈처 박종왕 제대군인 국장을 만나 역사유물 사료 2만 여점 한국 독립기념관 이관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정부와 관련 기관단체들은 말로만 해외독립운동 유적 보존을 강조 해왔으나, 실제적으로 해외 유물을 국내로 이전시키겠다는 속셈을 드러내 보이며 암암리에 진행시켜왔다. 미주한인 역사유물 반출과 관련한 문제점들을 짚어 보았다.
성 진 <취재부기자>












 ▲ 국민회관 ‘다락방’ 유물이 교회내 허름한 창고에 보존처리없이 홈디포 박스에 처박혀 10년째 방치되어 썩어 나가고 있다.
지난 2011년에도 독립기념관측은 국민회관 유물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국내로 이전하려 했으나 본보 등을 포함해 한인사회의 거부운동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도 독립기념관측은 다시 국민회관기념재단 측에게 압력을 행사해 유물을 국내로 이전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회관 유물은 캘리포니아 법원이 1984년에 내린 판결에 의거 2083년까지 99년 동안 해외로 이전이나 반출이 금지되었다. 판결의 요지는 ‘국민회관 유물은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의 역사적 재산이기 때문이다’라는 점이다.
이번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회관 유물은 속칭 ‘다락방 유물’ 2만 여점이다. 이 유물은 지난 2003년 7월 당시 방치되어 있던 대한인국민회관(Korean National Association Hall)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당시 밀폐된 다락방에서 발견됐다.
이 유물들 중에는1920년대 미주한인 인구 현항을 수록한 ‘재미동포 인구등록’, 한인 이민초기 한글 교과서, 개인 서신 및 사진 ,이민 초창기 태극기와 일제강점기 서울 전경 사진, 공립신문•신한민보 원본 및 축쇄판, 독립운동 자금 입금대장, 대한인국민회관 낙성식 휘호 등이 포함됐다.
이들 유물은 미주 한인이민 역사 및 일제강점기 시절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우리 민족 독립운동 역사를 밝혀줄 귀중한 문헌들로 금액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미주한인사회의 유산이다.


유물보존 구실로 반출 획책


이처럼 귀중한 유물이 발견 당시부터 보존처리를 하지 않고 국민회관 건물을 구입한 나성한인장로 교회 1층 어린이교실 임시 보관소에 10년째 방치되어 왔다.
이처럼 방치되자 한국의 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보존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2011년부터 두 차례 실사작업을 벌여왔다. 실상은 자신들이 이 유물들을 탐내어 왔던 것이다.
지난 22일 국민회관 기념관을 방문한 한국 국회 김정훈 정무위원장은 “국민회관에서 발견된 유물은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로, 사료 정리가 됐으면 독립기념관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귀국하는 대로 곧바로 조치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김 위원장은 또 “독립기념관 측에서도 중요한 유물은 후손들에게도 알릴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서 영구보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김정훈 위원장이 무슨 자격으로, 무슨 권한으로 미주한인사회의 유물을 함부로 가져가겠다는 발언을 한 것인지에 대해 동포사회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그리고 이날 김 위원장 일행을 맞아 국민회관 기념관 전시 내용을 설명한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의 잔 서 이사장도 “올해는 유물을 한국으로 보내, 약품처리도 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또 그는 “4월 중 한국 정부와 협조해 사료 정리와 스캔작업을 마치고, 한인사회 여론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거친 후 유물을 한국으로 이관할 수 있도록 요청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는 ‘짜고치는 고스톱’과 흡사했다. 미주한인의 귀중한 유산을 동포사회를 제치고 해외로 빼돌리려는 획책이나 다름없다. 수년전에도 국민회관복원위원회 관계자가 국내 흥사단과 짜고  일부 유물들을 비밀리에 기증형식으로 반출시켰다. 당시 이와 관련해 10만 달러의 보상금이 거래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을 정도로 반출과 관련 많은 의혹이 아직까지 일고 있다.


반출 금지시킨 ‘판결문’


지난 2003년에 본보 취재진이 입수한 캘리포니아법원 판결문(사건번호C-297-554)에 따르면 국민회관과 유물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1984년부터 ‘99년 동안’(2083년까지) 유물이 보존된 교회는 국민회관과 유물에 관해 “철거, 매각, 임대, 양도, 이전 등 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지난 1984년 4월26일자로 캘리포니아법원(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상급법원)의 잭 크리카드 판사는  1984년 당시 국민회관과 관련된 분쟁소송에서 소송 당사자들의 합의서를 검토하고 “국민회관이 역사적 유적지로서 한인사회를 위해서” 관리유지 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판결문은 ‘국민회관에 있는 유물과 사료등도 99년 동안 그대로 회관 내에 보존되어야 한다’면서 ‘교회(나성한인장료교회)는 국민회관이 미주한인이민사의 역사적 기념 유적지라는 사실을 인식해 건물 소유주로서 한인사회를 위해 제반 사료보존에 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합의서에는 교회가 (국민회관) 건물의 소유권은 있으나 “국민회관은 한인사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차별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판결문과 부속 합의서를 보면 국민회관과 유물 등 사료가 미주한인사회의 역사적 유적지로서 “특별히 캘리포니아주의 한인사회를 위한 것”임을 여러 조항에서 강조했다.
특히 판결문은 국민회가 1978년 9월20일 회관건물을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당시 담임 우상범 목사)에 매각한 것을 인정했으나 국민회관과 유물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1984년부터 ‘99년 동안’(2083년)까지 교회는 국민회관과 유물에 관해 “철거, 매각, 임대, 양도, 이전 등 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이 합의서에는 ‘역사적 건물 보존’ ‘한인사회에 조건 없이 개방’ ‘국민회관 역사적 유물 보존’이라는 별도 제목까지 제정해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 같은 판결문에 대해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회관과 유물이 한인사회의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또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한인국민회관 유물은 지난 2003년 당시 국민회관(1938년 건립)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락방’에 밀폐 되어 있던 것을 인부들에 의해 발견됐다. ‘다락방’ 유물은 약 2만점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2만점이 어떤 근거로 산출됐는지 근거 자체가 불확실하다. 유물이 처음 발견됐을 당시 기록 정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견 당시도 일부 유물은 이미 손상되어 있었다. 당시 다락방에서 임시보관처인  국민회관과 한 울타리에 있는 나성한인장로교회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료들이 손상당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초기단계 조치부터 비전문가들에 의해  잘못 보존됐다.
그 임시보관처가 벌써 10년이 지나 이제는 영구 보관처나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처음 유물을 발견 때부터 전문가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기초단계인데, 사료보존에 무지한 당시 국민회관 복원위원회 관계자들이 초기과정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국민회관 복원위원회 측과 관리담당자 그리고 보관자인 나성한인 장로교회 측의 책임이 일차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정부-국민회관 재단 꿍꿍이 속내


당시 LA자연사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열대 기후인 LA지역에서 장기간 밀폐된 공간에 있던 종이책이나 국기 또는 사진 등은 발견 즉시 전문가의 도움없이 처리하면 손상되기 쉽다”면서 “유물을 운반하는 과정도 전문가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었다.
본보는 지난동안 수없이 ‘다락방’ 유물과 국민회관 자료 불법반출에 대해  한인 커뮤니티의 관심과 관계자들의 책임을 지적했다.
역사적인 유물인 국민회관을 보존해야 하는 책임을 진 국민회관기념재단은 이사회로 구성되어 있으나 창립 때부터 제대로 체제도 갖추지 못하고 관련단체 기관들끼리 갈등만 일으켜왔다. 한때는 국민회관을 관광지로 하여 체험교육장으로 홍보도 하는 듯 했으나  지금은 거의 잊혀 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회관 유물들은 발견 당시 종류별로 오피스 디포에서 구입한 20여개 박스상자에 넣어 교회 내 주방 옆 허름한 사무실에 그대로 보관했다. 한마디로 무방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한때 보관소 옆 주방에서 물이 흘러 땅바닥을 적실 경우 옆방 유물 보관 장소로도 스며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교회 주방 옆 창고에 그대로 방치


 이런 환경이라 교회 측은 이민사 연구자들이 한번쯤 외관으로라도 유물을 관람을 하고 싶어도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회관기념재단, 교회 상급 관계자들, 그리고 본국 고위층이 오면 비밀리에 관람을 해주곤 했다.
현재  국민회관 ‘다락방’ 유물이 어느 정도 손상이 됐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은 책임이 두려워 손상여부나 관리여부가 외부에 일체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지난 2007년 노무현 정권 당시 한국정부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과 1900년대 초반 이민초기 멕시코 애니캥 농장 이민사, 미국 한인 이민사 등 해외에서 활동한 동포들의 유적 및 물품 등에 대한 발굴 보전작업을 통합 추진하기로 결정했지만 지금은 공염불이 되었다.
당시 외교부는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국가보훈처 등 해당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해외소재 한인 유산관리 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하고 첫 준비회의를 가졌지만 그 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유야무야 돼버렸다. 이 문제는 국가보훈처가 주무부서가 되어 추진해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무 당사자들의 무성의와 전문가들의 이해부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유물 보존실 건립 10년 동안 진전 없어


지난 2005년에 한국정부 보훈처 유적실태조사단이 LA방문 길에 ‘다락방’ 유물의 중요성을 인하고 “조사단을 보내 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년 후 2006년 9월,  2명의 조사단을 파견했다. 이들 조사단은 ‘다락방’  일부 유물은 특별한 화학처리 없이는 제대로 검토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이 손상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국민회관기념재단 측은 한때 한국정부에 유물보존관리 등의 명목으로 30만 달러를 지원 신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관기념재단은 유물보존관리를 위해 USC 측으로부터 2005년  12월 ‘다락방’ 유물보존을 위한 계약서(안)를 접수해 놓고서도 10년이 가까워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또한  재단 측은 유물보존에 대해 현재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나성한인연합장로 교회 측과 유물보존 장소를 교회 측이 제공하고, 유물보존실 건립은 재단 측이 담당한다는 계약을 맺은 이후 서로 간에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동안 귀중한 역사 유물은 계속 썩고 있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