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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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29일은 미주한인 이민 역사상 최대 수난인 LA 4.29 폭동 22주년이 되는  날이다.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대도시 유혈 폭동이다. 폭동은 미국 LA 경찰국 경찰관이 흑인계 운전수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사건이 무죄평결이 되면서, 흑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다. 흑인과 라티노 폭도들이 주동으로 수천 명이 LA에서 시위를 일으켰으며, 유혈, 방화로 확산되었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이 나서면서 진화가 되었다. 이 폭동으로 재산 피해액만 약 10억 달러를 넘었다. 총 53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이 폭동으로 한인 청년 이재성군이 사망했으며, 코리아타운의 90%가 피해를 당했으며 한인 재산 피해도 4억 달러에 달했다. 4.29폭동은 용광로 속에서 분출된 ‘한인 정체성’이라는 귀중한 얼과 혼을 새로 발견한 계기였다. 폭동을 통해 한인사회는 ‘하나의 뿌리’임을 인식하게 됐다는 얘기다. 다음은 4.29를 기념하는 에세이 컨테스트에 올린 한 주부의 글을 소개 한다.    <편집자 주>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88서울올림픽 즈음해 한창 불려 지던 때가 있었다. 나는 이 노래를 이렇게 바꿔 불러보고 싶다. ‘벌몬에는 쟈카란타 심어보자. 웨스턴에는 팜츄리를 심어보리라.’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내려다보면 코리아타운은 타 지역에 비해 녹색의 그늘은 별로 보이지 않고 시멘트 건물들로 삭막해 보인다. 거기에 모여 사는 사람들마저 왠지 무표정일 것만 같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타고 가로수가 울창한 미래의 코리아타운으로 달려가 본다.
때는 21세기 어느 화창한 봄날, 걷기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할리우드 전철역으로 향한다. 지하철에 오른 지 채 10분도 안 돼 윌셔 벌몬역에 도착한다. 땅속에서 빠져나와 밝은 태양 아래 우뚝 선다.
“엄마, 저 보라색 꽃나무 참 멋있다! 길이 모두 보라색이야.” “으음, 쟈카란타 나무인데 매년 이맘때쯤이면 한창 핀단다. 전에 이 동네가 온통 벌건 불길에 휩싸인 적이 있었지.”
조그만 종모양의 꽃송이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꽃보라를 가르며 관광대형버스들이 벌몬 길에 줄을 잇는다. 버스 문이 열리고 머리 허연 백인 노부부, 흑인은 물론 세계 각종 인종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들은 늘어선 쟈카란타 나무에 원더풀을 연발하며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보라색 꽃이 차도 인도 할 것 없이 떨어져 꽃 잔디를 이루고 야외촬영 나온 신부들의 하얀 드레스가 햇살에 눈부시다.
흥겨운 사물놀이 패를 따라 올림픽가로 접어든다. 아드모아 공원을 중심으로 덕수궁 돌담길이 둘러서 있고 마치 민속촌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길가 건물 양식은 옛 고전풍이다. 엿판을 둘러맨 엿장수의 가위 장단소리에 꼬마들이 모여들고 골목마다 갈비 굽는 냄새가 넘쳐흐른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우리와 눈이 마주친 스패니쉬 할머니는 LA폭동에 폐허가 되다시피 한 타운을 직접 봤다며 아이에게 악수를 청한다. 손님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한인타운을 관광도시로 만든 한인들의 노력과 관광객들이 뿌리고 간 엄청난 수익금을 한인들이 다시 불우한 지역사회에 환원 시킨다는 얘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모두가 감격스런 하루를 연출해 내고 있다.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에 섞여 웨스턴 길로 들어선다. 그 비싼 팜츄리가 줄 지어 서 있는 웨스턴 길은 정말 든든하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믿음의 기둥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폭동이 났을 때는 여기가 전쟁터와 같았어. 그걸 TV로 본 외국인들이 한인타운에 오기를 꺼렸단다. 불경기까지 겹친 우리 모두의 아픔이었지. 그러나 그때부터 타운을 살리기 위해 나무 심기 운동을 꾸준히 벌인 결과 이제는 산에서 봐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나도 길옆 종합마켓으로 들어간다. 관광객들은 골동품, 자개 장식품, 도자기를 어루만지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이는 색동인형을 고른다. 사람들마다 양손에 쇼핑백을 몇 개씩 들고서 윌셔 웨스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나는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피곤해진 다리를 끌고서 길가 벤치에 걸터앉는다. 아이가 내 손을 잡아당긴다. “엄마, 식당 음식 참 맛있다. 이 동네 오니까 나 같은 동양 애들도 많고, 엄마, 나 이제 한국말 열심히 할 꺼야.”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에 새들이 나뭇잎새를 펄럭이며 지저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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