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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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얼마 전 한국 방문 때 1주일 동안 북촌 한옥체험이라는 걸 했습니다. 조국을 떠난 지 오래 된 해외교포나 한국이 낯 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조선시대 양반동네인 서울 북촌에서 체험하는 색다른 관광 상품인 한옥 홈스테이(home stay)는 가슴 떨리는 유혹입니다.
인터넷에서 계동 4길에 있는 <금붕어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을 골랐습니다. 전통한옥에 금붕어라는 상큼한 이름을 붙인 집 주인의 지적 수준(?)과 양식을 믿기로 하고, 그 집을 ‘닥치고’ 선택했습니다. 아침밥 주고 하루 숙박비가 9만원이라니 그만하면 값도 ‘착한’ 편이었습니다. 1주일 치 방값 63만원을 선불하라는 요구가 께름칙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크레딧카드로 선(先)결재를 하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이번 여행은 고교동창 reunion과 우리 부부의 결혼 45주년 기념 anniversary를 겸한 모처럼의 홀가분한 모국 나들이였습니다. 3~40년, 4~50년 만에 만나는 고교 동창들과의 재회는 행복했고, 50여년만의 경주 불국사 관광, 홍도와 외도 등 남-서해안 관광,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평창 관광도 황홀했지요.
 미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스케줄에, 북촌 한옥체험이 들어 있었습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악산 기슭에 있는 계동 가회동 일대의 한옥보존지구로, 조선시대의 고관대작과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려 계동 길을 따라 20여분 걸어 올라가자, 한옥들의 처마가 서로 맞닿을 듯 비좁은 골목길 안에 금붕어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났습니다.

북촌 한옥체험은 ‘지옥체험’

손바닥만한 한옥 대문(실은 쪽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거북이 등짝만한 1평 남짓의 마당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숙박할 방은 캘리포니아 샌타클라리타에 있는 우리 집 화장실보다도 작아, 큰 여행가방 2개를 한쪽에 밀어 넣자 1평짜리 교도소 독방만한 공간이 남았습니다. TV도 인터넷도 전화도 없었고, 옷을 걸어놓을 옷걸이 하나, 장롱 하나 없었습니다. 이부자리 두 개와 재래식 앉은뱅이 밥상 하나만 달랑 놓여 있는 2평 남짓의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1주일을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득했습니다.
그 집은 10평정도의 공간에 방 셋, 마루 하나, 화장실 둘, 그리고 콩크리트 마당이 있는 구조였습니다. 옛날 대감 집 헛간이나 측간(변소)을 일제 때 서민용 주거공간으로 개조한 집 같았습니다. 1주일은커녕 하루도 있을 자신이 없어 환불을 요구하자, 한 푼도 되돌려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 왔습니다. 1주일 치 숙박료를 선불로 받아 챙긴 집 주인의 검은 장삿속이 그제야 짐작됐습니다.
 아침밥이라는 게 나왔는데, 차디 찬 주먹밥 3개가 종이 도시락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만든 지 오래된 것인지 역겨운 비린내까지 나는 주먹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다음날부터는 아예 뜯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아침밥을 준다기에 따뜻한 밥에 된장국과 김치가 곁들인 조선시대 서민들의 조식(粗食) 정도는 나오는 줄 알았는데 주먹밥이라니…. 기가 찼습니다.
 우리 부부의 결혼 45주년 anniversary는 그렇게 ‘참혹한’ 한옥체험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의 호화주택가인 북촌의 한옥 온돌방에서 ‘양반 코스프레’ 한번 해 보겠다고 ‘헛 폼’을 잡아 본 내가 부끄러웠고, 아내에겐 끔찍이 미안했습니다.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 친구 부부가 금붕어하우스를 찾아왔습니다.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강득휘 회장 부부였습니다. 사흘 굶은 고양이 상을 한 채 방안에 갇혀있는 우리 부부를 보고 그는 “오 마이 갓!” 하며 소스라치더군요. “여기서 엿새를 지냈느냐”면서 “제 정신이냐”고 망연해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짐을 챙겨 우리를 자기 차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에 잡혀있는 인질을 구출해 내는 특공대원처럼 날렵하고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강남의 한 특급 호텔에 집어넣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 체험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금붕어에서의 6일은 지옥체험,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의 하루는 천국체험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1주일 만에 처음으로 커다란 은색 욕조에 누워 온수목욕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트윈베드에 발을 쭉 뻗고 누웠습니다. 궁금하던 세월호 소식도 오랜만에 TV에서 봤습니다. 호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강남 비즈니스 디스트릭트의 야경은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재선은 ‘재앙’?

지난해 한국의 한 시사 월간지엔 <북촌 게스트 하우스, 박원순 특혜 의혹>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옥마을 체험 사업을 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업자들에 특혜를 준 의혹을 파헤친 기사 같았습니다.
도덕성이 생명인 좌파 시장이 그런 몹쓸 짓을 했으리라 믿기지는 않습니다. 북촌 한옥체험이라는 게, 해외관광객들을 아프리카 난민촌 같은 좁고 불결한 숙박공간에 집어넣고 주먹밥이나 먹이는 ‘체험’이라면, 이건 일종의 ‘국제 범죄’입니다. 박 시장과 북촌 한옥마을 악덕업자들의 ‘공모 사기극’입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신흥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국격을 훼손하는 ‘나라망신 체험’입니다.
관광 측면에서만 보면 서울은 참 ‘별 볼일 없는’ 도시입니다. 이웃나라 도시인 도쿄, 베이징, 상하이, 싱가포르, 홍콩 등에 비하면 삭막하달 정도로 볼거리가 없습니다. 해외관관객의 대부분인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들은 엄밀히 보면 남대문시장과 명동, 이태원을 찾아오는 쇼핑객이지 관광객은 아닙니다.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을 복원해 볼거리를 만들고,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 같은 토목사업으로, 별 볼 일 없던 서울의 도시매력지수 GNC(gross national cool)를 세계 14위권으로 끌어 올려놨습니다. 헌데 박원순 시장은 소통시장, 서민시장을 자임하며, 서울을 선진국에서 가장 매력 없는 GNC 최하위의 도시로 다시 추락시키고 있습니다.
 한강 노들섬(옛 중지도)의 금싸라기 땅에 배추 무 쑥갓 같은 채소를 심고, 버스 위에 논을 만들고, 시청 건물 위엔 양봉장을 가꾸고 있습니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벼 모내기 행사를 벌입니다. 지하철 노숙자들한테 전기담요를 깔아줍니다. 곧 지하철 역 안엔 노숙자용 TV와 냉장고도 등장할 판입니다. 참으로 ‘끝내 주는’ 좌파 포퓰리즘입니다.
이건희 손자에게 공짜점심을 주고 정몽구 증손자에게 유치원 비를 대 주는 식의 화끈한 공짜 시리즈로, 서울시 재정은 늘 바닥입니다. 인구 1000만의 세계적 메가 시티인 서울시장으로써, 박원순에게는 10년, 100년을 내다보는 미래 비전, 장기 플랜과 전략이라는 게 도통 없습니다.
하루 100달러나 받으면서 키 큰 외국인은 무릎을 굽혀야 잘 수 있을 정도로 좁디좁은 숙박공간에 관광객들을 집어넣고 주먹밥 먹여가며, “이게 코리아 체험”이라고 사기를 치는 게  박원순의 이른바 ‘소통 시정(市政)’입니다. 그의 소통은 고통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박원순이 시장에 재선됐습니다. 3년 전 보궐선거에서는 안철수 덕에, 이번엔 세월호 덕에 ‘우두망찰’ 시장자리를 꿰찼습니다. 그의 고향 사투리로 ‘억수로’ 관운 좋은 위인입니다. 그의 행운이 서울시와 시민들에게는 ‘불운’이 될까 그게 저어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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