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 교주 유병언 살해설이 나도는 까닭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유병언 청해진 해운의 실질적 사주의 도피가 장기화 되면서 각종 해괴한 괴담과 소문이 불거져 나와 유 회장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박근혜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 회장이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에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정황이 포착되고, 전두환-노태우 전 정권에서는 전경환의 비호를 받아왔으며 박근혜 정권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각별한 친분관계가 드러나면서 오리무중인 유병언에 대한 갖가지 소문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이 수만명을 동원해 두 달 가까이 그의 행적을 쫓고 있지만 깃털만 잡힐 뿐 유 회장의 소식은 감감 무소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을 중심으로 유 회장을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따라 유착관계에 있는 핵심인사들에 의해 유 회장이 이미 살해됐을 것이라는 소문과 이들의 도움으로 망명했을 가능성 등 제법 설득력 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유병언 살해 도주 괴담의 실체를 추적해 보았다.
리차드 윤(취재부기자) 

정부에서는 괴담이라고 하지만 오대양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은 유 회장이 권력과의 유착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오대양 사건 당시 오대양이 구원파와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 회장은 단순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도 종교 연구가들은 유 회장의 권력과의 유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그 배후에 거론되는 인물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유병언 회장은 김기춘 실장을 통해 지난 대선 당시 박 캠프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게 퍼지고 있으며 이런 문제로 인해 유 회장이 두 달 넘게 도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들의 비호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선캠프에 정치자금 전달說

 

요즘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유병언을 못 잡아서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한다. 유병언 체포 작전이 장기화되자 ‘못 잡는게 아니라 일부러 안 잡는게 아니냐’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괴담이 여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 7·30 재보궐 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에는 검찰과 경찰을 향해 신속한 유병언 체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지방선거 전에는 ‘여당이 지방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지방선거일 직전에 유병언을 잡으려고 일부러 안 잡고 있다’는 소문과 이미 망명했거나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끝나니 ‘유병언이 정치권에 돈을 먹여놓아 정치인도 잡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유병언이 잡히면 검찰 수사가 정·관계 로비 관련 수사로 번져나갈 가능성이 있으니 일부러 안 잡는다’, ‘검찰 내부에도 유병언 협조자가 있어 일부러 잡지 않는다’는 식의 소문이 인터넷을 타고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소문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오대양 사건의 전례때문이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TK(대구·경북)가 기반인 5공화국과 맥이 닿아 있었다. 유 회장과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히는 사람은 5공 당시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자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였다. 유 회장은 전 씨에게 경호원을 붙여주기도 했다.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자신의 경호원을 파견해줬고, 이 일로 당시 내무부장관으로부터 ‘레이건 대통령 방한 경비 지원 공로 감사장’을 받았다.

朴 정권 핵심인사들과 친분관계

전두환 독재 정권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85년 9월 세모는 당시 코리아타코마 등 유수한 조선업체들을 제치고 서울시로부터 한강 유람선 운항권을 따냈다. 회사 설립 3년째인 무명의 중소업체가 혜성처럼 사업권을 거머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입찰 업체들 사이에서는 전경환 씨의 도움이 컸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1984년 3월 23일 전두환 대통령은 유 회장의 회사인 (주)삼우트레이딩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전 대통령은 사공일 경제수석에게 “애로사항을 검토해 돌봐주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삼우 측은 부동산 담보 제공과 사업 범위 축소 등 은행 측 요구를 받아들인 뒤 4개 은행에서 25억원을 대출받았다. 유 회장은 구원파 신도들에게 “청와대 고위층과 종종 식사를 함께 한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신자들로부터 사채를 끌어모을 때나 일부 신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5공 권력층과의 ‘밀접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흘리면서 협박했다는 채권자들의 주장도 있다. 

 

유 회장이 권력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혹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1986년 7월 당시 치안본부 특수수사대(현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유병언의 사기 행위 관련 진정서를 접수하고 내사를 실시해 유 회장이 구원파 신도들로부터 2억여 원을 사취한 사실을 밝혔으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박 아무개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를 중단한 일도 있었다. 1987년 8월 29일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오대양 사건이 터졌다. 당시 검·경은 집단 자살의 원인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은 채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다 1991년 7월 잠적했던 용의자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검·경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구원파와 교주인 유병언을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구원파 신도인 죽은 박순자씨와 유병언의 최측근인 송재화씨(여)의 돈 관계까지 드러났지만 결국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이를 두고 ‘권력층의 비호설’이 제기됐다. 1991년 7월 당시 민주당의 김현 의원이 “유병언 사장은 월계수회 회원”이라고 주장하면서 ‘6공화국과의 커넥션’을 주장했다. 월계수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당시 체육청소년부장관이 주도했다. 유 회장은 또 민자당 재정위원을 지내면서 ‘돈줄’ 역할을 했다.

국회차원의 특검 필요해

유 회장에 대해 ‘5·6공 유착설’과 ‘배후설’이 확산되자 검찰은 내사에 들어갔으나, 5공 비호 의혹을 샀던 ‘25억 대출’, ‘한강 유람선 업체 선정’,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사 무마’ 등은 모두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권력 유착설’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유씨는 1991년 8월, 구원파 신도들에게 거액을 빌린 후 갚지 않은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이런 전례 때문에 종교 전문가들은 유 회장이 권력과 깊은 유착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이미 오대양 사건 당시 권력유착의 중요성을 깨달은 유 회장이 이후에도 꾸준히 정치권에 줄을 대왔다는 주장이다. 유 회장이 언제 잡힐지 모르지만 수만명의 인원을 동원하고서도 유 회장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검찰과 경찰의 모습을 보면 종교 전문가들의 의혹이 전혀 근거없어 보이지만은 않는다.

실제적으로 유병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핵심인사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금품로비를 한 사실이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캠프에 거액의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되면서 이와 관련한 국회차원의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2개월이 지나도록 오리무중인 유병언 구원파 교주가 잡힐지 영원히 미제로 끝날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권이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