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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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이런 썰렁 유머가 있습니다.
젊은 여성운전자가 음주운전 체크포인트에 걸렸습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나 한 잔도 안 마셨어요, 경찰 오빠…” 하며 옹알대는 여자를, 단속경관은 못 본체 그대로 보냈습니다. 옆에 있던 동료경관이 “왜 술 취한 여자를 잡지 않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예쁘잖아!”
마땅히 구속해야 할 여성피고인을 재판장이 석방하자 배석판사가 의아해 물었습니다. “재판장님, 왜 구속을 안 하죠?” 재판장이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예쁘잖아?”
남성그룹 ‘4 Men’이 지난 5월 내놓은 5집 앨범의 타이틀곡 <예쁘니까 잘 될 거야>가 요즘 젊은 층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90년대 R&B를 4 Men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했다는 이 노래는 “누가 봐도 넌 예쁘니까 잘 될 거야⁄누굴 만나도 사랑 받고 잘 될 거야“라는 노랫말이 단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쿨 하게 떠나보내는 ‘누가 봐도 예쁜’ 옛 애인의 행복을 빌고 있습니다.

양심선언 뒤에 숨은 불량 음모

한동안 한국에서는 “외모도 스펙이다”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연애 결혼 취업 승진 등의 모든 인간사와 세상사가, 특히 여성의 경우, 4 Men의 노랫말처럼 오직 “예뻐야 잘 되는” 세상이 됐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의 80%가 외모 때문에 회사의 승진이나 업무배치에서 차별을 받고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수십-수백만 달러짜리 소송 감인 용모차별이, 한국에서는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여의사나 여변호사와 같은 고급 전문직 여성들조차 의사시험 점수나 사법연수원 석차보다는 ‘한 미모’부터 따져지는 세상입니다. 여성 정치지망생들이 국회의원 지역구나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 할 때도 ‘외모’가 스펙이 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공천에 간여했던 어떤 당 중진의원의 얘기를 사석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드러내 말은 못해도 얼굴이 ‘짱’인 여성후보는 ‘꽝’인 후보보다 공천심사 때 ‘가산점’을 얻는 게 사실입니다. 선거에서 실제로 ‘짱’은 ‘꽝’보다 득표 경쟁력이 월등해요.”
권은희는 지지난 해 대선 정국을 흔들었던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의 수사책임자입니다.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그는, 직속상관인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외압설’을 폭로해, 1년 가까이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외압설 폭로 후 그는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됐지요. ‘권은희와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라는 서포트그룹이 생기고, 새민련은 그를 ‘광주의 딸’이라 치켜세웠습니다. 그는 진보좌파 세력이 대선 불복과 박 대통령 퇴진투쟁을 벌이고 나서는 데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문제는 권은희의 이 ‘정의롭고 용감한’ 내부 고발이 ‘순 뻥’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법원은 1심-2심 모두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1심재판부는 “권은희의 진술이 객관적 상당성과 합리성이 없어 믿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고, 2심재판부도 “권의 외압설 주장은 허위 과장이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남아 있지만,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1-2심의 판단이 뒤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김한길-권은희의 ‘패륜 공모’

 권은희가, 지난 주 새정련의 공천을 받아 광주 광산을 재보선에 나섰습니다.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처벌 받아야 할 범법 혐의자가, 교도소 대신 금배지 달고 국회의사당에 ‘짠’하고 나타 날 판입니다.
댓글사건은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았고, 권은희가 양심선언 형식을 빌려 폭로한 외압설은 재판에서 모두 허위로 판명 났습니다. 재판으로 비록 혐의는 벗었지만, 권이 모함한 직속상관 김용판은 서울경찰청장 옷을 벗고 재판정에 불려 다니며 온갖 수모를 당했습니다.
권이 9년 동안이나 몸담았던 경찰조직도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런 판에 상사를 거짓 모함한 수사책임자가 정치적 사건의 한쪽 축인 제1야당의 텃밭에 공천돼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패륜입니다. 이런 패륜을 제1야당 대표 김한길이 권과 함께 도모했습니다.
왜 권은희를 공천했느냐고 물으면 김한길은 뭐라고 답할까요. 술 취한 여성운전자를 체포하지 않은 단속경관이나 여성 구속피의자를 석방한 판사처럼 “예쁘잖아?”라고 둘러댈까요.  예쁜 탤런트 출신 아내를 매일 보고 사는 김한길이 권은희를 공천한 이유를 “예쁘잖아?”로 둘러대기에는 권의 얼굴은 좀 ‘거시기’ 한 게 사실입니다.

7.30 선거, 광주의 딸이 망치나?
 
권은희는 사법고시합격 후 지방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다 특채로 경찰에 들어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개업 1년 2개 월 만에 변호사를 그만 둔 이유에 대해서는 사건 브로커를 두고 영업을 하다 지역 변호사회의 조사를 받았다는 설, 수임한 피의자의 아내에게 위증을 교사한 혐의, 사무실 임대료조차 못 낼 정도로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았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권이 왜 직속상관인 김용판을 아무런 객관적 증거 없이 물고 늘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댓글사건은 현 정권의 정통성을 뒤흔들 인화성 강한 정치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채동욱 검찰은 마치 박근혜 정권을 끝장이라도 내려는 듯 야당과 의기투합해 여권을 무섭게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채동욱 검찰의 이런 서슬 앞에 경찰청장이 수사책임자에게 감히 사건축소를 지시할 형편이 아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권은희가 ‘김용판 외압설’을 들고 나오자 “정치적 배후가 있다” “야당의 공천을 받으려는 돌출행동이다”라는 등의 음모론이 경찰 안팎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음모론은 재판부의 권은희 양심선언 허위 판결과, 권의 이번 재보선 출마로, 결국 사실로 판명 났습니다.
지금은 ‘역 음모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국민 절대다수가 이맛살을 찌푸리는 권은희 광주공천을 김한길의 새민련이 무리하게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에 접근하려는 여러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권은희 양심선언 자체가 새민련과의 사전각본에 의한 날조공작이었으며, 여기서 약점을 잡힌 새민련이 광주지역 공천을 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추론입니다.
권은희의 정계진출은 “국정원 사건 수사 자체의 진정성을 훼손해 결과적으로 박근혜를 정통성 시비로부터 자유롭게 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권은희 카드는 역풍을 몰고 와 새민련 지지도는 지난 주 5% 이상, 광주에서는 10% 나 떨어졌습니다.
당초 과반의 낙승을 점쳤던 재보선 전망도 흐려져 호남의 4군데를 제외한 전국 11개 지역 모두에서 새민련 후보들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어제 중앙일보의 조사에서는 심지어 새민련의 거물 대권주자인 손학규와 김두관 마저 각각 수원과 김포에서 여당후보에 뒤지는 대이변이 일어났습니다.
2012년 총선에서 새민련은 나꼼수의 저질막말 패널 김용민을 잘 못 공천했다가 다 이긴 선거를 망쳤습니다. 이른바 ‘김용민의 저주’입니다. 이번엔 ‘권은희의 저주’가 7.30 재보선을 앞두고 새민련에 검은 구름을 몰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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