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한국방문 결산-1

이 뉴스를 공유하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사적인 한국 순례방문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가톨릭 국가와 지구촌에 커다란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지난해 등극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 크리스천이 아니다”라고 천명했다. 이 말씀에 따라 이번 4박 5일간의 한국 방문 중에 교황이 가장 관심을 둔 것도‘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를 통해 평신도 스스로가 천주교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신앙을 위해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한국을 방문해 시복 미사를 직접 집례 하면서 순교자의 거룩한 피의 정신으로 ‘모든 인간은 존엄을 받을 가치가 있다’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4박5일 간의 한국 방문이 하느님의 선물 이었다”고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17일 밝혔다. 그는 이번 교황 방한의 의미에 대해 “전 세계에 한국 가톨릭교회의 근본적인 가치를 알리고 보여 준 것이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방한 은 단순히 한국이 아닌 아시아를 방문한 것 이었다”며 “교황의 방한이 가톨릭교회가 아시아로 관심을 돌리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교회는 북한이나 중국과도 대화를 나눌 것임을 시사 했다. 한편 롬바르디 신부는 “이번 교황이 방한기간에 교황이 세월호 참사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세 번에 걸쳐 표명한 것은 피해자 유가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공감 한다는 걸 보여 주는 것 이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방한 마지막 행사인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나 위로했으며 타종교지도자도 만나고 한반도 통일을 기원했다. 지난 18일 성남 서울공항을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19일(현지시각) 이 새벽 로마 치암피노 공항에 도착해 한국 순례방문의 일정을 마첬다. 바티칸 공식 매체인 ‘바티칸 라디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공항에서 한국 어린이에게서 받은 화환을 갖고 로마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AP통신은 이번의 교황의 한국방문은 한국인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타전한 기사에서는 31세의 전자회사 직원인 손광영씨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교황께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함께 아픔을 나누어 한국사회의 화해에 커다란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 이 통신은 “김은주라는 15세의 고등학생은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것에 자랑스럽다”면서 “이같은 방문은 다른 나라에서는 흔치않은 일인데 대한민국 정말 놀라워요”라고 밝혔다.
한편 월스트릿 저널은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방한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시복 미사를 집전하고 초청된 17만명의 천주교 신자들과 일반인들 약 100만 명의 군중 앞에서 124위 순교자에 대한 시복을 선포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복 미사가 거행된 광화문광장은 18세기와 19세기 동안 수많은 한국인 순교자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의 수는 이날 시복된 124위를 포함해 16,000명에 달한다. 이처럼 수많은 순교자 수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박해를 이겨내고 한국 사회에 뿌리 내렸다.

16일 시복된 124위 순교자들은 한국에서 가톨릭교회가 처음 지어진 1836년 이전에 외부 선교사 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가톨릭에 귀의한 신자들이다. 1984년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 을 방문해 시성한 103위의 초기 가톨릭 순교자들은 한국에 정식으로 가톨릭교회가 생긴 이후의  신자들이다.
이날 시복미사에 앞서 왼쪽 가슴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배지인 노란 리본을 단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 참가자들 앞에서 차량을 잠시 멈추게 하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힘을 보태 달라는 한 시위자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세월호 유족 목소리 경청

 

지난 14일(목) 첫 번째 아시아 방문지인 한국에 도착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15일(금)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교황이 집전한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와 뒤이어 오후에 진행된 아시아청년대회에도 교황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군중이 운집했다.
청년대회에서 인기 연예인 보아와도 만나 “재능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서하라”고 격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인과 노숙자, 장애인을 위한 국내 최대 요양시설인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해 그곳에서 교황은 가족에게 버려진 장애 아동들도 만나 위로했다. 낙태 아이를 추모하는 공원도 방문해 기도했다.
‘꽃동네’ 방문 이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례적으로 평신도들이 주축이 된 한국 가톨릭 역사를 중요시해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대표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1700년대 후반 천주교가 한국에 처음 전파된 이후 가톨릭교회가 수십 년간 한국에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평신도들의 노력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마지막 일정으로 18일(월) 명동 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했다. 명동 성당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독재 정권과 가톨릭 사제들이 대치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군사 독재 시절은 끝났지만, 일부 사제들은 현 정부를 상대로 여전히 설전을 벌이고 있다.
울스트리트 저널지는 한국가톨릭 교회는 반체제 인사에게 쉴 곳을 제공하고 학생운동을 지원하는 등 한국 민주주의 여정 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떼제공동체의 안선재 수사는 1974년 자발적으로 결성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의 뿌리는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수사는 이처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역사를 바탕으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소속 사제 들은 현대 한국 사회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자신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안 수사는 1987년 군사 독재 정권이 물러났기 때문에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 현 정부를 비판하는 태도는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며 때로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예수회 인권연대 연수센터 소장 박문수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 현실 정치에 너무 깊이 개입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박 신부는 그 바람에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옹호하고 세월호 유족들을 돕는 사회 복지 활동이 그늘에 가려졌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가톨릭계의 다른 리더들도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입장이며 교회가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15일자 신문에서 교황이 서울에 도착한 지난 14일 돌연 로켓 3발을 발사 했는데 북한 측은 ‘이는 교황 방문과 관련 없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교황 방문으로 세계에 관심이 한국으로 쏠리는 것을 북한이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밝혔다.
북한 측은, 한국천주교교황환영위원회가 교황의 명동성당에서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북한 신도들을 초청했으나 거부했다. 북한은 헌법상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하게 종교를 탄압하는 국가로 알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개신교도 수가 아직 가톨릭 신자 보다 많고 개신교가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최근 수년간 개신교도 수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가톨릭 신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 은  대형교회 위주인 개신교에서 드러난 내분과 부패 스캔들로 인해 최근 몇 년 사이 개신교에 대한 일부 신자들의 믿음이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