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간 세계에 영향준 ‘8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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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매년 엄청난 변화를 하고 있다. 오늘날의 우주선이나 점보 여객기도 불과 100여년전에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발명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이“지난 80년 동안의 80가지 문화적 사건” (80years of Cultural Relations)을 조사 발표해 흥미를 끌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지난 80년 동안의 결정적 사건’이란 제목으로 보도해 마치‘80대 뉴스’처럼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문화적 충격을  전반적으로 다룬 내용이라‘80대 뉴스’ 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이 80대 문화적 사건은 인류문화 진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영국 문화원은 이를 조사하는데 전 세계 10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1만여명을 설문조사 하였는데  한국은 조사 대상국에서 제외됐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성 진 취재부기자>

영국문화원이 1위로 꼽은 사건은 인터넷 파급이다. 오늘날 전세계를 풍미하는 인터넷은 지금 우리생활에서 막강한 영향력으로 생활해 가고 있다. 한편 80개 중에서 최하위로 선정된 80위에는 독일 안무가 피나 보츠의 영향력으로 꼽았다. 또한 77위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극작가 샤무엘 버켓트의 ‘고도우를 기다리며’(1953)의 초연을 선정했다.

2위에는 ‘기적의 약’이라고 불리웠던 페니실린이었고, 3위에는 개인용 컴퓨터 발명 등이 있으며, 흥미로운 것은 11위에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었다는 것, 스마트 폰의 출현(15위), 의료과학의 신기원을 이룬 DNA발견(21위), 상업용TV의 출현(24위), 반전노래로 전세계를 풍미했던 피터 시겔이 부른 ‘우리는 극복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72위로 선정됐다.

현대사회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피임약 발명(22위), 전세계 단일 스포츠로는 최대인 월드컵의 세계화(45위), 음식문화로 유일하게 선정된 인스탄트 라면 개발(63위), 동성애 확대(52위)등이 꼽혔다.

인물로 최고위에 오른 사람으로 남아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흑인 넬슨 만델라(7위),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이슈타인(20위), 중국을 공산화로 통일한 모택동(43위), 세계 팝뮤직의 황제 마이클 잭슨(49위), 베르린 올림픽 (1936) 에서 4관왕에 올랐던 흑인선수 제시 오웬(66위), 미얀마 인권 운동가 아웅산 수지(62위) 등이다.
 세계를 바꾼 사건 1위는 세계 인터넷망인 www (월드와이드웹)이었다. 팀 버너스 리가 1989년 개발한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웹브라우저)을 실행해 ‘www’로 시작하는 간단한 인터넷 주소만 입력하면, 컴퓨터상에서 쉽게 그림•영상•문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선정한 영국문화원은 “월드와이드웹으로 인류의 교육•거래•소통 등 생활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며 “이용자 수가 5만명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라디오가 38년, 텔레비전이 13년인 데 반해 월드와이드웹은 4년이었다”고 밝혔다.

 

영국문화원이 63위로 선정한 ‘인스턴트 라면’은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빼놀 수 없는 먹거리다. 이제 라면은 한국산이 전세계에서 자랑한다. 원래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에서  개발됐다. 일본 오사카에 가면 라면 박물관이 있다.  오사카부 이케다 시에는 ‘인스턴트 라면 발명 기념관’이 설치되어 있다.
기념관 통계에 따르면 세계 연간소비량을 살펴보면  936억 식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온다. 상상하기 어려운 양 이지만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먹는다고 하는데 ‘세계 식품’이라는 칭호도 부칠만하다. 이제는 우주비행사가‘우주여행’ 때 챙겨가는 식량이 되었을 정도이다.
이케다 시가 바로  ‘인스턴트 라면이 탄생한 고장’이다. 그 발명자인 닛신식품 창업주이기도 한 안도 모모후쿠 씨의 자택이 있으며 정원에다가 지은 ‘작은 연구실 건물’에서 1958년에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  ‘금방 맛있게, 아주 맛있는’으로 잘 알려진 그 치킨라면을 발명한 것이다.
그 업적을 기념하여 인스턴트 라면의 역사와 그 발명 과정에서 있었던 ‘발명·발견’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하기 위해 1999년에 세워진 게 바로 ‘인스턴트 라면 발명 기념관’이다.
기념관 안에는 인스턴트 라면 탄생에 관련된 일화와 그 후의 역사, 제조법 등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프와 건더기를 섞어 오리지널  컵라면을 만들 수 있는 ‘마이 컵라면 공장’  치킨 라면 수체험을 할 수 있는 ‘치킨 라면 수제 체험 공방’  등도 있어서 대단이 인기가 있다.
안도 씨가 목표로 한 건 ‘언제든지,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가정에 상비할 수 있는’ ‘뜨거운 물만 있으면 금방 먹을 수 있는’ 라면이었다. 작은 연구실에서는 안도 씨가 개발을 위해 고안한 여러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커다란 물뿌리개. 이건 완성된 국물을 면에 뿌릴 때 골고루 맛이 스며들게 하기 위한 것. 그리고 양념을 한 면을 일 인분 씩 수제 철망을 된 면 튀김기에 넣고 커다란 중국요리 냄비에 기름으로 튀겨 순간적으로 건조시키는데 이건 바로 아내가 튀기던 튀김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는 것.
면을 기름으로 튀김으로써 면 수분이 날아가 건조되고 동시에 면에는 많은 (튀김옷처럼) 구멍이 생긴다. 건조함으로써 보존할 수 있게 되고 또 뜨거운 물을 부어 넣을 때 이 작은 구멍 속으로 뜨거운 물이 스며들어 금방 원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원리다.
그런데 왜 국물은 닭 국물이었을까. 어느 날 연구실 옆에서 키우던 닭이 조리 중에 갑자기 날뛰는 것을 본 어린 아들이 놀래 닭고기를 못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닭으로 고운 닭 국물 라면은 맛있어했다.  그때 국물을 닭고기 수프로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후일 안도 씨는 ‘세계에서 닭을 먹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므로 닭고기 국물맛은 전 세계에서 통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리하여 1958년 원조 인스턴트 라면이 된 ‘치킨 라면’이 완성됐다. 당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치킨 라면을 ‘마술 라면’이라고 불렀다.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다’ ‘상온에서 보존 가능’ ‘적당한 가격’ ‘위생적이고 안전’ 게다가 ‘맛있다’ 이게 바로 치킨 라면의 ‘마술’이었다.
안도 씨가 발명한 ‘마술 라면’은 지금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으며 세계의 음식을 바꾼 20세기 굴지의 대발명으로 불린다.

‘금방 맛있게’ 먹는 식품

 

왜 ‘라면’을 개발하게 되었나. 안도 씨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어느 겨울밤 오사카의 암시장에서 한 라면 야점에 20미터가 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봤다고 한다. 이렇게 추운 날에 그것도 라면 한 사발 때문에 이렇게까지 줄을 서는 걸까, 역시 인간에게는 ‘먹는 게’ 절실한 거로구나…. 그때 느꼈던 절실한 체험이 인스턴트 라면 개발로 이어졌다고 한다.
안도씨가 완성된 치킨 라면은 애초에는 가족이 총동원돼서 만들었다고 한다. 부인이 국물을, 아이들이 봉지에 넣는 걸 돕고, 상자에 넣는 일도 가족 모두가 하면서 매일매일 운반했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오사카의 백화점에서 한 시식회에서 치킨 라면이 주부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아 대성황이었다.
고객의 반응을 확신한 안도 씨는 치킨 라면을 전국으로 보급하게 시키겠다고 판단하고 완전 자동화에 따른 대량생산을 목표로 공장을 건설한다. 그는 인스턴트 라면을 세계로 보급하기 위하여 미국에 치킨 라면을 가지고 시찰을 떠났다.
물론 미국인들도 흥미진진했지만 여기서 난관이 생겼는데 미국에는 대접도 젓가락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인 바이어가 종이컵에 치킨 라면을 쪼개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포크로 먹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안도 씨가 힌트를 얻었다.  그것이 ‘컵라면’이었다. 그리고 1971년에 ‘컵라면’이 탄생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뜨거운 물’만 있으면 완성되는 ‘궁극적인 인스턴트 라면’인 것이다.
그 밖에도 안도 씨 아이디어는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컵 중앙에 면이 머물게 하는 ‘부양하는 구조’는 컵에 면이 밀착하므로 운반으로 면과 컵이 부서지는 것을 막고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도 면 밑으로 물이 돌면서 면이 균일하게 풀리게 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필름 뚜껑은 비행기 기내에서 나눠주는 마카다미아 피너츠가 들어간 봉투에서 힌트를 얻었다거나 등등 정말 구석구석까지 궁리했다.
기념관에는 어느 정도 세계에 보급되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안내판도 있다. 벽에  부착된 세계지도에는 나라별로 연간 소비량이 빨간 컵라면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영국 2.6억식, 나이지리아 14억식, 베트남 39.1억식, 미국 43.2억식, 중국 451.7억식이다.
2005년 7월 26일 발사에 성공한 우주선 디스커버리호.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 씨와 함께 세계 최초로 우주식 라면 ‘스페이스람’이 날아올랐다. 국물은 간장 맛, 된장 맛, 카레 맛, 돼지사골 맛 4가지. 우주의 비등점 70도에서도 면이 풀리도록 만들어졌다. 미각조차 바뀐다는 무중력공간에서도 지구에서의 맛과 변하지 않는 맛있는 맛에 노구치 씨도 ‘깜짝 놀랐을 정도’ 였다고 하였다.
우주인  노구치 씨는 귀환 후 지구 상공에서 ‘기념관’(이 있는 근처)을 찍은 사진을 가져왔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안도 씨는 나중 ‘아시아의 영웅’의 한 명으로 타임스지 아시아판 ‘60년 동안의 아시아의 영웅’ 특집호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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