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정국> 황당한 청와대문건유출 검찰수사…깃털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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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씨의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산으로 가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 주변의 인사들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으로 나라가 병들고 있다는 것인데, 사건의 방향은 청와대 문서유출과 문건의 진위 공방으로 가고 있다. 본지는 지난주 와이드 특집 보도를 통해 검찰의 이런 움직임을 지적한 바 있는데, 실제로 검찰 수사의 방향이 엉뚱한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 사태의 핵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권력의 핵인 청와대에 문고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폐쇄적 구조를 만들어놓고 정부 요직의 인사에 불필요한 오해를 만든 가장 큰 책임은 누구도 아닌 바로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게다가 이 비선들의 권력암투에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비리 의혹들은 문건 파문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10여 년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던 정윤회씨가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불과 수개월 전에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그 동안 비선이 작동해왔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문건의 신빙성이 60% 이상”이라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폭로도 이를 뒷받침 한다. 비선의 몸통은 정윤회씨가 아니라 대통령과 “언니, 동생”하며 지낸다는 정윤회씨의 전 부인인 최순실씨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이는 청와대가 온갖 비선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시사한다. 문건에 나와있지 않지만 정 씨의 인도네시아 방문설도 본국에서는 사실로 확인되는 분위기다. 본지의 지적처럼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은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꾸 본질을 호도한 채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외치지만 정작 국민들은 불량한 대통령 밑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 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문체부의 노 국장과 진 과장을 “참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꾸짖으며 경질하라고 장관에게 직접 지시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경질되었던 노 국장과 진 과장은 바로 정윤회씨 딸의 승마국가대표 특혜 발탁에 대해 승마협회 감사를 추진했던 당사자들이다. 의혹은 갈수록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형국이다.

불량한 대통령, 불행한 국민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과 만나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사건에 대한 인식이 초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는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과 각종 민원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이번 사건은 실체가 있다. 이번에 보도된 찌라시의 내용과 실제 일어난 일들을 비교해보면 이 같은 사실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다음은 외부로 유출됐다는 찌라시의 내용이다.
“김기춘 실장은 최병렬이 VIP(박근혜 대통령)께 추천하여 비서실장이 되었는데 ‘검찰 다잡기’만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 시점은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으며 7인회(친박 원로모임)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정보지 및 일부 언론에서 ‘바람잡기’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해라.”
“이정현(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근본도 없는 놈이 VIP만 믿고 설치고 있다. VIP의 눈밖에 나기만 하면 한 칼에 날릴 수 있다. 안봉근 비서관이 적당한 건수를 잡고 있다가 때가 되어 내가 이야기하면 VIP께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김덕중 국세청장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 장악력이 부족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이 증권가에 돌았고,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나 김덕중 전 국세청장은 실제 교체됐다. 이 문건에는 정윤회씨가 강원도 홍천 인근에서 은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매달 두 차례씩 상경해 청와대 및 여의도에 포진한 10명의 측근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청와대(BH) 내부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제시를 했다고 나온다.

 ▲ 정윤회 씨.

또 정윤회씨가 정부 고위관료 인사 및 청와대 내부인력 조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달하여 시행하도록 하면서 ‘십상시’ 멤버들에게 정보지(속칭 ‘찌라시’) 관련자들을 만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유포를 지시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작고한 송재관(고 육영수 여사의 사촌동생) 전 어린이회관 관장의 처조카인 김모씨가 “정씨를 만나려면 7억원 정도 준비해야 한다”며 정씨와 친분을 과시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CJ, 한화와 같은 대기업들을 정 씨와 인연을 만들기 위해 각별히 노력한 흔적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상황이 이 정도면 최소한 의심해보는 게 맞다.
게다가 사태가 불거진 후 정씨가 승마협회 감사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국·과장 인사에 개입했고 대통령이 직접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 언급하며 경질 인사를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구체적 증언도 나왔다.

정윤회 만나려면 최소 7억 들고 가야

그런데도 대통령은 ‘찌라시’로 일축하며 이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정윤회씨에 대해선 “이미 오래 전에 내 곁을 떠났고 연락도 끊긴 사람”이라고 했고 청와대 핵심 3인방은 “15년 전부터 내 곁에 있었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왔다. 물의를 일으키거나 잘못한 적이 없다.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일개 내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두둔한다. 그러면서 청와대 감찰 내용이 아닌 문건 유출만 문제 삼는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도 하고,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 “한 언론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 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등 봉합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감찰 보고서가 새나간 것은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보고서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자기가 살기 위해 대한민국 공직사회 기강을 잡는 최고 기관인 민정수석실을 말 한 마디로 ‘믿거나 말거나’ 식의 찌라시나 양산하는 공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항간에는 정윤회를 만나려면 최소 7억을 싸들고 가야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막강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정윤회를 만나기 위해 돈을 건넸다는 사람들도 많다는 후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정윤회를 만나려고 했을까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검찰 수사 내용을 지켜보자고 했지만 검찰 수사결과는 이미 보나마나다. 정권의 충견인 검찰이 대통령 의중을 모른 척하면서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파헤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의심하고 일개 부처의 과장 인사까지 챙기는 ‘자상한 대통령’에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대통령은 세상 여론에 귀 막고 눈 감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청와대 감찰 보고서 내용이 맞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도려내야 한다. 본지가 그동안 계속해서 주장해왔듯이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왜 이런 말들이 나오는지 짚어봐야 한다. 호사가들의 단순한 입방아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찌라시’에 3년이나 남은 정권의 발목이 잡힌다면 그야말로 그 밑에 있는 국민만 갈수록 불행해질 뿐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부에서는 박대통령을 빗대놓고 ‘정신연령이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지저분한 사생활에 대한 소문부터 해명해야 마땅하다’고 탄식을 토해 냈다.
 

정윤회씨에 가려 있지만 정 씨의 전 부인 최순실(58)씨는 박 대통령과 더 가까운 사이라고 일찍부터 얘기되어 왔다. 일각에서는 “최순실이 없었다면 정윤회도 없었다”고 말한다. 최씨의 부친은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 검증 과정에서 부각된 고 최태민 목사(1912~1994)다. 최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보다 4살 아래로 단국대 시절 아버지 소개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순실씨는 10·26사건 이후 박 대통령이 외롭게 지낼 때 말벗 역할을 하며 신뢰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대구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곁을 계속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집사 수준으로 박 대통령의 일상사를 챙겼다는 말도 나온다. 한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구의 한 행사에 갔을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최순실씨를 처음 봤다”며 “로드매니저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괴한에게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곁에서 돌봐준 사람도 최순실씨였다는 것이 당시 당직자들의 말이다.

최순실씨의 존재가 일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계기는 1987년 터진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 때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측근으로 재단 업무에 관여하며 전횡하고 있다는 의혹이 직원들 사이에서 제기돼 파장이 일었다. 육영재단 산하 어린이회관이 최순실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져 직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일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최씨는 현 정권 들어서도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박 대통령의 옷차림을 챙기는 디자이너 인선 등은 최순실씨 몫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행정관 인선에도 입김을 행사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때문일까 그는 지난 2월 이름을 개명했고, 이런 사실이 본지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얼마 전 정윤회씨와 협의이혼한 것으로 밝혀진 최순실씨는 상당한 재력가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시가 200억원대의 7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다. 정윤회씨는 이혼 사실이 밝혀지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아내의 건물 임대수입으로 생계를 꾸린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최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보유하고 있던 또 다른 4층짜리 건물을 2008년 85억원에 매각했다. 또 최씨는 강원도 평창에 16만5000㎡(5만평) 규모의 땅을 정윤회씨와 공동명의로 보유하고 있다가 딸에게 명의 이전한 바 있다. 최씨는 지난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 자신의 재산이 부친 최태민 목사가 축재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유치원 경영을 통해 번 돈으로 땅을 샀다”고 일축했다.

최씨의 부친은 고 최태민(1912~1994)씨다. 최태민씨는 1970년대 박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구국봉사단 총재’ 등의 직함을 갖고 측근으로 활동했다. 최씨의 전남편 정윤회씨가 1990년대 중반 박 대통령의 ‘정치 데뷔’ 시절부터 비서실장으로 수행한 것도 최씨와 박 대통령과의 인연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씨 본인이 박 대통령 주변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구체적인 역할을 한 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10·26 이후 4살 위 ‘언니’인 박 대통령에게 유일한 말벗이 돼왔다는 말만 전해진다. 일각에서 이번 사태의 몸통은 최순실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사태의 핵심을 비선실세들의 권력투쟁에 맞추지 않고 문건유출에 맞추고 발빠르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최 씨에게 불똥에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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