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우디, 총성 없는 오일 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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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오일(Oil)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두 나라 간 에너지 패권 경쟁은 세계경제와 정세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구촌의 시선이 쏠려 있다. 오일전쟁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면 일부 국가들이 금융위기로 인한 부도사태에 직면하게 되고 이 여파로 다른 국가들이 경제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군사충돌 등의 극단적 사태까지 초래할 수 있다.
오일전쟁의 여파로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100달러를 넘겼던 국제유가는 불과 수개월 반에 반토막이 났다.  50달러를 갓 넘기고 있는 유가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가를 기록하고 있다.
박혁진 기자 [email protected] 

갑작스러운 저유가로 인해 일부 산유국이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려있다. 그럼에도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당분간 감산을 통한 유가 끌어올리기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사우디의 알리 빈 이브라힘 알나이미(79) 석유장관은 지난달 22일 사우디 국영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져도 감산할 계획이 없다”고 까지 했다.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떨어져도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상황에서, 알나이미 장관의 이 같은 으름장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국제 석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동국가들도 전반적인 입장은 사우디와 비슷해서 국제 유가는 당분간 하락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가치 상승에 석유수요위축

에너지정책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오세신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하락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번째 이유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원유공급이 증대되고, 지정학적 불안에 의한 원유공급차질 우려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세계경기둔화로 인한 석유수요증가세가 둔화되어서다. 셋째는 3분기부터 시작된 달러화 강세다. 오 연구위원은 “국제적으로 원유가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화가치가 상승하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소비국들의 석유수요가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은 중동 지역의 원유공급 확대다. 오일전쟁도 여기서 시작됐다. 전 세계 언론들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하루 3천만 배럴 생산 목표치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던 지난 11월 27일 전쟁의 총성이 울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사우디로 대표되는 중동 산유국가들이 원유공급량을 유지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이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때만해도 두 나라는 끈끈한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셰일오일을 생산하면서 밀월관계도 끝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셰일오일 추출기술일 발달하고, 생산비용이 줄어들면서 올해에는 하루 900만 배럴까지 생산량을 끌어올렸다. 현재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 950만 배럴 정도임을 감안하면, 세계 최대산유국가과 맞먹는 수준까지 생산량을 끌어올린 셈이다.
셰일오일이란 땅속에서 생성된 원유가 지표면 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유기물을 함유한 암석을 뜻하는 ‘셰일층’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한다.

‘중동 대 미국’ 에너지 패권 다툼

과거에는 암석에서 오일을 뽑아내야 하기에 시추가 힘들고 채산성이 맞지 않아 외면받았지만, 미국에서 ‘수평정 시추기술’과 ‘수압 파쇄법’을 개발하면서 생산이 본격화됐다. 이 기술은 지표에서 수직 방향으로 내려가다 방향을 꺾어 셰일층에 수평 상태로 시추하고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섞은 혼합물을 높은 압력으로 집어넣어 셰일층에 균열을 일으킨 뒤 가스와 오일을 혼합물과 함께 지표면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특히 시추에서 생산까지 석 달밖에 안 걸려 소규모 에너지기업들도 석유생산에 동참하게 됐다.
과거에는 경제성이 없다고 여겨졌던 셰일오일은 이같은 신기술의 개발로 생산단가가 낮아지면서 어느새 전통원유의 강력한 경쟁자가 된 것.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러시아에 750억 배럴로 가장 많고, 미국 580억 배럴, 중국 320억 배럴 등 전세계 42개국에 3450억 배럴 정도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오일전쟁은 과거와 달리 산유국간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는 OPEC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반등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OPEC이 생산량을 줄여 유가를 띄웠다. 하지만 이번 오일전쟁은 ‘중동 대 미국’의 에너지 패권 다툼양상을 띄고 있다.
국제정세불안과 같은 애매모호한 변수와의 싸움이 아닌 미국이라는 막강한 상대가 있는 싸움이라는 점에서 OPEC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따라서 OPEC과 미국의 저유가 경쟁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선택한 방법이 이른바 미국 셰일업체들을 고사시키는 작전이다. 현재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의 생산원가는 배럴당 37달러에서 80달러까지 다양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셰일오일 개발에 투자해 새로운 채굴 장비가 아닌 이미 사용하고 있는 채굴장비를 사용하는 업체들은 배럴당 40달러선에서도 버틸 수 있지만 이러한 업체들은 많지 않다. 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채산성을 감당할 수 없는 셰일업체들이 상당수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보도에서 “10월 미국 12개 주요 셰일지역에 대한 채굴권 발급 건수가 전월 대비 15% 감소했다”며 “이미 몇몇 셰일 개발업체가 내년에 설비투자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고 했다.
이처럼 사우디는 유가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려 미국 ‘셰일오일’ 회사들을 무너뜨리고, OPEC의 시장 지배력을 재확인한 뒤 다시 고유가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속내다.

그렇다면 이 총성없는 전쟁이 과연 사우디의 작전대로만 흘러가서, 사우디가 이번 전쟁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예상하기에는 변수가 많다. 우선적으로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이 과연 사우디의 생각처럼 조만간 모두 고사하게 될지도 분명치 않다. 12월 3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러한 OPEC의 고민을 보도했다. 다음은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의 일부분이다.
“OPEC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미국 셰일오일이 많은 산지와 개발업체가 있는 머리 여러 개 달린 야수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을 중단시킬만한 단일 하한가라는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업체별로 다른 하한가 기준을 두고 있는데 일례로 시티그룹은 이를 배럴당 70~90달러로 추산한다. 하지만 토지와 인프라가 이미 확보된 주요 셰일오일 산지의 경우 시추비용은 40달러까지 낮아질 수도 있다고 시티그룹은 추산한다.”

오일 저유가 길어지면 일부국가 도산위기

앞서 언급했던 대로 미국 셰일업체들 중에는 소규모 업체들이 많다. 현재 미국 내에서 셰일오일 업체는 2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낮은 유가를 버틸 수 있는 업체가 어느 정도인지를 OPEC도 파악하기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또한 “유가의 갑작스러운 하락으로 미국 원유 생산량은 둔화되겠지만 생산을 아예 멈추게 하려면 장기간, 최소한 이듬해 말까지는 낮은 가격이 지속돼야 한다”며 “그렇게 돼도 이미 시추기술이 고도화되고 새로운 매장지가 발견된 상황이기 때문에 개발 주체만 바뀔 뿐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업체들이 저유가로 인해 도산하기 전에 사우디는 OPEC 내부국가나 비OPEC 국가 중 산유국의 저항에 마주할 수도 있다. OPEC 내에서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우디는 현재의 낮은 유가를 버틸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 반면 석유 재정이 상대적으로 불안한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이라크 등은 저유가가 길어지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당장 OPEC 국가 중 베네주엘라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에 놓여있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번 전쟁기간을 일단 6개월로 전망하고 있지만 추락하는 유가의 바닥은 어디인지, 셰일오일 회사들 또는 OPEC 회원국들이 손을 드는 시점이 언제일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관건은 미국의 셰일오일사들과 국가 재정이 빠듯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OPEC 회원국 가운데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조선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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