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오토바이를 타고 평양을 거처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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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Dokdo) 티셔츠를 평상복으로 입고, 플레이트를 부착한 모토싸이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타운을 누비는 “달리는 독도 아저씨” 최독도씨(58)는 이제 ‘미주속의 독도 아저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한인들은 독도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답답해하고 있다.
14년 전부터 독도에 푹 빠진 최씨는 자신의 애완용 모터사이클은 물론 리크리에션 차량, 트레일러까지 번호판을 모두 ‘Dokdo’로 바꾸었다. 지난 2013년 미시민권을 취득할 때 이름도 바꿀 수 있다는 바람에 자신의 이름도 ‘최익철’에서  ‘Dokdo Choi’(최독도)로 개명했다.
당시 시민권 인터뷰 담당관도 최씨의 개명한 이름이 특이하다고 설명을 요청해 독도에 대해 알려주자 하이 파이브를 치며 그를 격려해 줬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하루 생활이 독도홍보였다. 심지어 항상 입고 다니는 옷과 모자, 액세서리 등 어느 하나 독도와 관련되지 않은 것들이 없다. 요즈음은 독도 티셔츠가 아예 그의 정장이 되어버렸다.
지난 1988년에 이민 온 후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오던 최씨가 독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부터라고 한다. 당시 아들이 보던 책에서 “독도가 무슨 섬이예요?”라는 질문에, 사실 자신도 독도가 왜 문제가 되었는지 잘 몰라 인터넷을 뒤지면서 독도에 관심을 지니게 됐다.
그러던 참에 한국에서 서울대학생 등 독도라이더들이 온다는 소식에 공항까지 나가 이들을 데리고 LA한인회에 왔다. 이런 인연으로 이들을 자신의 집에 유숙시키며 함께 독도 홍보에 나서면 이후 3년 뒤인 2006년 본격적으로 독도를 알리기 위해 모터사이클로 세계 일주에 나선 독도라이더 일행과 연이 닿아 독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최씨는 한국에서 온 독도라이더 1기와 함께 남가주 전역을 누비기 시작해 2, 3, 4기까지 이들이 LA를 포함한 서부지역 일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는 등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독도라이더 들에게는 “LA독도 삼촌”이 되었으며, 최씨가 한국을 방문할 때면, 이들이 반대로 최씨를 안내해 주었다.
이처럼 최씨의 독도 사랑은 한국의 독도재단(안용복 재단)에도 알려져 최씨가 본격적으로 독도 알림이를 자처하고 나선 10여년 만에 재단의 초청으로 지난 2013년 7월23일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할 수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독도재단의 독도홍보 표지모델의 영광을 안았고 경상북도 독도재단 독도 홍보대사로도 임명됐다. 또 최 홍보대사가 미주 내에서 실시하고 있는 독도 알리는 일에 전폭적인 지원 및 지지도 약속 받았다.
특히 지난해 독도재단의 도움으로 최씨는 1,000여장의 독도 티셔츠와 1,000개의 휴대전화 거치대, 독도 배지 등을 지원 받았다고 한다. 이를 최 홍보대사는 최씨는 지난해 41회 LA한인축제장에서 나눠주었으며, PAVA등을 포함해 한인단체나 경찰서 등을 통해 배부하면서 독도를 알렸다.
그리고 그는 그리피스 팍에 아침등산을 나온 한인들에게 티셔츠를 400여장이나 배포하면서 ‘가끔 이 티셔츠를 입고 등산에 나서 주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고작 한 명의 한인 여성만이 독도 티셔츠를 입고 나온 사실을 발견하고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독도 타셔츠를 배포하면 어떤 미국인들은 자신의 사무실에 티셔츠를 전시해 알리는 것을 목격하고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평소 건축 리모델링업을 하는 그는 작업장을 오갈 때는 물론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끌고 거리를 질주한다. 때로는 다운타운 라티노 상가를 돌면서 ‘독도’를 알린다.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는 스페니시 언어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적혀있다.
지난 어느날은 다운타운 리틀도교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쇼핑몰을 찾았다가 쫓겨나는 일도 겪었다고 한다. 그의 오토바이 독도 번호판을 본 카페 주인은 나가라며 최 홍보대사의 등 뒤에 커피를 뿌렸다.
그에게는 큰 목표가 있었다. 자신의 오토바이로 일본의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 쉽지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중국의 단둥을 거처 북한에 들어가 오토바이로 평양 거리를 누비고, 이를 개성까지 달려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가는 것이다. ‘독도’ 꿈과 함께 통일의 염원도 함께 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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