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쿠바 수교 시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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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쿠바간의 수교가 시간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남미 국가 지역에서 양측의 관계자들이 수교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이 21일 전했다. 이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 양국 간에 기본적인 관계개선에 따르는 장애물은 없다”면서 “다만 양국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과 쿠바간의 관계는 지난해 말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의 외교 관계 복원을 발표하면서 한국과 쿠바와의 관계개선 논의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특히 지난달 한국무역보험공사(사장 김영학)가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쿠바중앙 은행(BCC) 쿠바대외은행(BEC)과 「한국기업의 대쿠바 수출지원을 위한 무역보험 신용공여 양해각서」 (이하 “MOU”)를 체결 하는 등 준외교교섭까지 진척되어 더욱 가까워졌다. 그래서 외교소식통들은 “양국이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원래 쿠바는 1949년 7월 대한민국을 승인했으며, 더욱이 6.25 전쟁 때는 250만 달러 지원금까지 보내왔던 나라다. 그러나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공산 혁명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한국과 멀어지고 북한과 1960년에 국교를 수립하고 밀접한 관계가 됐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아우 라울 카스트로에게 이양한 이후로 쿠바가 국내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적극 나서기로 하면서 달라졌다.
<데이빗 김 객원기자>

 ▲ 한국 드라마 시청중인 쿠바 사람들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함에 따라 한국과 쿠바 간의 수교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이미 예견되어 왔다. 지금 전 세계 주요국 중 쿠바와 공식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한국•이스라엘뿐이다.
미국과 쿠바간에 공식외교관계를 합의하자 가장 당황한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쿠바의 다음 차례가 한국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북한은 이수영 외무상을 15일 쿠바에 파견했다.
쿠바와 북한 외무상들은 회담에서 ‘양국간의 전통적 우의’를 강조했다.
북한의 이수영 외무상이 수도 아바나에서 쿠바 로드리게스 외무상과 ‘미제국주의자와 싸운 전통을 이어가자’고 강조했지만, 그 시간에 다른 곳에서 미국과 쿠바 외교관들이 국교수립을 위한 실무회담을 벌이고 있었다.
북한과 쿠바 외무상들은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조했지만 이미 쿠바는 변화를 원하고 있다. 이번에 김정은, 이수영 외무상을 통해 쿠바 외무상에게 ‘두 공산주의 국가 간의 각별한 우애를 강조하면서 북한과 쿠바의 관계를 폭넓게 강화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으나 시대의 흐름은 쿠바를 한국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쿠바는 미국과의 교섭을 북한에게 알리면서 한국과의 관계도 국제사회의 변화로 설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의 이수영 외무상이 쿠바를 떠나면 조만간 쿠바의 미국 대사관 개설 일자가 발표되고, 그 다음은 한국과의 외교교섭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쿠바와의 외교교섭을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당시 ‘북방정책’의 일환처럼 공산국가인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할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1급 참모였다.

쿠바는 미국과 관계개선의 제일 목적은 자국 경제의 부흥이다.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유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첫번 과제였다. 그래서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는 지난 수년 동안 미국에 대해 관계개선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카스트로는 지난해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추모식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오바마대통령도 참석했다. 그런데 카스트로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다가가 영어로 “오바마 대통령, 나는 카스트로입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당연 이 소식은 주요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 이후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는 전화통화까지 이뤄졌다. 여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도 크게 작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양국 억류자 석방을 권고했던 것이다.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는 2006년 형인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집권하면서 피폐해진 쿠바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제사회 일원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북한처럼 핵무기도 만들지 않고 테러집단을 옹호하지도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 관계개선에 합의하면서 일부에서 북한과도 관계개선도 포함되는가라는 일부의 인식에 대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관계개선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한편 쿠바는 지난달부터 공개적으로 인터넷 Wi-fi개설 허가를 했다. 그 인터넷 wi-fi 기술은 한국과 미국이 세계 제1위이다.

북한 방해공작 변수

쿠바가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는 것은 자국의 경제부흥에 딱 맞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동안 외교관계가 없었어도 한국과 쿠바는 경제•문화 분야 교류•협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산 자동차, 가전제품들이 제3국을 통해 쿠바시장에 들어갔다. 2011년에는 양국 교역액이 1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은 중국•베트남에 이어 아시아 국가 중 쿠바와 셋째로 많은 교역을 하는 나라가 됐다.
또 매년 약 5000명의 한국 관광객이 쿠바를 방문하고 있고, 쿠바에서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면서 심리적인 거리도 가까워졌다. 쿠바의 실질적 지도자로 은퇴한 피델 카스트로의 아들은 스스로 ‘한국 드라마의 팬’이라고 할 정도라고 영국의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는 한국무역관이 개설되어 있어 사실상 영사업무를 보고 있다. 
지난달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쿠바와의 체결된 MOU에 따라, 쿠바중앙은행의 승인서로 쿠바 국가신용에 근거한 지급보장 장치가 확보됨으로써 한국기업들의 대쿠바 수출활성화 기반이 마련되었다. 쿠바도 마찬가지다.

특히 극심한 전력난 해소를 위하여 쿠바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한국의 발전기 및 발전부품, 절전용 가전제품 등의 수출확대가 기대되며, 물자부족에 시달리는 쿠바에 생필품 등 다양한 중소기업 상품을 수출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MOU를 계기로 현대중공업은 쿠바전력청(UNE, Union Electrica)과 1단계로 1천만 유로 상당의 발전 관련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양국관계가 진척되어가자  한국정부 관계자도 “사실 지금 양국관계를 보면 수교를 맺지 않은 것이 비정상”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미 윤 외무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쿠바와의 공식관계 교섭에 들어 갈 것임을 공식으로 밝혔다. 북한을 의식해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이는 이미 물밑교섭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정부 관계자는 “과거 동구권 국가는 영사처나 대표부를 먼저 뒀지만 쿠바와는 바로 수교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쿠바와의 수교가 북한을 개방으로 이끄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193개 회원국 중에서 한국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중동의 시리아, 유럽의 마케도니아 그리고 중남미의 쿠바 등 3개국 뿐이다. 한국정부는 지난 2005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코트라 무역관을 설치, 영사 업무를 맡겨왔다. 쿠바를 찾는 한국 관광객도 연간 5000명이 넘었다.
한국이 쿠바와 수교하게 되면 미국의 동포들도 쿠바를 관광하는 수가 많아 질 것으로  보여 진다.
쿠바는 ‘카리비엔의 보석’으로 알려질 정도를 풍광이 좋고 즐길 곳이 많은 섬이기 때문이다.
쿠바 섬은 ‘카리브해의 진주’라고 불리면서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섬으로 알려진 곳이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성립한 공산주의 정권을 기념하여 ‘카리브에 떠오르는 붉은 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혁명가 체 게바라가 참여한 쿠바 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이래 현재까지 공산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경제 봉쇄로 경제의 어려움을 자립 경제 체제로 버티면서 미국과 대립하여왔으나  지난해  12월 18일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선언을 했다.
쿠바에는 수천 년 전에 타이노족 등 원주민이 농경 등을 영위하고 있었으나, 15세기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쿠바에 건너온 이후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었다. 17∼18세기에는 흑인들이 여러 차례 해방투쟁을 일으켰으나 스페인의 가혹한 탄압으로 끝을 맺었다. 쿠바와 미국 간의 긴밀성은 쿠바의 역사에 매우 많은 영향을 끼쳐 미국은 끊임없이 쿠바를 지배하려고 넘보았다. 1898년 미국의 메인 호가 아바나 항에서 정박 중에 폭발한 사고를 구실로 미국이 일으킨 미서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스페인은 쿠바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종전 후 3년 동안 쿠바에서는 미국 군대의 군정이 실시되었으며, 1903년에는 관타나모에 미국 해군의 기지가 설치되었다.
1930년 마차도의 쿠데타 이후로, 10여 년간 계속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1940년 쿠바 자유당의 바티스타는 선거로 정권을 획득하였다. 1952년에는 군부의 지지를 받는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얻어냈고 바티스타에 대항한 1956년 바르킨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1959년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고, 1961년에는 그 혁명이 공산주의 혁명임을 천명하였다. 이 때 쿠바는 프로 야구인 큐반 리그를 없애 버렸다. 이후, 미국은  1961년 쿠바를 침공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쿠바 혁명 때부터 1993년까지 쿠바의 독재정권을 피하고자 120만 명의 쿠바인이 쿠바를 탈출 하였다.
2008년, 피델 카스트로의 건강이 악화되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새로운 국가평의회장으로 선출되어 지금까지 통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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