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 여전히 풀리지 않은 세월호 6대 미스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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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이면 본국의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딱 1주기가 된다.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운행 중이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는 무리한 변침으로 인해 침몰했다. 이 사고로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상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으나, 당시 사고 원인이나 이후 부실한 구조 과정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고 원인으로 꼽히는 무리한 변침 또한 검경합동조사위원회의 잠정적인 결론일 뿐이다. 세월호 침몰과 연관되어 밝혀야 할 미스터리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세월호 침몰의 간접적 원인이 된 선박 규제완화를 누가 주도했는지, 참사 직접적 원인이 무엇인지, 정부 기관의 부실대응이 이유가 무엇인지, 당시 제기된 유병언 일가의 정관계 의혹은 어떻게 됐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오히려 당시 정부가 사고의 모든 책임을 물었던 세월호 선주인 유병언 일가와 유 씨가 연관되어 있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관련 소송 등은 모조리 유 씨와 구원파 측이 이기고 있는 모양새다. 유 씨가 사망했다는 것 말고는 구원파에 불리할 것이 하나도 없는 모양새다. 정부도 유병원 일가에 대한 수사와 재산환수에 미온적이다. 자식들을 떠나보낸 유족들의 억울함만 커져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선데이저널>이 추적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만해도 여론은 정부의 부실한 대응에 집중포화를 퍼부어 댔다. 특히 세월호가 침몰한 지 7시간 만에 나타난 박근혜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부는 모든 화살을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해운사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에게로 돌렸다. 정부의 의도대로 사건의 초점은 구원파에게로 맞춰졌다. 유병언 일가와 관련한 각종 보도가 이어졌고, 핵심 인물인 유병언은 잠적했다. 본지는 6월 19일 ‘유병언 살해설’을 처음 보도했다. 당시 이 기사를 통해 본지는 “검찰과 경찰이 수만명을 동원해 두 달 가까이 그의 행적을 쫓고 있지만 깃털만 잡힐 뿐 유 회장의 소식은 감감 무소식”이라며 “이에 따라 유착관계에 있는 핵심인사들에 의해 유 회장이 이미 살해됐을 것이라는 소문과 이들의 도움으로 망명했을 가능성 등 제법 설득력 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기사는 유 전 회장이 한 달 뒤 사체로 발견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월호의 실소유주였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도피 도중 사망했다. 지난해 6월 경찰은 순천에서 노숙인으로 추적되는 변사체를 발견하고 40일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변사체가 유 전 회장의 시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상삼리 금수원 뒤편 청량산에 매장됐다. 유 씨의 사망과 함께 세월호와 관련된 이슈는 점차 언론지상에서 사라졌다.
따져보면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운항이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리한 운항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정부 측에서 제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정부 측의 원인은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과연 지난 1년 동안 무엇이 변했을까.

다섯가지 미스터리

<선데이저널>은 지난 세월호와 관련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총 6개로 나누어 분석해봤다. 하지만 어느 하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없었다.
첫 번 째로 유병언 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본보가 보도했듯이 고 유병언 전 회장은 한 번 망했던 세모그룹을 빠른 시간 내에 재건했다. 유 전 회장은 지난 1986년 한강유람선 사업을 따내며 세모그룹의 사세를 대폭 확장했다. 당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는 데 전두환(83)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72)씨와의 인연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유 전회장이 부실기업으로 드러난 청해진해운 사업을 해가면서도 정관계 인사를 ‘관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며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그 이후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특별위원회 박주민(42) 변호사도 이에 대해 “유병언 일가의 정관계 로비 의혹도 제대로 수사했는지 의문”이라며 “진상규명을 위해 독립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 째 유 전 회장의 동생인 유승삼 씨의 행방이다. 지난해 7월 유 전 회장의 사체 발견 당시부터 DNA와 지문만 제외하면 현장(변사체 포함) 모습 및 상태, 증언, 유류품, 경찰의 초동 대처 방식 등을 통해 볼 때 모든 게 미스터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 전 회장의 사체가 바꿔치기 되었다는 괴담까지 흘러나온 바 있다. 유 전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유승삼 씨가 사체의 실제 주인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이런 주장이 제기됐을 때 시신이 동생인 유승삼일 가능성에 대해 “동생은 1991년 미국에 이민 갔으며, 2000년 6월 23일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입국 기록이 없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지난달(6월)까지 미국에서 생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구원파 내부에서는 경찰이 확인했다는 유 씨가 지난해 8월부터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6월말 국내로 들어온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이런 주장이 다소 황당하기는 하지만, 구원파 내부에서 이런 소문이 흘러나오는 것은 유 전 회장의 사망이 다소 뜬금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 째로 세월호 침몰의 간접적 원인이 된 선박의 안전문제다. 노후된 세월호가 운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 당시 완화된 규제 때문이다. 당시 각종 선박 규제 완화를 누가 주도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해양수산부는 참사 전날 선장의 휴식시간에 1등 항해사가 조종할 수 있게 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후선박 사용연한은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이런 규제 완화를 누가 주도했고 그 과정에 부정행위는 없었는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네 번 째로 한국해운조합과 한국선급에 해양수산부, 해경 출신이 간부로 취임하는 ‘해피아’ 문제도 충분히 풀리지 않았다. 실무자만 일부 처벌받았을 뿐 고위 간부들의 유착 구조는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가 총 241회 왕복 운항하는 동안 139회 과적운행을 했는데 단순히 실무자들의 부정이 원인이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정부기관의 부실 대응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이 먼저 구조된 이유,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이 1시간여 동안 선내에 진입하지 않은 이유가 그렇다. 해경 지휘라인의 보고·지시 사항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고 당일 8시간 동안 서면보고만 받은 게 적절했는지, 대통령 지시가 적절하지 않았다면 누가 직무를 태만히 했는지도 가려져야 한다.

수사 의지 없는 정부, 왜?

1년이 지난 지금 유병언 전 회장 일가와 측근들은 이런 저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세월호와 관련된 직접적인 혐의가 아닌 대부분 별건으로 기소된 상황이다. 유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 씨는 지난달 항소심 첫 공판을 치렀다. 유씨는 1심에서 70억원대 횡령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유 씨는 도피 4개월 만에 지난해 7월 검거됐다. ‘미인 호위무사’로 알려진 박수경 씨는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박 씨는 유 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박 씨는 지난달 20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얼마 전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저로 인한 소문으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유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필배 전 문진미디어 대표는 330억원 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굳이 세월호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을 꼽는다면 유 전 회장의 차남 혁기 씨다. 하지만 혁기 씨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된 신병확보 의지가 있는지 미지수다.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검찰은 인터폴에 요청해 미국 영주권자인 혁기씨에 대해 적색수배령을 내렸다. 또 미국 측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8개월째 혁기씨의 소재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벗어나 남미나 프랑스 등 제3국으로 도피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지난해 8월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이 열심히 추적하고 있다. 은신 의심 지역은 아는 것 같다”고 밝혔지만 이후에도 혁기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최근 혁기씨는 한국의 예금보험공사(KDIC)로부터 재산몰수 소송을 당하자 미국의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했다. 하지만 본보 보도를 통해서 예금보험공사의 소송도 형식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맨해튼의 저커맨 스페이더 로펌의 숀 나운튼 변호사로 2011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을 때 변호를 맡았다. 변호사 선임 사실이 확인되면서 혁기 씨는 도피 생활 중에도 자신과 부친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체포에 대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 사법당국이 혁기씨 신병을 확보하더라도 미국 영주권자인 그를 국내로 강제 송환하기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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