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한파> 13개 대기업 수사하는 박근혜 정권의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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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예사롭지 않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나서서 포스코와 두산그룹 등 국내 10위권 기업에 대한 수사를 맡는 것을 필두로, SK, 신세계, 동국제강, 동부 등 굴지의 대기업이 모두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현재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만 15개사에 달한 상황으로 잠재적 수사대상까지 포함할 경우 20개사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는 소위 윗선의 재가로부터 시작된 ‘기획수사’라는 점에서 당분간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전 방위로 고강도 사정에 나서면서 재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재계를 겨냥한 검찰 수사의 속도와 범위가 거의 ‘재계와의 전면전’을 방불케 하고 있기 때문. 특히 검찰이 재계 부패와 이명박 정권 실세 비리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어 다음 대상이 누가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검찰 수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예측들이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반전을 위한 몸부림이란 지적이 힘이 실린다. 박근혜 정부가 대대적 사정 수사를 통해 노리고 있는 포석을 <선데이저널>이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검찰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비리혐의를 포착해 전방위 수사에 나설 계획을 보이자 대기업이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수사를 포스코의 M&A(인수 합병) 특혜 의혹과 계열사 매출 부풀리기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신세계와 동부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대기업 집단도 타깃으로 잡았다. 포스코를 제외한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는 대부분 이미 내사 단계였거나 첩보가 예전부터 접수돼 있던 사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는 속도나 범위를 보면 상당한 준비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법인 계좌에서 발행된 수표를 총수일가 계좌로 일부 입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주주가 법인 재산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다.
동부그룹의 경우 김준기 회장이 계열사들로부터 비자금을 조성, 수백억 원이 자녀들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금호 되살리기에 애쓰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은 미국 법인을 통해 돈을 빼돌린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또한 검찰은 <선데이저널>이 최근 보도했던 두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서고 있다. 하나는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과 거래한 SK C&C이고 다른 하나는 동국제강이다.

검찰 대기업 수사의 총성을 울린 것은 이완구 국무총리다. 이 총리는 지난 3월 12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대동하고 부정부패 척결의지를 담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른바 ‘기자방’(대기업관련 비리, 해외자원개발 관련 비리, 방산비리)으로 불리는 부정부패 척결에 매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총리는 특히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횡령 등의 비리는 경제 살리기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대기업을 직접 겨냥했다. 역대 정부마다 부정부패 척결의지를 한두 번 천명한 건 아니지만 대기업을 이렇게 콕 찍어서 겨냥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총리 발언 다음 날 검찰은 포스코건설 본사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은 5일 뒤인 3월 17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드러내야 한다”면서 “이번에 국무총리께서 추진하고 있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마시고 국민들과 나라경제를 위해 사명감으로 반드시 해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비단 국방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켜켜이 쌓여온 고질적인 부정부패에 대해서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대기업을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 방산비리와 ‘사회 각 부문에서 켜켜이 쌓여온 고질적인 부정부패’라고 통칭했다.

이완구가 총대 매

이른바 ‘사자방’(4대강 관련비리와 해외자원개발 관련 비리 그리고 방위산업 관련 비리)으로 불리는 비리에 대한 수사는 진행하고 있거나 예견된 수사였다.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나서서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의 비리’를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이 행위가 경제 살리기에 역행한다고 규정하면서 대기업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은 분명히 의도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부가 대대적인 대기업 수사를 천명하기 전에 몇 가지 주목할 장면들이 있다.
첫 번째는 지난 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10대 그룹 회장단과 만났다. 대통령 취임 2주년을 앞두고 1년 6개월 만에 만남이었는데 박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스폰서 참여를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은 기업의 브랜드와 가치를 높일 모처럼 만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경제계의 관심과 지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재계의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이 취임이후 여러 차례 경제 살리기에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해왔지만 재계는 현금유동성만 늘리면서 소극적인 행보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창조경제 혁신센타 동참에 시늉만 하는 모양새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여기에 지난 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5단체장을 만나 “가급적 적정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서 소비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경제계가 경제살리기에 적극 협력해달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재계는 면전에서 이를 거부했다. 경제3단체는 공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반대 입장을 발표하기로 했다가 이를 무기 연기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영이 안 선다는 얘기다. 집권3년차지만 아직 반환점을 돌지도 않았는데 재계는 슬슬 발을 빼는 그런 모양새인 것이다. 따라서 검찰의 대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는 재계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목적 카드

재계 길들이기와 함께 기대하는 또 다른 포석은 바로 전 정권 사정을 통한 지지율 반등이다. 이는 <선데이저널>이 몇 차례 보도를 통해 집권 3년차에 대대적 사정이 시작될 것임을 예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현재 수사대상 중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잘나갔던 기업들다. 포스코 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곧바로 포스코의 대규모 M&A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수사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그룹인 영포라인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사 초반과 다르게 실세에게 접근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종착점은 그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은 경남기업의 성완종 회장도 친이계로 분류된다. 경남기업은 MB정부 시절 각종 자원개발 사업에 두루 참여했는데 MB정부 실세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성 회장은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기업에 대한 수사에 이어 정치권 사정으로 확대될 경우 떨어진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물론 사정정국으로 끌어올린 지지율은 길게 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사정한파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게 될 것이고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는 다소 정치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미리 친이계의 예봉을 꺾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 비박계가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총선 공천이 시작되면 친박계는 속수무책 일 수밖에 없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서 이른바 ‘친박계의 학살’로 불릴 정도로 공천에서 밀렸던 좋지 못한 추억이 있다. 따라서 사정정국으로 MB정부 실세들을 겨냥해 친이계의 예봉을 꺾음으로서 청와대와 정부 뿐아니라 당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친이계 정치인이 수사대상이 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용두사미 수사?

하지만 이번 수사가 용두사미로 그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워낙 오래전부터 MB정권 실세 연루설과 관련한 소문이 많이 돌아 관련 피의자들이 물증을 제거하고 수사에 대비할 시간이 그만큼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정수사의 신호탄이 된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설은 이미 지난해 초 증권가 정보지에도 등장할 만큼 잘 알려진 내용이었다. 각 언론에서도 ‘충분히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어’ 기사는 못 쓰는 애물단지 정보였다. 검찰과 경찰의 범죄정보 담당 수사관들도 상부에 첩보 보고를 마친 상태였다.
사정수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전 인력을 사정수사에 쏟아붓고 있는 검찰은 지금까지 MB정권 실세들과 관련해 언론이나 재계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과 자체적으로 생산된 첩보를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수사 사건에서 MB정권 실세들과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라도 찾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이런 검찰의 움직임은 오히려 지금까지 수사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조급함의 표출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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