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유묵 보물 진실 공방-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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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묵 2호에 대한 진실공방이 제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LA동포 경씨가  지난 1999년에 우연하게 LA에서 수집한 족자 한 폭에는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글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순국하기 까지 약 200편정도 유묵을 남긴 것 중 가장 중요한 유묵으로 한국정부는 안중근 유묵 국가보물 2호(지정번호 보물 제569-2호)로 지정했다. 이 보물은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 (서울 중구 필동3가 26)에 소장되어 있는데 경씨는 “동국대학교에 소장된 안중근 유묵은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씨는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세 차례 한국을 방문해 각계 전문가들과 언론사들을 만난 결과에서 자신이 소장한  유묵이 진짜임을 확신 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이 경씨의 소장품에 대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경씨는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측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김좌진기념사업회 측은 지난동안 국내 관계자들과 접촉했으나, 경씨가 만난 전문가들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경씨는 “이제는 국제적인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나 소더비와 접촉하여 진품 여부를 가리겠다”면서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묵을 보자고 한다”고 말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 경성현 씨

매년 5월과 11월 첫 두 주는 뉴욕 맨해튼에서 세계적인 ‘옥션 위크(Auction Week)’가 벌어진다. 세계 1~3위 경매회사 크리스티•소더비•필립스 드 퓨리가 모두 출전하는 세계 경매시장의 ‘빅 매치’가 세계인의 관심을 모은다. 최근에는 한국 진품도 소개되어 화제를 뿌리고 있다.
경씨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안의사 유묵을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 인정할 경우, 그동안 한국에서 내가 지닌 유묵에 대해 홀대한 관계자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의 고미술품 관계자들이 문의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사실에 대해서 국내 관계자들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유묵 2호를 소장하고 있다는 동국대학교 측이 답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 의사 는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라고 쓴 다음 말미에 ‘경술 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낙관이 있고 그 아래 장인을 찍었다” 면서 “동국대 소장본과 내가 지닌 유묵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진본인지 확연히 구별된다”고 말했다. 그는 “말미 글씨체나 장인 자체가 틀리다”고 강조했다.
경씨는 “최근 서울에서 전해 온 이야기 중에 안중근 집안에서도 현재 유묵 2호에 대해 의문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국제 경매회사로…’

 ▲ 경성현씨가 소장한 안중근 유묵<왼편>
 ▲ 동국대학교에서 소장한 안중근 유묵(오른편>

경씨는 지난 1999년경 코리아타운 인근 길거리 야드 세일장에 놓여있는 아름다운 족자 글씨가 눈에 들어와 구입했다. 물품을 판매한 라티노는 ‘오래전에 청소 페인트 일을 일본인 집에서 했는데 주인이 이사를 가서 집을 치우면서 남기고 간 족자와 다른 물품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경씨는 나중 이 족자가 ‘안중근 의사의 글씨’라는 사실을 알고서 진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려 3차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2008년에 족자를 들고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에 도착해 우선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의 기념사업을 총괄하는 안중근 의사기념사업회 숭모회에 갔다. 당시 김호일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을 포함해 관계자들 앞에서 가지고 간 족자를 펼쳤다.

경씨가 문제의 족자를 구한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자 김호일 관장은 대뜸 ‘기증할 의사는 없냐’고 물었다. 무엇보다 이 족자가 안의사의 진품 유묵인지를 판정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기증할 의사’에 대한 질문에 당황했다. 숭모회 측은  ‘6천 달러 감정료가 든다’고 했다. 
경씨가 이 족자를 들고 인사동에 있는 고미술협회에 갔더니 ‘이 족자는 인쇄본이다’면서 ‘동국 대학교에 원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경씨는 그 자리에서 “글자 자체가 동국대학교 소장본과 틀린데 어떻게 인쇄본 이라고 말하는가’라고 반박했다. 
경씨는 2009년에 두 번째로 다시 한국에 나갔다. 인사동에서 골동품상을 하는 임 모씨를 통해 골동품상을 하는 공창호씨를 소개했다. 공 씨는 족자를 다 펼치기도 전에 반쪽만 보고서는 “이것은 동국대 원본의 인쇄본이다”라고 해서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경씨는 미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등에서 우선 많은 정보가 있었다. 동국대가 소장하고 있다는 안중근 의사 유묵 2호 보물에 대해서도 자료를 찾아보았다. 동국대 소장 유묵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들었다. 본문 글씨와 글씨를 적은 년대기 필체 등에도 많은 의문이 일어났다.
다시 경씨는 2012년 경 평소 알고 지내던 P모기업의 류 모 회장에게 안중근 유묵에 대해 사정을 이야기했다. 류 모 회장은 자신의 지인인 한국의 중앙일보 고위 관계자에게 협조를 받겠다며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류 모 회장은 ‘중앙일보 측에서도 경씨가 지닌 유묵이 진본으로 보인다’면서 ‘청와대에 기증하면 좋을 것’이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더 이상 관계를 끊었다고 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경씨는 LA소재 SBS  International의 박 모 기자를 소개받았다. 경씨의 이야기를 들은 박 기자는 서울본사의 최 모 기자를 소개했다. 그래서 경씨는 지난해 10월21일 세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SBS 본사 최 모 기자는 안중근 유묵 전문가의 한 사람인 예술의 전당의 이동국 큐레이터를 소개했다. 

경 씨는 SBS의 여 기자의 안내를 받아 예술의 전당에 가서 이동국 큐레이터를 만났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경 씨가 그동안 만난 관계자들 이름을 대자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만났다’면서 족자를 보더니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나중에 연락하겠다’라는 말만 했다. 몇일 후 경씨는 SBS의 최 기자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최 기자는 ‘이동국 큐레이터가 한 말을 전할 수 없다’면서 ‘현재로는 모든 사람들이 동국대학이 소장한 유묵을 보물이라고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이처럼 지난동안 세 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경씨가 만난 관계자들은 안중근 의사 글씨에 대해 누구보다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최고의 권위자들이라고 하는 관계자 들은 진품여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며, 기타 일부 관계자들은 ‘인쇄본’ 또는 ‘쌍구본’이라는 언급을 하고 있다.
경씨가 만난 안중근 의사 숭모회의 자문위원으로 있는 김호일 전기념관장(중앙대 역사학과 명예 교수)은 국내에서는 안중근 의사 필체에 대해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의 하나이다. 그러한 그가 경씨가 내 놓은 족자에 대해 진품 여부에 대한 판단보다 ‘기증할 의사는 없냐’라고 묻기만 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두 번째 권위를 인정받는 예술의 전당의 이동국 큐레이터도 언급 없이 ‘숭모회로 가져가라’는 했다는 점도 이상했다.
지난해부터 인사동 골동품상 주변에서 나도는 소문에는 ‘만약 LA동포 경씨가 소장한 유묵이 판정나면 엄청난 폭풍이 불지도 모른다는 것이며. 이 유묵이 경매에 들어오면 한국이 뒤집어 질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전한 경씨는 “국내 관계자들이 냉대를 하는 바람에 한 때는 내가 이 족자를 들고 일본이나 중국에  가고 싶은 욕망도 생겼었다”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족자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안중근 의사

100년 전에 이미 안중근 의사는 오늘날의 UN과 같은 구상을 하여 세계평화를 논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영웅’으로 친송 받는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한 미완성 유고 동양평화론 (東洋平和論)은 안 의사가 국권회복운동을 하면서 세운 지표로 독립운동의 기초적 배경이 된 사상체계다.
100년이 지나서도 오늘의 현실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동북아 정세 발전에 귀담아 들을 명언이라 할 수 있다. ‘동양평화론’은 5개 문항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안 의사는 서문등 일부만을 집필했을 뿐 나머지는 일제가 서둘러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미처 완성 하지 못하고 순국 했다.
안 의사는 서문에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정한 이치임을 설명하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논리 속에서 서구열강이 약소국을 제물화 하는 시대적 상황과 같은 인종 끼리 전쟁이란 폭력을 통해 패권을 장악 하려는 일본의 침략정책을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첫째, 청일전쟁의 성격을 규명하고 둘째는 제정 러시아의 극동정책과 일본의 과실문제를 다루고 셋째는 러·일전쟁의 원인과 당시 서구열강의 태도와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넷째는 러·일 강화조약을 미국 영토인 포츠머스에서 체결한 이유를 지적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의 대륙침략에 대한 경종의 순 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상의 서문과 전감에 대한 요약설명만으로는 ‘동양평화론’ 전체내용을 이해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안 의사가 1910년 2월 17일 관동도독부 히라이시 고등법원장과의 면담기록 내용 중에는 안 의사가 쓰고자했던 ‘동양평화론’ 부분에 대한 기록이 일부 남아 있다.
동양평화론 주제
1. 동양의 중심지인 ‘여순’을 영세중립지대로 정하고 상설위원회를 만들어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2. 한 중 일 3개국이 일정한 재정을 출자하여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여 어려운 나라를 서로 돕고
3. 동북아 공동 안보체제 구축과 국제 평화군을 창설할 것과
4. 로마 교황청도 이곳에 대표를 파견하여 국제적 승인과 영향력을 갖게 하자는 것 등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전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던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은 유럽지역의 EU와 환태평양국가의 APEC, 그리고 오늘날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 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주변 강대국들의 군비증강과 북핵 문제로 안보불안이 조성되고 우리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당시 안 의사의 평화사상은 후세를 삼고 있는 우리 모두의 값진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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