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금융인 벤자민 홍 전 나라은행장의 특별하고도 부러운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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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벤자민 홍 전 나라은행장

전 한미은행과 BBCN은행의 전신인 나라은행, 새한은행장을 지낸 원로 금융인 벤자민 홍 행장이 지난 5월29일 다운타운 조나탄클럽에서 새 장가를 갔다는 소식이 타운에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일반적인 결혼식이라면 당연히 부러울 것도 없지만 벤자민 홍 전 행장의 경우 올해 나이가 83세 (1932년 생)에 새 장가를 갔다는 것도 뉴스거리지만 그것도 50년 나이차가 나는 33세의 신부에게 처녀장가를 갔다는 소식에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속 배경을 두고 말들이 분분하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LA유명 재력인사 부부 70쌍만 결혼식에 초대해 조촐하지만 제법 품위 있는 결혼식을 올린 벤자민 홍 전 행장 부부는 시종일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상대방 칭찬해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하고 있다.
인생을 정리해야하는 83세 나이에 33세 신부를 맞았다는 자체부터가 타운에서는 단연 화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병원에 근무한다고 알려진 신부와 1년 전에 만나 교제해 오다가 결혼식을 올린 벤자민 홍 부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이날 결혼식에 참석했던 하객들 중 귀가하는 도중 자동차 안에서 부인들과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부부 싸움까지 했던 한 하객은 부러움에 부인에게 ‘벤 홍 행장은 좋겠다’는 소리에 부인은 분을 참지 못해 ‘이런 찜찜한 결혼식에 왜 나를 데리고 갔느냐’고 응수하다 분이 풀리지 않아 집에까지 가서 부부싸움을 했다는 후문.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무려 50살 차이가 나는 신부에 처녀장가를 갈수 있다는 벤자민 홍 전 행장의 용기와 배짱에 시기어린 질투도 섞여 있었지만 모두 부러움을 샀다.
3번째 장가를 든 벤자민 홍 전 행장은 첫 번째 부인 사이에 50세 가까운 두 아들을 두고 있으며 미국인 두 번째 부인 사이에는 자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가까운 은행장을 지낸 탓에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이번 세 번째 결혼을 두고 젊은 여자가 50살이나 연상인 남자와 결혼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재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냐’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까’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가능할까’하는 등등의 우려와 근심어린 걱정도 하기도 했지만 벤자민 홍 전행장의 특별한 결혼식은 LA한인타운에서 단연 화제거리다.
‘한인은행가의 챔피언’‘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으로 잘 알려진 벤자민 홍 전 행장은 2012년 50년 미국 생활을 접고 무대를 한국으로 옮겼었다. 미국에서 40여년간 뱅커로서의 경륜을 살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기업이나 기관 단체 등에서 초청연사로 강연 활동을 하다가 한국생활 3년 만에 33세의 아리따운 젊은 신부를 맞게 된 것이다.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자유당 시절 김창용 특무대장의 비서 미군 통역관을 지낸 벤자민 홍 전행장은 5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와 노스톱 비행기회사의 경리 이사와 미국은행을 재직하다가 1988년 4월 한미은행장으로 취임한 홍 행장은 그 뒤 미주은행을 인수해 10년간 나라은행장을 지냈으며 새한은행장을 지내는 등 20년 가까이 은행장을 지냈다.
미국은행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한인은행 체질개선에 일대 개혁을 단행해 성공시킨다. 당시 미국은행에서는 성과 위주의 경영이 정착된 상태였다. 실적이 좋은 직원은 과감하게 승진시켰다. 그러나 한인은행들은 아직도 한국문화에 젖어있을 때였다.
그는 한미은행을 한국식 은행에서 미국식 은행으로의 경영방식 전환을 추진했다. 은행의 주요업무인 여신심사 및 관리를 미국식으로 하기위해 미국인 직원을 기용해 교육시켰다. SBA 융자도 한인은행 중에서 최초로 도입했다.
미국식 무담보 신용대출도 과감하게 추진했다. 융자뿐만 아니라 세일즈 기법도 외부강사를 초청해 직원들을 훈련시켰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케이스 스터디도 실시하고 M&A(합병) 공부도 시켰다. 매년 6명 정도의 대학 졸업생을 채용하는 등 자체 인재양성도 도모했다. 최초의 여성 지점장을 배출시키면서 나중에 최초의 여성 행장 시대까지 열어갔다.
홍 행장은 은행장 시절 한국학교에 2만 달러를 기탁하고, 미국 자선단체 유나이트 웨이에 1만 달러를 기부해 사회 환원을 실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경영방식은 한인은행들이 모두 따라 오도록 변화시켰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당시 그가 운영한 한미은행은 코리아타운의 ‘넘버 원’ 은행으로 성장했다. 한미은행을 떠나 나라은행장에서 10년을 지내면서 역시 초창기 부도직전의 은행을 한미은행 다음의 ‘넘버 투’ 은행으로 키웠다. 이제 나라은행은 BBCN으로 탈바꿈하면서 코리아타운에서 실질적인 ‘넘버 원’ 은행이 됐다.
2015년 5월29일. 해외토픽에서나 볼 수 있었던 50년 나이차를 극복하고 33세 신부에게 처녀장가를 든 홍 전행장의 신혼(?)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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