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맏딸 고 故 안수산 여사가 이땅에 사는 한국인에게 남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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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故 안수산 여사

우리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맏따님으로 지난 달 24일 별세한 안수산 여사(100세)의 장례식이 2일 오전 11시 헐리우드 포레스트 런 리버티 홀(Hall of Liberty)에서 수많은 조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4.29 폭동 당시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안젤라 오 변호사의 집전으로 거행됐다.
이날 대표조사를 맡은 마이크 리들리-토마스 LA카운티 수퍼바이저는 “안수산 여사는 동양계 여성으로 최초의 미군에 입대하여 미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 장교로서, 또한 냉전 시절에는 소련을 상대로 300여명의 정보 분석가를 지휘한 공직자로 미국을 위해 봉사한 인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안 여사는 한국인의 독립 영웅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맏딸로서 부친의 유산을 이어받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커뮤니티 발전에 봉사한 인물” 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날 남자들 세계에서 장벽을 허물은 최초의 동양인 여성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정책인 미국사회에서 이에 도전한 개척자”라고 추앙했다. 성 진(취재부기가)

미국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한인 2세인 안수산 여사는 이땅에서 100년 5개월 8일을 살아오면서 특히 한인 2세들에게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마라, 그리고 훌륭한 미국인이 되어라”고 도산이 남긴 가르침을 전했다. 장례식후 유가족과 초청된 친지들만 참석한 가운데 안 여사의 부군 묘역에 안장됐다. 한편 안수산 여사가 평생 수집했던 각종 역사적 기록물은 UCLA 도서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고 안수산 여사는 100년을 살아오면서 진실 용기 충실로 겸허하게 살아왔다. 무엇보다 아버지 도산과 어머니 이혜련 여사의 삶을 롤 모델로 하여 살아왔다.

한국인의 정신, 미국의 자부심

 ▲ 안수산 여사가 해군장교로 재직하던 시절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도산에 대한 존경심과 정체성 확립을 이어 가는 데는 안수산 여사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산의 부인 이혜련 여사는 생전에 도산에 관한 편지 한 장도 소홀히 않고 모아두어 나중 도산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되었는데, 이를 본받은 안수산 여사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한 자료를 많이 수집해 놓았다.
미정부 정보국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안수산 여사이기에 이번에 UCLA에 기증되는 자료집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자료도 많아 기대가 모아진다.

1915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난 안 여사는 불과 11살이던 1926년 집을 떠난 아버지 도산과 생이별했다. 도산은 1938년 3월10일 옥중에서 받은 고문으로 순국했다. 이 소식을 당시  USC 캠퍼스 옆 교회에서 들었다.
안 여사는 당시 “훌륭한 미국인이 돼라.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를 생각하며 평생 가슴에 간직해왔다.
그녀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CSU샌디에이고)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한인 여성 가운데 처음으로 미 해군에 입대했으며, 미해군 역사상 백인계를 제치고 첫 여성장교로 복무했다.
안 여사는 해군 정보장교로 재직할 때 사귄 아일랜드계 미국인 프랜시스 커디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필립 커디와 크리스틴 커디이다.

통일을 위한 끝없는 노력

안 여사는 국가 봉사직을 마치고 LA로 돌아와 영화배우로 이름난 오빠 필립 안 등 가족들과  밸리 지역에서 고급 레스토랑 ‘문게이트’를 운영한 안 여사는 1960∼1970년대 도산공원 건립계획이 진행되면서 아버지의 나라 한국과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다.
그리고 소장하고 있던 도산 관련 자료들을 기증해 조국의 독립기념 사업을 도왔고, 미국 동포사회 에서도 동포 신문인 신한민보, 흥사단, 3•1 여성동지회 등의 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해군과 NSA 복무, 교민사회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2006년 ‘아시안 아메리칸 저스티스센터’에서 수여하는 ‘미국용기상’을 한인 최초로 수상했고, 올해 3월10일에는 LA 카운티가 도산 선생의 순국 77주기를 맞아 ‘안수산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안 여사의 생애는 ‘11살에 헤어진 아버지 도산을 찾아 나선 미국인 딸의 여행’이라고 한국계 전기 작가 존 차는 평가했다.
안 여사는  자신의 저서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한글판 저서를 2003년에 출판해 기념회 등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내가 미국에서 한국 사람임을 잊지 않았던 것은 ‘한국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당부 때문”이라며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남북이 분단됐는데 너도 통일 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지 않겠느냐’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여사의 아들 필립 커디 씨는 “어머니는 아시아계로서 자부심을 늘 가져왔고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의 세계에 뛰어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아들 필립 커디씨도 안 여사의 가르침으로 한국이민사는 물론 도산 연구가로 정평이 나있으며,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 한인이나 미주류사회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도산사상 전파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24일(수) 안 여사의 아들 필립 커디씨는 유가족을 대표하여 “어머님 안 여사는 오늘 오수를 즐기시는 과정에서 평안한 자세로 영면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지난 100년 삶을 통해 많은 역경을 이겨내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에 도전하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님은 삶을 통해 인종과 세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셨습니다. 어머님의 위대한 삶을 기리며 보내는 길을 축복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안수산 여사는 미주한인 135년 역사에서 최초로 LA시의원에 당선된 데이빗 류 시의원을 적극 지지했다. 안 여사는 데이빗 류 선거 캠페인 기간 중 만나 “내 지난 100년 동안 LA시의회에 한인이 입성하는 기쁨을 당신이 이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  꿈의 기대가  현실로 이뤄졌다.

영광스런 삶 뒤엔 조국의 뿌리가

로스앤젤레스는 일제강점기 시절 미주 내 독립운동의 1번지였다. 지난 3월 10일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77주년 순국 기념일이었다. 이날 LA카운티 정부는  3월10일을 기념하면서 도산의 맏딸 안수산 여사의 평생업적으로 기려 이날을 ‘안수산의 날’ (Susan Ahn Cuddy Day)로 선포했다. 
안 여사는 이날 LA카운티 정부청사에서 거행된 기념식에서 “너무나 영광스럽다”면서 “내게는 동양인이건 아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세계 2차대전 중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는 것이 중요 했다”고 말했다.
또 안수산 여사는 “군인 중 한 명으로서 조국인 대한민국과 거주하고 있는 미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감사할 따름”이라며 “전쟁이 발발해 참전한 것은 내 인생의 새로운 기회였다”며 소감을 밝혔다.
미국 지방 정부에서 우리나라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에 한국독립운동의 선각자의 순국일을 기념 하기는 처음이다.
지난해 1월 11일 안수산 여사는 한국에서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김을동 국회의원의 예방을 받고 각자 독립운동가의 후예로서 처음으로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은 기미년 3.1 독립선언 전해인 갑오년에 무오독립선언서에 함께 서명한 인연이 있다.
이날 안 여사는 김 의원이 한국식으로 올리는 큰 절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1월16일 한국식으로 맞이하게 되는 100세 생일도 축하하는 꽃다발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선물을 드렸다. 이에 안 여사는 자신의 자서전을 선물로 주었다. 책을 받아 든 김 의원은 간단히 책장 넘겨 본 후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독립열사의 뜻이 후세에도 전해져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고 말했다.
도산과 백야는 1909년 민족계몽과 지도자 육성을 위한 ‘청년학우회’를 결성했고, 1919년(2월 1일)엔 3.1운동을 촉발시킨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의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올리며 뜻을 같이 했다.

도산 유언으로 미 해군에 입대 활약

안창호 선생과 헬렌 안 여사의 맏딸인 안수산 여사는 1915년 1월16일 LA에서 출생했으며, 신한민보와 흥사단, 3,1 여성 동지회 등에서 활동했으며1940년 칼스테이트 샌디에고를 졸업한 뒤 1942년 미 해군에 입대해 4년간 근무했다.
안 여사는 “입대할 당시 한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라며 “일본군과 맞서 싸워 한국의 독립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원입대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안 여사는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에 입대해 장교학교에 지원했지만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가 다시 지원해 비행사들에게 공중전 전략을 가르치는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 장교가 됐다. 1946년 제대한 후 국가안전보장국(NSA)에서 암호를 분석하는 비밀정보 분석가로 활동했다.
안 여사는 1959년 NSA에서 은퇴할 때까지 워싱턴 D.C.에서 300명의 냉전관련 학자들을 지도하는 부서장을 역임했는데 별명이 ‘작은 히틀러’일 정도로 철저한 업무 처리로 유명했다.
도산에게 독립운동가의 선구자적 고뇌가 살아있다면 안 여사에는 개척자로 당당하게 삶을 이끌어 간 긍정의 힘이 살아있다. 도산의 ‘무실역행’정신은 딸 안 여사의 삶에서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작고한 아일랜드계 남편 프랜시스 커디 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그녀는 2003년 자서전 ‘버드나무 그늘 아래’(저자 존 차)를 펴내기도 했다.
안 여사는 지금까지 LA에서 살아오면서 자신의 유명세보다는 아버지 도산과 어머니 이혜련 여사 의 삶을 전하는데 힘썼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이혜련 여사가 일평생 도산의 유지를 위해 삶을 살아온 것을 본받아 자신도 어머니의 삶을 사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
도산 안창호의 자녀는 5명 중 3명이 미군에 입대했다. 이들은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이어가겠다며 일본을 상대로 싸우는 미군에 들어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해방되던 날, 안 여사는 다시 도산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말을 되새겼다.
“한국의 뿌리를 잊지 마라, 그리고 훌륭한 미국인이 되어라”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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