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취재> 국정원 해킹 유출사건으로 짚어 본 朴 정권의 미스터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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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박근혜 정부를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 단어는 ‘미스터리’다.
‘세월호 7시간’과 ‘메르스 파동’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미스터리한 대응으로 국민의 불신을 불러 일으켰다. ‘문고리 권력’으로 일컫는 대통령 보좌관 출신 비서진들이 국무총리나 장관, 비서실장보다 힘이 더 세다는 본국 한 언론의 여론조사는 현 정권이 얼마나 미스터리한 인사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증거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부터 시작해 세월호 참사, 유병언의 주검, 정윤회 문건파동 의혹까지 현 정부 취임 이후 터졌던 굵직한 사건들은 미스터리한 의혹만 남기고 종결됐다. 최근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국가정보원 해킹 사건이야 말로 미스터리한 사건의 결정판이다.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도입이 대북 정보활동을 위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지난주 본지 심층보도를 통해 드러났듯이 해킹 프로그램 도입을 중개한 나나테크나 허손구 대표 등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하다. 설상가상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직원 임 모 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끌려가는 일이 빈번했다.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수십년이 지나서야 진상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의 딸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금 미스터리한 의혹들이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인생 중 상당 부분은 미스터리로 점철되어 있다. 육영수 여사 피격 후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대중 앞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청와대 있을 동안 그의 삶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중앙정보부가 수집했던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파일 등 외부 자료를 통해 그의 사생활을 유추할 뿐이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청와대를 떠나 20년 넘게 외부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할 때는 정윤회 씨를 비롯한 현재 보좌진들이 그의 주변에 ‘인의 장막’을 쳤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항상 미스터리한 정치인으로 통했다. 오죽하면 초선 의원 시절에도 당 대표나 두고 있었던 비서실장을 두기도 했는데 그가 바로 정윤회 였다.

해명할수록 꼬이는 의혹

의원시절에도 항상 미스터리했던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의 모든 것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대통령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증폭되고 말았다.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뒤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던 대통령의 행적이다. 이 수상한 행적들은 정윤회 씨 재판 과정에서 더욱 의혹이 증폭됐다.

정 씨는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해 칼럼을 쓴 일본 기자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지난해 4월 16일 본인의 행적에 대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20분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학자 이상목씨 자택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정씨의 이 같은 증언은 지난해 8월 15일 검찰 소환 조사 당시 ‘낮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 집에만 있었다’(검찰 조서, 검찰 제출 진술서),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집에 있으니 집에 있다는 것이 확인이 가능하다’(검찰 조서) 등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된 바 있다. 정 씨는 그로부터 나흘 뒤 검찰의 발신지 추적결과 지난해 4월 16일 오후 2시20분 서울 평창동으로 잡힌 사실이 확인되자 말을 바꿨다. 평창동의 한학자 이상목씨의 자택에서 점심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정 씨는 법정에서 “당시엔 집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며 “그래서 휴대폰을 추적하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고 검찰에 통화내역을 제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씨가 검찰에 제출한 통화내역에는 발신지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고 변호인단은 지적했다. 4월 16일은 세월호 사건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인데 이 날 ‘한학자’와 만났다면 과연 이러한 얘기를 주고 받지 않았는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또한 하필 한학자와 만났다는 곳이 청와대 인근 평창동이었다는 사실도 석연치 않다.

이상한 보고체계 반복

실제로 안중민 변호사는 정씨의 행적에 대해 당일 오후 2시20분 평창동을 나와 전화를 건 이후 연타발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오후 6시까지 3시간 30분이 의문이며, 오전 10시부터 10시반까지에 대한 증빙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평창동 역술가의 집과 청와대 정문 사이 거리는 차로 5분 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씨는 검찰 조사 당시 세월호 참사 당일 저녁 6시 신사동 연타발에서 친구들과 저녁약속은 정확하게 기억했다. 카토 전 지국장 변호인인 안중민 변호사는 “평창동에 간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연타발에서의 저녁 약속은 기억하면서 이상목씨와는 작년, 재작년 만나 왔으면서도 세월호 당일 약속은 기억하지 못하다가 모종의 필요에 의해 당일 방문했다는 진술로 번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1년 뒤 벌어진 메르스 사태 때도 반복됐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세월호 참사 때도 대통령은 한발 늦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확진 환자가 발생한지 12일 만인 6월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처음으로 메르스에 대해 언급했다. 뒤늦게 언급하면서도 엉뚱한 소리를 했다. 박 대통령은 “5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5명의 환자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미 감염자가 18명으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보고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오죽하면 조선일보 조차 3일 사설 <‘메르스 비상사태’ 대통령은 어디갔나>에서 “대통령은 사망자가 2명 나온 2일에도 오래전에 예정된 창조경제센터 개소식을 위해 여수를 방문했다. 비상 상황이 닥쳤는데도 평상시 잡아놓은 일정을 소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미스터리한 행적들을 국가기관이 나서서 감싸고 돌다보니 당연히 국민들은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국민들은 정윤회 씨나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의 주변에서 맴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문고리 3인방이 국정을 쥐락펴락 할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적 사건에서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은 물론이고 이번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 사건에서도 의아한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에서도 유출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을 받았던 최 모 경위가 자살하면서 사건의 방향은 급속도로 틀어졌다. 그는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리자 억울해했던 것으로 전해졌었다. 하지만 고인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어도 유족의 반발은 어느 순간 잠잠해지고 말았다. 유병언의 미스테리한 주검도 아직 국민들은 이상하게 보고 있는 것도 모두 연관선상에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유병언이 생존해 있다고 믿고 있거나 혹은 죽었더라도 자살이 아닌 타살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한 유병언의 시체가 바꿔치기 됐다는 의혹도 지금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국정원 요원 자살 미스터리 결정판

이번 해킹 사건과 관련해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 임 모 씨의 죽음이야말로 미스터리의 결정판이다. 임씨는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법한 대북 정보수집’으로만 프로그램이 사용됐다면 임씨의 극단적 선택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에서 업무 담당자로서 갖게 되는 ‘부담’만으로 임씨 자살을 설명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많다. 조직이 나서서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상황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자살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정원은 임씨가 자살한 지 하루 만에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직원일동 명의의 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 자료에서 임씨의 유서내용을 임의로 해석했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라는 임씨 주장에 대해 국정원은 “책임을 자기가 안고 가겠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살 동기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이 임의로 자살의 동기를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임씨가 숨지기 전 수일에 걸쳐 국정원 내부의 고강도 감찰을 받았고 숨진 당일에도 감찰이 예정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자살 동기에 대한 재수사 필요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임씨의 가족들이 불과 5시간 연락두절에 임씨를 실종신고 하고 경찰이 곧바로 수색에 나서 소방대원들이 1시간30분만에 임씨를 발견했다는 경찰 발표는 통상적인 실종사건의 수사속도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건 직후 공개된 유서, 이어진 국정원의 대응, 경찰의 일사천리 수사는 임씨의 사망 경위에 대한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임씨가 자살 직전 관련 파일을 삭제한 사실도 의문을 키운다. 임씨는 유서에서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업무에 대한 욕심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이지만 국정원에서 20년간 사이버안보분야 전문가로 일해온 요원이 실수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욱이 자신의 본연의 업무로서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대테러, 대북공작과 관련된 자료를 삭제했다는 주장은 의구심을 낳는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임씨가 나흘 동안 밤새워 일하며 공황상태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임씨는 지난 4월 타 부서로 옮긴 상태에서도 이번 논란이 불거진 후 나흘 밤잠을 새며 과거 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직접 해킹 대상을 선정하지 않았지만 임씨가 윗선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던 중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국회 정보위원회에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자 서둘러 임씨가 문제가 될 만한 증거인멸 시도를 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의혹진상은 다음정권 몫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현 정부가 해온 수순을 보면 국민들이 제기하는 의혹이 풀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끌려가는 일이 빈번했다.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수십년이 지나서야 진상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의 딸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금 미스터리한 의혹들이 계속되고 있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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