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선동 ‘심리전의 꽃’ 확성기 전쟁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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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초기에 파죽지세로 내려오던 북한군이 8월 낙동강전선에서 주춤할 때였다. 당시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던 한 미군 병사는 감미로운 미국 본토 발음의 여자 아나운서 방송에 깜짝 놀랐다.
북한 측이 심리전에 동원시킨 여성으로 당시 한국전에 나선 미군은 대부분 신병들이 많아 코리아를 모르는 순진한 젊은 미군들에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방송을 시도한 것이다. 한국 땅에서 영어 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이 아니라 중년여성으로 미군 병사들에게 모성애를 나타내듯 고향소식과 때로는 공포감도 조성했다.
우선 그날 그날 생포된 미군포로들의 명단이나 전사자 명단을 낱낱이 호명해 미군 병사들의 기를 죽이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왜 이름도 모르는 조선반도에 와서 남의 나라 통일전쟁에 귀한 목숨을 버리는가”라며 “빨리 투항하면 아름다운 아가씨들 품에 안겨 호강을 할 것이다”라고 어머니가 타이르듯 했다.

한국전쟁의 ‘서울시티 수’ 모성애 자극

당시 맥아더 사령부는 이 방송에 대해 ‘도쿄 로즈’(Tokyo Rose)를 연상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애절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미군의 향수를 자극 사기를 꺾어놨던 여자 아나운서의 별명이 ‘도쿄 로즈’였다. 맥아더 사령부측에서 맞불작전도 생각했으나 뚜렷한 방책이 나서질 않았다. 어느 틈엔가 미군들 사이에서 이 북한군 영어 방송 아나운서의 주인공은 ‘도쿄 로즈’를 연상해 ‘서울시티 수’라고 불렀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애나 월레스 서라는 미국여성이었다. 원래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예 한국인  좌익운동가였던 서균철과 결혼 하면서 애나 월레스 서가 되었다. 
미군들은 “한국전쟁의 도쿄로즈”인 이 여성을 ‘서울시티 수’(Seoul City Sue)라고 불렀는데, 당시 미국의 인기 여가수로 ‘수 시티 수’(Sioux City Sue)가 있었는데 이를 본따 아예 애나 서를 ‘서울시티 수’로 불렀다.
운명의 선교사 애나 서는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생하자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강제로 ‘서울 라디오’ 방송에서 마이크를 잡게 된 것이다. 
낙동강 교두보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미군과 한국군은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해 ‘서울시티 수’ 체포작전을 벌였으나 이미 북한군과 함께 북쪽으로 사라졌다. 그 후 한국전쟁이 휴전이 됐어도 ‘서울시티 수’에 대한 행적은 어디에서나 나타나지 않았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북한 정권의 방송에 협조를 계속하지 않아 숙청됐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친척 만나러 왔다 심리전 방송에

하와이 침공으로 미국과 한판 대전을 벌인 일본 측도 미군에 대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영어 방송을 실시했다. 당시 미군들은 영어방송을 하는 일본측의 아나운서들을 ‘도쿄 로즈’라는 별명을 붙였다.
‘도쿄 로즈’는 진행자가 14명에 이르지만,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1916년생인 아이바 토구리(Iva Toguri D’Aquino)는 일본계 미국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일본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41년 7월에 친척의 간병을 위하여 일본을 방문 했다가 그해 12월 7일에 곧바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미국으로의 귀국이 불가능해졌고, 일본군에 의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라는 협박과 심한 감시를 받았으며, 결과적으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마지막 선택지로 연합군 포로로 구성된 ‘라디오 도쿄’의 영어방송 진행자로 일하게 되었다.

‘도쿄 로즈’는 일명 ‘가시 돋친 장미’와 ‘태평양의 사이렌’이라 불렷다. 이같은 ‘도쿄로즈’의 대표적 주인공인 아이바 토구리는 LA 캄튼에서 태어났다. UCLA 출신 토구리는 어머니 대신 중병에 걸린 이모를 돌보러 도쿄에 가 있던 중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발이 묶여버렸던 것이다.
적국인으로 간주된 토구리가 당국에 의해 강제로 일하게 된 곳이 일본에 수용된 연합군 포로들로 방송진이 구성된 라디오 도쿄. 끝까지 미국적 포기를 거절한 토구리는 여기서 일하면서 자기 목숨을 내걸고 일본 측 선전방송을 사보타주하던 포로들을 도왔다.
종전 직후 미군에게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당시 공산당 때려잡기의 기수로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방송인 월터 윈첼의 압력 때문에 1948년에 다시 체포되어 반역죄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고, 갓 결혼했던 남편과도 강제로 이혼당한 채 6년 동안 형기를 살다가 1956년에 석방되었다.
반역죄가 들어간 이유는 앞서 설명 했듯이 아이바 토구리는 미국 시민권자 이므로 적국인 일본의 선전방송을 했다는 것 자체가 반역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바의 반역 혐의에 대한 증인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1977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사면 및 복권조치를 내렸다. 석방 후 본인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41년의 일본 방문은 아버지의 강권(사실상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고, 자신은 절대로 일본에 가기 싫다고 했으나 아버지의 강요를 이기지 못했다고 했다.
‘도쿄 로즈’는 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해  주로 “당신들은 왜 무모한 전쟁에 참가해 고생 하느냐.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아내와 애인이 그립지 않느냐. 그러니 항복해라”라는 것들이다.
이런 내용 끝에  미국의 인기 팝송들을 내보내는데 그 중에서도 자주 쓰인 곡들이 ‘굿나잇 스윗하트’와 ‘아일 워크 얼로운’ 이다.
틴에이저 음성에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토구리는 ‘고아 앤’이라는 가명으로 미군을 상대로 선전방송을 했는데 이 때문에 반역죄로 기소된 것이다. 그러나 전후 토구리가 처음 미군에 의해 체포돼 조사를 받았을 때만 해도 기소사유가 불충분해 석방됐었다.
토구리가 반역죄를 뒤집어쓰게 된 방송은 단 두 문장. “태평양의 고아들아, 너희들은 이제 진짜 고아들이야. 너희들의 배들이 모두 침몰했으니 너희들은 어떻게 집에 돌아가겠니?” 그러나 이 방송은 연합군측이 해전에서 대승한 다음에 나온 것이었다.
출옥 후 시카고에서 일본상품 가게를 운영하며 조용히 살아온 토구리는 지난해 1월 전시 미군을 도운 공로로 제2차 세계대전 재향군인위로부터 표창을 받은 바 있다. 그러니까 토구리는 ‘도쿄 로즈’라는 신화의 제물이었다.

제이름은 ‘가을의 향기’에요

베트남 전쟁에서  월맹 즉 하노이측은 미군을 상대로 하는 심리전 방송 아나운서로 트린 티 느고 (Trinh Thi Ngo)라는 여성을 마이크 앞에 세웠다. 그녀는 매일 방송을 시작 하면서 자신을 ‘가을의 향기’란 뜻의 투 홍(Thu Houng)이라 불렀다. 가을의 향기처럼 촉촉한 그녀의 음성은 전장을 울리는 포탄 속에서 총포소리를 뚫고 미군들의 귓전을 아련하게 때리고 있었다.  미군들은 그녀를 ‘하노이 한나’라고 불렀다.
그녀도 ‘도쿄 로즈’나 ‘서울시티 수’처럼 그날 그날 미군 전사자의 명단을 읊어주었다. 무엇보다 미군 전사자가 생긴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미군 전사자의 이름과 고향까지 라디오에서 말했다.
그녀가 했던 방송 한토막을 소개한다.

<안녕, GI Joe?
당신들 대부분은 빈약한 정보로 전쟁을 치르고 있어 보여요. 당신들이 여기 존재하는 이유를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당신들이 죽기 위해 명령을 받는 것은 명백한 일이며, 파시스트가 일으킨 전쟁에서 결국평생을 불구로 살 거랍니다. (Hanoi Hannah, 1967년 6월 16일 방송>
 <당신들 미군 GI들은 존슨의 부도덕하고 비합법적인 전쟁에서 싸우지 마세요.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 살아남으세요. 이 방송은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도 하노이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이 방송은 미군 GI들을 위해 16시 30분에 방송됩니다. 자, 코니 프랜시스가 부른 노래 “I almost lost my mind”를 틀어 드립니다. (Hanoi Hannah, 1967년 8월 12일)

 ▲ 베트남전「히노이 한나」

‘하노이 한나’는 미군들을 위해 록 음악을 많이 틀어주었다. 그녀는 그 음악을 하노이에 방문한 진보적인 미국인들에게서 구입했다고 했다. 대미군 선전방송을 위해 호주 기자인 윌프레드 버쳇과 프랑스 여성도 하나(Madelaine Riffaud)으로부터 도움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미국의 인기여배우 제인 폰다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몇 번 인터뷰를 했다. 그 당시  제인 폰다에게 하노이에  잡혀있는 미국  포로 조종사들을 만나보고 싶으냐고 했으나 폰다는 거절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 테이프를 미국의 반전운동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노이 한나’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전직 미군 GI 출신이 그녀의 방송을 들었다며 편지 한  통을 보냈다고 했다. 그 미군 병사는 고향에 돌아갔고 하노이 방송에 관해 알고 싶어서 글을 보냈다고 했다.
당시 방송의 주요 목적은 미군 병사들에게 탈영이나 상관 공격을 부추기는 거였다. 당시 일부  미군들은 방송을 들으면서 미군의 위치나 전투준비와 전상자에 관해 그렇게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지 놀라워했다.
하노이 방송은 당시 미 육군 잡지 성조기(Stars and Stripes)를 구입했으며 미국의 Newsweek와 Time 등 시사잡지와 뉴욕타임스 등 여러 신문을 구입했으며 AP와 UPI 유선도 들었고 베트남 첩자들이 보내는 정보의 보고도 들었다.
특히 하노이 방송은 미국 기자들의 기사를 주목해서 봤고 그중 기사를 방송에 삽입했는데 특히 전사자에 관한 내용을 모두 이용했다.
태평양 전쟁에 도쿄 로즈가 있었다면 유럽 전쟁에는 ‘추축국 샐리’가 있었다. 미국시민인 밀드레드 길라스는 라디오 베를린을 통해 미군 사기 저하용 방송을 했었다. 그녀는 반역죄로 12년간 옥살이 후 가석방돼 오하이오서 음악 선생으로 일했다.
이라크 훗세인이 앞세운 ‘바그다드 베티’는 미군에게 그들이 이라크에 와서 작전을 펼치는 동안 그들의 아내들이 ‘멜깁슨, 바트심슨’ 등과 바람을 필거라고 방송을 했지만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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