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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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타임스는 최근 한국의 확성기 방송은 “음향의 미사일”이라고 소개했다. 고대로부터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전쟁은 끊임없이 지속돼왔다. 전쟁을 하면서도 양측이나 전쟁 당사국들은 최소한의 전투로 전쟁 목적을 달성하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데 골몰 했다. 그 한 가지 방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심리전이다. 부전승과 최소피해 전승전략의 심리전의 핵심이다. 남북한은 북한의 6.25남침으로 혹독한 전쟁을 치렀다. 남과 북은 분단 70년에 시작됐을 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은 심리전을 해왔다. 그래서 심리전은 전시보다 평시에 더 공세적이고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심리전은 전쟁을 하지 않고 당사국들이 추구하는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고 전략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중 남북한 심리전을 소개한다.   <성 진 취재부 기자>

“국군 오빠께서 넘어오시면 나는 오늘 저녁부터라도 오빠 품 안에서 오빠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바치면서 단꿈을 꿀 기쁨에 차있답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국군 오빠! 어서 어서 이리로 넘어 오세요. “
이 확성기 소리는 한국전쟁(1950-1953)이 한창인 1951년 9월 어느날, 가칠봉 전투에서 북한군의 대남 심리전 팀의 여성이 국군을 상대로 한 내용이다.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예비역 전영호 씨의 증언이다. 가칠봉 전투는1951년 6월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 19 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5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이다. 북한군은 27사단과 12사단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격전 후에 결국 한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가칠봉 전투는 휴전 회담이 시작된 후 유엔군은 대한민국 1해병연대와 미 해병 1사단을 주축으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펀치볼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전투로 이 일대를 유엔군과 한국군이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다.
전투가 일진일퇴로 치열해질 밤 11시쯤만 되면 의례히 김일성 고지 전방에 가설된 대남용 초고성능 스피커를 통하여 북한군의 대남방송이 시작되었다. 앙칼진 여군 공작대원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려왔다. 방송 내용은 국군 병사들의 월북을 유혹하는 것으로 매일 조금씩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국군 오빠, 안녕하십니까? 나는 지상의 낙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원산 어느 평화스러운 마을에서 태어나 곱게 자라온 18세 소녀랍니다. 나는 늘 사랑하는 우리 국군 오빠들이 그 악독 무도한 미 양코배기 놈들과 이승만 괴뢰도당들의 총알받이로 전쟁터에서 수없이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제와 이승만 도당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답니다.
사랑하는 국군 오빠들! 우리의 영용무쌍한 인민군 전사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답니다. 여러분들이 전쟁터에서 계속 싸운다면 죽음 밖에는 또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주저하지 마시고 원수 같은 상관 놈들의 가슴에 증오의 총탄을 퍼붓고 의거 입북하여 아름답고 예쁜 나와 결혼하여 지상의 낙원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삽시다. 국군 오빠께서 넘어오시면 나는 오늘 저녁부터라도 오빠 품 안에서 오빠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바치면서 단꿈을 꿀 기쁨에 차있답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국군 오빠! 어서 어서 이리로 넘어 오세요. “
이와 같은 북한군의 미인계 유혹 작전과 악명 높은 중공군의 피리 꽹과리 현혹작전은 아군에게 많은 정신적 혼란과 경계근무의 문제점을 야기 시킨 바 있다고 6.25참전 용사 전영호씨는 그의 <6.25 참전 소대장의 전투 실기 324일>에서 밝혔다.

선물꾸러미로도 유혹

북한군은 확성기로 대남 심리전을 펴기도 했지만 선물공세도 폈다. 참전용사 이돈형씨가 펴낸 <어떻게 지킨 조국인데>라는 책의 일부분이다.
1953년 봄이었다. 우리가 있던 대대본부는 큰 길에서 조금 들어간 작은 골짜기에 있었다. 길에서 대대본부로 들어가면 더덕 냄새가 진동했다. 더덕을 캐다보면 달래도 많이 먹었다. 더덕을 고추장 에 발라 기름난로 위에 굽기도 하고 달래는 볶아서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봄이 되니 병사들의 얼었던 마음도 녹는지 고향 생각도 나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런 어느 날 아침, 북한군들이 밤에 몰래 우리 전초진지에 선물을 놓고 갔다. 그들이 가끔 하는 짓거리지만 오늘 보따리 속엔 귀한 물건들이 많았다. 당시 서울에서 제일 좋은 신발이라고 소문이 난  상해 농구화와 여러 가지 과자도 많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많이 먹지를 못했다. 독약이라도 든 줄 알았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북한군들은 자기들도 먹을 것이 없으면서 이렇게 선물을 가져다 놓고 우리 병사들을 꼬드기는 것이었다. 이 선물 보따리에는 반드시 선전 삐라가 한 뭉치 들어 있었다. 돼지같이 살 찐 국방군 장교가 갈비뼈만 앙상한 병사들을 구둣발로 차는 그림도  있었다. 그림은 여러 종류였는데 모두 북한으로 오라고 꼬시는 선전물이었다.
전초진지에서 적과 가깝게 대치하고 있는 병사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무섭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다. 언제 적탄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컴컴한 밤이면 어김없이 적의 야간 방송이 있다. 마음이 들뜨는 계절인 본 밤에 간드러지는 아가씨의 목소리로 대남방송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국방군 오빠 여러분. 여기는 오빠들을 위해 떡도 있고 술도 많이 있으니 거기서 학대 받지 말고 어서 오세요.”
온갖 달콤한 말로 꼬셔댔다. 그래서 매일 밤 본부에서는 골치를 앓았다. 사단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놈의 스피커, 포로 때려 부숴 버려!” 그 일대에 사격을 했다. 비록 스피커를 파괴하지 못했지만 포탄이 터지는 소리에 방송이 방해를 받게 되면 방송을 중단했다. 이런 일은 자주 되풀이 되었다.
그날도 대대 관측소로 향했다. 북쪽 산에 아침 햇빛이 닿는 시간이다. 관측소에 올랐을 때 나는 평생에 한 번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다. 온 북녘 산에 분홍색 페인트를 칠한 것 같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온 산이 빈 곳 하나 없이 빽빽하게 햇살을 받은 투명한 진달래로 덮여 있었다. 그렇게 넓은 지역에 그렇게 많은 진달래가 피어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진달래의 분홍에 완전히 취해버렸다. 꽃에 취하고 봄에 취했다.

옛 부터 전쟁에는 미인계를 쓴다. 2차 대전 때 도쿄 로즈도 그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어렵쇼! 북쪽 산 능선 위에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가씨가 치맛자락을 날리며 나타난 것이다. 병사들까지 모두의 마음이 들떴다. 나는 포대경으로 건너편 산을 아래 위, 좌우로 움직이며 둘러보았다.
그런데 작은 골짜기의 오솔길에 북한군 한 명이 등에 빈 통을 지고 뒷짐을 진 채 어슬렁어슬렁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도 전초 진지에 아침밥을 날라다 준 후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자기 등 뒤를 보고 있다는 걸 그가 알 턱이 없지. 그도 아름다운 주변을 바라보며 한껏 봄에 취해있었다. 북한군 가슴에도 봄은 오는가,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보통 때라면 인민군도, 능선 위의 아가씨도 예외 없이 대포 한두 발 쏘아서 혼쭐내주었을 텐 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잠시나마의 아름다운 그 평화스러움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최상의 비대칭 무기”

한참에서 장기간 대북 심리전 업무를 당담하다 최근 육군 중령으로 전역한 충주대학교 심리학과 심진섭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보다 두려워하는 최상의 비대칭 무기는 심리전”이라고 강조한다. 심 교수가 2011년 발간된 ‘합참’ 4월호에 기고한 ‘심리전, 현실적 최상의 비대칭 무기’라는 글에서 남북한 간 심리전 대결을 소개했다.
심 교수는 ‘대북 심리전은 우리가 가진 최상의 비대칭 무기’라며 그 근거로 90년대부터 최근까지 탈북한 북한 군인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특히 전방의 확성기 방송, 대형 전광판을 이용한 생활정보제공 등의 효과는 우리 생각보다 컸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1997년 이전에는 북한군과 주민들은 확성기 방송 내용을 듣고 반신 반의 했으나 1997년~1999년까지는 80~90% 정도, 1999년부터는 방송 내용을 거의 신뢰하는 한편 청취 도도 급증했다”고 강조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준비과정에서 중단됐던 전단•물품 살포 작전은 그 효과가 엄청났다고 증언했다.  심 교수는 “전단에 대한 인식은 사진으로 제작된 화보를 가장 신뢰했고, 전단과 전광판, 방송의 내용이 모두 일치할 때 효과가 컸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살포한 전단, 물건들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물건을 주은 뒤 상표를 떼어내 윗사람에게 상납하거나 밀거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이 물건들을 써보면서 남한을 동경하게 됐다고 한다.
전광판 방송은 ‘인민군 여러분, 내일은 빨래하지 마세요’라는 식의 문구를 먼저 내보낸 뒤 ‘내일은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정보를 제공, 그 예보가 맞을 경우 북한군으로부터 더 큰 신뢰를 얻는 식 으로, 작은 신뢰를 쌓아 큰 신뢰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확성기로는 ‘청춘을 즐겁게’, ‘시와 음악이 있는 이 밤에’, ‘우리 다 함께 노래하자’ 등의 음악이 섞인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일방적 체제 선전보다는 이런 프로그램을 곁들이면 대북선전 효과가 높아진다고 예측한 것이다.
심 교수는 “2003년 문산 북방에서 귀순한 탈북자는 ‘한국방송이 안 나오면 심심하고 답답하다’고 진술했다”면서 “확성기 방송은 한국의 우월성을 인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북한의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에는 “용천역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어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는데 대한민국은 동포애 차원에서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심 교수는 “용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심리전의 파급 효과가 일주일 이내에 북한 전역으로 확산 되면서 북한 당국을 극도로 긴장시켰고, 북한이 남북장성급회담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는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공화국수비대가 맥없이 무너진 것이 미군의 심리전 때문이라고 판단한 지난간 김정일 정권은 남한 심리전 와해를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우리 측의 대북심리전 수단 와해를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2004년 6월 4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한이 가장 먼저 철폐를 요구한 것이 심리전”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심리전을 와해시키려 했던 북한의 저의와 저들이 핵무기보다 두려워하는 현실적으로 최상의 비대칭 무기는 바로 심리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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