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호 발행 특집> 박근혜의 광기어린 망동정치 끝장판… ‘역사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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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뒤로 한 채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지난 3일 강행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2300여개 고등학교 중 세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고 나머지 99.9%가 다른 교과서들을 선택한 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강변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외면 받은 이유는 친일·독재 미화와 셀 수 없이 많은 오류 때문이었다.
질 좋은 교과서였다면 그 누가 악의적으로 채택을 방해해도 채택률이 0.1%에 그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황 총리는 이런 사실에 애써 눈감고 99.9%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현행 교과서들이 정부 주장처럼 그토록 친북적이라면 당장 거둬들여도 모자랄 판에 박근혜 정부는 이 교과서들을 기준으로 출제될 수능 한국사 과목을 내년도부터 필수화했다. 친북 교과서를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장한 꼴이니 이런 코미디가 또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바탕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이 깔려 있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를 바꾸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거짓과 왜곡, 날조와 억지, 오기와 불통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무식함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그 속셈과 겉셈을 철저하게 짚어 보았다.
리차드 (취재부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아버지의 부끄러운 과거인 친일과 독재는 덮고 싶고, 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화는 부각시키고 싶어 하고 있다. 이를 교과서를 통해 후세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과거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의 어디가 편향되어 있냐는 질문에 “전체 책을 다 보시면 그런 기운이 온다”는 황당한 답을 했다. 의심되는 것은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임이 드러나는 답이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광기 어린 집착으로 1973년 유신 체제로 회귀하게 된 셈이다.

박정희 때문에 세계적 웃음거리 자초

박 대통령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리는 모두 궤변에 불과하고 실제 목적은 친일·독재 미화에 있음도 확인됐다. 황 총리는 발표문에서 “성숙한 우리 사회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친일파와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을 노골적으로 미화한 교학사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편듦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속내를 드러냈다. 한국사 수능 필수화와 교과서 국정화가 일련의 계획에 따라 추진됐고 그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이 자리잡고 있음을 이제 삼척동자도 다 짐작한다. 정부가 행정예고 기간에 쏟아진 압도적인 반대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관보 게재 절차까지 어겨가며 국정화를 밀어붙인 비상식적인 행태도 그게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박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국민의 반대와 민주적 원칙을 저버린 채 세계적 웃음거리인 국정화를 강행한 것이다.

교과서 개정을 위한 박 대통령의 광기 어린 집착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박 대통령의 교과서 국정화는 2008년 출범한 교과서 포럼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2008년 9월 보수주의자들로 구성된 교과서포럼은 국방부·통일부·상공회의소와는 별도로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비판하면서 수정을 요구한 바 있다. 교과서포럼은 기존 대한민국 교과서의 현대사와 경제사 관련 서술을 문제삼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수정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도서출판 기파랑)를 2008년 3월 24일에 출간하였다. ‘대안교과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교과서 검정을 받지 못했다. 수정된 내용은 주로 일제 강점기 동안의 경제사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기술로, 현행 교과서에 비해 긍정적으로 다루어졌다.

이밖에 항일 운동에 대한 기술은 비중이 줄고 남은 부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의 성공을 부각시켜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승만과 박정희 지도자의 역할 중심으로 설명했다. 교과서포럼은 대안 교과서 시안에서 4·19 혁명을 ‘4·19학생운동’으로, 5·16 군사정변을 ‘5·16혁명’으로 기술하였다가 관련 단체 회원들의 항의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집필진 12명 중 역사학자는 한명도 없어

재밌는 것은 이 포럼의 일원이자,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한 출판사의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박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7인회의 멤버로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대안교과서 집필진 12명 가운데 역사학자는 한명도 없다. 그럼에도 자세히 뜯어보면 현 정부에서 결코 낯설지 않은 인물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책임집필인이었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효종 교수 역시 집필에 참여했는데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새누리당 내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최근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영입됐다. 감수를 맡았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 한국방송(KBS)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인호 이사장은 여성 원로 학자로서 뉴라이트 학계와 박 대통령의 연결고리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가 하면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소설가 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도 감수에 참여했고 또 다른 감수인인 유영익 연세대 교수는 전 국사편찬위원장을 맡았다. 즉 당시 참여했던 멤버들이 사실상 박근혜 정부 요직을 차지하면서 박 대통령의 후원군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시 교과서 포럼 멤버들이 이처럼 박근혜 정부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및 역사관이 박 대통령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즉 그들의 생각이 집약되어 있는 당시 교과서야말로 박 대통령이 원하는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찬양 일색이던 극우 교과서

그렇다면 당시 교과서에는 어떤 내용이 기술되어 있을까. 일단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을 보자.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통치방식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진한 개발정책과 외교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비타협적 권위주의로 바뀌어 갔다.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그의 집권기에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의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는 측근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다.”

이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책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미화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총과 칼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쏙 빼버렸고, 쿠데타에 대한 언급도 있다. 오히려 권위주의적 통치가 잠재력을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해야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한한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10월 유신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다.  “유신헌법이 허용한 대통령의 절대 권력과 종신집권의 가능성은 박정희가 개인적 권력욕에서 10월 유신을 감행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10월 유신은 개인의 권력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커다란 변화를 한국인에게 안겨주었다.”
유신체제를 합리화하는 설명들로 꾸며져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책이 출간되던 2008년 5월 26일, 출판 기념회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본국의 청소년들이 배웠던 교과서를 생각하면서 전율했던 것이다.

집권 후반기에는 국정화 어렵다고 판단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인식의 편향성은 과거 행적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1989년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혜는 ‘박경재의 시사토론’ 인터뷰에서, 10.26이 없었더라도 유신 통치를 자행한 박정희는 결국 국민 저항에 맞닥뜨리지 않았겠냐는 질문을 받자 이런 요지의 답변을 한다. 10년간 박정희를 왜곡 일변도로 깎아내리기만 했기에 인터뷰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실제로 국민들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악인들이에요? 왜 그렇게 저항을 하고 그래요?”
그는 유신 또한 어쩔 수 없는 결단으로 미화했으며,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 주장했다. 이런 그의 인식은 이후로도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인터뷰에서는 박정희가 “억울하게 그동안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드려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꽉 차있다”고 말했고, 2007년 자서전에서는 “아버지의 오명을 벗겨 드려야 한다”고 썼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러나 심지어 유신조차 선의로 포장하고, 이에 저항하는 민주국가의 국민들을 악인으로 칭할 정도로 역사의식이 편향된 인물은 실로 찾기 힘들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생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 교과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가 자신의 아버지를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의 교과서 국정화는 정권 1~2년 차 때 추진되는 것이 그의 머리 속에 있었다. 하지만 1년 차 때는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동력을 얻지 못했고, 2년 차 때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때를 놓쳤다. 그는 3년차에서 4년차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지 못하면 집권 후반기 때는 더욱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과거 역사교과서의 어디가 편향되어 있냐는 질문에 “전체 책을 다 보시면 그런 기운이 온다”는 황당한 답을 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나 행적을 볼 때 의심되는 것은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라는 점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이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의 서막이 올랐고, 무서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곳곳에서 박대통령의 광기어린 발상에 국민들은 분노와 절규에 치를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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