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떠도는 북한 ‘로열패밀리’ 1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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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의 이모인 고용숙 씨 부부가 그동안 미국에 망명 중이었는데, 최근 국내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1998년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그동안 국내 언론 에는 전혀 알려지지 안했다. 이번에 이들 부부가 국내에 들어와 소송을 벌이면서 새삼 해외를 떠도는 북한의 ‘로열패밀리’ 즉, 김정은의 친인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들이 왜 북한을 탈출해 해외에서 은신 중인지 알아본다. 죽은 김정일은 생전에 계모인  김성애가 난 자식들은 “곁가지”라고 하면서, 오직 김경희만 남겨두고, 다른 친인척 들은 대사 등으로 해외에 내보냈다. 북한 권력 근처에 있지 못하게 한 조치였다.
<데이빗 김 객원기자>

최근 한국 법원에는 특이한 소송이 제기됐다. 미국에 망명해 거주하는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과 그의 남편 이강이 명예훼손 혐의로 탈북 인사 3명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고용숙과 이강 부부는 자신들에 대한 탈북자들의 허위사실 유포를 참을 수 없어 소송을 제기 했다고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한 배경도 설명했다. 김정일 옆에서 20년을 살면서 권력의 비정함을 깨닫고 탈출했다는 것이다.
고영숙 씨는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의 여동생으로, 외교관인 남편과 결혼해 스위스에서 생활하다 1998년 스위스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숙-이강 부부는 이번에 처음 미국 망명 사실이 공개된 경우지만 김정은의 친인척 중에는 해외를 떠도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적어도 인척이 10여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화제의 인물은 바로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이다. 그는 계속 해외를 떠돌고 있다. 김정남은 지난 2001년 가짜 여권을 들고 일본에 들어가려다 일본 당국에 발각 돼 얼굴이 공개됐다. 그 후 부친인 김정일의 눈 밖에 나면서 후계구도에서 제외되고 홍콩과 마카오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지난 2010년 10월 베이징 공항에 나타난 김정남은 언론과 마주치자, “저는 원래 그 점(후계자)을 관심이 없고 개의치 않는다. 동생이 북한 주민들의 윤택한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김정남의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최근 김경희 노동당 비서가  죽기 전에 싱가포르를 방문해 김정남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가 두 사람의 접촉을 기정사실로 보고 이유 등을 분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살아생전에 김경희는 조카인 김정남과 예전부터 가까이 지냈고 생활비를 도와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김정남이 해외에서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했기 때문에 모아 둔 돈들이 많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었다.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는 김정남의 마카오 생활이 과거 봉건주의 국가의 귀족들과 비슷하다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한국 당국은 김정남 암살 지령을 받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을 구속한 적이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 공작원은 중국에서 김정남 암살에 실패한 뒤 한국에 위장탈북자로 입국한 후 적발됐다.
김정남은 앞서 고미 요지 일본 ‘도쿄신문’ 기자와 주고받은 전자우편에서 김정은을 어린애로 지칭하며, 3대 세습과 북한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강하게 비판했었다. 김정남은 과거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고영희 씨가 자녀를 낳으면서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옮겨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대 대학생 김정일 손자”

김정남의 아들이자 김정일 의 손자인 김한솔도 해외에 머물고 있다. 김일성 주석을 빼닮은 김한솔은 2012년 10월 핀란드 TV와 인터뷰를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김한솔은 할아버지인 김정일과 김정은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며, 어떻게 그들이 독재자가 됐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김정일 손자인 김한솔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 삼촌 만난 적 없다”라고 했다.
김한솔 군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의 아들이다. 김정일은 생전에 적어도 5명의 공식, 비공식 부인 (홍일천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김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은 둘째 여인인 성혜림의 아들이다. 김정남의 아들인 한솔 군은 1995년생으로 올해 20세다.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마카오로 부모를 따라가 해외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10월 보스니아 헤르체 고비나 남부에 있는 ‘유나이티드월드컬리지’ 모스타르(UWCiM) 분교에 입학했다.
이런 김한솔을 핀란드의 영상제작 업체인 ‘시티포탈’이 엘리자베스 렌 전 국방장관의 진행으로 2012년에 인터뷰를 했으며 당시 핀린드 전국에 방영됐다. 인터뷰가 성사된 데는 진행자인 렌 전 국방장관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렌 전 장관이 유엔 사무차장과 유엔 보스니아 헤르체 고비나 인권특별보고관을 지냈기 때문이다.
김한솔이 다니는 유나이트드월드컬리지의 모스타르 분교는 영국에 본부가 있는 UWC 국제재단이 전 세계 13곳에서 운영하는 국제학교 가운데 하나다. 2006년에 개교한 이 모스타르 분교는 특히 여러 나라와 지역의 분쟁 후 재건 지원 인력을 양성한다는 특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 학교는 국제교육재단인 IBO와 연계해서 평화정착 과정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김한솔이 인터뷰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학교의 다문화적 특성과 다양한 토론 수업 때문에 분쟁 지역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고 말했다.
김한솔은 특히 2013년에 이 학교에 처음으로 한국 학생이 입학한다며,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고도 말했다. 김한솔은 특히 마카오의 국제학교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을 통해 남북한 사이의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함께 수업을 듣고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 “그러면서 한국 친구들과 매우 친해져서 함께 여행도 다니곤 했다”고도 말했다. 또 남북 갈등에 대해 한 쪽 편만 들지 않고 서로의 장단점을 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솔은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에 깔끔한 검은색 복장을 한 모범생처럼 보였다. 세련된 뿔테 안경에 작은 귀걸이 두 개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한솔은 지난 2011년 말 인터넷사회망 서비스인 ‘페이스북’에 공개된 사진에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서 위로 올린 스타일로 여자친구와 다정히 찍은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김한솔의 인터뷰에 대한 북한 당국의 반응은 없었다. 북한은 과거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대중가수 에릭 크렙튼의 콘서트에 참석한 모습이 해외 언론에 공개됐을 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로열패밀리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북한의 철칙이라고 지적한다.
김한솔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이 인도적 활동을 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시키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영원한 이방인 김평일”

또 다른 인물로 김일성의 아들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체코 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원래 폴란드였는데 지난 1월에 17년 만에 최근 체코대사로 자리를 옮겨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김평일 대사는 한 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수 십 년째 해외에서 사실상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1954년생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김일성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인 김성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김정일의 이복동생이다. 김일성종합대학과 군 요직을 거친 김평일은 형보다 키가 훨씬 크고 아버지인 김일성을 닮아 한 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생전에 “만경대 혈통은 김정숙 혈통이다. 김정숙 혈통만이 주체 혁명 위업에 대를 이어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이런 혈통이라는 것”으로 권력은 김정일에게 넘어갔다. 북한에서 태어나고 외모와 능력이 모두 뛰어난 김평일이 러시아에서 태어난 김정일 보다 더 정통성이 있다고 보는 세력이 있었지만 김일성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평일은 김일성의 이런 결정이 내려지고 몇 년 뒤 해외로 쫓겨나다시피 떠났다.
해외로 밀려난 김평일은 1988년 헝가리주재 대사로 임명된 뒤 불가리아, 핀란드를 거쳐 1998 년부터 폴란드주재 북한대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철저한 감시 속에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 내지 않았고 북한 매체들도 이른바 ‘곁가지’인 김평일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했다.
김평일은 북한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주민들의 입에 다시 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중국을 방문한 일부 북한인들은 지난 2005년 ‘VOA’에, “김일성을 닮아 잘생기고 똑똑한 김평일 동지가 나라를 이끌었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평일의 근황은 지난 2007년 폴란드의 한 지방 매체가 지역을 방문한 김평일 대사의 가족사진을 공개하면서 잠시 주목을 받았다.
폴란드에서 김평일을 여러 번 만났던 폴란드과학아카데미의 니콜라스 레비 연구원은 연구소 웹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김평일은 매우 신중했고 일부 외국 대사관 행사 참석을 제외하면 공개 행사를 꺼렸다고 말했다. 특히 사견을 전제로 북한체제가 무너지면 김평일이 새 정부에서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을 했다.
레비 연구원은 6년 전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평일의 딸은 당시 28살 은송, 26살 인강 이라며 이들이 외국어에 능통한 다재다능한 젊은이들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김정은의 숙부이기도 한 김평일이 최근 17년 만에 폴란드에서 체코로 이동한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 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권력에 자신감을 가진 김정은이 숙부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독일과 가까운 체코로 이동시켰을 것이란 분석에서부터 그가 폴란드에 장기간 주재하는 것을 경계해 옮겼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평일이 김정은의 권력에 잠재적 위협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는 거의 없다.

‘비운의 여인 성혜림’

북한의 이른바 ‘백두산 줄기’에서 가장 먼저 해외로 나간 인물로는 성혜림을 꼽을 수 있다. 성혜림은 유명 영화배우 출신으로 월북 소설가인 이기영의 며느리였다.
그러나 1970년대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영화 부문을 총괄하고 있던 김정일의 눈에 띄어 동거에 들어갔고, 1971년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낳았다. 평양교원대학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2년 한국으로 탈북한 이숙 씨는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다니다가 성혜림을, 남편 있는 여자와 산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함부로 말하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혜림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김정일이 1970년대 중반 일본의 북송 한인 출신으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였던 고용희와 동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본처 자리를 빼앗기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린 성혜림은 언니 성혜랑과 함께 모스크바에 머물다 2002년 사망했다. 모스크바에서 성혜림을 돌봤던 언니 성혜랑은 1990년대 후반 딸 이남옥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도 지난 1982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원래 이름이 ‘이일남’이었던 이한영은 망명 후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이란 책을 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97년 2월 이한영은 북한이 파견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살아생전 이한영과 접촉했던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소장은 “최순호라고 노동당 사회문화부 거물급 공작원이 1명의 동료를 데리고 내려와서 분당의 아파트에서 이한영을 저격하고 다시 올라가 공화국 영웅칭호까지 받았다.”라고 말했다.
김평일의 누나인 김경진 역시 김광섭 오스트리아주재 북한대사의 부인으로 10년 넘게 오스트리아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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