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합의’…치욕적인 굴욕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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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소위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 명백히 규정되지 못했으며, ‘위안부 문제’가 세계 인권적인 사항으로 처리되지 못하고, 특히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외교부가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지난해 한일 국교수립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일 양국이 미래로 나가기 위해 ‘위안부 문제’를 논의했으나, 일본 측은 교묘한 논리로 ‘법적책임’을 피해나가고, 한국은 초심을 잃고 국제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 해야 하는 당위성에 밀려 일본 외교력에 의해 무력화 되고 말았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한국 정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 그날까지,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한마디로 ‘조용히 그녀들이 죽기만 기다렸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오늘날 한일 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글로벌 이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대 정부는 이를 외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기만해왔다. 과연 이들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성 진 취재부 기자>

한국 외교부는 지난 2014년 8월 6일 한 장의 보도자료(제14-534호)를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입장 발표에 대한 대변인 논평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는 <정부는 8.6(수) 나비 필레이(Navi Pillay)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사안(current issue)으로, 일본 정부에 포괄적이고 영구적인 해결책을 강구토록 권고한 것을 환영하며, 금번 발표는 여성인권에 대한 필레이 인권 최고대표의 신념과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이는 유엔내 인권 담당 최고위 인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권위 있는 입장을 발표한 것인바, 일본 정부가 유엔의 권고들을 수용하여 진정한 반성과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보도자료는 결론적으로 <정부는 앞으로도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분쟁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 등 국제사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히며 포괄적이 의미의 발표문을 통해 협상 내용을 시사했다.

피 맺힌 한 풀어준다던 약속 헌신짝처럼

불과 이번 위안부 회담 전 16개월 전에 한국 외교부가 국민에게 선언한 보도자료 <일본 정부가 유엔의 권고들을 수용하여 진정한 반성과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분쟁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 등 국제사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라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것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자신의 외교부가 국민에게 밝힌 지침을 잊어버린 것일가.
또 있다. 이번 외교부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2011년에 판결한 ‘위안부’ 지침도 따르지 않았다.
지난 2005년 8월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한인청구권조약 내용을 공개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일본의 법적책임’을 선언해 한국정부의 기본 방침이 되었는데, 이것은 정부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고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항의에 할 수 없이 정부가 인정한 것이었다.
특히 2005년 엠네스티가 노무현 정부에게 ‘위안부’와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책임 등 법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과 협상에 나서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청구를 하라고 권고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꿈쩍도 않았다.

화가 난 피해자 할머니들 109명은 2006년 7월 한국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느냐 되지 않았느냐를 두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입장이 갈려 있는데, 왜 한국정부는 청구권협정 제3조1항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이 조항에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간 분쟁은 외교상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해결되지 않는 분쟁은 제3의 중재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돼 있다.
결국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 절차로 나아가는 것만이 국가 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재량권 행사라 할 것이고,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해 청구인들에게 중대한 기본권의 침해를 초래했다 할 것이므로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가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윤영세 외교장관은 일본과 ‘위안부 문제’ 회담을 하면서 피해자들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는 것은 헌재 판결을 망각한 것이다.
만약 윤 장관이 위안부 할머니들과 회담 전에 만나서 “할머님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아파 하셨습니까. 이제 저는 할머님들의 피맺힌 한을 풀기 위해 회담장으로 갑니다.”라고 했다면,
일본의 아베 총리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더 이상 뻣뻣하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와 한마디 상의 없는 회담 실책

 ▲ 지난 2007 미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후 이용수 할머니가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까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태는, 한마디로 일본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상에서 마무리됐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은 이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따라서 일본의 사과와 보상이 남았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박정희 정부 당시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7년 7월 미국 하원(121 결의안 7월30일 통과)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캐나다 의회에 이어 유럽의회의 결의안 채택에 이르기까지 일본정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한목소리는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한국 국회도 이에 지난 2007년 10월 27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공식사과 및 배상 촉구 결의안’을 채택 하였으며, 특히 그해 10월 30일에는 UN인권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정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충분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조속히 강구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 1993년 3월 김영삼 정부는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조치’를 발표했다. “금전적 보상은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한국정부가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되, 일본정부는 진상 조사와 더불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후세에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8월 일본은 “위안소 설치ㆍ관리가 일본군에 의해 이뤄졌고, 위안부 모집ㆍ이송은 본인 의사에 반했다”는 내용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일명: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고노 담화를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 제기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 결정은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하기 전까지 한국정부의 기본방침이 됐다. 그래서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방일시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달라는 피해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이를 거론하지 않았다.
결국 2011년 8월 헌법재판소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국정부 입장도 바뀌었다. 그 해 9월 이명박 정부는 일본정부에 청구권협정 제3조1항에 따른 외교협의를 정식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어느 개별국가의 의회 차원을 넘어서서 범국가적, 범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갔다. 이것은 2차대전 당시 강제 동원 되어 성노예로 희생된 ‘위안부’ 여성들의 피해가 단지 ‘아시아 지역의 과거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데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부인은 역사적 정의에 대한 부정이며 인류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실에 대한 규명작업은 현재와 미래 세대 모두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이자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반 인권적 국제범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대표적인 반인권적 국제범죄로서 그에 대한 부각과 해결은 국제인권법의 이정표이자 시금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인권법의 발전은 일본과 독일의 침략과 잔학행위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극단적인 경시를 기초로 한 전통적인 국가우선주의 철학의 결과라는 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인권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인정되고 보장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유엔 인권 관련 제 조약의 체약국은 국제관습인권법에 대해서도 그 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개인에 대한 여러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과,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피해회복에 관련한 청구는 시효와 무관하다는 점이고, 그래서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인도에 반한 죄에 대해서는 이미 시제법의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던 점을 상기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시하에서 여성의 인권을 말살한 반인권적 국제범죄 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일본의 사법부 역시 위안부 문제의 핵심이 ‘법적인 평가’에 관련 된 것인 이상 일본의 재판소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주장하는 조약을 통한 법적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법의 본질인 정당성과 공정성을 도외 시한 채 형식적 합법성만을 주장하는 것으로 국제인권법의 토대로서의 법철학적 판단의 부재에 다름 아님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국제인권 관할기관인 UN인권이사회와 UN B규약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국제사회 공동규범으로서의 국제법은 전시하에서의 여성과 아동에 대한 보호를 불가침의 강행규범으로 승인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인류의 보편적 정의와 양심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통해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같은 국제적인 인식이 퍼져 있는데도 한국의 외교부는 지난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 (일본 내각이 승인한 사과) 및 법적 배상 (법적 책임을 인정 하는)”이라는 조건을 성의 없이 처리했다. 한편 일본은 ‘위안부’ 타결의 조건으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데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면 ‘소녀상 철거’라는 소리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해 가르치고, 유태인 누가 살았던 집이라는 동판을 만들어 그런 집 앞 보도블럭에 깔아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하고,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아이들을 견학시키는 오늘의 현실을 일본은 배워야 한다.
또한 세계적인 여성인권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하여 한국정부는 위안부 피해국가인 중국, 네델란드 필리핀 등등을 포함한 10개국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이번 회담에서 한일 간의 좁은 의미의 외교문제로 이를 축소, 폄하하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지금껏 해결되지 못했던 것은 한일 양국의 청구권협정 해석이 달라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불거진 건 1990년 1월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가 ‘정신대의 발자취’라는 취재기를 일간지에 연재하고,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는 사실을 공개 증언하면서부터다. 딱 25년 전이다. 그런데도 해결은 지지부진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 뭘 한 걸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ㆍ일 정부의 위안부 정책을 오래도록 연구한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상에 이 문제가 포함돼 이미 마무리 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이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따라서 일본의 사과와 보상이 남았다고 보고 있다. 한일청구권협상 자체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 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바뀌지 않는 이상, 어떤 정책이든 도루묵이란 얘기다.

김영삼 정부, 위안부문제 거론 않기로

실제로 역대 한국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불거진 이후, 피해자 실태조사와 이들의 생활안정 지원을 해왔다. 지원금은 점차적으로 늘었고, 최근엔 심리치료까지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전향적 태도를 이끌어내는 데는 죄다 실패했다.
역대 정부별로 추진한 정책들을 살펴보면 일단 노태우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자 1991년 9월 ‘정신대 실태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1992년 1월엔 피해자 신고전화(110번)를 설치해 실태조사에 나섰다. 피해자들에게는 생활안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일본 측에는 진상규명과 보상을 요구했다. 당시 미야자와 총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고 ‘일본정부의 관여’는 시인했지만, ‘모집과정의 강제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조치’를 발표했다. “금전적 보상은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한국정부가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되, 일본정부는 진상조사와 더불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후세에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8월 일본은 “위안소 설치ㆍ관리가 일본군에 의해 이뤄졌고, 위안부 모집ㆍ이송은 본인 의사에 반했다”는 내용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고노 담화를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 제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 결정은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하기 전까지 한국정부의 기본방침이 됐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이 방일 시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달라는 피해자들의 요청에도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이를 거론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1998년 1월 ‘아시아여성기금’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총리의 사과편지와 함께 기금을 지급한다는 언론광고를 냈을 때는 광고게재에 대한 항의와 함께 즉각적인 위로금 지급 중단을 요청했다. 일본의 민간기금은 일본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해 4월, 피해자들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금(일시불로 1인당 3150만원) 지급 결정을 내렸다.

두 정부 각기 다른 한일청구권협상 해석

노무현 정부도 김영삼 정부에서 발표한 입장을 유지하며, 공식적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8월 외교부 차원에서 1965년에 이뤄진 한일회담 문서를 전면 공개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정부가 다시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한일회담 문서공개 민관공동위원회’는 문서를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동포 문제, 원폭피해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따라서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근거해 2006년 7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09명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느냐 되지 않았느냐를 두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입장이 갈려 있는데, 왜 한국정부는 청구권협정 제3조1항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이 조항에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간 분쟁은 외교상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해결되지 않는 분쟁은 제3의 중재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돼 있다. 결국 2011년 8월 헌법재판소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국정부 입장도 바뀌었다. 그 해 9월 이명박 정부는 일본정부에 청구권협정 제3조1항에 따른 외교협의를 정식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0월 24일 한일의원연맹 대표단 접견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ㆍ일 관계정상화의 첫 단추”라고 언급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적극 제기했다. 사실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ㆍ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입장은 여전히 똑같다.
결국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앞서 헌재가 판결한 것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원론적인 얘기들만 주고받은 셈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어차피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다면 중재로 가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정확히 알리는 데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중재 역시 일본이 거부하면 도루묵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일본이 움직이도록 압박할 다양한 카드로 협상해야 한다는 얘기다.
(출처: 더스쿠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최종•불가역적’ 해결 및 소녀상 철거 문제 등으로 거센 후폭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번 협상이 일본보다 한국 정부에 더 큰 정치적 위험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9일, 이번 협상 결과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보다 더 격렬한 정치적 비난에 휩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생존해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번 협상에서 제외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점을 들며 이 같이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지난 29일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서울 연남동 정대협을 쉼터를 방문했을 때 이용수(88) 할머니가 “당신은 어느 나라 외교부냐”고 말하는 등 강하게 질타한 것을 주목했다.
또 이미 한국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윤병세 외교장관의 사퇴와 박 대통령의 사과 등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도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30일 오후 ‘최종•불가역적’ 해결이라고 마무리된 위안부 협상을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만 우리나라가 대통령 단임제를 취하고 있는 만큼,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 정도 정치적 위험은 감수할만한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제1야당은 당내 갈등을 거듭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은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인 점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반면에 아베 총리는 오히려 이번 협상으로 정치적 기반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뉴욕타임스는 긴조가쿠인대 혼다 마사토시 교수를 인용, 당장 보수층은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는 점 때문에 아베 총리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번 기회로 오히려 그동안 아베 총리를 지지하지 않던 중도 층은 아베 총리에게 표를 주게 될 것 이라고도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또 일본의 ‘법적인 책임’이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점 때문에 한국 언론도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로서 고통 받은 모든 여성들에게 사죄를 표명했으며 10억엔 규모의 기금을 창설하기로 했으며, 박 대통령은 이번 협상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밝혔다”고 밝혔다.
이어뉴욕타임스는 “아베 총리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책임을 인정했으며,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많이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10억엔 규모의 기금을 일본 정부가 어떻게 규정하던 간에 이 기금이 창설되는 이유만큼은 명확하다”면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를 비난하지 않았다.
한편 지난 28일 한일 외무정상 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는 타결됐지만, 일본 정부가 출연하기로 한 10억엔 규모의 기금에 대해 일본 정부 “국가 배상은 아니다”라고 강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면서 법적 책임이나 배상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을 견지해왔다.
아울러 이번 위안부 협상이 미국의 환영을 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를 계기로 한미일 3국 공조체계를 굳건히 해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28일 영국 가디언도 “한일의 역사적인 합의는 미국의 성공”이라는 분석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위안부 문제는 훨씬 오래 전에 해결돼야 했다”면서도 “그것은 아베 총리의 전적인 잘못은 아니다”면서 일본 측을 감싸는 뉘앙스였다. 뉴욕타임스 원문은 “The fact that it was not largely the fault of Mr. Abe…”로, 번역하면 “그것은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며 역사를 다시 쓰려한 아베 총리와 그의 우파 정치인들의 전적인 잘못은 아니다”라는 내용이다.
한편 미국의 여성학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뉴욕타임스와 우리나라 정부를 함께 질타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일 미국 델라웨어 대학(University of Delaware)의 마가렛 스테츠 (MARGARET D. STETZ) 여성학 교수는 뉴욕타임스의 위안부 관련 보도에 관한 오류를 기고했다.
그녀는 뉴욕타임스가 당시 위안부 피해자를 ‘성인 여성’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끌고 간 성 노예 피해자들은 초경도 하지 않는 어린 소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쟁터에 끌려가 수없이 성폭행을 당한 소녀들을 일본과 외신들이 외면한다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정의 실현은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정말 부끄럽고 위안부 할머님들께 죄송하다”, “분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며칠 전 우리나라와 일본의 위안부 협상에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스테츠 교수는 2001년 출간된 위안부의 실상을 신랄하게 파헤친 <2차대전 위안부의 유산>의 공동저자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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