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 당’은 흡사 새누리당 2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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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주도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이른바 ‘국민의 당’이 출범 초기부터 삐거덕 대고 있다. 정치개혁을 하겠다며 제1야당을 깨며 나온 그의 주변에 과연 새정치를 함께 할 정치인들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 당의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한상진 교수와 윤여준 전 장관 그리고 김한길 의원 정도로 꼽힌다. 이들에게 힘을 더하고 있는 세력은 호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과거 민주당 세력이다. 여기에 구태 상징인 박지원 의원까지 합류할 예정으로 알려져 국민들은 고개를 절래 흔들고 있을 정도다. 이런 면면들을 살펴보면 과연 이들이 정치개혁의 적임자인지 물음표가 달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대표는 이미 공동대표로 당을 꾸려온 경험이 있던 사람들인데, 당권까지 쥐고도 정치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과연 외부에서 이를 이뤄낼지도 의문이다. 여기에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에서 일했던 인물들도 합류한 것을 보면, 이는 새정치를 위한 ‘헤쳐모여’가 아니라 지역주의 기대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구태정치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14년 4월 16일 수 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가는 여객선이 진도 앞에서 침몰해 300명의 승객이 바다에 빠져 사망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세월호 참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지방선거가 불과 두 달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해 그야말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역할을 했다. 특히 집권 2년차였던 박근혜 정부에게는 악재였고, 선거를 준비하는 새누리당에게도 치명타가 됐다.
반대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정치적 지형이 마련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김한길 의원과 안철수 의원 두 명이었다. 김한길 의원은 2013년 5월 4일 전당대회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친노 책임론’과 ‘세력교체론’을 등에 업고 압도적 표 차로 제1 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에 당선됐다. 김 의원은 안으로는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당을 재건하고, 밖으로는 야권내 경쟁자로 떠오른 ‘안풍(안철수바람)’ 차단이라는 숙제를 안고 출범했다. 하지만 김한길 체제는 ‘국회의원 127석’을 가진 거대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다가 여론의 비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김 의원은 기초선거 무(無)공천을 고리로 신당을 창당 중이던 안 의원과의 통합을 전격적으로 성사시키면서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야권 분열을 막으면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1차 과제를 해결했고, 안 의원과 투톱 체제를 이뤄 명실상부한 신주류 세력으로 부상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듯했다.

하지만 신당 출범 후 김 의원의 리더십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통합의 고리였던 기초선거 무공천 당론은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시달렸고, 김 의원은 당원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정면돌파하려 했으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한 채 좌절을 겪었다. 기초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는 두 차례의 의원 전수 조사와 국민 여론조사까지 벌이면서도 반발 세력에 끌려 다니며 당론을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과 무기력함을 또 한 번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지방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서도 구 민주당 출신과 안 의원과의 갈등이 계속 불거져 당의 화학적 결합에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내부 논란 때문에 통합 이후 기대했던 당 지지도는 통합 초기 반짝 반등했다가 이후 계속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더욱이 최근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도 박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 급락의 반사이익을 얻지 못한 바 있다.

무기력했던 안철수-김한길 투톱 체제

공동대표였던 안철수 의원도 비슷했다. 그는 평소 바른말을 잘 한다는 모습은 당 대표가 된 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민감한 시기에 잘못 말했다가 김 대표처럼 욕을 뒤집어쓰기보다는 아예 입을 닫아 ‘중간’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자기 사람인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하면서 분란만 일으켰다. 김 대표의 오락가락 언행과 안 대표의 침묵과 이기적 행동은 그야말로 무능력한 제1야당의 자화상이었다.
게다가 재미교포 출신인 김한길이 과연 개인적으로도 어떤 인물인지는 이미 본지에서 몇 차례 다룬 바 있다. 그런 그가 자꾸 새정치를 부르짖는 것은 본국 정치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일단 안 의원과 창당 작업을 주도하는 측근을 보면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눈에 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낸 두 인사 정용화 호남미래연대과 이태규 전 비서관이 우선적으로 합류했다. 거대 여당을 무너뜨리고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그가 새누리당 인사들을 영입하는 것이 과연 정체성에 맞느냐는 점에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그랬던 두 사람이 당권을 문재인 대표에게 넘겨준 후 불과 1년 만에 당을 뛰쳐나와 새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신뢰도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내건 ‘새 정치실험’이 실패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그런 탓에 “밖에서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께 보답하겠다”는 탈당의 변은 믿음을 주기 어렵다. ‘철수 정치’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안철수는 포기와 뒷걸음질을 거듭했다. 서울시장과 대선후보 사퇴, 신당 창당 포기에 이어 네 번째다. 자신은 통 큰 양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줬고, 곁을 떠난 인물도 여럿이다. 정치판에 들어와 보여준 것이라고는 헛발질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이 함께 새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새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3년 동안 안 됐던 일들을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이름까지 거론되면서 논란은 점차 커지고 있다. 부산 출생인 박 사무총장은 대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아대 교수를 거쳐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공동대변인직을 수행했으며, 이명박정부 집권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관, 정무수석, 사회특별보좌관 등을 지낸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제일 코미디는 박지원 합류

안철수 신당 행보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구 민주당 세력의 합류다. 박지원 의원은 과거 동교동계 핵심인물로 민주당에서 가장 구태 정치인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가 안철수 신당의 합류를 감안하고 새정치를 한다고 하니 안철수 신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당장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이나 참신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1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안철수, 부패척결 강조에도 창당발기인 일부 ‘부패전력’”이라며 “딜레마죠. 안철수는 새정치를 외치나, 그 당의 실제 동력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기득권 세력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지금 눈앞에서 돌아가는 이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상황을 거의 초인적 인내로 지켜보는 것은 그래도 그 지역의 특정한 정서에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인데 그게 고작 저 수준이라면 정말 절망적일 정도로 한심한 일이죠”라고 밝혔다. 진 교수는 “문제는 저렇게 자기 명의가 아니라 ‘호남’의 이름을 걸고 바바리맨처럼 적나라하게 원초적 지역감정을 드러내면, 저 자만이 아니라 애먼 호남 사람들이 덤터기로 욕을 먹게 되죠”라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현재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기소된 상황이다. 그런데 박 의원이 기소된 과정이 특이하다. 박 의원은 2011년 7월 ‘이영수 KMDC 회장이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으로부터 24억원을 받아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현 경남도지사)에게 전달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이번에는 박지원 의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법원이 그를 기소한 것. 자기가 우 전 의원을 시켜 놓은 덫에 자기가 걸린 셈이다.이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박 의원이 아니라 우제창 전 민주당 의원이었다. 그런데 왜 우 전 의원이 아닌 박 의원이 기소됐을까. 우 전 의원은 의혹을 제기한 후 이 회장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그리고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에 실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놓이자 우 전 의원은 이 회장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고소를 취하할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에게 지시를 받아 의혹을 제기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당시 저축은행 진상조사위 통합민주당 간사였던 우 전 의원은 박 의원의 제의를 받고 성명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이 회장 관련 의혹을 공표했다.

박 의원은 지난 12월과 1월 11일 열린 두 차례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공판에 참석한 이 회장은 “2011년 7월 박 의원이 우제창 전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5차례 방문해 화를 내며 ‘이 회장이 홍준표 의원에게 24억원을 전달했다. 그 돈이 2010년과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사용됐다는 제보를 받았으니 파헤쳐보라’고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우 의원으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2013년 5월 우 전 의원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 과정에서 우 전 의원이 제출한 진술서에 이같은 내용이 담겨있었다”며 “진술서를 작성하기 열흘 전 쯤 3차례 만나 고소 취하를 부탁하며 사과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또 우 전 의원이 박 의원의 압박에 못 이겨 사실에 대한 확인 없이 의혹을 공표한 것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박 의원에 따르면 이 진술서에는 ‘박지원 의원’이라는 표현 대신 ‘원내대표’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박 의원은 해당 시점에 자신이 원내대표가 아니었던 만큼 이같은 의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이날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지금도 사람들이 예우차원에서 저를 박지원 대표라고 부르기는 합니다만, 지칭은 할 수 있어도 서류상으로 원내대표라고 쓸 수 있겠냐”고 반박했다. 박 의원은 또 “증인은 제가 우 의원실로 직접 5회 찾아갔다고 했는데, 통상적으로 정치권에서 원내대표가 의원실로 찾아갑니까, 원내대표실로 후배 의원을 부릅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이 회장은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원내대표가 직접 찾아와 더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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