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유물 중재재판 극적 합의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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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인국민회 유물의 한국 이전여부를 두고 지난 3년 동안 심각한 논쟁을 벌인 소위 ‘다락방’ 유물 보전에 대한 법적 소송이, 새해 벽두에 아름다운 결실로 마무리 되어 오는 2월1일 대한인국민회 107주년 창립기념일을 앞두고 동포사회 화합과 발전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지난 15일 LA다운타운 중재기관 JAMS에서 존 마예다 은퇴 판사(Hon. Jon Mayeda)중재로 열린 심리에서 원고 (한국 문화 회관, 흥사단, 한미역사보존회, 서동성 변호사)와 피고(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국민회 기념재단) 측은 미주한인이민사회의 중요한 유산인 국민회 ‘다락방 유물’을 책임 있게 보존하여 미주한인 사회와 조국 대한민국에도 이익이 되기 위한 합의서(별첨 참조)에 서명했다. 이날 이루어진 합의서에 대해 존 마예다 판사는 “미주한인사회의 얼이 담긴 유물 보전을 위해 관련 기관  단체들이 커뮤니티의 발전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합의를 도출한 것에 심심한 감사를 느낀다”고 밝혔다. 한편 유물을 보관해왔던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의 박일영 담임목사는 축복기도를 통해 “오늘의 합의로 그동안 마음 아파했던 아픔을 치유하게 되어 감사한다”면서 “이번 합의를 계기로 동포사회의 단합 과 단결을 도모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선조들의 유산 보존과 기념에 만전을 기하자”고 기도 했다. 국민회기념재단의 권영신 이사장은 “오늘 우리는 미주이민사에 또 하나 새로운 발전을 이룩했다” 면서 “우리는 올해 3.1절 행사를 뜻 깊게 기념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 했다. 원고 측의 서동성 변호사는 “원래 유물의 보존처리가 시급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니만큼 양측이 합심해 유물 보존에 합의를 도출한 것에 크게 환영한다”고 말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이날 중재는 중재재판을 다루는LA 다운타운 JAMS (555 S. 5th Street LA, CA 90013) 제 18호실에서 존 마예다(Hon. Jon Mayeda) 은퇴 판사주재로 원고 측 던칸 리 변호사와 서동성 변호사, 흥사단, 한국문화회관, 한미역사보존회 대표자들과 피고 측 데니스 장 변호사와 나성한인연합 장로교회, 국민회관기념재단 측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중재 진행은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되어 오후 4시에 종결됐다.
이날 담당 존 마예다 판사는 중재심리에 앞서 인사말에서 ‘남가주한인사회가 매우 역동적인 커뮤니티로 알고 있다’면서 ‘오늘의 심리는 미주한인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라고 전제 하면서 ‘이 문제를 결심하기 위해 중재(arbitration)보다는 조정(Mediation) 쪽으로 하여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서 양측의 이해와 노력을 당부했다.

이어 원고 측은 18호실, 피고 측은 19호실로 나뉘어 담당 판사로 부터 심리를 받았다.
존 마예다 판사는 18호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우선 30분 동안 원고 측의 던칸 리 변호사로부터 중재 심판을 청구하게 된 동기를 청취했다. 원고 측 던컨 리 변호사는 법정소송에 대하여 “LA동포사회가 반대하는 국민회 유물의 불법적인 한국 위탁을 중지시켜 달라는 요청과 유물에 대해 한인사회가 주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는 신청’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원고 측의 고문 변호인인 서동성 변호사는 “현재 피고 측의 주장은 자신들이 유물을 10년 이상 보관하고 있어 실질적 주인이라고 주장했으며, 또한 국민회관 자체 건물이 교회 소속 건물이기에 그 건물에서 발견된 유물은 당연히 교회가 주인이라는 주장이다”면서 “이 같은 교회 측 주장은 1984년 캘리포니아법원에서 판결한 국민회관 관련 내용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서동성 변호사로부터 동기에 대한 배경 설명도 청취했다.  던칸 리 변호사는 국민회 유물은 미주한인이민사의 귀중한 역사자료로 이를 보관하고 있는 피고측이 보존처리 보다는 한국으로 이전시키려하기에 이를 1984년 캘리포니아법원의  판결 정신에 의거 원상태로  우선 미국에서 보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반 양측 주장 팽팽

마예다 판사는 19호실로 가서 피고 측의 의견을 청취했다. 피고 측은 ‘캘리포니아법원이  1984년에 판결한 내용은 2002년 이전에 국민회관에 있던 유물에 대한 판결이다’면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유물은 2003년에 발견된 것이기에, 캘리포니아법정이 1984년에 판결한 결정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의 증거로 피고 측은 국민회관 사진,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구건물과 신건물 사진과 보관된 유물 장소 사진 등을 제시했다. 마예다 판사는 오전 11시55분에 다시 18호실에 와서 피고 측이 제시한 증거물에 대한 원고 측의 대응 내용을 청취했다.
원고 측은 국민회관에서 2003년에 발견된 유물 자체도 원래 국민회의 유물이기에 1984년 캘리포니아 법원 판결에 당연히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유물은 2002년 이전의 국민회 유물과 같은 종류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흥사단의 임원인 안재훈 전 위원장과 신창균 단원의 증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증언을 청취한 마예다 판사는 양측 변호사와 함께 합의점 모색을 위한 3자 회의를 가졌다.
오후 1시 30분 원고 측 변호사는 피고 측이 유물을 USC로 보내자는 원고 측 제안을 반대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오후 2시5분 마예다 판사는 18호실에 들어와 원고 측에게 ‘상대방은 보존처리를 위해 USC로 유물을 보내자는 안을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면서 ‘상대방 변호사가 제의를 했어도 자기편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후 2시 30분에 피고 측 데니스 장 변호사는 ‘다시 한 번 피고 측에게 USC로 일단 보내는 사안을 제기하고 그다음에 한국으로 보내는 안을 제안 하겠다’고 밝혔다.
오후 2시 40분 원고 측도 최종적으로 ‘일단 USC로 보내고 보존처리한 다음에는 한국에 대여(Loan) 형식으로 보내는 것은 동의할 수 있다’고 의견을 통합했다.
오후 2시 45분 마예다 판사가 18호실에 입장하여 원고 측의 합의사항을 청취한 다음, 피고 측을 18호실로 초치하였다.
마예다 판사는 양측이 모인 자리에서 피고 측 데니스 장 변호사에게 합의문 초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 USC도서관                             ▲ 독립기념관

오후 심리에서 합의 접근

 

 

데니스 장 변호사는 기본적인 3가지 안을 제시하였다. 1) 유물을 USC에서 보존처리한다. 2) 본처리가 끝나면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대여한다. 3) 남가주에 한미박물관이 건립되면 유물을 다시 박물관으로 반환한다.
이 같은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양측에서 각 2명을 선정하여 4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집행하도록 한다는 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하여 피고 측의 박일영 목사는 ‘4인보다는 각 측에서 3인을 선정해 6인 위원회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의 던칸 리 변호사는 ‘4인 위원회가 6인 위원회보다 의결의 신속성이 있으니 4인으로 하자’면서 ‘피고 측이 두 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니 3명보다 2인을 선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며 4명위원회 원안을 제안했다.
피고 측의 권영신 이사장이 박 목사에게 ‘4인 위원회로 구성하도록 하자’고 동의를 구하자, 박 목사 도 ‘좋다’고 동의를 표명해 4인 위원회로 확정했다.
한편 원고 측 서동성 변호사는 보존처리 후 독립기념관으로 대여할시 확고한 반환의사를 표명하는 ‘Letter of Intent’를 통해 구체적인 이전과 반화 조항을 규정할 것을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피고측 권영신 이사장은 ‘필요하다면 독립기념관 이외에 보훈처와 LA총영사관이 보증을 서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원고측의 던칸 리 변호사는 ‘만약 이를 불이행시 캘리포니아법에 따라 법적인 제재를 당할 수 있는 규정을 삽입하자’고 제의했다. 피고 측의 최영호 장로는 ‘USC에서 보존처리 기간을 3개월이라고 했다’면서 ‘기간을 규정에 삽입하자’고 제안했으나, 원고 측 던칸 리 변호사는 ‘USC보존처리 기간은 법적으로 규정된바 없다’면서 ‘이 문제도 4인 위원회에서 처리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오후 3시 20분 논의된 합의사항을 양측 변호사가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마예다 판사는 ‘양측이 대체적인 합의를 이룬 점에 감사하며, 이 같은 합의가 한인 커뮤니티에 혜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오늘의 합의과정에서 논의된 사항에서 오해가 없도록 각자가 유의해주도록 부탁한다’며 ‘합의사항에는 기본적인 3가지로 규정했다’면서 합의서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일시 휴정을 선언했다.

 

 ▲ 중재재판을 끝낸 원고와 피고 측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후 4시 합의서 서명

 

 

오후 4시에 양측 변호사가 합의서 초안을 작성하여 원고 측과 피고 측 당사자들에게 최종 검토를 위해 배포했다. 양측 참가자들 초안을 검토하고 전원이 동의를 표명하였다. 이에 양측 변호사들은 최종 합의서(안)를 다시 정리하여, 원고 측과 피고 측 참석 당사자들의 서명을 받았다.
오후 4시15분 마예다 판사는 ‘합의서는 캘리포니아주법에 따라 최종적으로 LA카운티법원에 60일이 내 접수시켜 캘리포니아주 민사법 664.6에 의거 효력을 발생토록 할 것’을 설명하고 중재 재판을 종료하였다.
이어 박일영 목사는 “우리가 다투지 않고 마예다 판사님과 변호사님들의 인도로 아름다운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이 합의로 양측에 복을 주시어 영원토록 합의사항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도와 주소서”라고 간절한 기도에 양측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마예다 판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캘리포니아 법원은 1984년 6월 22일 잭 크리카드 판사의 선고문(사건번호 C297-554)에서 “국민회 유물은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의 유산이기에 향후 99년간 일체 외부로 반출, 이전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같은 판결은 국민회관 건물이 비록 나성한인장로교회가 구입했더라도 그 건물의 소유권과는 관계없이 국민회의 유물은 캘리포니아 한인사회 유산이며 재산 (Properties) 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대한인국민회는 1979년 해산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일체의 유물을 흥사단에게 위임한다’고 흥사단과 합의 체결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03년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국민회관복원위원회(위원장 홍명기)가 구성되어 역사적인 복원사업에 들어갔다. 복원작업 중 국민회관 다락방에서 유물이 발견되어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로 임시 보관되었다.
그 후 국민회관이 2003년 12월 9일에 복원 개관식을 거행 후, 2004년에 이를 보전하기 위해 국민 회관 기념재단이 창설됐다.
이후 국민회 ‘다락방 유물’은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와 국민회관기념재단의 공동 관리를 해오다가 2013년7월19일 국민회관 기념재단 이사회에서 국민회 유물을 조건부 위탁관리로 한국 이전을  결의하면서 동포사회에서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 또는 “미주에서 보존해야 한다”로 크게 논쟁을 벌이게 되면서 끝내 2014년 법적 소송에 이르게 되었다.
이날 합의를 도출한 양측은 1월 21일 중 동포사회를 위한 기자회견을 국민회관기념관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대한인국민회 ‘유물’ 보존 문제를 법원에 제기된 사안(사건번호 bc563614)에 대하여 양측은 2016년 1월 15일 JAMS 제 18호실에서 존 마예다 판사(은퇴)의 중재로 아래 사항을 이행하기로 합의 하고, 이를 확약하기 위해 서명을 한다.

➊ 국민회 ‘다락방 유물’은 일단 2014년 10월 21일 USC 대학 동아시아도서관장이 유물 보존처리를 약속한 이행서에 의거, 유물은 USC로 이관한다.
➋ USC에서 유물 보존처리가 완성되면, 한국 독립기념관에 ‘대여’ 조건과 기타 명기한 조건으로 한국으로 보낸다. 비용은 독립기념관측이 부담한다.
➌ 그 후 남가주에서 한미박물관이 완공되면, 독립기념관에 ‘대여’한 유물은 다시 미국으로 반환되어 한미박물과에 영구 전시 보존된다.

부대조건

➊ 위의 사항은 집행 운영하기 위해 양측에서 각각 2명의 대표가 선임하여 ‘4인운영 위원회’(steering committee)를 구성한다.
➋ 만약 위의 사항을 위반할시는 캘리포니아주법이 규정한 바에 따른 법적 처리를 실시한다.

■ 1978년 9월20일 국민회관건물을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당시 담임 우상범 목사)에 매각

■ 1984년 6월22일: 캘리포니아법원 잭 크리카드 판사의 선고문(사건번호 C 297-554)에서 “대한인 국민회 유물은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의 유산이기에 향후 99년간 일체 외부로 반출, 이전할 수 없다”고 판결

■ 1989년 5월 1일: 대한인국민회는 해산하면서 일체의 유물관리를 흥사단에 위임

■ 1994년 7월 25일: LA시의회, 국민회관을  LA시 역사문화재 제 548호로 지정

■ 2003년
6월: 국민회관 복원 공사. 국민회관을 복원과정에서 ‘다락방’에서 유물 2만 여점 발견
12월 9일: 국민회관 복원 기념 대회

■ 2004년 11월30일: 대한인국민회관 기념재단 발족

■ 2011년 :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유물을 보훈처를 통해 독립기념관으로 보내기로 당회
결정했으나 동포사회 거부 운동으로 무산

■ 2013년
4월9일:  국민회 기념재단 이사회에서 국민회 유물 독립기념관 위탁안건 심의
7월19일: 국민회관 기념재단 이사회에서 국민회 유물을 조건부 위탁관리로 한국 이전 결의
8월9일: 국민회관 기념재단 이사회에서 유물 한국 이송 시기 논의

■ 2014년
5월3일: 국민회기념재단, 서울에서 보훈처와 유물 처리 문제 논의
6월: 한인사회 일부 단체들 국민회 유물 한국 이송 반대 표명
7월21일: usc 한국전통도서관, 국민회 유물 미주보존을 위한 지원 제안
8월2일: (가칭)대한인국민회유물 반출반대 한인비상대책위원회 결성
9월4일: LA한인회관에서 국민회 유물공청회에서 21명 발언자 전원 ‘유물 한국이전 반대’ 발언
11월12일: 한국문화회관, 한미역사보존회, 서동성 등이 LA카운티민사법원에 나성한인연합장로 교회 및 국민회관기념재단을 상대로 제소

■ 2015년
1월10일: 국민회 유물 소송에 흥사단 원고로 참가
3월25일: 독립기념관 ‘유물 일부 반입은 ‘합의서’에 의거라고 주장
4월5일: 잔 서 전 국민회관기념재단 이사장, ‘독립기념관 유물 불법 반출’ 폭로

■ 2016년
1월5일: LA카운티 민사법원 피고 측 최종증언 제출
1월12일: 원고 측 최종증언 제출
1월14일: 피고 측 기각요청에 대해 판사는 이를 거부.
1월15일: 중재 재판관 존 마예다 판사(Ret. Judge Jon Mayeda)의 중재로 합의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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