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언론인 안치용기고]박대통령시해관련 미국무부 비밀전문 단독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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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피격 뒤 수도통합병원 아닌
미국인 병원으로 먼저 후송됐었다’ [최규하]

■ 정부 ‘10.26사건 미국배후설-반미감정의식’ 전후 사실 숨긴 듯
■ 최규하, 10월 27일 글라이스틴대사에 시해사건 사태관계 설명
■ ‘군병원후송’ 정부발표 30분 뒤 최규하는 ‘미국인병원후송’주장

최규하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피격된 뒤 국국통합병원이 아니라 미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먼저 후송됐다는 사실이 미국무부 비밀전문을 통해 밝혀졌다. 본보가 단독으로 입수한 미국무부 비밀전문에 따르면 최규하 전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에게 알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정부는 박대통령이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병원 도착 직전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단 한 번도 국군통합병원 후송 전 미국병원에 먼저 후송됐다는 설은 없었다. 박대통령이 피격 뒤 미국병원으로 후송됐으며 특히 이 같은 주장을 한 사람이 최규하 전대통령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시 써야할 정도의 충격적 내용이다. 특히 박대통령 시해에 미국이 개입됐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이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 비밀전문이 밝혀짐으로써 대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37년만에 해제된 미국무부 2급 비밀전문을 입수해 당시 상황을 최초로 공개해 본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본보가 단독입수한 미국무부 비밀전문은 박대통령 시해 다음날인 주루타임[ZULU TIME]으로 1979년 10월 27일 02시 21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가 국부부장관에게 보고한 것이다. 전문번호 ‘16336’, 비밀등급 SECRET, 2급비밀로 분류된 이 비밀전문의 제목은 ‘주한미대사와 대통령권한대행과의 통화’였다. 주루타임은 그리니치 표준시를 말함으로 한국시간은 주루타임에 9시간을 더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전문은 한국시간 10월 27일 오전 11시 21분 발송된 것이다.

모두 12개항으로 구성된 이 전문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시간 오전 8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과 통화해서 각별한 조의를 표했다. 통화직전 라디오를 통해 서거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이때 글라이스틴대사에게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최전대통령은 ‘10월 26일 오후 6시부터 중앙정보부가 운영하는 청와대 인근의 식당에서 박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이 만찬을 시작했다. 만찬석상에서 김재규와 차지철이 다투기 시작했고 박대통령은 이를 말리려고 했다. 오후 7시 30분쯤 김재규는 총을 뽑아 차지철에게 발사했고, 대통령에게도 총을 발사했다.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만찬장에 불이 꺼졌고 김계원을 불을 켜라고 소리를 쳤으며 불이 켜졌을 때 박대통령과 차지철은 이미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국군통합병원 아닌 미국인 병원에 후송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이 전문의 제4항이다. ‘부상을 당하지 않은 김계원은 박대통령을 대통령 전용차에 태워 (만찬장의) 근처에 있는 미국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옮겼고 7시 55분 병원에 도착했다. 비서실장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다시 심장이 뛰지 않았고, 비서실장은 박대통령이 병원도착 약 5분전에 죽었다고 추정했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까지 박대통령은 피격직후 김계원에 의해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정부공식발표임을 감안하면 박대통령이 미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먼저 후송됐다는 최전대통령의 설명은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 글라이스틴-최규하통화 미국무부 비밀전문 : ‘김계원 비서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미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근처병원으로 후송했고 오후 7시 55분 병원에 도착했다’

▲ 글라이스틴-최규하통화 미국무부 비밀전문 : ‘김계원 비서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미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근처병원으로 후송했고 오후 7시 55분 병원에 도착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한 일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 26일 저녁 7시 50분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식당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으로 서거했다. 김성진 문공부장관은 27일 상오 7시 23분 중앙청 기자실에 나와 박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했다’고 전한 뒤 김장관 발표전문을 실었다. 당시 김장관은 ‘박정희대통령께서는 26일 저녁 6시경 시내 궁정동소재 중앙정보부식당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하시어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만찬을 드시는 도중에 김정보부장과 차경호실장간에 우발적인 충돌사태가 야기되어 김중앙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으로 26일 저녁 7시50분 서거하셨습니다, 박대통령께서는 총탄을 맞으신 직후 김비서실장에 의해 급거 군서울병원에 이송됐으나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운명하신 것으로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차경호실장을 포함한 5명이 사망했으며 김정보부장은 계엄군에 의해 구속, 조사받고 있습니다.’고 발표했다.

최규하가 직접 박대통령 시신확인

정부공식발표에 따르면 박대통령은 미국인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라 군서울병원으로 후송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정부는 여러 차례 박대통령은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발표했고 이는 불변의 사실이 됐다.
‘제5공화국’등 드라마에서도 박대통령이 10월 26일 7시59분 국군통합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묘사된다. 김계원 비서실장도 박대통령을 군서울병원 즉, 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겼다고 진술했었다. 그러나 최대통령의 주장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 현장검증에서 박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 현장검증에서 박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대통령은 박대통령이 어디로 후송됐는지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10월 26일 당일 밤, 최대통령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이 유고라며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유고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계원이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했다고 밝혔고 최대통령은 박대통령이 사망했음을 반드시 확인해야 계염령을 선포할 수 있다며 일부 장관들과 함께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직접 방문한 장본인이다. 이때 최대통령이 자신의 눈으로 박대통령 사망사실을 확인하고 국무회의를 통해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 게엄령을 선포했다. 따라서 최대통령은 적어도 박대통령의 시신을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확인했던 것이다.

또 김성진 장관의 발표시간은 10월 26일 오전 7시23분께이며, 최대통령이 글라이스틴대사와 통화를 한 시간은 약 30여분 뒤인 오전 8시께이다. 최대통령은 불과 30여분전 정부공식발표와도 다른 견해를 제시했던 것이다. 최대통령이 문공부장관의 세세한 업무내용까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대통령 성격상 적어도 정부발표문에 들어갈 중요한 팩트는 확인했을 것이다. 사망경위, 사망시간, 후송병원 등이다. 따라서 최대통령은 정부에서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발표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글라이스틴 대사에게는 박대통령이 미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후송됐다며 전혀 다른 말을 한 것이다.

더구나 이 말을 한 사람은 장삼이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규하 전 대통령이며, 주한미국대사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한국과 가장 중요한 우방관계인 미국대사에게 허튼 말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또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착각을 했을 리 만무하다.

김계원이 미국인 병원으로 후송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박대통령은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되기 전 김계원 비서실장에 의해 살해현장인 궁정동 만찬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미국인의사 운영병원으로 후송됐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김계원은 긴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을 살리기 위해 가까운 병원부터 찾았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인지조차 몰랐을 가능성도 크다. 이른바 생명을 구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다

인권을 표방하는 카터미국대통령이 박대통령의 철권통치에 반대한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상태였음을 감안, 정부가 박대통령을 미국인병원으로 먼저 후송했다고 밝힌다면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만약 당시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됐다면 박정희 시해사건과 미국이 관련이 있건 없건 간에 반미감정이 들불처럼 번졌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깊이 고려돼 박대통령이 미국인 병원으로 후송된 사실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박대통령을 병원으로 후송한 김계원 전 비서실장등은 아직 생존해 있기에 반듯이 역사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밀전문에서 최대통령은 글라이스틴대사로 부터 우발적 사건인지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현시점에서 단순한 말다툼에 화가 나서 발생한 사건인지, 음모에 의한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대통령은 ‘10월 26일 오후 11시 15분 국무회의를 소집,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을 결의했으며, 제주도를 제외한 것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전권이 군부통제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글라이스틴대사는 ‘나는 자정쯤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음을 알았고, 새벽 2시쯤 상세한 상황을 알레 됐다’고 말하며 ‘미국은 어려운 시기에 문민정부를 이끌어 가기 위한 최대통령의 노력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사의를 표한 것으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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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스틴-전두환 면담 미국무부 비밀전문 [크라이스틴대사]

『신군부, 최소한 10일정도의 계획을 세운 뒤
액션을 취하겠다고 메시지를 주고는 아무런
신호도 없이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진행했다』

전두환과 글라이스틴의 역사적 대면

본보가 입수한 또 다른 비밀전문에는 미국이 정승화를 통해 전두환을 체포하려 한다고 전대통령이 미국 측에 강하게 항의한 것은 물론 신군부와 미국사이에 모종이 협약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은 12‧12사태 직후의 글라이스틴과 전두환의 면담관련 비밀전문으로. 12‧12사태를 기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고 명실상부한 권력자로 등장한 전두환 전대통령과 글라이스틴 미국대사와의 역사적 대면이었다. 그동안 이 전문은 1993년께 전문의 대부분의 가려진채 일부만 공개됐지만 이번에 본보가 입수한 전문은 삭제된 부분이 하나도 없이 그날의 만남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왼쪽) 글라이스틴-전두환 면담 미국무부 비밀전문 : ‘전두환이 미국이 정승화를 시켜 자신을 체포하려 했음을 알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두환이 미국배후설, 김재규 감형압력등에 대한 끊임없는 소문을 무마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 글라이스틴-전두환 면담 미국무부 비밀전문 : ‘그룹[신군부]이 최소한 10일정도 계획을 세운뒤 액션을 취하겠다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도 전두환은 계획의 아무런 신호도 없이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진행했다 .

▲(왼쪽) 글라이스틴-전두환 면담 미국무부 비밀전문 : ‘전두환이 미국이 정승화를 시켜 자신을 체포하려 했음을 알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두환이 미국배후설, 김재규 감형압력등에 대한 끊임없는 소문을 무마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 글라이스틴-전두환 면담 미국무부 비밀전문 : ‘그룹[신군부]이 최소한 10일정도 계획을 세운뒤 액션을 취하겠다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고도 전두환은 계획의 아무런 신호도 없이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진행했다 .

이 전문은 1979년 12월 15일 글라이스틴대사가 국무부에 보고한 것으로, 전문번호는 서울 18885, 비밀등급은 2급비밀 [SECRET], 제목은 ‘코리아포커스 – 전두환과의 토론’이라고 돼 있다. 글라이스틴대사와 전두환은 12월14일 오후 중구 정동의 주미대사관저에서 만났다. 하비브대사가 지어 하비브하우스라고 알려진 대형한옥이다.
이날 대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전두환이 글라이스틴대사에게 박대통령시해사건의 미국배후설을 주장하며 강하게 압박했다는 점이다. 모두 12개항으로 된 이 전문의 11항에 바로 이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으며 특히 이 부분 중 많은 내용은 1993년 공개돼 삭제돼 있던 부분이다. 이 전문에 따르면 ‘전두환은 미국측이 정승화를 시켜서 자신을 체포하려고 한 사실을 알고 있다. 또 미국이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연관돼 있으며 김재규의 형량을 낮추려 한다는 소문이 끝없이 나돌고 있으며 전씨 자신이 이 같은 소문을 진정시키기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다. 1993년 전문에 정승화 등의 이름은 모두 삭제돼 있었다. 또 미국이 김재규의 형량을 낮추려 한다는 부분도 일부 삭제돼 있던 것이다. 즉 전두환은 미국이 정승화를 시켜서 자신을 체포하려 하지 않았느냐 압박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미국연관설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공치사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은 박대통령시해사건이나 김재규 형량을 줄이려는 시도 등에 전혀 관련돼 있지 않다고 단호하고 강력하게 말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두환, 미국이 정승화시켜 체포시도 주장

또 4항에서는 신군부와 미국 간에 일종의 신사협정이 있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유발시키는 대목이 나타난다. 글라이스틴대사는 4항에서 ‘어떤 액션을 취할 때 최소한 열흘정도 계획을 세우고 신호를 주겠다고 우리에게 이전에 전달한 메시지와는 달리 전두환은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는 등 3가지 점에 대해 명백히 지적했다’고 적고 있다. 이는 전두환 측과 미국 간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요한 액션이 있다면 10일전에 미국 측에 통보한다’ 이 같은 합의가 있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명백히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 합의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상황 일본버전 미국무부 비밀전문 첫페이지

▲한국상황 일본버전 미국무부 비밀전문 첫페이지

전씨는 1212사태 배경에 대해 ‘박대통령시해사건과 관련, 정승화 총장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은 10월 27일 이후 계속 존재했으며 수사관들의 체포건의에도 불구하고 국내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체포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고 밝히면서 ‘그 뒤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내각이 구성된 만큼 정승화를 체포 수사하겠다고 생각했으며 정승화와 이건영, 정병주등 3명은 관련됐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재규가 10월 26일 적전 이건영에게는 8백만원, 정병주에게는 5백만원, 정승화에게는 3백만원을 지급했고, 정승화는 김재규에 의해 육참총장에 임명된 인물’이라고 말했다.
또 전씨는 ‘군부 내 정승화지지자들이 체포에 반대할 것에 대비해 정총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등등 정총장과 가까운 참모들과 체포계획을 세웠다’고 밝히고 ‘박대통령처럼 최대통령이 자신의 건의를 승인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 자신의 오산이었으며 국방부 장관의 결재부터 받아오라고 함으로써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또 군을 움직인 것은 자신을 체포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고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미국무부 ‘한국사태 – 일본버전’ 전문

일본정부는 김재규가 차지철이 아닌 박정희 대통령에게 먼저 총을 발사했다고 파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시간 1979년 10월 28일 오전 8시 30분, 국무부가 주한미국대사관에 발송한 전문번호 281855 ‘한국사태 – 일본버전’이라는 제목의 전문은 일본이 박대통령 시해사건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 전문에 따르면 ‘미국시간 10월 27일 주미일본대사관 정치담당 영사 아리마가 국무부 아태차관보 설리반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24시간이내의 한국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적고 있다. 일본은 10월 27일 주중일본대사와 주소일본대사에게 훈령을 내려, 중국과 소련이 북한이 도발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지시켰다며 박대통령 장례식에는 오히라 총리가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주재 일본대사관이 파악한 내용을 셜리반 차관보에게 전했다. 일본은 ‘계획된 음모나 군부쿠데타는 아니지만 박대통령이 타깃이었음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일본은 ‘강경파인 차지철 경호실장과 어떤 면에서는 유연한 것으로 보이는 김재규 간의 갈등이 깊어졌다. 만찬은 2층에서 열렸으며 김재규와 차지철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김재규는 차지철에게 밀려나면 정치적 생명이 끝날 것이라고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박대통령 살해 결심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중정요원들에게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려는 사람은 누구든 저지하라고 지시한 뒤 만찬장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박대통령의 어깨와 머리에 총을 발사하고, 그 뒤 돌아서서 차지철을 쏘았다’고 밝혔다. 일본은 ‘만찬장에서 총기소지가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김재규는 차지철이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 박대통령에게 먼저 총을 쏴도 차지철이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재판결과나 알려진 바와는 다르다. 일본정부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했던 것이다. 셜리반 차관보도 이 전문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정부의 설명은 박대통령시해를 둘러싼 많은 버젼의 이야기중 하나이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누구를 죽었는지는 논란이 많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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