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언론인 안치용기고] 미국무부 비밀전문 단독입수 전격공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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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8일  ‘전두환-글라이스틴’  독대

1979년 12월 18일 ‘전두환-글라이스틴’ 독대
4일 뒤 브루스터 CIA지부장 만나 협조 요청했다

전두환12ㆍ12 사태직후 전두환 전대통령은 12월 14일 글라이스틴주한미국대사를 만난 데 이어 나흘 뒤인 12월 18일 CIA 한국지부장인 주한미국대사 특별보좌관 로버트 브루스터를 만나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던 것으로 미국무부 비밀전문에서 확인됐다. 이때 전두환은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의 음모론이 나돌아도 미국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의혹이 있다면 큰 문제가 된다며 12ㆍ12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또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이 보안사에 체포된 직후 정사령관의 부인이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를 찾아갔고 이씨는 충격을 받아 몸져누웠다며 전씨가 자신의 애로사항을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코리아게이트로 잘 알려진 박동선씨의 친형인 켄 박, 즉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이 통역을 맡았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일부 드라마에서 당시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국방부청사 계단 밑에 숨어있었다고 그려진 것은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미국무부 비밀전문도 입수됐다.
1979년 12월 18일 전두환-브루스터 면담관련 미국무부비밀전문을 <선데이저널>이 입수 단독으로 공개한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기자가 지난달 16일 입수한 ‘1979년 12월 18일 전두환 – 브루스터 면담관련 미국무부비밀전문’은 1979년 12월 19일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가 국무부장관에게 보낸 2급 비밀[SECRET] 전문이다. 모두 13항으로 이뤄진 이 전문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2항에서 ‘아래 메모는 1979년 12월 18일 로버트 브루스터 주한미국대사 특별보좌관이 작성한 면담록’이라며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3항에는 ‘참석자–전두환, 로버트 브루스터, 켄 박’이라고 기재돼 있다. 켄 박은 박동선씨의 친형 박건석 범양상선회장의 영어이름이다. 박동선씨의 친형이 전두환과 CIA지부장과의 만남에 통역으로 참석한 것은 이들 형제가 CIA와 친밀했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 전두환 - 브루스터 면담전문

▲ 전두환 – 브루스터 면담전문

박동선 형제는 CIA와 긴밀한 관계

이 전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11항으로, 전씨는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을 예로 들며 12‧12사태를 합리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전씨는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의 의혹[음모론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큰 나라이므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작은 나라이므로 의혹이 남아 있다면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박대통령시해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나의 의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전씨는 또 ‘박대통령 시해사건 조사에 대한 무거운 부담이 자신과 가족들을 짓누르고 있다’고 강조하고 ‘정승화 총장은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구[같은 사이]이며, 노재현 국방장관은 나를 현재의 직책[보안사령관]에 임명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정승화 총장 연행을 단행했다는 주장이었다. 또 전씨는 ‘정승화 총장의 부인이 친구인 내 아내[이순자]를 방문했고, 아파서 반드시 병원에 입원해야할 형편이지만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의사를 불러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 이씨가 정총장 부인이 집으로 찾아오자 쇼크를 받아 몸져누웠지만 신변의 위협 때문에 병원에 입원도 못하고 있다는 호소였다. 정총장의 부인이 이씨를 찾아갔다는 사실은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만약 정총장 부인이 이씨를 찾아가 남편 연행에 대해 따졌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이씨는 가슴이 섬뜩했을 것이다. 정총장 부인이 이씨와 친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십 년 군 생활을 한 점을 감안하면, 여러 모임에서 상관과 부하의 부인으로써 서로 아는 사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문에 따르면 브루스터는 ‘전장군의 요청에 따라 12월 18일 만났으며, 전씨의 목적은 12‧12사태이후 군부동향에 대한 미국의 우려에 다시 한번 불식시키려는 것이며 나[브루스터]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그 같은 사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고 적고 있다. 특히 브루스터는 ‘미국정부와 한국에 주재중인 미국 관리들은 한국군부에 명령체계에 미친 영향과 한미연합사 지휘를 받도록 돼 있는 한국군에 대한 미군작전권이 제대로 행사될 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군에 대한 미군작전권에 의문제기

이에 대해 전두환은 ‘당시 그 상황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그 방법을 택했겠지만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면서 군부정면충돌의 위기가 발생, 나를 따르는 군인들이 한미연합사 승인없이 군대를 동원하게 됐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컴사령관에게 확신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전씨는 ‘12월 14일 글라이스틴대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데 대해 감사하다’며 ‘대사가 강조한 4가지 사항, 한국군의 안정, 정치적 발전, 경제적 안정, 북한침공에 대한 우려등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씨는 ‘만약 군부쿠데타가 발생했고 내가 리더이며 정치적 야심이 있다면 보안사령관 직책만 맡고 있고 별 두개에 머물러 있겠느냐, 보다 중요하고 군을 더 잘 통솔할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브루스터 CIA지부장은 ‘전이 정승화총장연행은 박대통령 시해사건 조사를 완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최대통령에게 매우 진정성있고 정직하게 말했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매우 격정적이었다’고 적고 있으며, 전씨는 시해사건 조사가 마무리되면 현직책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승화브루스터가 쿠데타와 반쿠데타세력의 충돌가능성, 추후 다른 군부인사의 체포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보자 전씨는 ‘충돌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추후 또 다른 인사를 체포하지 않을 것이다’고 답했다. 브루스터가 ‘최규하 대통령이 이끄는 민간정부와 헌법적 과정을 지지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전씨는 ‘한국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정승화 총장연행 등이 오해를 일으킬 만 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며 이에 대한 미국정부와 미국군부의 우려 등 미국입장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가 글라이스틴대사를 만난데 이어 브루스터 CIA지부장을 만난 것은 그만큼 브루스터가 대사 못지않은 실력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미국무부 비밀전문과 CIA 비밀전문을 확인한 결과 전씨는 12월 14일부터 18일까지 글라이스틴과 브루스터를 만났을 뿐 위컴주한미군사령관과는 직접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위컴이 4성장군으로 전씨가 만나기에 계급상으로도 껄끄러웠을 뿐 아니라, 대사와 CIA가 더 중요하며 이들을 통해 미국 군부를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미대서관이 작성한 한국상황보고서

12.12 발생 직후 미국은 ‘한국상황보고’라는 제목으로 이틀사이에 4건의 비밀전문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비밀전문을 보냈겠지만 대사관 발신전문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았고 국무부가 대사관보고를 받아서 다시 ‘한국상황보고’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비밀전문 4건만 공개된 상태다. 첫 번째 ‘한국상황보고’ 리포트의 제목은 ‘한국에서의 군부파워플레이’로 한국시간 12월 13일 새벽 4시51분 국무부가 발송한 전문이다. 이 전문은 한국시간 13일 새벽2시까지의 상황이라며 ‘초기 단계의 쿠데타가 서울에서 진행중’이라며, 정총장연행의 성격을 쿠데타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국무부는 ‘쿠데타’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문은 ‘12월 12일 초저녁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황영시 1군 사령관등을 주축으로 한 한국군부그룹이 정승화 게엄사령관을 체포했으며 이는 명백히 사전에 기획된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노재현 국방부장관의 소재이다. 노국방장관이 13일 새벽까지 행방이 묘연했고 국방부청사 계단아래 숨어있다가 1공수병력에 의해 발견, 보안사로 연행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고 드라마에서 그려졌지만 이 전문을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닌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이 전문은 ‘노재현 국방장관과 김종환 합참의장, 류병현 한미연합사령관[부사령관을 사령관으로 잘못 표현한듯]이 조금전까지 용산의 유엔군사령부 벙커에서 글라이스틴 대사, 위컴 유엔군사령관과 함께 있었으며 새벽2시까지 군지휘관들과 접촉해 병력이동금지지시를 내렸다’고 적고 있다. 그러다 ‘새벽2시, 노국방장관이 벙커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적고 있다.

▲ 12 ㆍ12 한국상황보고 전문

▲ 12 ㆍ12 한국상황보고 전문

두번째 상황보고전문은 한국시간 13일 오전 7시22분 발송된 것으로 한국시간 13일 새벽 5시 상황이라고 적고 있다. ‘서울의 상황이 최근 3시간동안 악화됐다. 노국방장관이 벙커를 떠났을때 쿠데타세력에 가담한 소규모병력의 공격을 받았다’며 ‘글라이스틴대사는 노국방장관이 자신의 사임을 포함해 반란군에게 양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번째 상황보고에서 쿠데타라고 판단한데 이어 ‘반란군’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세번째 상황보고전문은 ‘한국시간 13일 아침 8시’의 상황으로 ‘노재헌장관의 결재와 최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장군 3명이 보직을 박탈당했다며 3명은 정승화 계엄사령관, 이건영3군사령관, 특전사령관’이라고 적고 있다. 특전사령관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정병주장군의 이름은 명시하지 않았다.

국방장관 노재현 보안사용원에 피체

이 같은 상황보고전문에 따르면 노재현 국방장관은 소재불명이 아니라 새벽까지 유엔군사령부벙커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전문을 뒷받침하는 것이 노씨의 국회증언이다. 노씨는 지난 1993년 9월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 ‘신현확국무총리, 이희성장군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총리공관으로 가다가 보안사령부 앞에서 지프차에 의해 저지당했고 보안사 대위 1명과 사병 3명에게 사실상 강제 연행돼 보안사령부로 갔다’고 증언했다. 또 당시 전씨의 수석부관이었던 황진하 의원은 회고록을 통해 ‘12‧12당일 밤 노재현 국방장관이 탄 승용차 번호를 브루스터 CIA한국지부장이 전씨에게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이를 종합하면 노씨는 유엔군사령부벙커에서 새벽까지 군 병력 이동상황 등을 체크하다 떠났고 브루스터가 전씨에게 차량번호를 알려줌으로써 보안사병력이 이 차를 정차시킨 뒤 보안사로 데려간 것이다. 국방부청사 계단밑에서 체포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이며 CIA책임자인 브루스터는 박대통령서거이후 권력의 공백을 메울 사람이 전씨임을 인정하고 전씨를 일정부분 도왔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전씨와 브루스터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전씨가 글라이스틴대사를 만나서 한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내가 박대통령시해사건에 미국이 관련됐다는 끊임없는 소문을 진화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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