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꽃피는 윤동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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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윤동주의 밤’ 행사에 시낭송으로 추모

이준익 감독(오른편)과 출연진한국의 ‘국민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그린 영화 ‘동주’에 대한 LA동포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요즈음 화제는 “동주를 보았는가”이다. 지난 10일 일요일 오후 4시 30분 상영 ‘동주’에 미주에서 1904년 에 최초로 세워진 한인교회인 LA연합감리교회 (담임 이창민 목사)의 70명 신도들이 단체로 관람 했으며,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미주본부(회장 권욱종)에서도 봉사자들이 단체로 관람했다. CGV 극장은 스크린 3개 중 2개에서 ‘동주’를 상영하고 있다. 지금 ‘동주’라는 영화로 한인들이 새삼 윤동주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지만, LA문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윤동주를 기념해왔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지난해 10월 3일 개천절. 광복 70주년에 LA에서 좀 떨어진 고먼(Gorman)에 자리 잡은  피라밋 레익 RV 리조트(회장 이재권)에서 ‘내가 만난 민족시인’이란 주제로 열린 <민족시인 문학의 밤> 행사에는 120여 명의 동포 문학인들과 애호가들이 참석했다.
미주 민족시인 문학선양회(회장 이성호)가 주최한 이 행사는 매년 이맘때 많은 사람이 손꼽아 기다리는 가을축제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낭독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식사와 문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문학의 밤 행사이다.
지난 12년 동안 시인 이성호 여사가 매년 준비해온 행사로  북창동순두부(회장 이희숙)에서는 매년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왔다.
이성호 시인은 1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10월 한글날에 윤동주와 송몽규를 위한 특별문학제를 생각하고 있다”면서 “많은 동호인들의 성원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민족시인 문학의밤> 행사는 특히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한용운 등  민족시인들을 기억 하고 함께 시와 문학을 토론한다. 지난해는 광복70주년을 기념해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의 순기능과 역기능’이라는 주제로 이정근 목사(유니온교회 원로)가 강연했다.

이같은 문학행사는 지난2004년 ‘윤동주 문학의 밤’으로 시작돼 2010년부터 민족시인들을 기리는 문학제로 확대시켰다. 매년 사비를 들여 이 행사를 어렵게 개최하여온 이성호 회장(75)은 매번 끝날 때마다 “힘들어 다시는 못 하겠다”고 하지만 해가 바뀌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 면 주변 사람들의 채근을 못 견디는 척 다시 판을 벌이곤 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13년 6월에는 민족시인문학선양회 1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와 송몽규의 재판 기록을 찾아내 화제가 된 이수경 박사(일본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를 초청해 윤동주 문학 강연회를 코리아타운 내 피오피코 도서관 회의실에서 80여명의 문인과 문학애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당시 문학의 밤에 낭독된 작품은 윤동주 <별 헤는 밤> 박복수 낭독, 송몽규 <밤) 김탁제 낭독, 한용운 <참말인가요> 윤정원 낭독, 이육사 <광야> 심토마스 낭독, 이상화 <시인에게> 손상아 낭독 등이었다.
당시 행사에서 강사 이수경 박사는 <민족시인 윤동주와 송몽규의 재판 판결문과 비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수경 박사는 일본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윤동주 시인과 고종사촌 형인 송몽규의 파란만장한 삶과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고, 직접 수집한 사진 자료들을 보여주며 일제 식민지시대 일본의 만행 을 고발하여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또한 이 박사는 송몽규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이며 시인으로 <문우>의 편집장 이었고, 윤동주 시인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국을 옹호하다가 희생당한 일본의 지식인 시인들도 소개했다.
이수경 박사는 일본에서 역사 사회학을 전공하고, 한일 현대사 및 인권문제를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지난 2012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재판 판결문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1년에 한번만이라도…”
동주지금껏 이 행사를 주최하여 온 이성호 회장은  윤동주를 “동주 오빠 예~”라고 경상도 사투로 부른다. 이씨가 동주 시인에게 반한 건 여고생 시절.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시 구절에 마음을 뺏겼다.
윤동주의 <서시>에 나오는 ‘스치운다’라는 동사는  여고생 시절 엄격한 목사 집안에서 집-학교-교회밖에 몰랐던 그녀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줬다. 그 시를 읽고서 생전 처음으로 가슴이 떨렸다. 그렇게 어느 날 윤동주란 이름 석 자는 그녀에게 일종의 해방으로 다가왔다.
한때 구혜영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으며 단어 하나 한 구절 마다 ‘어머 어떻게’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루 종일 생각 했다. 그리고 나중 아버지에게 시집을 들이 밀며 ‘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윤동주는 이씨의 엄한  아버지가  딸에게 허락한 첫 남자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인을 따라 시상에 잠기고 같은 생각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 사람을 반세기 넘도록 좋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순수한가.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구에 마음 뺏긴 여고 시절을 그리며 나중 직접 윤동주가 숨진 일본 감옥터를 찾아가 현지 시모임 참석하고 돌아와 미국 땅에서 윤동주를 동포들과 함께 사랑하고파 12년 전 ‘윤동주의  밤’을 시작했다.

그녀는 동주에 대한 많은 사진과 신문 스크랩 시집 등을 지니고 있다. 후쿠오카 감옥 터에  직접 영정 싣고 가서 한참 동안 보고 동주를 추모했다. 2006년부터 3년 동안 매년 가서 시 모임 강연 등에도 참석했다. 특히 한국말 하는 일본인 동주 오빠 팬들을 만나고 그들이 한국말로 동주 시 낭송도 하는 것을 들으며 감동을 받았다.
벌써 12년째 그녀는 ‘윤동주의 밤’ 행사를 연다. 시를 나누고 시인을 찾는다. 1년에 하루쯤은 동주를 기억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 2012년 구혜영 기자와 인터뷰에서 <동주 오빠의 시는 제 기도문과 같아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끊임없이 샘솟아요. 특히 ‘서시’나 ‘십자가’ 같은 시를 읽으면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독한 말 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알며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잖아요?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행운이에요.>라고 말했다.
Pyramid Lake R.V. Resort 45100 Copco Ave. Gorman, CA 94243
이성호 시인 연락처 (213)725-3845, (661)248-0100

“일본, 너희 반성 좀 해라”
이준익 감독이 ‘동주’를 만든 이유

이준익감독영화 ‘동주’는 이준익(56) 감독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 (1917~1945)의 반생을 그린 영화로 지난해 3월말~4월말 한 달간 5억 원이라는 저 예산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어 한 번도 영화화되지 못했던 윤동주의 이야기는 이 감독에 의해 어렵게 영상화가 이뤄졌다.
이 감독은 수년전 저예산 영화 ‘러시안 소설’ 등의 각본•감독을 맡은 신연식(39)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윤동주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데 바빠서 몰입을 못하고 있다”하자 신연식이 쓰겠다고 해서 만들어 지게 됐다고 밝혔다. 자세한 자료는 신연식이 많이 찾아봤고 이 감독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참조했다.
이 감독은 이 영화를 “일본, 너희 반성 좀 해라”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일본 극우주의자, 군국주의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지난해가 마침 광복70주년이었는데 그 것에 맞춘 것은 의도는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영화 구성은 ‘사도’와 같은 시기에 시나리오가 작성돼 똑같은 구조를 가지게 됐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형식이다.
영화에서 공동 주인공인 송몽규는 한 집에서 같은 해 같이 태어나고 자란 고종 사촌으로 윤동주와 건강한 우정과 경쟁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는 윤동주에게 세 번의 열등감을 느끼게 한 송몽규와의 관계성 안에서 시나리오를 썼고 이를 위해 몇 개의 시를 삽입시키기도 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윤동주의 정체성은 송몽규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선명해진다. 송몽규가 동물적 몽상가요 행동 주의자였다면 윤동주는 식물적 몽상가로 관념주의자 였다. 몽규가 없었으면 동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주를 만든 사람은 몽규’라는 것이 이 감독의 생각이다.
영화는 1934년 말부터 시작해 1935년 1월 18살 동갑내기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문 당선된 사건을 시작으로 보여준다. 정지용의 시를 사랑했던 윤동주는 그동안 시를 차곡차곡 써왔는데 벼락 을 맞은 듯 열등감에 시달린 첫날이었을 것이다. 윤동주 평전을 보면 윤동주는 그날 자기가 쓴 시의 연표를 작성하고 ‘대기만성’을 되뇌었다고 한다. 윤동주가 ‘나의 존재가 송몽규 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를 쓰지 않았을까 한다. 열등감은 잠재력을 끌어올리는데 큰 힘이 된다.
신사참배 거부로 평양 숭실학교로 유학 갔다가 다시 고향 북간도 용정으로 돌아오는 부분은 영화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뺐고,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건너뛴다. 주권 없는 나라에서 식민지 국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젊은이로서 정체성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더 넒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희망으로 윤동주가 “연전 가자”라는 말을 먼저 던지게 된다. 송몽규는 잘나가는 사상가였다. 등사기를 매고 다니며 문예지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이광수의 볼셰비즘에 대하여’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졸업식에서 송몽규는 당시 연전 교장 윤치호에게 우등상장을 받는다. 이날 윤동주는 다시 열패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동주와 몽규는 하나이며 둘
송몽규가 윤동주에게 “일본에 가서 공부하자” 권유하게 되고 시모노세키(하관)로 가는 관부 연락선을 타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게 된다. 타고 가는 배이름이 조선왕궁의 이름을 딴 ‘경복환’ 인데 일제가 조선 황제를 격하하기 위한 이름이다. 이 연락선을 타고 가는 윤동주의 얼굴 위에 ‘참회록’ 을 넣었다. 창씨개명 즈음에 쓴 시다.
두 사람은 교토에 가서 시험을 보는데 송몽규는 교토제국대학 서양사학과에 합격하지만 윤동주는 떨어진다. 이때 송몽규에게 세 번째로 열등감을 느꼈을 것이다. ‘삼단콤보’로 영혼의 그로기를 겪은 것이다. 윤동주는 도쿄에 있는 릿교대 영문과에 입학해 아나키스트로 천황제와 군국주의를 반대는 다카마츠 교수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교련수업을 거부한 것이 적발돼 호되게 맞게 된다. 송몽규를 찾아 교토로 가서 도시샤대학에 편입한 후 몽규가 검거되면서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당시 후쿠오카감옥에서 생체실험으로 죽은 사람이 1800명이다. 알 수 없는 주사를 혈관에 맞고 두 사람 모두 사망하게 되는데, 혈액대체제 개발을 위한 실험에서 바닷물주사를 맞고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윤동주가 죽어가는 괴성을 같은 수형자가 듣고 증언한 것이 있다.

몽규가 검거되는 장면에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배치했는데, 몽규를 보고 쓴 시라고 상상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집에서 몇 달 차로 태어나 같은 감옥에서 며칠 차로 죽는 것이 보통 인연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표작 ‘서시’가 나오기 전 ‘자화상’을 넣었다.
현재 용정에 있는 윤동주의 비석에는 끊임없이 꽃이 놓인다고 한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윤동주에게 열패감을 안겨주었던 송몽규는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몽규가 훨씬 아름다운 과정을 살았고 본능에 충실했다. 그러나 결과가 없었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상상력이 많이 더해졌다. 영화가 가진 독자적 형식이 있으므로 장르 간 격차를 좁히는 과정에서 허구가 가미 됐다. 기록에는 없지만  연희전문 시절과 일본에서 일본 여성과 애틋한 교제는 실제는 아니다.
영화 ‘동주’는 돈이 없어서 흑백영화로 찍었다. 고향 용정 장면은 강원도 고성에서 찍었다. 집성촌을 리모델링해서 전통관광체험 단지로 만든 곳인데 북방식 가옥이 남아있다. 연전, 릿교대, 교토대는 연세대에서 나눠서 이리저리 가려가며 찍었다. 후쿠오카 감옥 신은 전주에서 찍었고, 윤동주의 시신을 거두러 가는 장면은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수용소에서 찍었다. 일제시대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문둥병이 유전되는 줄 알고 환자의 성기를 자르던 단종대에 죽은 윤동주를  눕혔다.
이 감독은 “윤동주라는 인물을 통해 송몽규의 ‘과정’을 무시하고 소외시킨 것에 관심을 가지길 바랐다”며 “몽규를 보여주기 위해서 동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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