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개]외교부 외교문서 통해 드러난 부산美문화원 방화사건의 판결과 진실

■ 미국, 부산사무소등 한국정부 동의없이 일방적 개설

■ 부산영사관 개설 때도 승인도 전에 설치 단독 발표

■ ‘공관개설은 사전동의필요’ 명백한 비엔나협약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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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분노하며
부산 美문화원에
화염병을 투척한
숨겨졌던 이유는?

미국이 지난 1982년 주한미국대사관 경제과 부산사무소, 1984년 부산주한미국영사관등을 한국정부의 사전 동의도 없이 무단 개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이들 두 기관을 사전에 개설한 뒤 뒤늦게 한국정부의 동의를 요구했으며 당시 외무부는 대한민국주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부산과 광주 등의 미문화원방화사건과 관련해 1980년대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주한미국문화원은 모두 외교공관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한국 내 미국문화원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12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 것은 충격적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사실도 모른 채 ‘미국문화원은 치외법권지역이고 그곳을 미국영토의 연장으로 본다’고 판결, 미국문화원방화사건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단독으로 입수한 외무부의 ‘부산미국영사관개설’관련문서를 통해 미국의 일방적이고 국제법을 위반한 경제과 사무소 설치와 영사관 무단설치 내막과 이로 인한 한국 대법원의 잘못된 판결을 샅샅이 밝혀본다.
박우진(취재부기자)

미문화원

1982년 3월 18일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부산의 고려신학대 학생들인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씨 등이 미국정부가 5.16 광주학살을 용인했다고 비판하며 부산미문화원을 방화한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던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바로 이 사건을 통해 광주학살과 관련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됐고 두 명의 변호사가 대한민국의 정치거목으로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바로 이 부산미문화원과 관련한 놀라운 사실들이 최근 외교부의 외교문서 등을 통해 드러났다. 그 내용은 과히 충격적이며, 부산, 광주 등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동의 없이 일방적 사무소 개설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기 정확히 2개월 전인 1982년 1월 20일, 주한미국대사관은 깜짝 놀랄만한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리처드 워커 주한미국대사가 1월 19일 주한미국대사관 경제과 부산사무소를 개설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 당시 구속되는 문부식

▲ 당시 구속되는 문부식

당시 미 대사관은 ‘이 부산사무소는 주한미국상사들의 상품판매 및 투자노력을 도울 것이며 서울의 주한미국대사관을 도와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 할 것이다. 부산사무소장으로 제임스 맥너 경제담당 1등서기관이 취임한다’고 설명했다. 부산사무소는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25번지, 부산미문화원 건물 내였다.

그러나 주한미국대사관의 이 같은 ‘경제과 부산사무소’개설은 한국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밝혀졌다. 주한미국대사관의 보도 자료와 같은 날 한국 언론에 보도된 부산사무소개설 기사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바로 한국정부였고, 그중에서도 주무부서인 외무부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측이 사전에 일언반구, 한마디도 없이 대한민국주권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사무소를 열어버린 것이다.

김석규 외무부 미주국장은 1982년 1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주한미국대사관의 블랙모어 참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에 대해 항의했다. 김국장은 ‘주한미국대사관이 최근 부산에 경제담당 사무소를 개설했다고 하는 데, 우선 이를 확인하고자 한다. 동사무소 개설이 사실이라면 이는 아국[우리]정부의 사전 동의를 결여한 것으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12조의 명백한 위반이며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블랙모어 참사관은 ‘부산사무소 개설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이는 분명히 협정위반으로 사과를 하는 바이며, 관계부서로 하여금 이를 시정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외무부도 부산사무소개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는 4일 뒤에야 항의를 한 것이다.

외교부, 비엔나협약 위반 강력한 항의

이처럼 외무부가 항의하자 주한미대사관은 1월27일에야 공문을 보내 뒤늦게 ‘부산 사무소를 개설했다’며 통보를 했다. 분명히 비엔나협약상 사전에 주재국정부의 명시적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주한미대사관이 보낸 공문은 일방적 통보였다.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항의하자, 일방적 통보를 해버린 것이다. 블랙모어 참사관이 1월22일 전화상으로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이 공문은 사과 등의 단어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부산사무소를 열었으니 그리 알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1980년 광주사태를 통해 집권한 이른바 신군부와 미국과의 역학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미 대사관은 정통성 없는 신군부에 대해 마치 식민지시절의 총독행세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 1982년 1월 20일 주미대사관 보도자료 ‘1월 19일 경제과 부산사무소를 개설했다’ 일방적 발표

▲ 1982년 1월 20일 주미대사관 보도자료 ‘1월 19일 경제과 부산사무소를 개설했다’ 일방적 발표

주종관계를 방불케 하는 한미 간 역학관계 속에서도 당시 일부 외무부 관리들은 미국의 잘못을 바로 잡겠다는 결의가 대단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82년 2월 1일 외무부 의전장은 협조 전 형식으로 외교부내 각 실, 국장에게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미주국장과 국제기구조약국장, 경제국장등 3명이 그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월 3일 미주국장은 ‘우리정부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았으므로 법적측면에서 모든 절차를 완결하고 부산사무소 설치일자도 우리정부 허가후가 돼야 한다. 다만 정치적 측면에서 한미관계를 고려하고 구두로 공식 사과한 만큼 최소한 절차로서 조치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제국장은 협조전문을 받은 지 9일이 지난 2월9일에야 의견을 밝혔다.

경제국장은 ‘부산경제사무소 개관은 양국간의 확대 발전되는 경제통상관계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됨’ 단 한 줄이었다. 즉 미주국장은 최소한의 절차, 경제국장은 미국행위에 대한 판단은 밝히지 않고 경제증진에 좋다는 말만 한 것이다. 반면 국제기구조약국장은 미국측 행위는 명백히 잘못됐음을 상세하게 밝혔다.

재발방지 사과와 약속 받고 동의

주한미국대사관이 사전에 우리정부의 동의를 얻지 않고 부산사무소를 개설한 것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 12조 위반이므로 사과가 있었다 할지라도, 국제법위반행위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비엔나협약 제12조는 ‘사무소를 설치한 뒤 접수국이 반대하게 되면 양국간 우호관계를 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설치 전에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하며, 동의는 명시적 동의이어야 하므로 서면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건은 주한외교공관이 공관건물소재 이외의 지역, 즉 서울이외의 지역에 별도사무실을 설치하는 것으로, 한국정부로서는 최초의 케이스라며, 이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즉 사상초유의 케이스로 선례가 되는 만큼 명백히 잘잘못을 따지고 이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통해 방침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건은 미 대사관의 구두사과로서 종결시킬 성격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주한외교공관의 별도 사무실 설치에 관한 기본입장 수립해야 한다며 원칙적으로 별도사무실은 불허하고 있다고 밝혔다.

▲ 1982년 1월 22일 외교부, 언론통해 부산사무소개설 인지뒤 뒷북항의

▲ 1982년 1월 22일 외교부, 언론통해 부산사무소개설 인지뒤 뒷북항의

또 미 대사관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사전 동의요청을 문서로 받고, 일방적인 조치 후 사후 통보한 경위와 사과의 표시, 그리고 앞으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보장을 문서로 받으며 사무소 책임자에 대한 면책특권부여는 명시적 동의를 부여받은 날 부터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조치이지만 한미역학관계상 이처럼 소신있는 주장을 펼친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은 국민으로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유권해석을 받은 이두복 당시 외교부 의전관은 2월 17일, 주한미대사관 행정담당 나이트 참사관을 의전관실로 초치, 비엔나협정에 의거한 개설동의요청을 문서로 신청해야 하며 부산사무소 특권 및 면제는 우리정부의 동의를 통보한 날부터 적용될 것임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다시 사과하고 워커대사도 외무부장관에게 사과했다며,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부산사무소 영사관 개설 때도 위약 되풀이

미국측이 명백히 잘못을 시인했고 주한미대사도 사과함으로써 우리정부가 미국측의 항복을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대사관은 이날 오후 부산사무소 동의를 요구하는 문서를 외무부로 발송했고 외무부는 5일 뒤인 2월22일 이를 승인할 방침임을 통보했고 다시 10일 뒤인 3월 3일 이를 정식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미국측이 1월 19일 일방적으로 부산사무소를 개설했지만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이를 저지하고 45일 뒤에야 정식 개소하게 된 것이다. 또 같은 날 외무부는 부산사무소 개설승인에 따라 부산사무소 책임자와 부산사무소에 외교 특권 및 면제를 승인하고 내무부에 이를 통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부산사무소 개설 때의 국제협약 위반행위는 부산미국영사관 개설 때도 되풀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미국측은 사전에 부산경제사무소의 부산사무소 승격에 대해 사전문의를 하기는 했다. 사전 동의절차를 거치려 한 것이다. 부산경제사무소 정식개설 7개월 뒤인 1982년 10월12일, 주한미대사관은 경제사무소를 영사, 정무, 경제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주한미대사관 부산사무소 승격여부를 타진했다. 비자 등의 영사업무를 한다면 단순한 사무소가 아니라 사실상 영사관에 해당하는 것이다.

▲(왼쪽) 1982년 1월 27일 주한미국대사관, 한국항의뒤에도 사전동의아닌 일방통보 공문발송 ▲(오른쪽) 주미대사관, 부산사무소 설치경위 요약

▲(왼쪽) 1982년 1월 27일 주한미국대사관, 한국항의뒤에도 사전동의아닌 일방통보 공문발송 ▲(오른쪽) 주미대사관, 부산사무소 설치경위 요약

이에 대해 외무부 미주국은 대부분의 국가의 일반적 정책은 분명히 별도의 사무실 설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를 허가하면 미국외의 다른 나라들이 서울이외 지역에 별도사무실을 낸다고 해도 이를 반대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영사, 정무, 경제 등 모든 외교업무를 수행하는 별도사무소설치를 허가한 선례가 없다고 강조하고 미국측의 요구는 허락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이튿날인 10월 13일 미국측에 사무소설치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그리고는 외무부는 철저한 조사에 돌입했다.

외무부 조치로 주한미부산사무소 수포로

외무부는 세계 각국의 실태를 종합, 우리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수립하기 위해 같은해 10월 25일 모든 재외공관에 주재국 정부가 대사관개설지역 이외도시에 정무, 경제, 영사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소를 허락한 예가 있는지를 조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확실한 증거를 수집, 미국요청을 반박하고, 만약 이를 허용하는 예가 많다면 허락하겠다는 방침으로, 미국에 끌려다니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재외공관이 10월 26일과 27일 이를 알려왔고 일본등은 이를 허락하는 반면 스웨덴,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영국, 뉴질랜드, 터키등은 이를 불허하고 있으며 일부국가는 영사기능을 한다면 사무소가 아닌 영사관을 허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10월 28일에게 주미대사에게 엄명을 내렸다. 미국측이 부산사무소설치를 요구하고 있으니, 미국정부에서 별도사무소설치를 허용한 국가명, 사무소 소재지, 기능과 규모 및 취급업무 등을 은밀히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측이 모르게 조사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미대사는 외교공관은 모두 워싱턴DC 내에 있고, 별도사무소를 둘 경우에도 워싱턴DC내에만 허용한다고 보고했다. 다만 우리나라와 카타르, 요르단은 무관부의 경우 국방성이 위치해 있는 버지니아주에 사무실을 허용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뉴욕은 경제중심지로 예외로 하고 있으나 뉴욕이외의 지역에는 어떠한 분관도 둘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미국의 주장은 억지였던 것이다. 국제기구조약국도 11월 4일 공관일부를 구성하는 사무소설치는 주재국이 특정상황하에서 특정업무만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으나, 미국이 요구하는 정무, 경제, 영사등 공관의 전반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소설치는 비엔나협약위반이라며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세계각국의 실태를 조사하는 등 외무부의 치밀한 조치로 주한미대사관의 부산사무소설치 억지는 수포로 돌아갔다.

▲ 1983년 12월 26일 부산영사관설치관련 국무총리 및 대통령 결재

▲ 1983년 12월 26일 부산영사관설치관련 국무총리 및 대통령 결재

개설 승인공한도 받기 전에 일방적 설치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1983년 11월 30일, 미국은 부산미국영사관을 설립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때도 또 막무가내였다. 사전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미국이 12월 19일 부산에 영사관을 열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같은 해 11월 레이건대통령 방한 때 한미정상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한미정상 합의서 13항은 ‘레이건대통령은 한미 우호 협력관계의 확대와 중요성을 반영하여 대한민국 제2의 대도시이며 한미경제교류의 중심지인 부산에 영사관을 개설코자 하는 미국측의 의향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통보했으며 전 대통령은 이 결정을 환영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외무부 미주국장은 12월 3일 각 실국장의 의견을 구했고 영사교민국장, 기획관리실장, 의전장 등은 12월 5일을 전후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고 12월 7일 국제기구조약국장도 비엔나협약을 살펴볼 때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그 뒤 미국은 12월 15일 다시 공문을 보내 1984년 1월 27일경 부산영사관을 열고 싶다고 밝혔다. 후일 외무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북미과의 김성환사무관은 12월 16일 장관에게 주부산미국영사관설치 건의서를 올렸다. 주부산미국영사관은 부산미문화원건물에 설치돼 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며 1984년 1월 27일 개설하겠다며 우리정부의 동의를 요청했으므로 한미정상간의 합의 등을 고려, 재가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당초 12월 19일 개설하겠다고 사실상 통보했다가 우리정부가 의견수렴과 검토를 하자 이를 약 40일 늦춘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교부장관은 12월 20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주부산미국영사관설치 품의를 올렸고 국무총리는 12월 23일 이를 결재했고 전 대통령은 12월 26일 이를 재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미국은 또 오만방자한 일방통행을 범했다. 대통령 재가가 이뤄졌지만 부산영사관 개설 승인공한도 받기 전인 1984년 1월 1일, 부산영사관을 1984년 1월 27일 개설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해 버린 것이다. 본보확인결과 외무부는 그보다 4일 뒤인 1월 4일 승인공한을 위한 사본을 작성하면서, 그날 주미대사관에 승인사실을 통보했고, 정식 공한은 1월6일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대사관은 승인을 정식통보받기도 전에 자기들 마음대로 부산영사관설치를 발설해버리는 결례를 범한 것이다.

승인 없는 공관 외교특권면책 지위 없어

그리고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1980년 민주화에 대한 염원 속에 수난을 겪었던 한국 내 미국문화원들이 모두 외교공관이 아니라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부산미국영사관 개설과 관련, 국제기구조약국은 12월 7일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맨 마지막 5항에 한미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내용을 언급했다. 국제기구조약국은 5항에서 ‘특히 주한미국문화원은 아국정부의 사전 명시적인 동의를 받아 설치된 기관이 아니므로 아국으로서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12조가 규정하고 있는 ‘외교공관의 일부를 구성하는 사무소’로 보지 않고 있음을 참고하라’고 적고 있다. 주한미국문화원이 외교공관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치외법권이라는 말로 쉽게 표현되는 ‘외교 특권과 면제’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장소인 것이다.

▲ 1986년 6월 24일 대법원, 서울미문화원 습격사건 판결문[86도403]

▲ 1986년 6월 24일 대법원, 서울미문화원 습격사건 판결문[86도403]

이에 와서 국제기구조약국은 1982년 2월 11일 주한미국대사관 경제과 부산사무소 개설과 관련돼 미국이 비엔나협약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반대입장을 밝힐 때도 주한미국문화원이 외교공관이 아니라고 강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지구조약국은 ‘주한미국대사관 부산주재 경제사무소개설 – 국제법상의 문제점을 중심으로’라는 장문의 보고서 말미에서 주한미국문화원의 불법성을 지적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미국문화원은 미국정부 국제교류처[USICA]의 해외분원[FIELD OFFICE]으로, 업무성격은 INFORMATION OFFICE, 즉, 정보전달창구라는 것이다. 또 ‘국내에 있는 4개소의 국제교류처 해외분원, 즉 부산, 광주, 대구등 4개지역의 문화원은 우리나라정부의 명시적인 동의를 사전에 받지 않은 이상, 미국이 이 분원들이 공관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비엔나조약에 의거, 반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두말할 것도 없이 국내 미국문화원은 외교공관이 아니며 ‘외교특권및면제’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명백한 사실관계 오인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 19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등 미문화원 습격사건과 관련, 재판부가 이들 미문화원을 ‘치외법권지역’ 이라고 판결했다. 이는 재판부의 명백한 잘못인 것이다. 특히 대법원조차 미문화원을 미국공관으로 간주, 판결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대한민국최고법원이 미문화원의 법적 지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로, 수치중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은 지난 1986년 6월 24일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관련, 판결에서 ‘대한민국 내에 있는 미국문화원이 치외법권지역이고 그곳을 미국영토의 연장으로 본다’고 판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외교부는 대법원판결보다 3-4년 앞선, 지난1982년은 물론 1983년에도 미문화원은 외교공관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대법원이 외무부에 이같은 사항을 조회만 해봤더라도 이같은 대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외무부도 미문화원사건 재판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만큼, 미문화원의 법적 지위에 대해 재판부에 알려줬어야 한다. 대한민국최고법원이 명백히 사실관계를 오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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