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 미국도주 IMF 채무자 19년만에 찾아내 승소판결 받아낸 사연

▶한국서 4차례 소송해 모두 승소 판결

▶미 법원 판결집행 민사소송에서 승소

▶원금 14억원 포함, 이자까지 65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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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채무자 미국 도주
‘지구 끝까지 가서 찾아내다’

한국예금보험공사가 1998년 IMF당시 은행돈을 떼먹고 미국으로 달아난 채무자를 악착같이 추적, 19년만에 소재를 확인하고 뉴욕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보는 1998년부터 지난 2013년까지 한국에서 4번이나 소송을 제기, 승소판결을 받아낸 뒤 마침내 미국에서 한국판결의 집행을 요구했다. 19년만에 14억여원의 채무원금은 4배이상 늘어나 5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본보취재결과 채무자는 지난 2008년 뉴욕에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소송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채무는 반드시 찾아내서 돌려받고야 만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풀이된다.
김 현(취재부기자)

예보지난 5일 한국예금보험공사 산하의 정리금융공사가 뉴욕주 퀸즈카운티지방법원에 뉴욕퀸즈주민 김연수씨를 상대로 한국판결의 집행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지난 1997년 대전시 대덕구 대화동에서 운영되던 중소기업체인 호성산업이 대전상호신용금고에서 대여한 돈 14억여원에 대한 연대보증을 선만큼 미지급이자 등을 포함, 모두 59억원상당, 565만달러를 배상하라는 청구였다.
정리금융공사는 김씨의 주소지등은 언급하지 않고 퀸즈카운티의 주민이라고만 밝혔으나 본보 취재결과 김씨는 퀸즈 리틀넥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리금융공사는 이 소송을 제기하며 퀸즈카운티지방법원에 한국에서 4차례나 재판을 제기, 승소한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해 김씨가 채무자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어음활인 거래약정 보증인 상대

호성산업은 지난 1995년 7월 26일 대전상호신용금고와 할인어음에 의한 여신한도액 10억원의 여신한도거래약정을 체결한데 이어 1개월 뒤인 8월 26일 여신한도액을 3억7천5백만원 늘렸고, 또 20일 뒤인 9월 16일에는 다시 1억9천5백원을 더 증액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1995년 3차례에 걸쳐 15억7천만원의 할인어음거래약정을 체결한 것이다. 당시 이 회사의 대표는 최종민씨였으며 강영기씨와 김연수씨 등도 이 회사의 간부였다.

지난 1998년 4월 7일 대전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호성산업은 11억2370만원을 빌렸지만 이중 5억5512만원은 만기일인 1997년 6월 10일까지, 5억6858억원은 만기일인 1997년 6월 13일까지 상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미상환에 따라 대전상호신용금고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피고는 호성산업과 대표이사 최종민, 강영기, 김연수씨였으며 김씨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654번지 현대아파트 207동 304호가 최종주소라고 적혀 있다.

즉 이때 이미 김씨는 돈을 갚지 않고 증발 소재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김씨가 피고가 된 것은 호성산업이 현재 및 장래에 부담하는 채무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강영기씨는 1995년 7월 26일 13억원, 8월 26일 4억8750만원등 모두 17억8750만원 연대보증을 섰고, 김씨는 그 이듬해인 1996년 12월 13일 23억5500만원 연대보증을 선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관계가 명확한 만큼 대전지방법원은 피고들에게 1998년 2월 24일까지는 원금에다 연이자 20%, 그 이후부터 다 갚는 날 까지는 연이율 25%로 계산해 돈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약정지연손해금이 20%에서 최고 25%로 현재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고려하면 살인적인 고리대로 여기지지만 1997년 당시만 해도 이 정도의 금리는 예사였다. 이때 대전상호신용금고가 원고인 것은 소송을 제기할 당시 만해도 파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관 정리금융공사의 끈질긴 노력

그러나 대전상호신용금고는 IMF, 즉 외환위기속에 결국 파산할 수 밖에 없었고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모든 채권이 예보로 이관됐다. 대전상호신용금고의 부실채권을 국민혈세로 인수한 예보는 2002년 호성산업 등을 대상으로 대전지방법원에 대여금청구소송을 제기, 2003년 4월 다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예보는 승소 직후인 2003년 5월 30일 이 채권을 정리금융공사에 양도함으로써 이제 정리금융공사가 채권자가 된 것이다.

정리금융공사는 대전상호신용금고, 예금보험공사가 호성산업과 김씨 등을 상대로 1998년과 2003년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2008년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 판결의 시효연장을 위해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대전지방법원은 2008년 11월 12일 또 다시 원고인 정리금융공사가 원금 11억2300만원에 상환기일인 1997년 6월부터의 이자까지 모두 받으라고 판결했다. 이미 11년 이자가 쌓여 돈을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였다. 정리금융공사는 이듬해인 2009년 2월 4일 판결문 정본을 발급받아 호성산업과 김씨 등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모든 피고들의 소재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김씨를 제외한 3명의 피고들은 재판에 아예 참석하지 않아 궐석판결이 내려졌고, 김씨는 소재불명상태로 공시송달에 의해 판결이 이뤄졌다. 공시송달에 의한 판결이란, 김씨에게 공시를 통해 소송사실을 통보하고 재판을 진행했음을 말한다. 즉 현행 민사소송법은 소재불명인 사람을 상대로 재판을 할 경우 다양한 송달방법중 하나인 공시를 통해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시만 하면 송달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숨어봤자,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왼쪽부터) 정리금융공사[예보], 김연수상대 퀸즈지방법원 소송장, 1998년 대전상호신용금고, 김연수 상대 승소판결문, 2008년 정리금융공사, 김연수상대 승소판결문, 2008년 정리금융공사, 김연수상대 승소판결문

▲(왼쪽부터) 정리금융공사[예보], 김연수상대 퀸즈지방법원 소송장, 1998년 대전상호신용금고, 김연수 상대 승소판결문, 2008년 정리금융공사, 김연수상대 승소판결문, 2013년 정리금융공사 김연수상대 승소판결문

그러나 예금보험공사등은 당초 이들에 대한 채무액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즉 받을 돈이 더 많은데 이를 제대로 청구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013년 정리금융공사가 호성산업과 김씨 등을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제기한 양수금 소송에 따르면 이들이 갚아야 할 채무 3억여원이 약 5년동안 청구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호성산업과 김씨등은 1997년 6월 10일 이미 돈을 갚지 않아 디폴트처리가 됐지만, 대전상호신용금고는 그 이후에도 이들에게 돈을 빌려줬던 것으로 나타났다.

예보, 3억원은 집행신청 누락

대전상호신용금고는 1997년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3억여원에 대해서는 지급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 2002년에야 예보가 소송을 제기할 때야 3억여원의 추가 대출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호성산업과 김씨 등은 대전상호신용금고로 부터 1997년 8월 18일 5500만원, 8월 27에 8090만원과 2억440만원 등 세 차례에 걸쳐 돈을 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상호신용금고는 이미 1997년 6월 디폴트된 회사에 약 3억3천여만원을 더 빌려줬고 이중 3천만원만 상환돼 3억원을 또 다시 떼였던 것이다.

정리금융공사 신형수 팀장은 퀸즈카운티지방법원에 제출한 자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관계를 모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리금융공사는 한국판결문 4건, 신팀장의 진술서등을 증거로 제시한 뒤 김씨는 2008년 11월 12일 판결문에 따른 440만달러, 2013년 5월 21일 판결문에 따른 125만달러등 565만달러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호성산업의 대출원금은 14억2천만원정도이지만 19년동안 이자가 붙으면서 채무액이 65억원정도로 4배정도 늘어난 것이다.
본보가 판결문에 김씨의 최후주소로 기록된 서울 대치동 현대아파트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은 결과, 이 아파트는 1995년부터 이미 문모씨의 소유였고 김씨는 소유권이나 채권, 채무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김씨가 이 아파트 등에 전세로 살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소유권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전세권 또한 설정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상호신용금고가 알고 있던 김씨와 주소지는 김씨추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본지, 뉴욕거주 채무자 부동산 확인

그러나 정리금융공사는 디폴트 19년만에 김씨를 뉴욕 퀸즈에서 찾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정리금융공사는 소송장에 김씨를 퀸즈주민으로만 적고, 주소지는 적지 않았지만 김씨에 소재지 등을 모두 파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씨의 주소지를 기록할 경우 소송장등이 모두 공개되는 것을 감안, 김씨가 도주할 경우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보는 아마도 김씨의 주택매입때 권리증서에 김씨의 부인 이름이 함께 기재된 것을 확인, 주민등록 조회를 통해 동일인임을 밝혀낸 것으로 추정된다.

본보가 뉴욕시 등기소 확인결과 김씨와 동일한 영문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부인 김모씨와 함께 지난 2008년 6월 18일 뉴욕 퀸즈 리틀넥의 주택을 70만5천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기지가 41만여달러이며 주택구입이후 부동산가격이 올랐음을 감안하면 이 집에서만 40-50만달러를 회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리금융공사는 조만간 이 주택에 대해 가압류조치를 취하고 퀸즈카운티지방법원이 한국판결을 인정할 경우 강제집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리금융공사가 IMF 당시 은행돈을 떼먹고 미국으로 잠적한 사람을 19년만에 찾아내 법적조치를 취한 것은 지구상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국민혈세를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제 지구상 어디에도 돈 떼먹고 숨어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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