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웅 미주한인재단(KAFUSA) 총회장의 포부

미주한인의 날은 미국정부가 선포한 최초의 소수민족의 날

우수한 차세대 발굴해 이민한인의 이념과 정신 전파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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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한인이민의 꿈을 세계에 펼치겠다’

메인미주한인재단(KAFUSA)은 2003년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기념 사업을 벌인 ‘미주이민 100주년기념 사업회’의 정신과 사업을 계승한 단체로서 2005년 12월 연방의회에서 매년 1월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 공포하는 데 크게 기여를 하기도 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의 김성웅(사진) 회장은 지난 2014년 8월 28일 하와이 한인기독 교회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단독후보로 출마해 제9대 전국총회장으로 선출됐다. 그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1977년 도미한 김 회장은 현재 보험브로커(김성웅 보험에이전시)로 활동 중이며, KAFUSA LA지회 4대 회장을 지냈다. 김 회장을 통해 미주한인의 날의 의미와 정신을 정리해 본다.   성 진 (취재부기자)

김 회장에게 꿈이 있다. 미주한인재단의 세계화를 위해 전 세계 해외동포의 중심지인 LA를 중심으로 글로벌 코리안의 꿈을 펼쳐 나가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아직도 많은 한인들이 ‘미주한인의 날’을 잘 모르고 있다”면서 “우수한 차세대를 발굴해 ‘미주한인의 날’의 이념과 정신을 전파하는데 참여시키는 일이 우선과제”라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에서 특정 이민사회를 기념하는 날(미주 한인의 날)을 가진 유일한 커뮤니티로써 기념일이 앞으로 200~30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도록 재단 운영도 공정하고 깨끗하게 해나가도록 할 것” 이라고 밝혔다.

2005년  만장일치 통과 제정

김회장은 올해 ‘미주한인의 날’ 행사에서 형식적인 기념행사보다는 가치관을 중시하여 차세대를 위해 UC리버사이드 대학에서 재미동포연구소를 운영하는 장태한 교수를 특별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한 지난 2월에는 김소문 화백 미술 전시회(웨스턴갤러리)를 후원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8월에는 제15회 애국선열합동추모식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개최하여 미국 정계에 한인이민선조들의 공헌을 기리기로 했다.
우리에게 자랑스런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은 미 연방 하원과 상원이 2005년 각각 발의한 결의안 (H.Res.487, S.Res.283)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제정됐다. 미국사회가 ‘문화, 예술, 경제, 과학, 스포츠’ 등 사회 각 분야 발전에 기여한 한인들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당시 ‘미주한인의 날’ 제정은 미국 연방정부가 미국 내 특정 소수민족의 날을 제정한 첫 사례로 알려져 미-한 양국 간 동맹 강화의 의미로도 평가됐다.
1903년 1월13일 오전 3시30분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에 도착한 상선 겔릭호에는 한인 이민선조 102명이 타고 있었다. 대한제국 당시 외국으로 나온 최초의 단체 이민그룹이었다.
이들은 전해인 1902년 12월22일 인천(당시 제물포항구) 에서 감리교인 50명, 노동자 20명, 농부 등 전국에서 자원한 51명 등 총 121명이 오늘날 여권인 ‘집조’를 손에 쥐고 미국 상선 겔릭호에 올랐다.
선창가에 나온 존스 목사는 이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기도했다. 이중 일본에서 신체검사에 통과하지 못한 19명이 중도 탈락하고, 남은 102명은 추운 겨울바다를 건너 1903년 1월13일 마침내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했다. 이중 신체검사를 통과한 86명이 오아후섬 모쿠레아 사탕수수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
하지만 한인 이민 선조의 장밋빛 ‘아메리칸 드림’은 말 그대로 ‘꿈’이었다. 이들에게 닥친 것은 뙤약볕 아래에서 최저임금만 받으며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사를 짓는 고된 삶이었다. 그럼에도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1905년까지 이민 선조 7,226명이 미국행을 택했다. 1910년부터 1925년까지 고공덕, 천연희, 유분조 등 ‘사진신부’ 950여명은 한국에서 남편 될 남자의 사진만 보고 미국행 배를 탔다.
이들이 오늘날 미주한인 커뮤니티의 모태였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1903년 1월 13일이 시작으로 알고 있다. 이는 하와이 한인사회가 사탕수수 농장에 온 이민그룹 도착을 ‘조상숭배의 날’로 기념해 오면서 시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3년 이전에도 미국에 들어온 한인들이 많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민족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미 1902년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고, 한인 미시민권 1호로 알려진 서재필 박사는 1885년에 미국에 망명하여 1890년에 미시민권을 획득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미국 진출의 역사는 135년이 넘는다.
195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성장했고, 미주 한인사회도 전문화, 다양화, 대형화의 길을 걸어 미국 내 당당한 소수계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이 10대 강국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미주의 한인들이 민주화와 선진문물을 고국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2016년 현재 주요 도시 한인타운은 경제부흥과 함께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극적 화합으로 분열 극복
한편 지난동안 분열의 아픔을 겪었던 미주한인재단은 지난해 극적으로 화합을 선언했다. 정세권(5대 전국총회장) 재단정상화대책위공동회장 대표와 박상원(7,8대 전국총회장)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24일 성명서를 통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 이 성명서는 “지난 2012년 12월 미주한인재단 전국 8대 총회장 선출과정에서 나타난 불협화음으로 2015년 10월까지분규 단체로 고초를 당한바 있다”며“ 2015년 11월을 기하여 미주한인재단 전국이 본연 의 자세로 복귀되었음을 국내외에 공포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과로 현재의 김성웅 회장은 단일 체제로 미주한인재단을 이끌게 됐다. 현재 재단은 LA와 워싱턴DC를 비롯해  하와이 등 전국 45개의 지부가 있다.
▶문의: (213)503-4550 김성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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