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결의안 121 결의안 통과 9주년 기념 특집

‘기림비’ 위해 판사직도 버린 중국 여성 법조인 초청

남가주 북가주 한인사회 힘 모아 20만 달러 목표해

한인사회와 중국사회 위안부 투쟁 공동전선 형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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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결의안 121 결의안 통과 9주년 기념 특집

‘LA한인사회가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후원한다’

위안부기림비-1올해 7월30일은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HR121’이 통과된지 7주년이 되는 날이다. ‘위안부 결의안 HR121’ 통과 7주년을 기념해 남가주 한인사회가 지난동안 중국 커뮤니티 주도로 추진된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인다. 이번 모금운동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SF시청의 공청회에 세우면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 기림비 건립안이 만장일치 통과되는 데 크게 공헌한 가주한미포럼(KAFC, 사무국장 김현정)이 주관한다. 그리고 미주총연(회장 김재권),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미주본부(회장 권욱종)와 미주 3.1여성동지회(회장 홍순옥), 홍익민화연구소(원장 최용순) 등을 포함한 한인 단체들이 후원한다.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은 중국 커뮤니티의 ‘위안부 여성정의 연대’(CWJC)가 주도해왔다. 기림비 모금 목표액은 40만 달러이며 이중 27만달러를 중국 커뮤니티가 이미 모금했는데, 한인사회도 남가주와 북가주가 공동으로 20만 달러를 목표하고 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LA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주한미포럼(KAFC)의 김현정 사무국장은 121 결의안(일명 ‘위안부 결의안’) 통과 9주년을 기념하고 SF 기림비 건립을 후원하기 위한 후원회를 오는 7월 30일(토) 오전 11시 코리아타운내 가든 스위트 호텔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행사의 수익금 전액은 샌프란시스코 기림비를 주도하는 중국 커뮤니티 단체 ‘위안부 여성정의연대’ (CWJC)에 기부된다.

이날 LA모금 파티에는 SF의 중국계 판사 출신인 CWJC의 릴리안 싱과 줄리 탕 공동의장을 초청해 기조연설을 하게 된다. 김현정 KAFC 사무국장은 “릴리안 싱과 줄리 탕 공동의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막기 위한 일본계와 일본 정부의 방해공작, 그에 대항해서 다인종 커뮤니티가 어떻게 싸워 나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조연설을 할 릴리안 싱과 줄리 탕 전직 SF법원 여성 판사는 미국내 중국 커뮤니티에서는 잘 알려진 사회정의 운동가들이다. 이들 2명의 전직 판사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판사로 이름을 나타냈지만,그보다 더 감동적인 면은 이들이 ‘기림비’ 활동을 위한 봉사를 하기 위해 판사직을 조기 은퇴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여성 판사들은 3년전에 ‘기림비’활동을 하는데 판사 업무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봉사할 수 없어, 고민한 끝에 판사직을 조기 은퇴하기로 결심하고 법복을 벗고 훌타임으로 기림비 건립 추진 운동에 매진했다. 최고 명예직인 판사직을 떨치고 위안부를 기념하는 ‘기림비’ 운동에 자신들의 명예를 봉사한 것이다. 이 같은 릴리안 싱과 줄리 탕 전직 SF법원 여성 판사의 사회정의 운동은 중국 커뮤니티는 물론 샌프란시스코 정계를 감동시켜 ‘기림비’ 건립이 성사되었다. 이 같은 기림비는 미국에서 대도시로서는 샌프란시스코가 처음이었다.

위안부 역사 설명-김현정국장

▲ 김현정 KAFC 사무국장이 KAC 세미나에서 위안부 역사에 대하여 설명 하고 있다.

이같은 2명의 여성 판사들에 대해 지난해 11월 13일 샌호세 지역에 본부를 둔 재미한인언론인 협회(KAJA 대표 김진형)과 한인미디어협회(KAMA 대표 아이린 서)가 공동주최한 ‘2015 한인 언론 인의 밤’에 릴리안 싱과 줄리 탕 전직 SF법원 여성 판사를 초청해 ‘2015 최고 커뮤니티 봉사상’ 을 수여해 이들의 공로를 기려 한인사회가 타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의미를 새겼다.

당시 ‘2015 한인 언론인의 밤’을 전적으로 후원한 ‘김진덕•정경식 재단’의 회장 김한일 박사(김한일 치과 원장)와 김순란 이사장은 이번에도 ‘일본군 위안부 여성정의연대’ (CWJC)를 돕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어 한-중 커뮤니티 협력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진덕•정경식 재단’의 회장 김한일 박사(김한일 치과 원장)와 김순란 이사장은 지난해 ‘Google 독도 지도 되찾기 서명운동’을 남가주의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미주본부와 함께 추진해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성공적으로 주도했으며, 북가주 지역에서는 커뮤니티 사회봉사 후원에 앞장 서고 있는 봉사자들이다.

위안부 이슈로 한-중 결속

북가주에서는 ‘김진덕 정경식 재단’등을 포함한 한인단체들은 지난달 8일 산 카롤로스 가야 식당에서 릴리안 싱과 줄리 탕 CWJC 공동의장 등과 만나 오는 9월 17일을 기점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기금모금 운동을 후원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한인사회 단체들은 김진덕•정경식 재단의 김한일 회장, 김순란 이사장, 미주상공회의소 총연합회 강승구 총회장, SF한인회 토마스 김 회장, 세계한민족 여성네트웍(KOWIN) SF지회 송지은 회장 등을 포함한 한인 단체들이었다. 이자리에서 김한일 회장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10만 달러를 모금해 전달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한인 커뮤니티의 이름이 ‘기림비’에 헌정돼야 한다는 조건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릴리안 싱 공동의장은 개인, 단체 등 기부자의 이름은 들어가지 않는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 한인, 중국 커뮤니티를 비롯해 필리핀, 베트남 등 기림비 건립에 동참한 커뮤니티 전체의 이름을 헌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싱 공동대표는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면서 “정의를 위해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줄리 탱 공동의장도 “중국속담에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다”며 “중국과 한국이라는 각각의 손이 합쳐져 소리를 내듯이 한중 커뮤니티가 합심하자”고 말했다.

또한 일본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뒤따라야 하고 이를 위해 계속 활동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현재 중국 커뮤니티는 자체 모금행사와 개인, 단체 기부 등을 통해 27만달러를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림비에 필요한 총 목표액은 40만달러이다. CWJC의 두 공동의장은 한인단체들의 입장을 다음CWJC 모임에서 전달하겠다며 한인 커뮤니티의 제안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편 SF 기림비 건립 장소는 ‘세인트메리 스퀘어’로 결정됐고, 기림비 건축물 디자인이나 이를 제작할 예술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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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방송,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 자매 소개

일본에 철저한 사과 배상 촉구

위안부 할머니 -BBC보도

▲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 – BBC보도

영국의 BBC방송은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로 알려진 자매가 그동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사과는 너무 모호하고 배상이 불충분했다고 지적했하면서 철저한 사과와 배상을 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BBC 중국어판은 지난달 20일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조직적인 학살과 집단 성폭력을 행사한 필리핀 마파니크 지역에 거주 중인 위안부 생존자인 리타(87)와 자매와 필리핀 위안부 문제를 재조명하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마파니크는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8㎞ 떨어진 마을로 지난 1944년 퇴각하던 일본군이 이 마을지역의 남성들은 다 죽이고 어린이를 포함한 약 100명의 모든 여성들을 집단 강간하는 만행을 저지른 곳으로 알려졌다. 마파니크에는 특히 일본군이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던 건물 유적인 ‘붉은 하우스’가 아직 남아 있다.

이들 자매는 1944년 당시 자신들이 13살, 15살 소녀였다고 회상하면서 자신들이 성폭행당하던 장소인 붉은 하우스에서의 기억은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일본군은 이들 자매를 포함한 대부분 마을 여성들을 이 건물에 감금하고 집단적으로 성폭행 했다. 일본군에 의해 집과 가족을 잃었던 이들 자매는 다행히 그 다음날 풀려났고 강을 따라 인근 마을로 내려가 정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헤어진 자매는 사흘만에 다시 만날수 있었고 지금까지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붉은 하우스’의 그림자가 자신들의 삶 전체에 드리워졌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필리핀 위안부 피해 여성이자 인권운동가인 에스테리타 바스바뇨 디(86)는 14살 때 일본 군에게 끌려가 3주 동안 성적 포로 생활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또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필리핀의 약 1000명의 위안부 피해자 중 70명 정도만 생존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BBC는 위안부 피해 여성 생존자 대부분이 80대 중반의 고령으로 이들 생전에 마지막 소원을 해결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리카르도 호세 필리핀대 교수 등 필리핀 학계는 일본군이 필리핀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성적인 만행은 순간적으로 결정된 범죄가 아니라 계획된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필리핀 위안부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고통에 관련해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법적인 보상을 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일본 정부가 지난해 12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관련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보상 약속을 제공했지만 자신들에 대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며 항의하고 있다.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는 또 자국 정부가 전략적 동맹과 무역파트너 등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위안부 사과 보상 문제와 관련해 충분한 압력을 행사하지 않다고 지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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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HR 121)의 쾌거

지금은 기념비적으로 알려진 ‘위안부 결의안 HR121’은 무려 8년에 걸친 미의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뤄졌다. 마지막 통과는 2007년 7월30일이지만, 민주당의 레인 에번스(Lane Evans) 의원이 1999년에 처음 결의안을 상정 시켰으나 번번히 일본의 저지에 걸려 7년동안 계속 상정 해오다가 그 자신 파킨슨 병에 걸려 바톤을 마이크 혼다 의원에게 넘겼다.

한인사회에서도 전국적으로 ‘풀뿌리 운동’으로 결의안 지원 활동을 벌여 값진 결과를 얻어내, 이를 시초로 오늘날 주류사회를 향한 정치력 신장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2007년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HR 121을 제출한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의원은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고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위안부 관련 결의안(House Resolution 121)을 주도했다.

애초 위안부 결의안(H. Res. 759 )은 2001년 처음 미국 하원에 소개되었고 2006년에 미 하원 국제관계 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그후 2007년 6월 26일, 39대 2의 표차로 미 하원 외교 위원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일본계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을 포함, 공화당과 민주당 통틀어 50명이 넘는 의원의 지지를 받은 이 결의안은 일본정부의 강한 로비활동에도 끝내는 미연방 하원 에서 그해 7월 30일 만장 일치로 정식 통과하였다.

일본 정부가 결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하원의장과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낸 민주당의 거물 토머스 폴리를 로비스트로 고용하기까지 했다.
미국 의회 결의안 통과로 2007년 11월 8일, 네덜란드 하원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캐나다에서도 같은 해 1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 일치로 채택하였으며 12월 13일에는 유럽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2008년 3월 11일 에는 필리핀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위안부의 존재에 대한 일본 일각의 부정, 비판은 유엔 문제로까지 확산되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8년 10월 30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하여 일본이 위안부 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 보상하여 피해자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하며, 이를 학생과 대중에게 알리고 부인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

위안부 결의안 통과 일정
1999년 미국 민주당 레인 에번스(Lane Evans)의원,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주장하여 미 의회 의사록에 기록으로 남기면서 이 문제를 이슈화. 레인 에번스 위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의한 ‘위안부’의 사용을 비난하는 법안을 2000년부터 꾸준히 미국의회에 상정해왔다.
2001년 – 1차 결의안 제출, 상정되지 못함
2005년 – 2차 결의안 제출, 상정되지 못함
2006년 9월 12일 – 3차 결의안 제출, 상정되고 심의됨. 회기가 지나 폐기됨.
2006년 말 – 에번스(Evans) 의원 파킨슨병으로 정계 은퇴
2007년 1월 31일 – 미국 민주당 마이크 혼다(Mike Honda) 의원, 4차 결의안 제출
2007년 2월 15일 –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 환경소위원회에서 위안부 청문회 처음 개최
2007년 6월 26일 – 결의안 외교위원회 상정, 찬성 39 대 반대 2로 통과
2007년 7월 30일 – 하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 투표로 결의문 채택.
마이클 혼다 의원은 이 날 하원 본회의에서 “이 결의안은 나의 스승이자 동료 의원이었던 에번스 전 의원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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