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쿠바 국교 정상화 임박으로 가까워진 쿠바여행

삼호관광 등 한인 관광업계 쿠바 관광 프로그램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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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쿠바 공식관계 재개로
하루 20편 운항 허가로‘한류열풍’기대

한국과 쿠바간의 국교회복 등 관계개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의 윤병세 외무장관이 쿠바를 공식 방문하면서 쿠바의 부루노 로드리게즈(Bruno Rodriguez) 외무상과 역사상 최초 한국-쿠바 외무장관 회담(사진)까지하자 쿠바 수도 아바나와 미국 워싱턴DC 외교가에서는 ‘한국과 쿠바간의 수교가 시간문제’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한편 미국의 교통부는 미국의 아메리칸 항공 등 8개 항공사들에게 올해 가을부터 LA 등 10개 도시에서 하루 20편 쿠바로 운항할 것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LA의 삼호관광 등을 포함한 여행사들도 본격적인 쿠바 관광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쿠바간의 수교문제는 지난해 7월 미국과 쿠바가 공식 관계를 재개하면서 다음 단계는 한국과 쿠바의 관계개선이라는 보도를 미국 언론들이 밝혔다. 실제로 한국과 쿠바간의 관계는 미국-쿠바 국교재개 이전부터 물밑에서 진행되어 왔다.
성 진 (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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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윤병세 외무장관(왼편)이 쿠바 로드리게즈 외무상과 만나고 있다.

올해 7월은 미국과 쿠바간의 관계가 개선된지 1년이 된다. 지난 3월에는 오마바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해 관계개선의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아직도 법으로는 미국시민은 가족방문 등 제한 조건 이외로 쿠바를 마음대로 방문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여권은 쿠바에서 아무런 제제조건을 받지 않는다.

한국여권으로 쿠바를 방문했던 제임스 신씨(65, 밸리 거주)는 “한국 여권과 미국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해 쿠바는 한국여권으로 방문했다”면서 “아바나 공항의 출입국 직원들은 상당히 친절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때문에 쿠바를 방문했다는 그는 “아바나에 북한 대사관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가 여행하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서 “쿠바 지식인들이나 경제인들은 남한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항공사들의 쿠바 운항을 허가하면서 미국과 쿠바 간의 관광, 경제, 문화, 체육 등의 교류가 크게 증가하면서 한인사회도 쿠바 관광 등을 포함해 비즈니스 교류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쿠바 정상화로 한인 관광업계 기지개

지난해 국교를 재개하면서 올해 상반기에 쿠바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보다 84%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상반기에 쿠바를 방문한 전세계 관광객 수도 지난해보다 11.7% 늘어난 214만 76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쿠바를 찾은 관광객은 미국과 국교 정상화 영향으로 총 352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전년 대비 17.4% 증가한 수치다.

이에 따라 한인들의 쿠바여행도 줄을 잇고 있다. 유럽이나 남미 여행을 이미 체험한 많은 미주 한인들은 쿠바에 대해 관심을 높이고 있다. 쿠바는 미주 한인 이민사적으로도 관계가 밀접한 나라이다. 1905년 대한제국 시절 멕시코로 이민을 떠난 한인 이민이 멕시코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다가, 그중 일부가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해 쿠바에서 역시 고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쿠바에서도 한인은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 그중에는 쿠바 카스트로 혁명 대열에 참가한 한인 젊은이(별첨 박스기사 참조)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 멕시코와 쿠바 이민 사회와의 교류가 이어지면서 점차 쿠바 한인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져갔다.

이같은 환경에서 LA 한인 여행업계는 최근 다양한 쿠바 상품을 내놓으며 한인 고객을 잡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삼호관광의 조응명 상무는 “현재 매달 40~50명이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예상보다는 아직 고객이 많이 몰리는 편은 아니다”며 “본격적인 여행시즌인 가을, 겨울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올가을부터 쿠바 관광 홍보도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주관광은 오는 9월 노동절 연휴에 출발하는 쿠바 상품의 예약이 이미 시작됐다. 아주관광의 피터 박 사장은 “총 30석 중 20석이 예약을 마쳤다”며 “타 국가와 달리 쿠바는 호텔 예약이 까다로워 현재는 매달 1~2회 정도 떠나는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쿠바 여행 열풍은 오는 가을부터 미국 항공사들이 본격적인 운항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37%가 쿠바 여행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 교통부는 지난7일 성명을 통해 8개 민간 항공사에 대해 아바나 취항 임시허가를 내줬다며 취항시기는 올 가을 초라고 밝혔다. 현재는 LA와 마이애미, 탐파 등에서 매일 10~15편 정도의 전세기가 양국을 비정기적으로 오가고 있다.

매달 한인 40여명이상 쿠바 관광

올가을부터 취항 허가를 받은 항공사는 알래스카, 아메리칸, 델타, 프런티어, 제트블루, 사우스 웨스트, 스피리트, 유나이티드 등이다.
이들 항공사는 LA를 비롯, 애틀랜타(조지아), 샬럿(노스캐롤라이나), 휴스턴(텍사스), 뉴왁(뉴저지), 뉴욕, 마이애미(이하 플로리다), 포트 로더데일, 올랜도, 탬파 등 10개 도시에서 하루 총 20편의 왕복 항공편을 운항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자국민들의 쿠바 여행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가족방문이나 공무, 언론사 취재, 교육과 종교활동 등을 위한 방문은 예외로 두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이 같은 규정을 완화해 미국인들이 별다른 감독을 받지 않고 쿠바와의 인적 문화 교류를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 정부는 현재 자국민에 대해 가족방 문이나 교육, 종교 등 12개 항목에 한정해 정부의 승인 없이 쿠바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쿠바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쿠바를 찾은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콘서트와 프랑스 브랜드 샤넬의 패션쇼에 열광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영화계에서도 쿠바의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고풍스러운 건물 등을 촬영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쿠바의 정치, 외교적 개방이 경제 및 문화산업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쿠바는 카리비안해에서 매우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나라다. 우선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오래된 플랜테이션(대규모 농장)과 녹색으로 뒤덮인 계곡, 엄청난 역사, 문학적 유산 등 모든 것이 황홀한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때 미국의 문호 헤밍웨이도 쿠바에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최근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수리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을 정도다.

쿠바의 명승지로는 설탕가루 같은 모래사장과 에멜랄드 빛 바다 해안으로 유명한 ‘바라데로’ (Varadero)의 리조트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쿠바하면 떠오르는 시가, 그 유명한 쿠바 시가는 바로 비냘레스(Viñales)라는 조용하고 풀로 무성한 마을 때문에 존재한다. 아직도 비냘레스에서는 사탕수수 농장이나 바나나 나무를 지나가는 마차를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중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바로 수도 아바나 근처에 위치한 집 ‘핑카 비히아’(Finca Vigia)에서 집필했다. 복원된 헤밍웨이 집은 최근 방문객에게 공개되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길게 늘어진 해변도로 ‘더 말레콘’(The Malecón)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다. 그래서 이 해변은 연인들과 관광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다. 여기에 도심속에 질주하는 강렬한 색감의 자동차들, 시가의 내음이 어우러진 곳이다.

아바나의 5대 광장 중 하나인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은 야자수로 가득한 천국이다. 또 이곳 구시가 지역에는 온갖 종류의 물건을 파는 벼룩시장도 매일 들어선다.
그리고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다는 ‘미라마’(Miramar)는 외국 대사관, 럭셔리 부티크, 멋진 건축물 등을 자랑한다. 이처럼 카리비안 풍물과 역사, 전통이 숨쉬는 무료 미술 워크샵부터 헤밍웨이 집 방문까지 아바나만 관광하려해도 4일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쿠, 정식수교시 ‘한류’ 상륙 가시화

쿠바와 정식 수교하게되면 조만간 서울에서는 쿠바산 시가를 즐기고,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는 한국산 삼성이나 기아 차를 쉽게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물론 휴대폰을 통해 한국 드라마, K-POP(케이팝)을 즐기는 광경이 이른 시일 내에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쿠바를 여행하는 한국인의 안전 관계 등은 일차적으로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이 관장한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주 아바나 멕시코 대사관과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전세계 유엔 회원국 중 쿠바, 시리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등 4개국만이 비수교국으로 남겨놓고 있다. 쿠바는 1948년에 한국을 승인하고 6.25 전쟁까지만 해도 우리 측에 약 300만 달러의 물자를 지원하는 등 양국의 시작은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친미정권을 무너뜨리는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면서 북한과 수교하며 혈맹이 됐고, 우리와는 비수교국으로 남았다.

북한과 친밀한 쿠바와의 인연은 지난 2005년 현대중공업이 진출하면서 경제적 교류가 시작됐다. 당시 쿠바는 전력난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밤만 되면 암흑으로 변하는 쿠바에 현대 중공업이 전력 발전설비를 설치하면서 쿠바 전체 전기 소비량의 무려 30%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쿠바로서는 현대중공업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자신들의 10 페소 지폐에 현대 중공업의 발전 설비를 그려 넣을 정도가 됐다.이후 한국은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고, 드디어 지난 4일에는 윤병세 장관이 쿠바 땅을 밟게 됐으며 결국 로드리게즈 외무상과도 최초로 양국 외교장관의 만남도 이어졌다.
윤 장관은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힌 바 있으며, 정부는 최근 문화∙개발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쿠바와 접촉 면을 넓혀 왔다.

민간차원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올란도 에르난데스 기엔 쿠바 상공회의소 회장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고 한국-쿠바 경제협력위원회 출범을 합의하는 MOU를 체결했다. 한-쿠바 경제협력위원회는 양국간 경제 및 통상관계 증진과 서비스, 관광, 투자 촉진을 목적으로 출범하는 첫 민간협력체다. 이들은 또한 오는 11월 첫주에 예정된 쿠바 아바나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10월말 쿠바 아바나에서 첫 합동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현지에서는 우리 기업 제품 중 삼성전자의 휴대폰, LG전자의 에어컨, 현대∙기아의 자동차 등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는 의료 및 바이오 기술이 세계적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고, 니켈과 코발트 등 광물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우리 측은 쿠바의 에너지 발전사업, 관광 인프라 개발사업, 의료산업 등을 유망 협력 사업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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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카스트로 혁명’에 참가한 한국인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체 게바라와 함께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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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천택의 장남 헤로니모 임(1926~2006, 좌측)과 체 게바라(1928~ 1967, 우측).

쿠바가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 중에는 1959년 1월 불과 33세의 피델 카스트로와 31세의 체 게바라가 일으킨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당시 혁명군은 친미적인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쿠바 민중의 지지하에 성공시켰다.
이 쿠바 혁명군의 대열에는 쿠바 한인사회의 대부로 불리는 임천택의 장남 헤로니모(임은조, 2006년 작고)가 있었다.
쿠바의 한인들 가운데 최초로 종합대학에 입학한 헤로니모가 쿠바 혁명운동에 뛰어든 것은 18살 때부터였다. 쿠바의 마탄사스주 법학부에 다니던 헤로니모는 부패한 쿠바사회의 모순을 몸소 체험하며 혁명의 대열에 가담한다.

헤로니모는 그 일로 구속돼 감옥에 갇히고, 마탄사스에서 학교를 다니기 힘들자 아바나로 학교를 옮긴다. 여기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다. 카스트로와는 강의를 같이 듣는것은 물론 시국토론과 시위에도 함께 참여한다. 헤로니모는 동갑내기이자 법대 동기동창인 피델에대해 “명석하고 리더십도 있었지만 최고 권력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생전에 회고하기도 했다.

고학을하며 힘겹게 학업을 이어가던 헤로니모는 가정형편으로 5년제 법대 졸업을 1년 앞둔 1949년 학업을 접고, 오르토독소(Ortodoxo)당에 가입, 이후 10년동안 직업 혁명가로 반정부 투쟁에 몸을 던졌다. 역시 오르토독소 당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카스트로가 우여곡절 끝에 쿠바 동부 산악지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점조직으로 운영된 도시 게릴라로 활동하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1959년 쿠바 혁명 성공 후 아바나 경찰청에서 복무하다 1963년부터 3년간 산업부에서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와 함께 근무하기도 한다. 당시 산업부 장관을 지내고 있던 체 게바라를 가까이 대하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위대한 인간’의 풍모를 접한다. 체가 또다른 혁명을 위해 쿠바를 떠난 후, 헤로니모는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치고 1988년 퇴직했고, 이후 아바나 인민위원장(차관급)으로 선출돼 쿠바의 한인으로서는 최고위직에 올랐다.

쿠바혁명의 공로를 인정받아 헤르니모는 쿠바 최고훈장 등 10여개의 훈장을 받았다. 부친 임천택에게 수여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에 대해 헤르니모는 어느 인터뷰에서 “쿠바 최고훈장 등 내가 받은 10여개의 훈장보다 아버지에게 바쳐진 이 훈장이 훨씬 고귀하다”고 하였다.

쿠바의 한인 1세들은 어느 누구도 쿠바 이주 후 다시 한국땅을 다시 밟지 못했지만 헤로니모는 운좋게도 남한과 북한을 모두 방문하기도 했다. 1967년 북한정부 초청으로 평양과 원산 등을 둘러보면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간직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5년에는 쿠바 한인대표 자격으로 서울에서 열린 광복 50돌 한민족축전에 참가했고, 아버지의 종교 천도교중앙총부를 방문하기도 했다. 헤로니모는 공직생활을 마친 후 연금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택시운전을 시작했고 부인 크리스티나는 간이 음식점을 열기도 했다. 택시운전을 하며 쿠바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의 명단을 만들고 쿠바한인회를 만들고 의장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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