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꽃동네 신상현 수사의 처절하고 애달픈 간증

이 뉴스를 공유하기

환자의 고통은 세상의 죄를 대신 하는것…

“AIDS환자를 치료하다가
그들과 함께 죽어가는 것이 소망”

박스7월의 마지막 주말에 남가주 한인 천주교계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찾는 묵상 대회로 많은 신자들이 마음의 안식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 한국의 꽃동네 원장인 신상현(야고보) 수사를 포함해 인천교구 성령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손광배 신부, 팔로티 수도회의 김태광 신부 등 3명이 강사로 나와 ‘새로 태어남을 통하여 체험하고 함께 상처를 치유’하는 큰 사랑의 모임을 만들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 참가자들은 꽃동네에서 의료 봉사하는 신상현 수사의 간증을 들으며 아픈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찾는 삶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서 영혼을 맑게 하였다. 올해로 29회째를 맞는 남가주 한인 천주교 성령쇄신 대회는 남가주사제협의회(회장 하알렉스 신부)와 남가주 평신도협의회(회장 최기남)가 공동 후원하고 남가주 성령쇄신 봉사회(지도 신부 하알렉스ㆍ회장 김국성)가 주관해 약 1,500명의 신자들이 참가 하는 가운데 몬테레이파크에 위치한 이스트 엘에이 컬리지에서 지난날 30-31일에 열렸다. 데이빗 김 (취재부 기자)

▲ 신상현 수사가 남가주 성령대회에서 간증하고 있다.

▲ 신상현 수사가 남가주 성령대회에서 간증하고 있다.

허름한 수도복 차림으로 성령대회 강단에 선 신상현 수사의 간증은 1,500 여명 참석자들에게 숨 막히는 충격을 주었다. 신 수사는 에이즈(AIDS)에 걸려 죽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이번 성령 대회에서 신 수사는 가정의 중요성도 많이 얘기했다.
꽃동네에 오는 대부분의 병자들, 육신과 심신의 병자들은 가족들간에 겪는 고통 때문에도 병들어 있음을 보았다.
지난 1989년 11월은 칼바람이 몰아친 추위였다. 그 겨울의 어느 한 자락. 한국의 충북 음성 꽃동네 함박산 중턱에 있는 성모상 앞에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새벽 1시. 인적이 끊긴지 오래인 그 곳에는 정적을 가르는 바람소리만 간간이 윙윙대고 있다.
사내는 움직일 줄 모른다. 시간이 흐른다. 흐르는 시간의 깊이만큼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 그러나 사내는 석상이 된 듯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사내의 얼굴에는 시간의 깊이도, 엄동 설한의 위세도 찾아볼 수 없다.
모두들 잠든 이 깊은 산중의 어둠 속에서 사내가 두 손 모아 염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꽃동네 사람들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았던, 마치 비밀 의식처럼 은밀했던 사내의 기도는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에도 계속됐고, 물 오른 버들개의 풋풋한 향내 속에서도 이어졌으며 소쩍새 울음소리 난분분 어지럽던 여름날까지 끊이지 않았다.

89년 겨울의 초입에서 이듬해 7월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사내의 기도. 진정 그가 염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이토록 그에게 간절한 소망을 갈구하게 만들었는가.
신상현 야고버 수사가 9개월간 새벽 1시에 매일처럼 꽃동네 함박산 성모상을 찾아 기도를 드렸던 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의대를 다니며 전문의 면허를 취득한 그는 꽃동네로 왔다. 의사로서 그들을 도와주러 갔는데, 삼개월도 안 돼서 그는 깨달았다. 그의 간증을 들어보자.

하느님의 음성을…

저 버려진 사람들, 굶어 죽고 얼어 죽어가던 그들에게 제가 해 주는 것보다, 제가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저에게 다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봉사하러 갔다가 봉사를 받는 사람이 되고나서 궁금했습니다.
‘나는 뭘 잘 해서 이렇게 건강하고, 의대 나와서 의사가 되고 저들은 왜 저렇게 버려지고 비참하고 쓸쓸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님이 꽃동네 준공식 때 오셔서 하신 말씀을 보았어요.
“여러분, 저기 꽃동네 가족들을 보십시오. 휠체어 타고 있고, 들것에 누워 있고, 정신병에 걸려 있고, 간질하는 저 환자들이 여러분들 눈에는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입니까?”
사람들은 조용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추기경 눈에는 저 사람들이 쓸모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쓸모 있는 분들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저 분들이야말로 내가 겪을 고통을 대신 겪고 있고, 내가 지은 잘못을 대신 보속하고 있고, 내 허물을 씻어주는 가장 고마운 분들이기 때문에, 가장 꼭 있어야 하는 그런 분들입니다.”

그 글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맞다, 내가 부모와 형제들에게 빚을 졌듯이 내가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잘난 체 하고 살 수 있었던 힘은 꽃동네 가족들이 병들고 버림받아서 나의 고통과 죄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구나. 나는 내 가족들에게만 빚을 진 줄 알았는데,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던 그런 불쌍한 분들에게 많은 빚을 졌구나…’
사람들은 가끔 저에게 묻습니다. “왜 수도생활을 합니까?”
“어떻게 내과 전문의까지 따 가지고 이렇게 힘든 선택을 하셨습니까? 아, 존경합니다.”
그러면서 갖은 칭찬을 다 할때, 저는 속이 뒤집어 지면서 막 토할 거 같아요. 그러면서 속으로 이럽니다. ‘그렇게 나 칭찬할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가족들한테나 잘 해 주십시오.’

이건 제가 칭찬 받으려고 한 게 아니고, 내가 꼭 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너무나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부모 형제에게, 의대 선생님들께, 훌륭한 선배님들한테, 그리고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그 빚을 갚아야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도자가 된 겁니다.
부끄럽지만.. 동료 의사들 가운데 생명을 희생시키는… 아이를 유산시켜 주는 의사가 있었을 때 ‘내가 동료 의사들의 잘못까지도 보속하고 대신 속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장가 안 가도 좋고, 돈 못 벌어도 좋고.. 수도자가 돼서 살아야겠다…’

이렇게 결심하고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저의 소망은 에이즈(AIDS)에 걸려 죽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에이즈 환자들을 들여와 이 곳이 그들의 심신을 치료하는 병원이 되게 하는 것이 나의 첫번째 소망이고, 그 환자들을 치료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에이즈에 걸려 그 고통을 같이 느끼며 살다 가는 것이 두번째 소망입니다.

“내가 빚을 졌어요”

우리나라에도 앞으로 에이즈 환자가 급증할 것입니다. 에이즈는 인류 최악의 징벌이니, 하는 말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하고 죄악시하는 부분인데요. 그렇지가 않아요. 그들의 죄는 그들의 죄가 아닙니다. 그들의 고통은 세상의 죄를 대신 걸머진 채 치르고 있는 하나의 의식입니다.

제가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어요.
한 20년쯤 전에, 저 부산 모 종합병원에 버림받은 에이즈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죽어간다고 해서… 저희들은 그런분을 모시는게 소원이니까 제가 가서 모셔 왔어요. 모셔 와서 목욕을 시켜 드리면서 보니까, 등에 욕창이 크게 두개가 있는데 피고름이 나오는 거예요.
에이즈 환자는 피가 문제거든요. 관장을 했더니 거기서도 피가 나오고.. 그래서 간호사님보고 목욕을 시키라고 하려다가 ‘아, 에이즈는 피로 전염되는데… 간호사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수도자는 3D 업종인데, 더럽고 힘든 일은 내가 해야지…’

신상현 수사

▲신상현 수사

그래서 병원장인 제가 그분 목욕을 시켜드렸어요. 피를 닦아내고, 대변을 닦아내고, 욕창을 치료해 드리고… 그리고 밥을 먹여 드렸습니다. 그분이 밥을 받아 먹으면서 저를 쳐다보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혔어요. 왜 우느냐고 그랬더니, 에이즈 바이러스가 머리까지가서 곧 죽을 거라서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받아 본 그 감격 때문에, 이제는 버려져 혼자 죽지 않게 되었구나…

그래서 울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40일을 돌봐 드렸습니다. 목욕 시켜 드리고, 주사 놔 드리고, 드레싱 해 드리고, 약 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해 드리고… 밤이고 낮이고 돌봐 드렸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이제 숨이 턱에 차는 거예요. 그가 모기만한 소리로,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사님, 제가 말할 기운은 없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죽어야겠습니다.”

그는 겨우 숨을 몰아 쉬면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행복합니다…”
저는 죽어가는 분하고 농담을 잘 해요. 지금 새벽 한시가 다 돼가는데, 딴 사람들 자게 조용히 좀 하시라고…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하시라고… 욱박질렀어요. 저는 ‘행복하다’는 그 말을 듣기가 너무 송구스러워서… 반작용으로 농담으로 윽박지르는데 그분은 제 말에 기죽지 않고… 저는 젖 먹던 힘이라는 걸 그때 체험했는데 임종하는 환자가 ‘한 번 더 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오는지 “나는 정말로 행복해요~”라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더 이상 농담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저희들의 보잘 것 없는 사랑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있는… 그 고백을 듣고 있는 이 죄인이 그대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그리고 저는 새벽 한시 반이 넘어서 당직실로 들어왔는데 아주 신비한 체험을 했어요. 조그만 당직실, 깜깜한 방에 창문이 닫혀 있었는데 마치 창문이 열리는거 같으면서 어두운 밤 하늘과, 온 우주와 통하면서 우주 삼라만상이 다 내꺼다… 하는 그런 기분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면서 ‘나는 부자다.. 나보다 부자 있으면 나와 봐라…’ 그랬는데 그 방에 저 밖에 없어서 아무도 안 나오더 라구요. 그래서 제가 제일 부자인 거 같았어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부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는데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다 주고, 더 주고… 더 줄 것이 없어서 부족 함을 느끼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바닥을 치면 그것이 가난한 상태입니다.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나면,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의 영혼도 구원되지만 그가 행복해지는 걸 보고, 우리도 행복해집니다.
그때 저 자신을 생각해 보면… 저는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부인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야말로 시간도 없었어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야말로 다 줘 버렸기 때문에… 저는 정말로 빈털털이였습니다. 밤 새워 치료했지만 그분이 죽어갈 때 ‘더 잘 해 드리지 못 해 죄송하다… 나는 저 분을 살려야 하는데 살리지 못해서 실패한 의사다… 어떻게 하면 더 도와드릴까..’ 그런 부족감을 느끼면서 사랑했던 거 같아요.
그랬을 때 그분이 ‘행복하다’ 그러고, 저한테 그런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랑합니다.

————————————————————————————————————————————————————

꽃동네 신상현 야고버 수사

신상현 수사는 55년 5월 5일 음성군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자식이 귀했던 집안에서 부친 신태한 씨(85년 작고)는 3대 독자 외아들이었다. 부친은 어릴 때 조실부모하여 어렵게 자수성가했는데 성실과 근면, 검소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
신 수사는 서울 동명 초등학교와 경동 중•고등학교를 거쳐 80년 가톨릭 의대에 들어갔다. 당시 어려운 시절 탓에, 대개의 가정이 그랬듯 신 수사 가족도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을 싸지 못하면 수돗가에 가서 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도 있었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6년간 왕십리에서 보문동까지 10여리를 무겁고 두툼한 ’고생 보따리’를 들고 늘 걸어 다니던 기억도 새롭다.
신 수사의 부모는 몸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만성 십이지장 궤양에 시달렸고 아버지는 천식으로 고생했다. 부모의 고통을 지켜보며 신 수사는 고통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다. 가톨릭 의대에 들어간 신 수사는 의과 4년을 거친 후 본과 2년 과정에 들어갔다.
신 수사는 84년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 85년 11월 평생 성실하게 생활해 온 부친이 폐암으로 결국 작고했다. 부친은 죽기 1주일전 신 수사에게 “너는 이담에 꼭 남을 돕고 살아라”고 유언했다.
신 수사는 지금 이 유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