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 미국에서도 초대박 ‘우리가 꼭 이 영화를 봐야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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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영화가에서도 ‘한국 박스 1위 작품’으로 소개

‘임병래 중위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들…’

미국 극장가에서도 ‘인천상륙작전’(영어명 ‘Operation Chromite’ 감독 이재한)이 화제다. 12일부터 미국 극장에서 개봉되는데 헐리웃에서는 이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로는 ‘국제시장’(Ode to My Father)을 능가해 최대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리아타운에 자리 잡은 CGV는 이미 지난주부터 개봉해 연일 만원이다.지난 5일 밤 10시 본보 기자가 CGV를 찾았는데 젊은 층이 유독 많았다. 한국에서 영화가 대박을 터트리자 영화에 출연한 미국 배우 리암 니슨(Liam Neeson) 도 헐리웃에서 덩달아 뜨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이 국내 개봉 2주일만에 5백만을 넘어서자 헐리웃 영화가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헐리웃 영화계의 최대 권위지로 알려진 Variety 와 Reporter 지는 최근호에서 “리암 니슨과 한국 배우 이정재가 주연한 한국 영화 ‘Operation Cromite’(한국명 인천상륙작전)가 한국 극장가에서 박스 순위 1위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며, “이 영화에 출연한 미국 배우들이 덩달아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리암 니슨은 맥아더 역을 맡아 한국인들 사이에서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아일랜드 출신인 리암 니슨은 출신 고향 노던 아일랜드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영화는 국내에서 새삼 이념 공방도 벌이고 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인천상륙작전국내 개봉 2주일 만에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이 LA에서도 연일 만원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일 밤 10시 CGV 극장에는 젊은 20-30대부터 40~50대 중장년층까지 관객들이 몰려들었는데 젊은 층이 유독 많았다.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은 “첩보전 영화로 박진감이 느껴졌다” “한국전쟁에서도 이름 없는 영웅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6.25를 모르는 세대들이 보면 좋을 영화” 등등의 말들을 남겼다. 당분간 ‘국제시장’이나 ‘명량’과 같은 인기를 몰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12일부터는 LA 시내 극장가를 포함해 미국과 캐나다의 130개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된다. 과거 ‘국제시장’은 53개 극장에서 상영된 바 있다.

역대 북미지역에서 가장 많은 130여개서 개봉

북미 배급을 맡은 CJ 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개봉관 수는 역대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130여 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흥행 수익 260만 달러를 거둬들인 북미 최고 흥행 한국 영화 ‘명량’이 45개 스크린, ‘국제시장’이 53개 스크린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한편 헐리웃의 Variety 지는 지난 7월 31일자 판에서 톱기사로 인천상륙작전을 보도하면서 “리암 니슨이 한국영화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면서 “과거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태인을 구조한 연기로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한국을 구한 미국 장군 역으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영화잡지도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에서 개봉과 함께 대박을 터뜨려 리암 니슨이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영화 잡지 스타(Star) 지는 리암 니슨이 “처음 배역을 제의받고 그가 맡은 맥아더 장군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국민적 영웅 이기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됐다”면서 “정말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맥아더 장군의 보좌역으로 출연한 선 더레이크(Sean Dulake)도 새로운 한인 팬들을 만나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선 더레이크는 한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배우다. 그는 LA에서 태어나 나중 보스턴 대학교를 나와 영화배우 겸 제작자 그리고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헐리웃 영화 평론가 길버트 시아(Gilbert Seah)는 Festival Reviews잡지에 기고한 영화평에서 “이 영화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뀌게 한 인천 상륙작전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이 작전명이 ‘Operation Chromite’(미국에서의 영화 제목)이라며 한국 극장가에서 예상을 뒤 없고 박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헐리웃 영화계가 주목한 한국전쟁영화

인천상륙작전1

▲ 인천상륙작전 기자회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정재와 리암 니슨

시아 평론가는 이 영화로 한국인들은 한국전쟁과 인천 상륙작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며, 인천 상륙작전은 유엔군 75,000명과 261척의 함정이 동원되어 1950년 9월 15일에서 18일에 완료되어 2주 후인 9월 28일 서울 수복의 길을 터논 성공적인 군사작전이라고 소개했다.

영화의 내용을 인천 상륙작전 상항 보다는 맥아더 장군과 8명의 한국 해군 특수부대 요원의 활동상인 ‘X-Ray’ 작전상을 그렸다고 소개한 시아 평론가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 영화지만, 극 중 요소를 가미하는 내용도 삽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그중 한 장면이 첩보원이 적지에서 자신의 부인과 아이를 만나는 장면인데, 대원들이 번갈아 아이를 안아보는 장면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시아 평론가는 “영화가 불과 개봉 일주일 만에 1,500만 달러 제작비를 훨씬 넘어선 1,850만 달러 수입으로 한국 영화 제작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면서 “한국인들은 이 영화에 푹 빠지고 있는데 북한 측은 ‘우스꽝스런 미친 영화’라고 혹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결론적으로 이 평론가는 “질적으로 우수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미 영화는 극장가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007 영화가 질적으로 우수하지 않지만 흥행과 인기로는 항상 앞서갔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역사 속 숨겨진 영웅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긴박감 넘치는 첩보전 영화다. 이정재, 이범수의 혼신의 열연과 시너지,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인기를 모았던 헐리웃 배우 리암 니슨의 묵직한 연기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기에 최근 MBC 드라마 ‘옥중화’에 나오는 정준호와 진세연 등의 모습도 보이고, 또 단역배우로 출연하는 심은하의 두 딸 지하윤, 수빈 양의 연기도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 내용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 함락,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된 대한민국. 유엔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모두의 반대 속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한다.

성공확률 5000:1,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뿐이다. 맥아더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에 놓인 가운데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전세를 바꿀 단 한 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을 위해 인천 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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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명 ‘Operation Chromites’… ‘66년전 그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잊혀진 그날의 영웅들이 되 살아나다’

함명수 해군첩보대장

▲ X-RAY작전의 실제인물 함명수 해군첩보대장

인천 상륙작전은 암호명이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 Operation Chromite’이다. 이 작전을 가능게 한 것이 영화 줄거리인 <X-Ray 작전>이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남한 전체가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 갔던 전세가 역전됐다. 인천 상륙작전하면 한국인들은 ‘맥아더 장군’을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번 영화를 통해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에서 숨은 우리의 한국 장병과 민간인들의 공적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영화는 인천 상륙작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내용은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또 다른 작전 ‘X-Ray’ 작전을 주로 그렸다. ‘X-Ray’ 작전은 실제로 한국 해군 첩보부대와 이름없는 민간인들에 의해 이뤄진 작전이다.

역사적 작전으로 함락당한 서울 탈환

군사기록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한국은 북한의 기습 남침 공격으로 3일만에 서울이 함락 되고 불과 한달만에 대구와 부산, 마산 정도만 남긴 채 전국토가 점령당했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8.15 광복때는 부산에서 승리 파티를 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2차 대전의 영웅 맥아더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역사상 최초의 UN군 총사령관의 직책으로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포함한 16개국의 연합군을 통솔하게 됐다. 그는 서울이 함락 당한후 전선을 시찰한 후에 인천 상륙작전을 꿈꾸었다고 한다.

‘오퍼레이션 크로만이트’ 작전은 전쟁이 시작된지 2개월후인 8월 12일 수립되었다. 그리고 8월 20일에 한국 해군 첩보부대에게 ‘X-Ray’ 작전이 떨어지고 인천 앞바다 영흥도에 대한 상륙작전이 개시되고 아울러 첩보활동도 시작됐다. 9월 1일에는 맥아더 사령부의 클라크 미 해군 대위가 영흥도 도착해 한국 해군 첩보부대 활동정보를 동경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에 송신했다.

드디어 D-Day(작전 개시일), 9월 15일 새벽 0시 팔미도 등대가 점화되어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이 개시되어 18일에 끝났으며, 이후 10일 후 9월 28일에 북한군에 함락당한 서울이 수복됐다. 인천 상륙작전은 역사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군사 상륙작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 결정과 더불어 동경에 주둔하고 있던 극동 군사령부는 정보 수집을 위해 처음에는 미군 첩보부대 투입을 고려했으나, 언어의 장벽과 현지 지리에 낯설다는 한계 때문에 한국 해군정보국에 이 임무를 일임한다.

첩보작전 ‘X-RAY’의 시작과 임병래 중위

이에 당시 해군 총참모장 손원일 제독은 극비리에 인천 상륙작전에 필요한 제반 정보수집 임무를 지시하고, 해군 정보국장인 함명수 소령은 자신을 포함, 비밀리에 선발한 요원까지 총 17명의 인원으로 작전에 나선다. 첩보부대 요원은 김순기, 장정택, 임병래 중위 등 정보장교와 김남규, 정성원, 박원풍, 차성환, 한유만, 홍시욱 등 정보국 소속 사병 6명, 그리고 7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되었다.

영흥도에 상륙한 해군 첩보부대는 인천지역 북한군의 배치 현황, 보급선과 현황, 해로의 기뢰 매설 여부, 상륙 지점 지형, 인천항의 안벽 높이, 북한군의 방어진지 등 인천과 월미도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일대의 적정을 수집했다.
영흥도를 거점으로 통신, 경비, 정보 분석을 임무로 맡은 장정택 중위 팀과 인천 등지로 잠입하여 정보 수집의 임무를 맡은 김순기 중위 팀, 임병래 중위 팀의 3개 팀으로 나뉜 첩보 부대는 본격적인 작전에 착수한다. 이에 김순기, 임병래 중위 팀은 북한군과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하여 인천 시내로 잠입했으며, 월미도의 해안 방어태세를 확인하기 위해 작업 인부로 가장해 접근하기도 했다.

첩보부대의 김순기 중위가 인천지역에서 근무하던 때 알던 정보원들을 통해 인천을 왕래하는 통행증을 구하자 첩보 부대원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관건은 월미도의 정보였다. 연합군의 상륙정들이 인천항으로 안전하게 들어서려면 그 관문격인 월미도를 먼저 점령해야 하기에 이곳의 지형과 북한군 정보동향이 필수적이었다. 첩보부 대원들은 월미도 해안도로 보수공사의 인부로 일하며 이곳 해안 포대의 위치와 수를 헤아리거나 때로는 인민군 복장을 하고 나가 적 병력을 탐지했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는 영흥도의 첩보부대 기지를 통해 맥아더 사령부로 전달됐다.

그리고 9월 14일, 인천 상륙작전을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한 극동 군사령부는 인천 상륙작전 개시가 임박함에 따라 영흥도 첩보기지에 ‘모든 임무를 끝내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군 첩보부대의 임무 완수와 희생

철수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첩보부대는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로 기습해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에 영흥도에는 임병래 중위를 비롯한 해군 첩보부대 9명과 해군 의용대원 30여 명 만이 남아 임병래 중위의 지휘 아래 북한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해군 첩보부대와 민간 의용군의 탈출을 위해 6명의 해군 첩보대원들은 퇴로가 차단된 가운데 포위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이에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 둘만이 남아 공격을 차단함으로써 나머지 대원들의 탈출을 돕고 끝내 북한군에 포위된다.

하지만 인천 상륙작전을 불과 24시간 앞둔 시점에서 포로가 될 경우 작전이 탄로 날 것으로 판단한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작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군사기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잔무를 처리하려고 남은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 등 일부 대원은 그만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다. 소수의 한국군이 영흥도에 주둔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북한군이 9월 14일 영흥도를 기습 공격한 것이다. 임 소위가 중대장이 돼 북한군과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임 소위와 홍 하사는 작전 을 하루 앞둔 시기에 자신들이 포로로 잡히면 정보가 누설될 것을 우려해 휴대하고 있던 총으로 자결했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의 일이었다.

영화는 이 ‘X-Ray’ 작전을 극화 하고자 해군 첩보부대가 인천 상륙작전을 지원하려고 첩보활동을 벌였다는 큰 줄거리만 따오고 구체적인 내용은 새롭게 구성했다. 특히 극적 긴장감을 높이려고 우리 첩보부대가 북한군으로 위장해 인천지역에 침투했다는 설정을 사용하고 첩보부대의 주된 타깃을 북한군의 기뢰매설 위치 정보로 한정했다.

인천상륙작전과 켈로부대의 영웅들

켈로부대는 9월 14일 팔미도라는 섬을 탈환해 그곳에 있던 등대를 밝혀 다음날 연합군의 함정이 무사히 인천항으로 들어올 수 있게 유도했다. 영화에서 켈로부대의 이러한 공을 확인할 수 있다.

첩보수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펼친 해군 중위 임병래가 그 주인공이다. 임병래 중위는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50년 4월 소위로 임관했다. 해군 정보국 창설요원인 그는 인천 상륙작전 당시 ‘영흥도 첩보전’, 일명 X-RAY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한국정부는 1954년 이들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미국은 이보다 앞서 1953년 7월 은성 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한국 해군은 둘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도탄 고속함 10번 함(임병래함)과 11번 함(홍시욱함)을 함명으로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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