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 단독 발굴] 김형욱 회고록 FBI영문판 전체 입수 단독공개…정보공개 청구요구 지난해 9월 15일 비밀해제

■ FBI, 김형욱 실종 1달 후 회고록 원고 전체입수

■ 김경재 정식출판은 1982년 말, FBI가 3년 빨라

■ 80년초 김형욱회고록 영문요약판 작성 극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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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오브코리아, FBI에 정보공개 청구 1년6개월만에 입수

FBI판 김형욱회고록 영문판존재,
37년 만에 최초로 확인되다

김형욱미국 FBI가 ‘김형욱 회고록’을 출판되기 3년 전에 이미 입수, 그 내용을 상세히 검토하고 극비로 영문 요약본까지 작성했던 사실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37년만에 확인됐다. 시크릿오브코리아가  FBI에 정보공개를 청구, 1년6개월만에 입수한 이 비밀전문은 FBI가 1979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약 1달만에 김형욱회고록 원고 전량을 입수했고, 이를 정밀 검토해 1980년초 일목요연하게 영문요약본을 작성, 극비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김경재 현 자유총연맹총재가 김형욱회고록을 출판한 것보다 3년이나 앞선 것으로, 미국정부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김전총재는 6월말 보스톤에서 기자를 만나 이 같은 사실을 전달받고 ‘미국 정보당국이 영문판까지 작성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며‘김형욱 실종 뒤 3년간 그의 생환을 기다린 뒤 회고록을 출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형욱 회고록 FBI 영문요약본 극비보고 문서와 실제 출판된 책은 3권의 목차등이 거의 대부분 일치했고 극히 일부만 순서 등이 바뀌거나 일부 성명서등만 추가된 것으로 드러났다. 37년전 FBI가 극비로 작성한 김형욱 회고록 영문판의 비밀을 밝힌다.
안치용(시크릿오브코리아 편집인)

시크릿오브코리아가 FBI에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관련 파일의 공개를 청구한 것은 2014년 3월, 김형욱에 관련한 어떤[ANY] 종류의 문서든 모두 공개해 달라는 요구였고, 이에 대한 답변까지는 1년6개월여가 걸렸다. 마침내 지난해 9월 14일 FBI는 김형욱관련 파일을 CD에 담아서 보낸 것이다. SECRET이라는 비밀표시가 뚜렷한 문서였다.
FBI가 보낸 김형욱관련파일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80년 3월 3일자 극비문서였다. 이 문서의 제목은 ‘김형욱[KHW] 였으며, 극비문서 작성 목적은 김형욱의 미 출판 원고에 대한 검토결과였다. 또 ‘정보와 기록목적’이라고 밝히고 67페이지에 걸친 김형욱회고록 ‘혁명과 우상’의 요약본이 첨부돼 있었다.

▲ FBI가 보내온 김형욱 관련 파일이 수록된 CD [2015년 9월 14일자]

▲ FBI가 보내온 김형욱 관련 파일이 수록된 CD [2015년 9월 14일자]

시크릿오브코리아 비밀해재요청 받아들여

이 극비문서 전문은 2013년 7월 15일 비밀 해제됐고, 첨부된 김형욱회고록 영문요약본이 비밀해제된 것은 지난해 9월 15일로 명시돼 있다. 극비전문을 비밀해제하고 나서도 2년2개월여가 지나서야 영문요약본이 비밀 해제되고 1개월 뒤 시크릿오브코리아에 전달된 것이다. 작성자가 삭제된 채 공개된 이 극비문서는 ‘나는 1979년 11월 15일부터 11월 25일까지 미국 뉴저지에서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김형욱의 출판원고를 검토하고 요약한다’고 적고 있다.

이 문서의 작성자 부분, FROM으로 시작되는 부분의 삭제됐으나, 바로 옆에 수기로 ‘WKK’라고 적혀 있었으며, WKK가 작성자의 이니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극비문서는 이 원고를 검토한 결과 ‘미국에 대한 명예훼손적 내용이 없고, 미국내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의 불법적 행동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또 책 내용은 ‘김형욱과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 및 그의 참모 등에 관한 것이며, 한국 내에서의 정치적 음모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FBI는 깨알같은 작은 글씨로 된 3권의 책, 950페이지를 67페이지로 요약해 낸 것이다.

김형욱이 파리에서 실종된 것은 1979년 10월 7일, 실종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된 것은 1979년 10월 16일경이다. 즉 FBI는 김형욱 실종사실이 일반에 알려진 직후 약 1개월 후인 11월 15일 김형욱회고록 혁명과 우상의 원고 전체를 입수했으며 그 뒤 10일간 그 내용에 대한 정밀검토를 한 것이다. 그리고 약 3개월 후 이에 대한 요약보고서가 작성된 것이다. 김형욱회고록의 FBI 영문버전인 셈이다. 김형욱 회고록의 초판 3권을 입수, 확인한 결과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한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는 1982년 12월 12일, 초판을 출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초판에는 발행소는 독립신문사, 발행인은 김경재, 저자는 김형욱-박사월로 기재돼 있으며 미국에서 발간된 이 책은 한 권당 15달러에 판매됐다. 그렇다면 FBI는 김형욱의 죽음을 재촉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의 정식발간 3년전에 이미 원고 전량을 입수한 뒤, FBI판 영문요약본을 작성하고 FBI내부에서 출판한 셈이다. FBI가 한국인이 집필한 책의 영문요약판을 만든 것은 그 전례가 없는 일로, 그만큼 김형욱이 미국 정보당국이 관심을 집중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었고, 이 회고록의 내용이 미국정부로서 정보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여러 정황상 FBI는 당시 미 국무부등 관계요로에 김전부장을 찾아달라고 공식요청했던 김씨 가족들로 부터 이 원고를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5.16혁명부터 미 연방의회에서 증언까지

FBI가 작성한 김형욱회고록 영문요약본과 김경재 총재가 실제 출판한 초판을 비교 검토한 결과, FBI가 1979년 11월 입수한 김형욱회고록 원고가 초판과 사실상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경재총재가 집필한 김형욱회고록은 2백자 원고지로 5천매가 넘는다.

▲ FBI 김형욱 정보공개청구관련 결과 통보서 [2015년 9월 14일자]

▲ FBI 김형욱 정보공개청구관련 결과 통보서 [2015년 9월 14일자]

1백만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3권으로 나눠서 출판됐다. FBI영문요약본도 3권으로 나눠져 있어서 당초 원고자체도 3권으로 분리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FBI가 원고를 입수했을 당시 출판을 위한 완벽한 준비가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FBI영문요약본은 김형욱회고록의 목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각 소제목하의 내용들을 중요한 내용만 짧게 정리했다.

5.16혁명으로 시작된 1961년 전 후부터 김형욱이 미 연방의회에서 증언할 때인 1977년 6월까지, 박정희 정권의 탄생 비화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총망라돼 있는 김형욱회고록이 영문요약본으로 작성됨으로써 사실상 약 20년간의 한국정치사 영문요약본 구실을 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가장 엑기스를 영문으로 정리한 셈이어서 이 영문요약본만 봐도 20년간의 중요사건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FBI영문요약본은 1권의 제목이 ‘ACROBATICS OF THE REVOLUTION’ 즉 ‘혁명의 곡 예’로 돼 있는 반면, 실제 출판된 책 1권의 제목은 ‘혁명과 반혁명’이었다. 출판된 김형욱회고록 초판에는 제1권의 제목이 혁명과 반혁명이며 제1장이 ‘혁명의 전말’로 14편으로 구성돼 있고, 제2장이 ‘혁명과 반혁명’으로 11편, 제3장이 ‘혁명의 곡예’로 11편으로 구성돼 있다. 당초 FBI가 입수한 원고에서 제1권의 제목은 제3장의 제목인 ‘혁명의 곡예’였으나 실제 출판과정에서는 김총재가 제2장의 제목인 ‘혁명과 반혁명’을 1권의 제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FBI영문요약본은 제1권 제3장의 제목을 ‘POLITICAL ACROBATS’, 즉 ‘정치적 곡예’로 번역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FBI영문요약본도 각장 하의 각 편의 제목 등이 실제 출판된 회고록과 일치했다.

한국 중앙정보부 내부비화 고스란히 공개

FBI영문요약본은 2권의 제목이 ‘THE INSIDE STORY OF THE 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로 즉 ‘한국정앙정보부 내부비화’ 로 정리된다. 실제 출판된 김형욱 회고록의 2권 제목은 ‘한국중앙정보부’로 영문요약본과 실제 회고록이 정확히 일치한다.

▲김경재 전의원이 1982년펴낸 김형욱회고록 혁명과 우상 3권

▲김경재 전의원이 1982년펴낸 김형욱회고록 혁명과 우상 3권

실제 출판된 김형욱회고록 초판에는 제2권 제1장의 제목이 ‘한국남산공화국 내막’으로 12편으로 구성돼 있다. FBI본에는 제1장 제목이 SOUTH MOUNTAIN REPUBLIC OF KOREA 로 변역됐고, 12편으로 일치했다. 초판 제2권 제2장의 제목은 ‘풍운아 전성시대’로 9편으로 구성돼 있고 FBI본에는 제2장 제목이 PERIOD OF THE COUNTRY IN CIVIL WAR AND A LUCKY ADVENTURER 로 ‘내전과 행운아의 시대’정도로 풀이되며 역시 목차 등이 모두 똑 같았다. 초판 제2권 제3장은 제목이 박정희의 개헌 장정’으로 모두 10편의 소주제로 꾸려졌다. FBI본의 제3장 제목을 PARK CHUNG-HEE’S LONG MARCH TOWARD THE REVISION OF THE CONSTITUTION 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FBI본은 제3장이 모두 11편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제10편까지는 목차 순서와 내용이 일치했으나, FBI본은 제11편이 있었던 반면, 실제 출판된 책에는 제11편을 없었다. FBI본 제11편의 제목은 KIM SUNG-KON’S SECRET OF SUCCESS IN ACCUMULATING WEALTH 이었다. 공화당 재정위원장을 지내며 박정희 정권의 돈줄 역할을 했고, 쌍용그룹 창업자이기도 한 김성곤에 관한 이야기였다. FBI본 제11편의 제목을 우리말로 풀자면 ‘김성곤의 축재성공비밀’ 정도다. 그렇다면 김총재는 김성곤의 치부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을 빼준 것일까, 그렇지 않다. 김성곤은 1975년 사망했으니, 김성곤이 자신의 약점을 삭제를 해달라고 로비를 할 상황도 아니며 김총재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쓴 글에서 아무개 아무개가 통사정한다고 해서 그 원고를 삭제해 줄 사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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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5.16은 반민족적 거사에 불과

조국을 위한 혁명이 아니라
자기 살기위한 ‘정치적 음모’

실제 출판된 초판을 상세히 검토한 결과 FBI본 제11편 김성곤축재성공비밀은 김형욱회고록 제2권 제3장 제2편 121사태관련 주제하에 녹여져 있었다. 김형욱회고록 제2권 209페이지에서 그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FBI본 제11편 요약내용을 보면 ‘김성곤이 어떻게 부를 축재해 재벌이 됐고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됐는지 개인적 히스토리를 담고 있다’고 적혀 있다. 바로 김형욱 제2권 209페이지에는 ‘사실 대한민국 천지에 나만큼 김성곤의 전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는 그의 좌익 경력때문에 의심하기도 했고, 그의 정치적 향배때문에 대립한 적도 많았으나 김성곤이란 한마디로 미워할 수 만은 없는 독특한 인간적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며 김씨의 축재방법을 상세히 적고 있다. FBI본 제11편 내용과 제2권 209페이지가 일치하는 것이다. 김총재가 출판과정에서 다시 검토를 거듭하며 11편내용을 김성곤이 언급되는 다른 대목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청와대 음모사건과 김대중 납치 박동선 사건 수록

FBI영문요약본은 3권의 제목이 ‘INSIDE STORY OF THE ESTABLISHMENT OF THE PARK CHUNG-HEE DYNASTY’ 이며 실제 출판된 김형욱 회고록의 3권 제목은 ‘박정희왕조의 비화’로 영문요약본과 실제 회고록이 정확히 일치한다.

▲ FBI가 극비작성한 김형욱회고록 영문요약본 관련 전문-  1980년 3월 3일 작성된 이 문서는 2013년 7월 15일 비밀해제됐다고 명시돼 있다.

▲ FBI가 극비작성한 김형욱회고록 영문요약본 관련 전문- 1980년 3월 3일 작성된 이 문서는 2013년 7월 15일 비밀해제됐다고 명시돼 있다.

제3권 제1장은 유신체제 성립과정으로 각각 11편으로 목차가 동일했고, 제3권 제2장은 실제 출판된 회고록은 ‘망명 중에 본 김대중 사건’이었으나 FBI본은 BEFORE AND AFTER MY DEFECTION AND THE KIM DAI-JUNG KIDNAPPING CASE, 즉 나의 망명전후와 김대중납치사건 이었다.

제3권 제2장에는 모두 9편의 소제목으로 구성돼 있으며 9편으로 일치했다.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제3권 제3장이었다. 실제 출판된 김형욱회고록은 제3장 제목이 ‘청와대음모사건과 미 국회증언’ 이었고 FBI 영문요약본은 제목이 ‘THE BLUE HOUSE CONSPIRACY INCIDENT AND MY TESTIMONY BEFORE THE U.S CONGRESSIONAL HEARINGS’ 로 일치했다. 그러나 김형욱회고록은 모두 8편, FBI본은 모두 9편으로 구성돼 있었다. 김형욱회고록과 FBI본 모두 제3장의 1편에서 3편까지는 동일한 반면 FBI본은 4편이 ‘박동선사건과 나’, 5편이 ‘미인을 이용한 백태하와 유영수의 배신’, 6편이 ‘청와대 면담과 비밀특사 민병권’이었고 7편은 ‘프레이저청문회에서의 증언’, 8편은 ‘박정희의 통치수법과 독재자의 말로’였다.

그러나 김형욱회고록은 4편이 ‘미하원 프레이저 소위에서의 증언’, 5편이 ‘미 국회 증언록전문 – 1977년 6월 22일’, 6편이 ‘국민과 역사 앞에 참회합니다, 내외국민에게 드리는 특별성명서- 1977년 7월 15일’, 7편이 민족통일에 대한 나의 견해 – 1979년 4월 19일, 8편이 ‘박정희의 통치수법과 독재자의 말로’였다. 4,5,6편이 조금 다르다. 또 FBI본에는 9편이 있었고 그 제목은MY FUTURE PLANS AND DEVOTION TO THE NATIONAL UNIFICATION OF KOREA, ‘나의 장래계획과 민족통일을 위한 헌신’ 이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FBI본 4,5,6편은 김형욱회고록 3권에 모두 언급돼 있다.

미국과 관련된 예민한 사안들은 삭제처리

FBI가 공개한 이 극비전문에서 특이한 점은 김형욱회고록 영문번역본을 공개하면서도 일부내용을 가렸다는 점이다. FBI본에서 가려진 부분을 김형욱회고록과 비교한 결과, 삭제 처리한 부분은 모두 미국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FBI본은 제1권은 삭제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반면 제2권 제1장 제6편 ‘아이스쇼와 삼정물산’ 부분에서는 일부내용이 삭제됐다. 이 부분 김형욱회고록은 제2권 41페이지에서 ‘1963년 8월초순이었다, 새벽같이 청와대로 부터 박정희의 호출이 날아들었다. 나는 전날 밤 자정이 넘도록 미CIA에드워드와 쌀타령, 밀가루논쟁을 하느라 지쳐서 얼핏 늦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인천항 앞바다에서 정박 중이던 미국수송선들은 계속해서 미공범 408호에 의거, 도입 중이던 양곡을 적재한 채, 하역할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에드워드는 당시 CIA책임자이며, 미국이 박정희 군사정권에 반발, 쌀 등 원조물자를 하역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당시 그레고리 핸더슨이란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도 ‘전환시대의 논리’등으로 유명한 이영희교수에게 이 같은 사실을 발설했었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이교수는 이 내용을 보도했고, 그로 인해 그레고리 핸더슨은 사실상 추방당한다. 그러나 추방당하면서 그레고리 핸더슨의 한국의 국보급 유물을 수백점이나 무단 반출했었고, 이 유물은 지금 하버드대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제2권 제1장 제8편 ‘승산이 가져오는 분열’에서도 FBI본은 일부 내용을 가린 채 공개됐다. 김형욱회고록과 비교한 결과, 삭제된 부분은 북한거물간첩 황태성관련 내용이었다. 황태성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형이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장인인 박상희와 절친했던 인물로, 자진월북한 뒤 북한의 내각에 입각했다, 박정희가 집권하자 남한으로 밀파된 인물이다. 김형욱회고록 제2권 56페이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에드워드에게 약속한 대로 황태성을 미군정보당국에 인계했다, 이것을 계기로 8월 13일에 체결된 제4차 한미잉여농산물자 도입협정이 발효하여 소맥11만5천톤 추가도입이 확정되고 인천항에 정박중이던 미국 화물선에서도 소맥이 하역되기 시작했다.’ 즉 FBI는 황태성을 CIA에게 넘겨 신문토록 했다는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거물간첩 황태성과 CIA신문 내용 이수근사건 미공개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유행어를 낳은 김종필 외유에 미국이 관여했던 내용도 FBI는 비공개처리했다. 제2권 제2장 제3편 ‘63사태와 김종필’에서 FBI본은 김종필외유와 관련, 한국정부가 버거대사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했고, 대책회의에 누군가 참석했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바로 ‘무엇을’, ‘누가’등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김형욱회고록 제2권 117페이지는 이 같은 비밀을 담고 있다. 김형욱은 ‘[김종필을 체포하자던: 필자주] 수도경비사령부내 분위기를 가라 안치고 청와대로 갔더니 박정희는 부재중이었다. 내친 김에 미 CIA책임자 에드워드를 한국일보사 건너편 그의 공관으로 찾아갔다. 주말임에도 버거대사 면담주선을 요청, 얼마 뒤 버거대사 집무실에서 버거, 에드워드, 하비브 참사관관 만나서, 김종필씨를 외국으로 잠시 내보낼까 하는데 명분을 찾고 있으니 대사가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얼마 뒤 미국이 김종필에 대한 하버드대 1년 초청장과 이를 추인하는 미 국무성 허락이 담긴 전문이 도착했다’ 하는 내용이다.

제2권 제3장 제2편 1.21사태관련 부분도 일부 삭제됐다. 이 내용은 1.21 김신조일당 청와대 기습사건에 대해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는 미국에 대한 원망임이 확인됐다. 김형욱회고록 2권 211페이지는 ‘한국이 1.21사태로 혼돈을 겪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 승무원송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니, 한미양국의 공동방어라는 전략적 입장에서 보면 무장공비남파사건이 푸에블로호 사건보다 훨씬 중요한 사태인데, 미국은 한국이 피해본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푸에블로호에만 중점을 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야, 나는 보좌관과 사태분석을 하는 일방, 새로 부임한 미CIA 한국책임자 라자스키를 내 사무실로 초치했다. 라자스키역시 미국은 결코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오히려 그는 미국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던 한국정부당국자들을 나더러 설득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1.21사태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 조치는 결국 자주국방, 나아가 예비군 창설로 이어진다. 이부분을 미국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제2권 제3장 제5편 ‘이수근과 이대용의 운명’편에서도 일부 내용이 삭제됐고 김형욱회교록과 비교한 결과, 미국이 홍콩에 압력을 행사, 이수근을 캄보디아로 가게 하되 사이공에 경유토록 하고, 해당 비행기 편을 김형욱에 알려줘, 베트남 사이공에서 이수근을 체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김형욱은 이를 한국 내 미 CIA지부장과 의논했고, FBI는 CIA지부장이름과 미국의 협조내용을 삭제한 것이다.

이후락 극비북한 방문 판문점 통과 후 인지

제3장 제1권 제9편 ‘김일성-이후락 비밀회담과 남북공동성명’ 부분에서도 삭제가 있었고 김형욱 회고록 제3권 77페이지 확인결과 미 CIA 한국지부장 이름 등을 가린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욱 회고록은 ‘그[이후락]의 평양방문은 하도 철저하게 보안조치가 잘 되어서 였는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모르는 것이 없다는 정도로 그 정보망의 정확성과 기동성을 자랑하던 미국 CIA의 리차드슨도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이후락이 판문점을 통과할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적고 있기 때문에 FBI본은 이 같은 내용을 요약했지만 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 FBI가 극비작성한 김형욱회고록 영문요약본 1페이지, 2015년 9월 15일 비밀해제됐다고 명시돼 있다.

▲ FBI가 극비작성한 김형욱회고록 영문요약본 1페이지, 2015년 9월 15일 비밀해제됐다고 명시돼 있다.

제3장 제1장 제7편 ‘선거후유중속에서 터진 실미도사건’도 삭제부분이 있었으며 그 내용은 실미도 군인의 평양투입때 CIA가 이들의 수송을 책임진다는 내용임이 드러났다. 김형욱회고록 원문에는 ‘이들 결사대는 평양투입 시 완전히 북한인민권의 복장으로 가장하기로 했으며, 이들의 공수작전을 미CIA가 책임져서 낙하산 투입을 기도하는 한미합동으로 작전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고 적고 있다. 또 1969년 5월 박정희에게 침투완료보고를 했으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당시 이미 남북간 비밀접촉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미국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실제 작전에도 참여토록 돼 있었던 것이다.

FBI본 제3권 제3장에서 실제 회고록과 목차부분이 다른 내용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FBI본 제3권 제3장 제4편 ‘박동선과 나’는 ‘박동선이 쌀 브로커가 되도록 도와준 사람이 나였다, 캘리포니아출신 한나 연방하원의원이 수차례 나를 방문, 박동선을 도와주라고 통사정했다’고 요약돼 있고 의회증언내용등을 담고 있다고 돼 있다. 이 내용은 회고록에서 의회증언록으로 대체된 것이다. 제3권 제3장 제5편 ‘미인을 이용한 백태하와 유영수의 배신’에서 FBI영문요약본은 ‘백태하는 516주체로 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이었으며 내가 부장이었을때 중정 총무부장이었다. 백태하가 미국으로 이민온뒤 내가 뉴저지에 그로서리 스토어를 열 수 있도록 6만달러를 빌려줬다. 1977년봄 백태하가 서울에 가서 박정희로 부터 만달러를 받았을때, 박정희는 백태하에게 나를 설득해 한국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백태하는 나에게 뉴저지에 사는 재미동포 유영수를 소개했으며, 유영수는 수차례 서울로 가서 김재규의 지시를 받아왔다, 유영수는 서울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여성의 편지를 나에게 가져왔으며 그녀는 내가 중정부장일때, 인기가수였다’는 내용이다.

한국정치사 가장 잘 정리한 영문본 FBI버전

이처럼 미 FBI가 김형욱실종직후 1개월 만에 박정희 정권을 비판한 회고록을 입수했으며, 회고록 출판보다 3년 먼저 영문판이라고 할 수 있는 영문요약판을 극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박정희 정권 전체의 한국정치사 주요사건의 내막을 담은 김형욱 회고록을 목차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요약함으로써 이 FBI버전은 한국정치사를 가장 잘 정리한 영문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인 누구라도 이 68페이지짜리 문서만 읽으면 1961년부터 1977년정도까지의 한국의 권력내부를 쉽게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FBI 영문요약본에 없는 부문은 김경재총재가 1982년말 이 책을 출판하면서 각 3권 말미에 붙인 발문이다. 이 발문은 출판에 즈음해 적은 것이므로 3년 전 작성된 영문판에는 없는 것이다. 박사월이란 이름의 한자서명이 곁들여진 이 발문은 김총재가 이 회고록작성에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비장한 각오로 임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한 사가의 소명과 지난한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사월은 제1권의 발문에서 ‘나는 1977년 7월 이후 김씨가 실종한 1979년 10월까지 27개월동안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 중략 – 당초에는 2백자 원고자 약 1천매정도의 책으로 6개월 안에 끝내기로 했으나 내용이 늘어나고 도중에 김씨의 심경변화로 몇 번이나 중단하곤 했기 때문에 2년 이상이나 걸렸다. 나는 박사학위논문을 중단한 채 ‘이것이 나의 박사학위논문이다’ 라고 생각하며 그 긴 시간동안 불면불휴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 책은 2백자 원고지 5천매가 넘는 그러니까, 1백만자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중략 -책 나올 때만 기다리고 몇 년을 바친 나의 노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올바른 한국사를 쓰는데 다소의 도움이라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런 형식으로라도 발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 중략 -숱한 우여곡절끝에서도 결국 이 원고를 발표하기로 결심했다가 끝내 그것때문에 생명을 잃어야 했던 김형욱씨가 지하에서 다소라도 위로받기를 바란다. 김형욱씨에게 인간적 추도를 보낸다. – 아틀란틱해안에서 박사월’ 이라고 밝혔다.

김형욱 영문판 존재에 김경재(박사월) 찬탄

그 박사월을 지난 6월 29일 미국 보스톤의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만났다. 박사월이 바로 김경재다. 자유총연맹총재로서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강연을 마친 김총재와 한 중국집에서 중국술이 아닌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는 박사월은 숙소인 하버드대 교수호텔내 자신의 방으로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FBI가 37년 전 이미 김형욱 회고록 영문요약본을 극비로 작성했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김총재는 ‘당시 미국 정보당국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인물 중 한명이 김형욱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회고록에 접근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처럼 빨리 원고전체를 입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김형욱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3년을 기다린 뒤 회고록을 출판할 것이라고 주위에 약속했고 실종 3년 뒤에야 출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총재는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장의 육성증언을 책으로 펴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기회가 되면 영문판도 내고 싶었는데, 이미 FBI가 영문요약판을 냈으니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에게서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고 소명을 완수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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