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진출한 한인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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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배우 필립 안에서… ‘황야의7인’ 이병헌까지

요즈음 미국 스크린에 한인 배우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특히 한국의 이병헌은 최근 인기를 집중시키는 미국 서부영화 ‘황야의 7인’으로 뜨고 있다. 한국 배우가 미국 서부영화에 등장할 정도로 할리우드도 변하고 있다. 한편 할리우드에서는 이제 한국 시장이 동양을 이끄는 분수령이라고 한다. 미국 배우들도 부산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을 위해 한국을 찾고 싶어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에서 도 더 많은 한국 배우를 찾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에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의 활약이 점점 돋보이고 있으며. 이병헌처럼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도 늘어 가고 있다. 언제가 한국인도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할 날도 올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를 망라하고,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배우들을 정리해봤다.
성  진 (취재부 기자)

헐리우드-배우할리우드로 진출하는 한국 배우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늘었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드물게 단역이나 B급 영화의 조연 정도로 출연했다면, 최근에는 진출 숫자도 늘고 비중도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고 예산 영화의 주조연급으로 올라섰다. 주연을 맡는 경우도 드물게 있을 정도다.

현재 미국서 입지가 탄탄한 한국 배우로 이병헌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은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이다. 그가 이 영화에 캐스팅된 건 스티븐 소머즈 감독이 이병헌 사진을 보자마자 ‘이 사람이 스톰 쉐도우다’는 느낌을 받아서 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병헌의 일본 팬미팅 DVD를 보고 순전히 아시아권 인기가 반영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캐스팅 배경이야 어쨌든, 그는 이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여 2013년 개봉한 <지.아이.조 2>에도 잇달아 캐스팅됐다. 같은 해 개봉한 <레드-더 레전드>에서도 성룡, 이연걸 등의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주연 자리를 차지, 할리우드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어 올해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6년 3월에 <미스 컨덕트>가 개봉했으며 ‘황야의 7인’ (매그니피센트 7)에도 출연 해 할리우드에서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이병헌이 출연한 ‘황야의 7인’은 ‘백악관 최후의 날’과 ‘사우스 포’의 안톤 후쿠아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지난 1954년에 연출한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했던 존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인’(1960)을 또다시 리메이크한 영화다.

이병헌-황야의-7인

▲ 이병헌(오른쪽)이 출연한 ‘황야의7인’

마을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마을 밖에서 사람들을 고용한다는 전개는 똑같지만, 마을을 위협하는 캐릭터는 바뀌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전란을 통해 생겨난 산적 무리였고, 1960년의 ‘황야의 7인’에서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대의 마을을 위협하는 도적이었 지만, 안톤 후쿠아의 ‘황야의 7인’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기업가가 마을을 위협한다.

그리고 그와 대적할 7명의 총잡이는 이병헌과 함께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에단 호크, 빈센트 도노프리노, 마누엘 가르시아 룰포, 마틴 센스마이어 등이 연기한다.

‘인디와이어’의 보도에 따르면, ‘황야의 7인’은 안톤 후쿠아 감독과 덴젤 워싱턴이 함께한 3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은 ‘더 이퀄라이저’와 ‘트레이닝 데이’를 함께 만든 바 있다. ‘트레이닝 데이’에는 ‘황야의 7인’ 멤버인 에단 호크도 출연했었고, 덴젤 워싱턴은 이 영화로 오스카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또 이병헌은 미국 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 지난 2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나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병헌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1년에 할리우드 영화 한 편과 한국영화 한 편을 찍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도 할리우드와 국내 작품 활동을 활발히 병행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명성의 거리’에 오른 필립 안

할리우드의 한인 1호 연기자는 필립 안(1905~1978)이다. 그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맏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는 1930~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아인 역할을 도맡아 해온 연기자로 ‘쿵후’로도 잘 알려진 배우다. 죽은 뒤 할리우드 ‘명성의 거리’에 이름이 남은 배우다.

필립 안은 1905년 미국에서 태어나 36년 ‘장군 새벽에 죽다’로 할리우드에 데뷔해 ‘상해의 딸’(37년), ‘와셀 박사의 이야기’(44년),‘마카오’(52년)등 200여 편의 영화와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등 100여 편의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78년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뒤 84년 할리우드 ‘명성의 거리’에 이름이 올랐다.

할리우드에서 40년 가까이 활동한 영화배우로는 오순택도 있다. 007 시리즈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1974년)와 TV 시리즈 ‘5-0 수사대’ ‘맥가이버’, ‘마르코 폴로’, ‘에어 울프’, ‘쿵후’ 등에 출연한 준 스타급 배우였다.

그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1세대 한국 배우다. 그는 1933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한국에서 마친 뒤 1959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의 명문 배우전문학교인 The Neighborhood Playhouse를 졸업하고 UCLA 대학원에 진학해 MFA 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쿵후>와 같은 TV 시리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다가, 1974년 <007 시리즈-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MI6의 동남아 현지 요원 역할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최후의 카운트다운>, <뮬란> 등의 영화와, <Paific Overtures> 등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도 오르며 200여 편의 영화•TV 드라마•연극 작품에 출연했다. 지난 2001년 한국예술종합 학교 연극원 연기과 초빙교수로 고국에 돌아왔고, 현재는 서울예술대학 석좌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미국 생활 중 한인사회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2세들에게 예술활동을 지원했다.

필립 안 이후 가장 주목받는 한인계 스타는 2001년 20번째 007 시리즈인 ‘어나더 데이’에 북한군 특수요원으로 출연한 릭 윤(한국명 윤성식)이다. 갓 돌이 지났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미국 최고의 경영대학원인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다 우연히 패션계 관계자의 눈에 띄어 랄프로렌, 베르사체 등 유명 패션 브랜드 모델로 활동했다.

할리우드 데뷔작은 일본군 병사로 출연한 99년 ‘삼나무에 내리는 눈’. 같은 해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차세대 스타 8명에 들었고, 2001년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한 ‘분노의 질주’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마가렛 조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여성 코미디언 1호. 94년 전통적인 한국 이민 가정을 그린 ABC방송의 코믹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동양 여자”라는 편견에 부딪혀 곧 스타 자리를 내주고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 조씨는 그러나 코미디에 대한 열정으로 99년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라는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재기에 성공, ‘악명 높은 조’라는 영화에 출연하는 등 다시 주류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영화 ‘만점’에 출연한 레오나르도 남은 할리우드 진출 3년 만에 LA 타임스가 선정한 ‘2003년에 주목할 남자 배우 3명’에 드는 쾌거를 이뤘다.

이 밖에 2001년 개봉한 블록버스터 ‘진주만’에 출연한 성강(강성호)과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인 ‘베터 락 투모로’의 잔 조,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년)의 샌드라 오,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는 랜델 덕 김, 훈 리, 마쿠스 최 등이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오순택

할리우드에서 주연급으로도 활약하며 대결을 펼치는 국내 배우들의 행보가 눈부시다. 이제는 ‘감초 동양인 캐릭터’나 ‘악역 위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작품의 비중 있는 역할을 속속 꿰차며 단순한 ‘할리우드 진출’이 아닌 주연급 경쟁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일찌감치 할리우드 진출에 나선 배우는 박중훈이다. 지난 1998년 ‘아메리칸 드래곤’을 시작으로 ‘찰리에 대한 진실’(2002)로 할리우드 작품에 나서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박중훈은 흥행 면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에서 배우로 경력을 쌓고 할리우드에 진출한 1호로 알려진 박중훈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은 1998년에 한미합작으로 제작된 <아메리칸 드래곤>이지만 이 영화는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한 차례 좌절을 겪고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2000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북미에서 소규모로 개봉됐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조나단 드미 감독이 박중훈을 눈여겨본 것. 조나단 감독은 이후 자신의 차기작에 박중훈을 캐스팅했다. 그렇게 찍은 영화가 2002년 개봉한 <찰리의 진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며 더는 할리우드 진출 기회는 얻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수 ‘비’로 활동하던 정지훈은, 자신의 본명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할리우드에서 워쇼스키 남매의 오디션을 통과해 <스피드 레이서>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 2008년에 첫 진출에 성공했다. 이어 워쇼스키 남매들이 제작을 맡은 <닌자 어쌔신>의 주연으로 낙점돼 원톱 주연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그는 2014년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더 프린스>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다가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며 쓴맛을 봤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최민식은 할리우드 첫 진출도 달랐다. 뤽 베송 감독이 직접 한국을 찾아 캐스팅에 공을 들였고, 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주연으로 <루시>에 출연했다. 2014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상영 첫 주에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했고, 전 세계시장에서 1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미국 영화전문지 트위치 필름은 “최민식은 정말 정말 좋은 배우”라고 극찬했다.

할리우드 작품에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한 여배우는 김윤진이다. 2004년 미국 ABC 드라마 ‘로스트’ 로 처음 할리우드와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시즌6까지 ‘로스트’의 전 시즌에 출연해 인지도를 굳혔고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 첫 등장한 한국인의 영예를 안았다. 최근에는 두 번째 미국 드라마 ‘미스트리스’에 출연했다.

참패로 쓴맛 본 배우도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여배우의 선봉엔 배두나가 있다. 배두나는 2012년 개봉한 워쇼스키 남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할리우드 무대를 밟았다. 배두나가 워쇼스키 남매 영화에 캐스팅된 배경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이 있다. 워쇼스키 남매는 이 영화에 출연한 배두나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대본을 보내 준 뒤 짧은 연기 동영상을 찍어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그 동영상으로 배두나는 할리우드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워쇼스키 남매의 지지를 받는 배두나는 그들이 제작한 2015년 개봉작 <주피터 어센딩>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미국 드라마 <센스8>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워쇼스키 남매와 잇달아 3편을 함께 한 배두나는 “워쇼스키 남매의 페르소나 인가?”라는 질문에 “워쇼스키가 예전에 내가 연기하는 부분이 자신이 쓰는 글과 많이 비슷하다고 말하더라, 나와 일하는걸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마블의 신데렐라’. 이 수식어 하나로 무명에 가까웠던 10년을 날려버린 여배우가 있다. 바로 수현이다. 그녀는 영화 ‘어벤져스2-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전격 캐스팅되며 화려하게 할리우드 무대로 진출했다.

수현은 최근 개봉한 <어벤져스2-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조연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2013년 오디션을 본 뒤 선발됐는데, 수현은 캐스팅된 배경에 대해 “조스 웨던 감독이 말하길 ‘강인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두 가지 이미지를 다 가지고 있다’라고 하더라, 그 이유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첫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영화 <글래디에이터>, <마션>등을 만들어낸 리들리 스콧 감독의 눈에 들기에는 충분했던 듯하다. 수현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이퀄스>에 캐스팅돼 크리스틴 스튜어트, 니콜라스 홀트 등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미국 드라마 <마르코폴로 시즌2>에서 몽골 공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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