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임동선 목사를 추모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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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포들과 함께 情을 나눈 영적인 큰 어르신’

임동선-목사님고 임동선 원로목사는 살아생전에 “눈을 감을 때까지 선교를 할 것”이라고 고백해 온 사역자로서 “지구촌 전체가 내 선교 무대”라고 평소 말했다.

임 목사는 지금까지 목회 67년 동안 세계 60여 개국 1,200여 곳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건강이 더 허락했다면 그분의 소원대로 100개국을 선교 방문했으리라 믿어진다. ‘100개 국 선교’가 그분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었다. 임 목사는 3년 전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돌았고, 한국에서도 20여 군데 교회와 선교지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케냐, 우간다, 남아공, 짐바브웨 등지를 방문했고, 유럽에 서는 스위스, 독일, 헝가리, 체코 등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 당시 까지만도 아프리카는 7회 정도 선교 여행을 했다. 가히 젊은 사역자들도 힘든 선교여행을 임 목사는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면 선교에 나섰다.

마지막 임종 전까지 선교활동 집회

최근엔 15박 16일의 일정으로 브라질을 비롯한 우루과이, 칠레, 페루 등 남미 4개국을 8번의 비행기를 갈아타며 젊은 사람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을 강행했다. 이번 여행에서 몸이 많이 지쳐 처음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하였으나 8번이나 단에 올라서 설교를 할 정도로 정성을 모았다.

우루과이에서 날씨가 추웠는데 그때 감기에 걸려 해열제와 소염제를 복용하며 선교 여행을 한 것이 끝내 무리가 된 것이다.

남미 4개국 선교를 마치고 9월 12일 LA로 돌아왔으나 선교지에서 얻은 폐렴으로 지난 9월 24일 오후 9시 03분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임 목사의 생애는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 걸어 간 길과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새이민법이 1965년에 바뀌면서 제2의 이민 물결과 함께 임 목사는 1972년에 불모지 한인타운 중심 거리인 웨스턴 애비뉴와 1가 근처에 있던 랄프 슈퍼마켓을 매입해 오늘의 동양 선교교회를 개척 설립했다. 당시 한인타운의 동포수가 불과 수 천 명에 불과했다.

당시 LA에 이민 온 동포들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양 선교교회를 나갔다. 아이들을 맡길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40대의 패기만만한 임 목사의 마음에 와 닫는 설교에 이민 생활의 고통을 위로받을 수 있었고, 새로운 도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따라서 동양 선교교회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어느 틈에 코리아타운의 대표적인 한인교회가 되었다.

임 목사가 사목 하는 동양 선교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동양 선교교회는 한인동포들의 어려움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동포사회와 함께한 동양 선교교회

지금부터 24년 전 ‘4.29 폭동’이란 미주 이민 역사상 최악의 수난이 닥쳤을 때, 임 목사는 “저 동포 들의 아픔을 외면 말라” 며 손수 성금을 내놓았고, 성도들도 한 마음으로 성금 대열에 앞장섰다. 한인교회들 중에서 가장 많은 성금을 내놓았다. 교회 성전은 구호 장소로 사용됐다.

한국에서 수해가 발생하여 이재민이 많이 생겨났다는 뉴스가 한인타운에서 나오면, 동양 선교교회는 가만있지를 않았다. 어김없이 임 목사는 “고국 동포들을 위로하자”며 성금을 모았고, 보통 한 번에 수 만 달러를 모으곤 했다.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80-90년대를 지나며 2000년대로 오면서 코리아타운은 동포들 이 함께 모여 커뮤니티 문제를 논의하거나, 명절에 함께 만나 향수를 달래 장소가 없었다. 그럴 때면 임 목사는 언제나 교회 성전을 동포들의 모임의 장소로 기꺼이 개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처럼 임 목사는 23년 동안 동양 선교교회 담임목사로 동포사회를 한 가족처럼 보았다.

또 임 목사는 대형 교회의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청빈한 삶을 유지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만 몰두한 참 목회자로 교계는 물론 한인사회 전반에서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런 임 목사였고, 동양 선교교회였기에 한인사회에서는 임 목사를 ‘큰 어른’으로 모셨고, 그 교회를 우리 타운의 중심 교회로 생각했다. 임 목사는 한인 이민 선교의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코리아타운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동양 선교교회는 고 임동선 목사의 장례예배를 교회장으로 하되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입관과 하관 예배 모두를 하루에 거행하며 조화는 사절한다. 10월 1일(토) 오전 10시에 천국 환송예배를 정했다. 고 임동선 목사는 1923년 11월 23일 경기도 부천 대부면에서 출생, 서울신학대와 숭실대 철학과에서 수학하고, 1948년 서울 아현 성결교회 중․고등부 전도사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공군 대령 초대 군종감으로 사역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천국 가기 전 소원이 겸손하게 죽는 것

88년 할리웃보울 부활절 연합 새벽 예배와 92년 모스크바에서 소련 붕괴 후 열린 첫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한인 목회자로는 처음 설교했다. 저서로는 <지구촌은 나의 목장이다> 등 다수가 있다.

주옥같은 명설교 580여 편을 담은 CD 전집(총 285장)을 출간했다. 임재순 사모는 지난 2007년 소천했으며, 현재 유가족으로는 2남 (임승광 집사, 임승천 변호사) • 2녀(큰딸과 둘째 딸 임승향 변호사) 가 있다.

임 목사가 떠나간 오늘의 한인 교계는 분쟁과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인사회도 가치관이 점점 추락하고 있다. 새삼 그분의 말씀이 그립다. 지난 2014년 1월 미주 한국일보의 정숙희 기자가 ‘신년 인터뷰’에서 임 목사와 만난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목회자가 좋은 목사입니까’란 질문에 임 목사는 “목사는 진실해야 합니다. 말 잘해도 소용없고, 행정 잘해도, 사회활동 잘해도 소용없어요. 바로 보고, 바른말하고, 바로 증거 하고, 바로 살다가 죽어야 진짜 목사입니다.”

‘천국 가기 전 소원이 있습니까’란 질문에 임 목사는 “병사하지 말고, 요사하지 말고, 병원에서 앓다 가지 말고요”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곰곰이 새겨 들어볼 말씀이다.

고 임동선 목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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