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만에 돌아온 한국전 참전용사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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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만에 돌아온 한국전 참전용사 유해

이기철 총영사 장례식 참석해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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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철 LA 총영사가 유족들 앞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이기철 주 LA 총영사는 2일(금) 아리조나 피닉스 국립묘지(National Memorial Cemetery)에서 개최된 한국전 참전용사 다니엘 헌트(Daniel Hunt) 일병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미국 각지에 살고 있던 헌트 일병의 친지들과 피닉스 지역 한국전 참전용사, 최완식 아리조나 한인회장, 수산 키(Susan Kee ) 여사 등 한인 동포, 민재훈 영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헌트 일병은 오랫동안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그동안 실종 상태로 있었으나, 최근 발견된 유해가 헌트 일병의 것으로 금년 초 확인된 후 18세의 나이로 전사한 지 65년 만인 지난 11월 30 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헌트 일병은 한국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알려진 단장의 능선전투(미국에서는 “Battle of Heartbreak Ridge”로 불림)에서 1951년 9월 27일 전사하였다. 그는 동료들 간에도 용맹스러운 군인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단장의 능선전투”는 1951년 7월 휴전협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1951년 9월 13-10월 13일간 강원도 양구-인제 지역에서 일어났으며, 이 전투에서 유엔군이 승리함으로써 이후 유엔군은 유리한 전세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유엔군 3,700명과 북한군, 중공군 25,000명이 전사하였다.

65년 전 헌트 가족은 아들 3명을 한국전에 보냈다. 헌트 일병은 친동생인 존 헌트(John Hunt)와 함께 1951년 한국전에 참전하였으며 친형인 찰스 헌트(Charles Hunt)는 그 후 참전을 하였다. 존 헌트는 수년 전 사망시까지 다니엘 헌트 형과 함께 돌아오지 못한 데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다니엘 헌트 일병의 장례식은 △군목의 Hunt 일병 소개 △이기철 총영사의 평화의 사도 메달과 추모패 수여 △이 총영사의 조사 △명예 부상장 수여(전투 중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주는 훈장) △가족 추모사 △미 2사단 기 증정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총영사는 헌트 일병을 비롯한 65년 전 젊은 미국 장병의 희생으로 한국이 발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명하면서, 총영사관은 한국전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내용을 미국 교과서에 반영하는 노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 총영사는 장례식 전날인 지난 1 일 헌트 일병의 가까운 가족을 초청하여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의 고마움을 전달하였다.

이기철 총영사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다니엘 헌트 일병의 전사처럼 애통한 사연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고 “2번 부상을 당한 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투 투입을 자원하여 결국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전사하였으며, 외국인으로서 3형제가 한국전에 참전한 유일한 케이스”라고 하면서 “헌트 형제는 진정한 한국의 영웅”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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