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 “파차파 캠프-최초 한인 거주지, 유적지 지정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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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차파 캠프-최초 한인 거주지, 유적지 지정은 잘못됐다”

파차파-캠프-조감도

▲ `’파차파 캠프’ 조감도

리버사이드 시의회는 지난 6일 열린 정기 회의에서 112년 전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가 세워졌던 곳(1532 Pachappa Ave.)을 리버사이드 “최초의 한인 거주지”(Site of the First Organized Korean American Settlement)로서 ‘리버사이드 문화 관심지 1호(City Point of Cultural Interest #1)’로 지정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도산 안창호가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날(1904년 3월 23일)을 기념해 내년 3월 23일 현판식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한인 언론들은 “미주 최초의 한인촌 사적지 지정 쾌거”, “리버사이드에 건립한 최초의 한인촌 ‘파차파 캠프’가 사적지 지정”, “리버사이드는 미주 독립운동의 메카” 등등의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본보가 리버사이드 시의회 공청회 및 연구보고서를 포함 최종 시의회 회의록을 수집한 바에 따르면, 이번 ‘파차파 캠프 -최초의 한인 거주지’로 리버사이드 지정한 이면에는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담겨 있었음을 발견했다.

원래 지난 6월 결의안 초안(Case P16-0342)에는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는 ‘도산 공화국’ (Dosan Republic)이며, ‘미주 최초의 코리아타운(Site of the First KoreaTown in USA)’이다>이었으나 지난 6일 최종 결의안에는‘도산 공화국’(Dosan Republic)이 삭제되고, ‘최초의 코리아타운’(First KoreaTown in USA)도 삭제되어 <파차파 캠프, 최초의 리버사이드 한인 거주지>(Pachappa Camp: Site of the First Organized Korean American Settlement” as City Point of Cultural Interest No. 1)로 변경되었다.

또 특히 이 같은 유적지 지정은 역사유적지(Historical Site)로 선포되어야 하는데 단순 ‘문화 관심 지역(City Point of Cultural Interest No. 1)에 그쳤다.

원래 이 유적지 지정은 지난해 UC리버사이드대학 산하 ‘김영옥연구소’(Young Oak Kim Center/소장 장태한 교수와 캐롤 박 교수와 리버사이드 도산기념사업회(회장 홍명기)가 주축이 되어 신청한 것이다.

지난해 김영옥연구소의 장태한 교수와 캐롤 박 교수는 유적지 신청서를 통해 파차파 캠프 지역을 ‘도산 공화국’(Dosan Republic)으로 명명하고, ‘미주 최초의 코리아타운’(First Korean Town in USA)으로 지정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신청하면서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였다. 여기에 리버사이드 도산 기념사업회의 홍명기 회장은 ‘리버사이드는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의 메카’라고 강조했다.

본보가 수집한 자료들에 따르면 원래 이 결의안은 지난 6월 15일에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동이 걸렸다.

우선 리버사이드시 역사유적위원회 에린 게티스(Ms. Erin Gettis, Associate AIA City Historic Preservation Officer) 담당관은 6개월 동안 연구 조사 작업 결과 이 지역이 ‘역사 유적지’ 로 지정되는데 역사적 과학적 물증이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서의 전문 연구 기관 단체 등에서도 이의 신청을 하였다.

특히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회장 서상목)와 도산학회(회장 윤경로 박사) 등에서는 이번 ‘파차파 캠프’를 한인 이민사 유적지로 지정 신청서에서 현지 학자들의 역사적 고증 실패와 과시적 효과에 집중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역사적 활동에 누를 끼쳤다’고 도산의 외손자 필립 커디 씨를 통해 지적하고 나섰다.

필립 커디 씨 자신도 도산 연구에 전문적 지식을 지닌 역사가로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 동안 커디 씨는 시의회에 대하여 “좀 더 시간을 갖고 연구하자”며 시의회에 대하여 서울 학자들의 의견을 계속 개진해왔다.

파차파-캠프

▲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노동자들과 도산 선생(앞줄 왼쪽 두번째)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이곳은 당시 한인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던 리버사이드의 ‘알타 크레스타 그로브’ 농장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와 도산학회는 자타가 공인하듯 도산 연구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이 두 단체는 “파차파 캠프가 ‘미국 최초의 KoreaTown’이라고 신청하는 것은 역사적 오류를 범한 것”이라며 ‘특히 ‘도산 공화국’이라고 명명한 것도 역사적 고증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지역을 ‘미주 독립운동의 메카’라고 소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면서 “도산이 이 지역에서 잠깐 노동할 할 당시 편지 한 장도 받지 못한 때”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서울 도산학회는 “현지 학자들이 신청서에서 이 지역을 도산이 신민회와 흥사단 창설을 꿈꾼 지역이라고 했는데 이는 역사적 분석을 잘못한 것”이라면서 “신민회는 1903년 하와이에서 창설되었으며, 도산은 이미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대위 목사 등과 함께 친목회를 조직해 산하에 ‘노동부’를 두었으며 일자리를 수소문하려고 리버사이드에 동포를 파견하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도산학회 측은 “미국 본토에서 최초의 ‘KoreaTown’이라고 주장하려면 역사적 과학적 근거가 정확해야 한다”면서 “미주 이민사에서 최초의 ‘KoreaTown’을 발견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샌프란시스코나 중가주 지역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실지로 1920년 미국 인구센서스에서는 리버사이드 지역의 ‘한국인’은 20명으로 보고되었으며, 당시 파차파 지역에는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보고 되지 않았다.

서울의 도산학회 학자들은 “리버사이드가 독립운동의 메카”라고 하는 것은 “무식한 소치”라면서 “리버사이드 지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포들이 중가주와 LA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잠시 일자리를 위해 거처 간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리버사이드 시의회 최종 결의안 통과를 위해 LA총영사관(총영사 이기철)을 포함해 랄프 안 도산 막내아들을 비롯해 여러 한인교회 단체들이 시의회에 사적지 청원을 하였다.

지난 6일 시의회 최종 표결에서 5-0으로 가결됐는데 당시 2명의 시의원은 불참했다.
결의안 통과에 대하여 도산의 외손자 필립 커디 씨는 리버사이드 시장 등 관계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잘못된 역사 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다음호 계속)
(성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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