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위령제 ‘영산재’ 치르고… 빚더미 안은 ‘청원 스님’의 기막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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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참전국 16개국 영령 극락왕생시키는 영산재 봉행했다’ 빚더미에…

‘행사비 30만 불에 후원금 고작 2만 불’

한국전쟁(1950-53)에 참전해 꽃다운 청춘을 이국 땅에서 숨진 UN참전국 16개국 영령들을 극락왕생시키는 영산재를 봉행했던 스님이 거액의 행사비 때문에 거액의 빚을 져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 6.25 전쟁 66주년을 맞는 6월 25일 대형 극장인 슈라이 오디토리엄에서 거행된 UN참전 16개국 희생자 추모를 위한 영산재가 올려졌다. 그 행사의 대회장인 LA봉은사 주지 청원 스님은 영산재 봉행에 무려 30만 달러 ($288,849.49)가 지출되어 현재 거액의 빚을 갚아 나가느라 3,000배를 지내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본보 기자는 최근 ‘지난해 영산재 행사로 청원 스님 이 큰 빚을 감당하느라 고통을 당하고 있다’라는 소식을 한 불자를 통해 듣고 봉은사를 찾아 청원 스님을 만나보았다.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청원 스님의 무리한 대규모 행사로 취지는 좋았지만 애초부터 무리한 행사였다. 6.25 참전 희생용사들을 위한 영산재 봉행 전후를 짚어 보았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영산재코리아타운 내 놀만디 애비뉴와 피코 불르버드 인근에 소재한 LA봉원사 법당에서 마주 대한 청원 스님은 “내가 살아있는 한 빚을 갚겠다”면서도 “어떻게 그런 대규모 행사를 기획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원스님

▲ LA 송원사 청원 스님

청원스님은 “6.25 전쟁에서 우리 국군이 참전해서 많이 희생됐다. 그런데 그들 중에 16살 소년병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 사람들이 한국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제사라도 한번 잘 지내 주고 싶다고 해서 시작이 된 것이었다.”라고 취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청원 스님은 “미국에서 6.25 참전용사들을 만나고 난 뒤 더욱 영산재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면서 “당시 전쟁에 최연소자, 군번 없이 싸웠던 학도병들이 현재 85세가 되었고 그리고 보통 참전용사들이 87세, 88세 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은 행사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도와줄 것이라 믿고 겁없이 시작한 영산재

청원스님은 지난 2004년 미국에 온 이래 뜻있는 불자들이 시주해서 모은 돈 3만 달러로 영산재 행사를 겁없이 시작했다. 애초 도와주겠다고 했던 많은 한인 인사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청원 스님은 부처님께 모든 걸 의지하면서 거침없이 행사를 추진해 나갔다.

기자는 청원스님에게 행사에서 거액의 빚을 안게 된 원인을 물었다. 애초에 본사 사찰의 지원과 한국의 전경련 산하 많은 기업들이 후원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후원금이 많이 모아지면 영산재 봉행은 물론이고, LA에 아직도 건립되지 못한 한국전쟁참전비 건립비까지 지원한다는 계획까지도 세웠다고 했다.

또한 LA지역에서 20여 명 영산재 후원자 리스트까지 작성했으나,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영산재를 위해 한국 본사 사찰로부터의 지원은 총무원장이 다른 일로 구속되는 바람에 기대할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그는 “원래 영산재를 준비하면서 타운에서 영향력 있는 몇몇 단체장들이 적극 돕겠다고 하여 힘을 얻어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처음과는 달리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짐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LA지역에서 나선 후원자들 중에서 L 모 단체장은 처음 ‘한국에서 행사 지원금을 구해 오겠다’고 하여 청원 스님이 항공료와 한국 체류비 등 3천여 불을 지원했는데, 수개월 후 나타난 L 단체장이 받아 온 기부금은 고작 1700 불에 불과했다. 큰소리 쳤던 다른 단체장들은 아예 한 푼도 구해오지 못했다.

청원스님은 기자에게 ‘2016년 영산재 수지 결산서’라며 3장짜리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결산서에는 지출 총액이 $288,849.49이고 기부금은 L 모 회장이 구해온 현찰 1,700불과 기부금 (현찰) $6,900에 수표로 입금된 기부금 $11,050 등 총수입이 고작 $19,650 이어서 경비 적자 액수가 무려 $269,199.49에 달했다.

영산재 포스터

▲ 영산재 포스터

한인단체장 인사들 도와주기커녕 돈만 축내

결산서에서 영산재 행사로 가장 지출액이 많은 항목은 행사 장소인 슈라인 오디토리엄 사용비였다.

극장 대여와 이와 관련한 인건비까지 총 $70,817.32이었다. 청원스님은 ‘참전용사들이 대거 참석할 것’이란 단체장들의 요청에 대형 극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6,200석의 슈라인 오디토리움에 달려가 스님 자비를 털어 계약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오스카 상 시상식 장소로도 유명세를 탄 6,200석의 LA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개최된 지난해 영산재에는 예상과는 달리 수 백 명 정도만 참석할 정도로 미덥지 못한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슈라인 오디토리움 장소비 이외 많은 돈이 지출된 항목은 영산재 행사를 위해 한국에서 온 공연 관계자들에 대한 항공료와 현지 체류비, 관광비 등으로 약 79,000 불 정도가 지출되었다. 여기에 장인 국악사를 위한 대북과 가마 그리고 번등에 4만 달러나 지출됐다.

관련자들에 대한 식비들도 $10,000 정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언론사 광고비로 한국일보($4,200),중앙일보($2,450),스포츠데일리($1,500), LA타임스($1,700)등 $9,850이 지출됐다. 행사 디자인, 포스터, 팜플렛, 안내장 비용만도 $15,000이 넘었다. 공과잡비, 인건비, 교통, 국제전화료 등으로 $25,505.40이 지출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6월 25일 영산재 막이 올랐다. 시작을 알리는 타종에 이어 축생을 제도하는 법고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든 연 뒤로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에 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6개국의 국기가 뒤 따랐다. 번과 연, 국기가 차례로 무대에 오르고 대규모 기념식과 함께 장장 4시간에 걸친 영산재가 봉행됐다. 미국에서 영산재 봉행 중 가장 완벽한 의식이었다.

이날의 영산대재는 태고종 총무원 부원장 호명 스님, 교무부장 상진 스님,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법담 스님, 양주 청련사 주지 해경 스님 등이 동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참배 3000일 끝나기 전 ‘빚 갚을 것’

호명 스님(태고종 총무원 부원장)은 “멀리 한국전쟁에 참전해 고귀한 생명을 몸 바친 숭고하신 분들의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인류애적으로 생명존중과 이타행의 적극적인 실천을 약속하는 영산재를 통해 기원했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들도 이날을 자랑스러워했다.
김해룡 6.25 참전 국가 유공자 회장은 “여러분이 일생동안 바친 노고와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서 “여러분 가슴에 단 훈장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싸운 공적의 증표이며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의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참석한 류상민 LA 총영사관 부총영사도 영산재를 주관한 LA봉원사와 양주 청련사 범음범패 보존회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당시 여러 가지 사고와 해프닝도 발생했다. 기부금을 받아 주는 복전(기부금함) 2개 중 한 개가 분실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또 다른 복전은 일부가 파손된 사건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행사장에 난데없이 북한 정권 깃발이 등장해 소란도 일어났다. 그리고 50대의 주차공간을 제공한다는 극장 측이 이를 이행치 않아 참석자들이 크게 불편을 겪기도 했다. 주차비가 20달러였다.

그리고 행사 당일 준비 명단에도 없는 사람이 나타나 사회를 맡으려고 하는 해프닝도 발생했고 여기에 여자 사회자로 예정된 인물도 사라졌다.

현재 영산재 행사로 거액의 빚을 안고 있는 청원스님은 지난해 6월 행사를 끝나자 3,000일 참배에 들어갔다. 그는 “참배를 하면서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면서 “지난 6개월 동안 4만 불 정도 갚았고 이제 10여만 불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께 한 가지 마음으로 공을 드리면 모든 것을 이루어 준다”는 한마음으로 공양을 드리고 있는 청원스님은 “참배 3000일이 끝나기 전에 빚을 갚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2011년 LA에서 첫 시연으로 관심 폭발

우리나라의 영산재는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유명하다.

이 같은 영산재는 지난 2011년 6월 26일 할리우드의 포드 시어터(Ford Theatres 2580 Cahuenga Blvd. East LA)에서 LA에서는 처음으로 장엄하게 펼쳐졌다. 당시 LA타임스도 크게 관심을 보여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영산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연되기는 당시가 처음이다. 2009년 9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열린 당시 시연은 한국전 참전 및 세계 평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열렸다.

LA총영사관과 한국문화원 등의 후원으로 열린 영산재 LA시연에는 태고종 총무원장 인공 스님을 비롯해 영산재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구해 스님과 15명의 전수자들이 동참했고 승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이애주 씨를 비롯해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비구니 성악가 정율 스님도 찬조 출연했다.

시연은 동양 사상과 한국의 사계절로 표현한 생로병사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 ‘화청’(부처의 법문을 음악으로 표현), ‘봉송’(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세계로 인도), ‘승무’(불교의식을 담은 전통무용) 등 총 22개 부문으로 이뤄졌다.

포드 시어터는 전체 좌석이 1,200석인데 모두 동포들과 미국인들로 꽉 채워졌으며 1.5세와 2세 자녀들을 동반한 한인들도 많이 보였다. 많은 미국인들이 신기해하면서도 흥겹게 관람했다.

시연단을 인솔한 총무원장 인공 스님은 “영산재는 불교의식이지만 우리의 5000년 한국문화가 오페라처럼 음악과 무용을 통해 모두 표현되기 때문에 이민자들과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호응이 좋아 앞으로도 미주지역에서 매년 영산재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고 밝혔다.

행사를 준비한 당시 LA봉원사 주지 보광 주지스님은 “한국에서는 예부터 국가 중요 행사를 개최할 때마다 영산재를 시연해 왔고 2009년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부터는 더욱 관심이 많아졌다”며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이렇게 성대하게 치러질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과 특히 남가주 22곳 한인 사찰의 스님들과 신도들이 한마음으로 협조하고 동참했기 때문“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영산재 의미에 맞는 행사 치렀어야

당시 시연단을 직접 인솔한 태고종 박인공 총무원장은 “중국 국가 종교국 초청으로 중국 공연을 마친 뒤 LA를 찾게 됐다”라고 말하며 “한국 전통문화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불교예술의 숭고함을 LA에서 선보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산재를 불교 사상과 예술을 담은 동양의 오페라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 박 총무원장은 “영산재 시연을 통해 한인과 현지인들이 마음의 위안과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일반인을 위한 영산재가 지난 2015년 3월 14일 불교 문화회(회장 이원익) 주최로 LA 한국 교육원 강당에서 열려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입장권도 조기 매진되었다.

남가주 사원연합회 회장 묘경 스님은 “2011년 LA 포드극장에서 열렸던 영산재는 주로 미국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취지였다면 이번 공연은 일반인 특히 1.5세와 2세들에게 한국문화의 진수를 접할 기회였다.”고 말했다.

당시 행사를 주최한 불교 문화회 이원익 회장은 “200석이라 조금 부족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호응이 좋을지 몰랐다”라며 앞으로 다시 영산재 공연이 열릴 수 있길 희망했다.

당시 행사를 성사시킨 금강선원 주지 용화 스님은 “불교에서 ‘재’라는 의미는 ‘맑힌다’는 뜻으로 가장 먼저 나의 몸과 말, 마음을 맑게 닦음으로써 나아가 이웃과 온 우주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무형문화재 15호인 법우 스님을 비롯한 네 명의 스님을 초빙한 이번 행사는 무대와 객석 이 가까워 관객들이 공연 하나하나에 몰입하는 모습은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공연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50호인 ‘영산재’, 제27호인 ‘승무’, 그리고 제97호인 ‘살풀이춤’이다. 승무, 괘불이운, 상단불공, 회심곡, 중단퇴공, 살풀이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평화와 남가주 가뭄 해소를 기원하는 능계은주 등으로 약 1시간 40분에 걸쳐 진행됐다.

공연 후 다음 날에는 금강선원에서 천도재에 지냈고, 이어서 북가주 삼보사에서도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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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재는 불교 사상과 예술을 담은 “동양의 오페라”

영산재 바라춤

▲ 미망에서 벗어나 고통없는 세상과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는 불교 예술의식 ‘영산재’의 바라춤 장면. 사진제공 봉원사

영산재(靈山齋)는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1973년 11월 5일 지정)는 불교 의식으로 사람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영혼을 극락으로 천도하는 천도재의 한 형태이다. 2009년 9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4차 무형문화유산 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영산재는 해마다 시연되는 행사이며, 이 영산재 보존을 위해 봉원사에서 영산재보존회를 만들어 으며, 보유자는 범패 부분 김인식(법명 구해)이다. 옥천범음대학을 함께 두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영산재는 괘불 앞에서 찬불 의식을 《괘불이운》(掛佛移運)으로 부터 시작된다. 괘불은 정면 한가운 데 걸고 그 앞에 불단을 세운다. 그다음은 영혼이 생전에 지은 죄를 씻어내는 《관욕 의식》을 진행한다. 이 의식이 끝나면,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고, 이후 사람들의 보다 구체적인 소원을 아뢰는 《축원문》을 낭독한다.

한국에선 보통 매년 6월의 첫째 주에 연간 정기 공연이 시작되며, 2010년 6월 6일에 정기 공연이 있다.
영산재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행한 설법 회상인 영산회상을 오늘날에 재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 천도의례 중 대표적인 제사로 일명 ‘영산작법’이라고도 한다.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

영산재는 제단이 만들어지는 곳을 상징화하기 위해 야외에 영산회상도를 내다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앙의 대상을 절 밖에서 모셔오는 행렬 의식을 하는데, 이때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해금, 북, 장구, 거문고 등의 각종 악기가 연주되고, 바라춤•나비춤•법고춤 등을 춘다.

신앙의 대상을 옮긴 후에는 여러 가지 예를 갖추어 소망을 기원하며 영혼에게 제사를 지낸다. 마지막으로 신앙의 대상을 돌려보내는 봉송 의례를 하는데 제단이 세워진 곳에서 모든 대중이 열을 지어 돌면서 독경 등을 행한다. 예전에는 사흘 낮과 밤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근래에는 규모가 축소되어 하루 동안 이루어진다.

영산재는 전통문화의 하나로,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부처님의 참진리를 깨달아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하고 공연이 아닌 대중이 참여하는 장엄한 불교의식으로서 가치가 있다.

이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범패(梵唄), 화청(和唱) 등을 연주하며,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을 춘다.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 전통 민속음악과 민속 무용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산재는 주로 태고종에서 전해 내려오며 매년 서울 봉원사에서 영산재를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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