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방송인 김영우 타계, 한인방송계의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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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방송인 김영우 타계, 한인방송계의 산증인

1965년 한인사회 최초의 방송국 ‘라디오 코리아’ 설립한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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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한인방송의 산증인인 원로 방송인 김영우 씨

미주 한인방송의 산증인인 원로 방송인 김영우 씨가 지난 21일 오후 북가주 월넛 소재 존 뮤어 호스피탈에서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7세. 김 씨는 1963년에 미국에 이민해 50여 년 간 라디오와 TV방송 활동에 헌신하셨으며, 지난 2014년에는 방송 기재와 영상작품 일체를 USC 대학 한국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라디오 코리아’라는 명칭은 원래 50여 년 전에 이미 LA에서 원로 방송인 김영우 씨에 의해 방송됐으나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역사를 모르고 있다.

1965년 7월 12일 오전 7시. 잉글우드에 있는 KTYM FM 103.9 MC 방송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나왔다.
이어 김영우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라디오 코리아’(Radio Korea) 방송의 개국을 알리면서 한국의 민요와 가곡들이 축사 사이사이에 삽입되면서 30분간 계속됐다. 이것이 LA 지역 한인사회 역사상 최초의 한국어 방송이었다.

당시 이 방송의 전파료는 30 달러였다. 이 전파료는 당시 남가주 한인회(현재 LA 한인회)의 홍보 이사였던 소니아 석 여사(작고)가 부담했다. 그녀는 부동산 브로커로 활약하고 있었다.
한인 최초 의 라디오 방송의 주역은 한국에서 MBC 문화방송에서 아나운서 제1기로 활약한 김영우 씨와 전 KBS 아나운서였던 서정자(현 시애틀 ‘라디오 한국’사장) 씨 그리고 엔지니어로 이순재(전 미 8군 AFKN-TV 엔지니어) 씨 등이었다.

이 방송이 처음 전파를 타고 나갈 때는 LA 지역에 오늘날처럼 한국어 일간신문이 없어 많은 동포들이 청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식을 듣고 다이얼을 맞춘 일부 동포들은 미국 땅에서 생전 처음 듣는 한국어 방송에 감탄했다.
또 이들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아리랑 민요 가락에 향수를 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같은 최초의 한인 라디오 방송은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개국 11개월 만에 중단됐다. 이후 김 씨는 1969년에 LA에서 창간된 미주한국일보와 협력해 74년에 제2의 라디오 방송 시대를 열었다.
당시 이 방송은 한국일보 매체를 통해 동포사회에 알려졌다. 이후 토요일의 한 시간 방송이 매일 2시간으로 확장됐다. 한국일보는 TV 방송에도 진출해 76년부터 UFF 방송의 Ch-98에서 30분간 방송했다.
김 씨가 1981년 7월 한국일보 방송국장 자리를 떠나면서 한국일보 TV와 라디오도 중단됐다.

한국일보를 떠난 김 씨는 그 해 코리아타운에 ‘K-Productions’을 설립해 오디오 녹음과 비디오(TV 광고) 제작을 시작했다. 사업을 하면서 라디오 방송을 잊을 수 없던 김 씨는 84-85년에 KIEV라는 TV 방송과 그리고 방송인 정진철 씨(현 Glin-TV 대표, 전 라디오 서울 부사장)와 함께 KCB-TV를 시도했었다.
다시 방송계를 떠난 김 씨는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맡지 않는 일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한국일보가 다시 TV 방송을 구상하면서 김 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KTAN-TV를 설립했다. 초창기에는 MDS라는 특수 안테나와 트랜스미터를 각 가정에 설치해야만 시청할 수 있었다.
당시 KTAN은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를 위성으로 최초로 중계해 한인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후 다시 KTAN을 떠난 김 씨는 방송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하이-미디어 프로덕션(Hi-Media Productions)’을 설립했다. 첨단 장비로 DVD와 CD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것이었다.

50년 소장, USC 한국학 도서관 기증

2014년 2월 12일은 김영우 씨가 50년간 써왔던 모든 개인방송 장비를 USC에 기증하고 은퇴하는 날이었다. 이날 많은 동료 후배 방송인과 언론인들이 모여 한국이민사를 생생한 음성과 영상으로 기록한 방송인이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그의 50년 방송 생활을 기념했다.

이날 축하 모임은 USC 도헤니 도서관 2층 한국학 도서관에서 USC 측과 한국일보 사우 모임 ‘녹우회’ 와 미주방송인 협회 주최로 성대하게 열렸다.
많은 방송인들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김 씨는 50년 동안 프로그램 제작에 쓰던 HD 카메라 등 촬영 장비, 컴퓨터 녹음 및 편집장비, 음향기기 등 모든 장비를 USC에 기증하여, 방송 인생을 마무리하는 은퇴식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USC는 기증받은 방송장비를 한국학 도서관 등에서 실습 장비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방송뿐 아니라, 남가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MC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날 축제 <코리안 퍼레이드>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도의 수만 관중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특히 미주 한인 이민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영상 자료를 제작하여 남기는 중요한 작업에도 정열을 쏟았다.

그동안 제작한 영상 회고록은 도산 선생의 장녀 안수산 여사, 올림픽 다이빙 2연패 금메달 수상자 새미 리 박사, 3.1운동 당시 우국지사 이화목 장로, 이민사회의 초기 의사 김창하 박사, 생물학자이며 칼텍 교수 노준희 박사, 부동산 대모 소니아 석, USC 졸업생 차상달, 영어학자 정봉자, 체스터 장 박사와 가족, 불멸의 인기가수 백년설과 심연옥, 언론인 이종성, 작곡가 권길상, 전미 노동국 여성 국장 전신애, 미주 아세아 언론계의 대부 이경원 선생, 한국 태권도의 대부 이준구 사범, 오리곤주 상원의원 3선을 역임한 임용근 의원, 워싱턴주 상원 의원 신호범 의원, UC Merced 총장을 역임한 스티브 강 총장, <우리의 소원>을 작곡한 동요작곡가 안병원 선생, 밝은 미래재단의 홍명기 회장,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 선수, 한국의 국회의원 이만섭, 유일한 한인 해병대 준장 대니엘 유,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과학자 Philip Kim 박사, 암 치료계의 권위자 홍완기 박사, 우주공학자 정재훈 박사 등 수 십 명에 이른다.

회고록 이외에 한인 동포사회의 중요 인물들의 영상기록을 담은 Video DVD와 미주 한인 이민 역사를 남기고 간 이민사의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수록한 CD 등 100여 장이 있는데, 이 모두가 미주 한인 이민사의 주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성진 기자>

 

[장례일정]

집례: 황승일 목사 (밴나이스 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개별조문)

일시: 2017년 3월 2일 (목요일) 오후 5:00 – 9:00 시까지

장소: Main Mortuary Building #D, Forest Lawn in Hollywood hills
(6300 Forest Lawn Dr. Los Angeles, CA 90068 Tel: (800)204-3131)

(고별예배)

일시: 2017년 3월 3일 (금요일) 3:00 – 4:00 pm

장소: Church of Hill, Forest Lawn in Hollywood hills
(6300 Forest Lawn Dr. Los Angeles, CA 90068 Tel: (800)204-3131)

* 고별 예배 후 이어서 장지에서 하관예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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