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79주기와 민족의 좌표 “지금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있다면,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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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의 유산과 정신이 있기에 미주동포사회가 빛을 發 하고 있다”

3월은 우리 민족에게 위대한 날을 기억하게 하는 달이다. 세계 민족사에도 기리 빛날 대한 인들의 ‘3.1 독립 만세운동’이다. ‘비폭력, 평화 운동’으로 독립을 외친 숭고한 애국운동이다. 특히 미주동포들에게 3.1운동은 하나의 복음처럼 다가왔다. 3.1운동은 한반도에서 일어났으나, 그 꽃을 피운 것은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간 선열들이다. 앞으로 2년 후면 3.1운동 100주년이다. 벌써부터 여러 단체들이 제마다 ‘100주년 기념’ 운운하면서 자기들이 100주년 기념행사를 벌이겠다고 야단들이다. 3월 10일은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의 순국 79주기였다. 이날을 추념키 위해 도산 연구에 한 시절을 보낸 여성학자 이명화 박사가 LA를 방문해 도산의 유산과 우리 민족의 아픔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 3월은 새봄과 함께 동포사회의 새 출발을 준비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안창호

▲ 도산 안창호

도산 안창호 순국 79주기를 맞아 한인사회가 오늘의 국내 정세를 우려하면서 100년 전 도산이 이 땅에서 펼친 애국 애족 사상을 추념했다.

도산 순국일인 지난 10일 흥사단 LA 지부(회장 민상호)가 대한인 국민회 기념재단(이사장 권영신) 과 함께 코리아타운 가든 스위트 호텔에서 개최한 추모식에서 이장훈 흥사단 미주 위원부 전 위원장은 “오늘의 국내 국론 분열사태를 보며 도산 선생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새삼 도산이 하신 말씀 ‘여러분을 섬기려 왔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흥사단 미주 위원부 서경원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도산 말씀을 낭독해 오늘의 난국을 헤쳐 가야 하는 도산의 가르침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도산 선생의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도산의 소통 사상으로 난국 극복해 나가야

이날 최창호 전 LA지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에서 추념사를 한 인사들도 한결같이 오늘의 혼란스러운 세태에 도산이 남긴 유산을 더욱 귀중히 여겨 난국을 헤쳐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철 LA 총영사는 “교육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가르친 도산의 사상은 오늘날 미주사회의 철학과 비전을 주는 길”이라고 강조하면서 “특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 대목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금횡령을 금지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해 한인사회에서 공금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단체들에게 뼈 있는 지적을 했다.

미주 도산기념사업회의 홍명기 회장은 “지금 도산이 살아 계셨다면 오늘처럼 혼란스러운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러한 때 우리는 더욱 도산의 가르침인 지, 덕, 체 사상으로 통합을 이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인 국민회 기념재단의 권영신 이사장은 “근대사의 등불로 추앙받는 도산의 소통 사상으로 우리들이 통합의 믿음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야한다”고 밝혔다.
치노 밸리 교육구의 제임스 나 위원장은 “도산이 강조한 ‘사람이 되어라’고 한 말씀을 되새기자“라고 강조했다.

도산 연구가 이명화 박사 참석 학술세미나

추모식

▲ 도산 안창호 순국 79주기 추모식이 엄수되고 있다.

흥사단 LA 지부의 민상호 회장은 “오늘의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론 분열 사태를 보면서 도산이 강조한 ‘나를 개조 시키자’라는 말씀이 떠오른다”면서 “우리 모두가 자신부터 변하지 않고서는 사회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도산 가족을 대표해 랄프 안(안필영)옹은 “아버지 도산은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애국자였다”면서 “오늘 도산의 순국일을 맞아 한인사회단체가 함께 그분을 기억함에 가족으로서 감사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인 국민회 기념재단은 오는 25일(토) 중가주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을 떠난다. 이날 오전 LA 한인타운 대한인 국민회관에 모여 버스 2대로 한인 1세 및 차세대 100명을 대상으로 중가주 리들리와 다뉴바시의 유적지를 탐방할 예정으로 참가비는 무료이다. (문의: 323-733-7350)

이날 도산 순국 79주기 기념행사에 앞서 도산 사상을 전파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려 기념행사를 빛내 주었다. ‘도산 안창호와 대한인 국민회’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는 국내에서 도산 연구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명화 박사(한국 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역임)가 약 1시간 40분 동안 영상 자료와 함께 열정적으로 발표해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홍명기 미주 도산기념사업회장은 “3.1 운동 이후 1925년 상하이 임시정부에 미주의 한인 동포들이 당시 25,000 달러라는 거금을 모금해 임정으로 냈다”면서 “이명화 박사가 국내 동포들에게 이 같은 미주 동포사회의 독립운동을 이해시켜 달라”라고 요청했다.

진교륜 박사는 “오늘의 강연은 매우 의미 있는 역사적 강연이다”면서 “이런 내용은 영어로 번역이 되어야 한다”라고 요청했다. 권명주 평통 위원은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주로 남성들 중심의 활동 소개가 많은데 여성의 독립운동도 알려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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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과 대한인 국민회 … 강연 요지

도산 선생의 대한인 국민회의 활동을 통해서 ‘미래의 대한민국의 부강을 바라본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1902년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미국에 유학을 목적으로 입국했으나, 동포들의 삶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 동포들과 함께 노동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도산은 미국 생활을 통해 선진국의 부강함을 직접 배웠다.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독립전쟁을 벌여 끝내 독립을 쟁취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을 체험을 통해서 ‘조선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산은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를 결성하고 1905년에 공립협회를 창립하고, 공립 신보도 발행했다. 도산은 1906년 4월 5일 공립협회 창립 1주년 기념식에서 매우 뜻있는 연설을 했다.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은 꽃과 열매를 취할 것이 아니라, 뿌리와 씨를 취해야 하며 미국을 배워 우리도 부유 부강한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와이의 한인 합성회와 통합회 국민회

이 공립협회가 나중 하와이의 한인 합성회와 통합회 국민회(1909년 2월 1일)가 탄생했으며, 국민회가 다시 북미 대동 보국회와 통합하여 대한인 국민회(1910, Korean National Association)라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연합체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 대한인국민회는 미주와 멕시코, 만주, 러시아, 유럽에까지 지방총회를 두는 조직체였으며, 기관지 신한민보가 중요한 소통의 기구가 되었다.
대한인 국민회는 도산의 주도로 당대의 어떤 조직체보다도 뛰어난 조직과 제도를 갖추고 미주만이 아닌 해외 한인 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독립운동을 선도하였다. 대한인 국민회의 설립 이념은 민족주의이며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설립 이래 철저한 3권 분립에 입각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에 그 어떤 단체보다 생명이 길었다.

대한인 국민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간

미주 한인사회의 안녕과 자치를 신장하는 기구로 출발하여 전 세계의 한인들을 조국 독립이라는 목표로 결집시켰고, 3.1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기 전 해외동포사회를 이끈 준 정부였으며,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여 소중한 민주주의 훈련장이었다.
특히 대한인 국민회는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간 준 정부로서 행사하던 권한과 역할을 임시정부에게 일임하고 애국금과 독립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를 도왔다. 무엇보다 대한인 국민회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의 정부인 대한민국 국호 자체가 미주 국민회와 대한인 국민회로 부터 출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도산은 미주의 대한인 국민회의 활동을 통해서 미래의 대한민국의 부강을 바라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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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화 박사 위안부 강연 요지

“위안부 문제는 인류가 그 진실을 알고 기억해야 할 문제”

이명화-박사

▲ 이명화 박사

이명화 박사는 13일 미주 3.1여성 동지회(회장 홍순옥)가 주최한 <일제의 황민화 통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주제 강연은 1930~40년대 일본의 황민화 통치의 실상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함께 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날 주최 측인 미주 3.1여성 동지회의 홍순옥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미주 3.1여성 동지회는 지난 1982년 6월 9일 미국 내 독립 유공자 가족들이 힘을 모아 창립하면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역점을 둔 활동이 바로 위안부 문제와 독도 지키기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홍 회장은 “요즘 일본 측의 글렌데일 소녀상 철거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저희와 LA 동포 사회가 한마음으로 지키기 운동을 하는 시점에 오늘 이명화 박사님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연은 매우 적절하고도 분명한 주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갑식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서 3.1 여성 동지회에서 특별히 위안부 문제를 담당하는 이연주 상임 이사는 이날 강사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날 LA 한인회관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이명화 박사는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한국 민중은 일본 일왕의 신민으로 교육받았다.”면서 “한국 민중은 일본 이 전개한 침략 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박사는 “특히 그중에 한국 여성들, 특히 나이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지옥과 같은 고통을 당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날 강연이 요지이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겉으로는 한국인을 일본인과 똑같은 신민으로 대우한다고 했으나, 오히려 여러가지 방법으로 차별을 공고히 해나갔다. 일장기 게양,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창씨 개명을 시키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했다.
일본은 1940년대 들어서부터 노골적으로 한반도를 대륙 진출의 병참기지로 만들어 물자와 인력을 강제로 동원 시키는데 광분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 여성 12세부터 40세 미혼 여성을 여자 정신대 근로령으로 공포해 갖은 명목으로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이들 중 많은 여성을 ‘돈을 벌게 해준다’라는 명분으로 일본군대 위안부로 만들었다. 심지어 한국 땅에서 어린 소녀들을 속여 ‘위안부’로 전쟁터로 보냈다.
한인 여성들에게 ‘위안부’는 치욕스런 상태지만, 일본 사회는 매춘이나 공창을 보는 시각이 한국인 과는 크게 달랐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나 군부는 ‘위안부’ 실태를 정식으로 기록하지 않고 비밀로 처리해 그들의 죄상을 은폐했다. 종전이 되지 일본은 자신들 군대는 본국으로 귀향시켰으나, 수많은 군부대 ‘위안부’는 방치시켰다. 일부 ‘위안부’들은 미군에 의해 구출되어, 나중에 생존자들이 1993년에 세계를 향해 증언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부끄러운 역사만이 아닌 모든 인류가 그 진실을 알고 책임을 느끼고 기억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명화 박사 약력
● 문학박사 (도산 연구로 국내 최초 박사학위)
● ‘도산 연구상’ 수상
● 한국 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수석 연구위원 역임
● 도산 안창호 기념 사업회 및 도산 학회 운영위원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위원
● 충북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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