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탈북 여성 중국에서 긴급 구호 요청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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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팔려가 꽃제비생활-강제결혼
남편 폭행으로 탈출한 절박한 탈북여성

‘미화 4,000 달러면 한국으로 데려 올 수 있다는데…’

탈북여성최근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북한군 탈영 사건으로 조중국경 지역은 살벌하기 그지없고, 한편으로는 북한 난민을 돕는 한국인들의 구속이 이어지고 있어 북한 난민들의 삶이 더욱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북한 인권 시민 연합 북한 난민 구호 사업단(단장 이미숙)은 중국 현장 활동가로부터 최근 다급하게 구호 요청을 받았다. 탈북 여성 두 명이, 팔려가 강제 결혼을 했고, 그 곳에서 다시 팔리고, 폭행으로 몸이 망가져버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도망쳐 나와 도움을 요청 해왔다는 것이다. 가슴 아픈 두 여성의 사연을 소개한다.

이정별(가명, 30대 여성, 남포 출신) 의 호소
‘한국 가서 새로운 인생 진짜 살아보고 싶습니다’

조선에서 내가 세 살 때 엄마가 동생을 낳다가 엄마는 죽고 동생은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동생은 결국 영양실조로 4살 때 죽었습니다.
늙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나를 돌보는 것은 정말 보기에도 힘든 일이였습니다. 너무 미안했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가난이 심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남의 집 빨래하기, 물 길러다 주기를 하며 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19살 때 할머니가 돌아 가시자 할아버지는 눈물로 보내시다 1년 후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20살에 혼자가 되고 보니 서럽고 조선이 너무나 싫어졌습니다. 옷 한 벌 변변한 것 없었고 고아라고 모두 나를 무시했습니다.  그때 꽃제비처럼 전전하며 살았는데, 동네 언니가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어 올 수 있다는 말에 조선에는 기댈 사람도 보고픈 추억도 없던터라 중국이 나에게는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지긋지긋한 조선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에 눈물까지 났습니다.
조선은 지금도 생각하면 손발이 떨리는 곳입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도 꿈에도 잊고 싶은 조선 입니다.
그렇게 회령시 근처에 오니 두 명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제일 어렸습니다.

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2007년 여름 도강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중국 남자들의 폭행이였습니다. 약속과 다르다고 언니가 말하니 그 자리에서 언니를 때려서 피가 터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무서워 아무 말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 후 우리 셋은 뿔뿔이 헤어졌는데 나는 어리다고 한 달 동안 더 데리고 있었습니다.
힘없는 내 입장에서는 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후 연길에서 한 달을 있다가 그 남자 욕심이 다 채워졌는지, 나를 심양의 산골 안에 10살 많은 남편에게 팔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주변에 나같이 팔려온 애들이 여럿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별난 사람여서 밖에 못나가게 감시하는게 일이다시피 했습니다.

나는 곧바로 임신하고 딸아이를 낳았는데 어떻게 키우는지 몰라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술 먹고 나에게 주먹질을 일삼았는데 어떤 때는 너무 때려 1주일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빌고 빌었지만 폭행은 계속되었고 남편 친구가 보다가 나를 불쌍하다고 몰래 도망시켜줘 중국 식당에서 일하다가 한국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검사가 심해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입니다.
꼭 한국에 가서 새로운 인생 진짜 살아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고맙습니다.

김미옥(가명, 40대여성, 함경북도 출신) 호소문
‘북에 두고 온 두아이들 위해 악착같이 살겠습니다’

부모님 돌아가고 오빠 세 명 다 돌아가고 언니 하나도 지금 살아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중국에 올 때는 살아있었는데….. 저는 결혼해서 량강도에서 살았고, 딸과 아들 하나를 낳았어요. 남편 일하기 싫어하고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데 술만 먹고 동네 사람들과 싸움만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혼하고 살아보려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먹고 살길이 막연했습니다.

혼자 애들 키우며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곳이 조선입니다. 그대로 살다가는 아이 둘을 죽일 것 같았습니다. 아는 언니가 중국 이야기를 많이 해 나는 살길이 중국이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 언니가 다시 중국에 나간다고 해서 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두 아이에게는 곧 온다고 말하고 남편에게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아이들 안떨어지려고 손을 곡 잡은 손을 뿌리치고 달렸지만 열 발작도 못가고 뒤돌아 보았습니다. 지금도 갑자기 아이들이 어디서 나올 것 같은 느낌이듭니다.

강을 넘어 산속에 숨어있는데 밤에 비가 많이 내려 추위가 볏 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 찾아 산속 인삼밭 들쭉밭 등을 돌아다녔는데 돈이 안벌려, 결국 조선집에 2000원 보내준 것이 고작였습니다. 살 방법은 시집가는 것이라고… 그 것 뿐이여서 한탄스럽지만 조선여자들 다 그렇습니다.
한족 농사짓는 남자에게 시집갔는데, 남편이 다리 불구여서 일은 내가 다했습니다.

시집가서 보니 혼자 일하며 살 때보다 더 힘들었고, 눈물로 몸종처럼 씨처럼 살았습니다. 도망오자해도 전화기도 없고 돈도 없어 방법이 없었습니다.  조선에 두 애들 생각나면 몇 날을 울었습니다. 나의 꿈이 이곳에서 도망가서 몸 편히 살아보는 것입니다. 여기일 다 잊고 한국 가서 조선의 아이들을 위해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날을 위해 도와주세요.

이같은 사연을 전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외롭고 힘들게 자란 여성들에게 폭행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희망의 손길’을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들 두 명을 구조하는 데는 약 400만원(미화 약 4천 달러) 가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러분들의 ‘희망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해왔다.

구호금 입금계좌 및 계좌명:
대한민국 우리은행 142-097009-01-201 북한인권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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